시대의 우울 - 최영미의 유럽 일기
최영미 지음 / 창비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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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우울 - 최영미
★★★☆☆

서른, 축제는 끝났다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최영미라는 작가의 배경지식을 하나도 안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시대의 우울을 만났다. 그림에 관해 워낙 문외한인지라, 얼마 되지 않는 미술에 대한 얄팍한 호기심으로 책을 들었다. 아는 그림 나오면 반가워하고, 모르는 그림 나오면 신기해서 그림의 이야기속으로 빠져드는 단순한..(-_-;;)

브뤼겔 이카루스의 추락


간단히 책 소개를 하면, 최영미 작가가 유럽의 미술관 들을 돌아다니면서 그림에 대한 이야기와 여행에 대한 간략한 여정들을 담은 '미술 기행문' 정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여행을 다녀온 시기가 1995년 경이고, 초판이 나온게 1997년이니까 대략 10년 정도의 시간의 차이가 생기는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의 표기와는 조금 낯설은 외래어 표기법이 종종 발견된다. 때깔 좋은 종이질에, 올컬러로 된 사진과 그림들은 그림에 대한 이야기들을 충분히 즐겁게 만들어준다.

읽는 내내 사실 왜 시대의 우울일까 하는 생각을 달고 있었다. 그림에서 품어져 나오는 분위기와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일생 혹은 그 화가가 살았던 사회상이 'Blue'로 그려졌기 때문일까. 작가의 청년의 시기인 70~80년대에 그가 담아낼 수 없었던 '삶'에 대한 어떤 미련 때문일까.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이제는 묻혀 지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처럼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오랜동안 가슴에 품고 살아왔기 때문일까.

차라리 서양화 재미있게 읽기라던가, 유럽 미술관 기행문 정도의 부제를 달았더라면 오히려 그런 마음들이 덜 했을텐데, 그녀가 보낸 70~80년대의 삶들이 자꾸만 그림을 설명하는 중간 중간에 에스프레소 커피가 떠오르면서 어떤 이유에 대한 변명처럼 들리는 이유는 무얼까.

그녀의 그림 이야기 보다 당시에는 조금 이른 색다른 사고방식들과 깨어있는 여성으로 인정 받거나 혹은 지탄 받았을 상황들이 어른거리면서도, 지금의 그런 사고를 가진 여성들이 상당히 많아졌고, 때로는 그런 시각들을 싸잡아서 ~녀로 매도하기도 하는 상황들이 함께 자주 오버랩되었다. 그녀가 마지막에 언급한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도 하필 마지막에 등장한다. 쓸데없는 내 의식일테지만 말이다.

그래도 좋은 그림과 그림에 담긴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그녀의 목소리는 대체로 높고 낮음이 잘 구분이 가도록 읽는 내내 조절해 준다. 사실 그녀의 '이야기' 보다는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선뜻 집어든 책이므로, 그 몫은 만족스러운 것을. 시대의 우울에 담겨진 좋아하는 그림들을 몇 선 꼽아본다.

와또 시테르 섬의 순례


 

콜비츠 독일의 아이들은 굶주린다


 

꾸르베 바다


 

"귀스타프 꾸르베는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유럽미술의 오랜 전통을 깨고 종교와 신화를 주제로한 그림은 단 한 점도 그리지 않았던 화가. 그는 고대의 신들을 모두 추방한 자리에 당대의 평범한 일상을 들어앉히고, 거의 사진에 가까운 정직함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화폭에 담았다. '나에게 신을 보여달라. 그러면 신을 그리겠다'는 그의 말은 후일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명제가 되었다.

  수백년간 지속되어온 미술세계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쎈세이셔널한 전시회와 언행으로 유명했던 그에 대해선 수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그의 높은 콧대를 비꼬던 어느 정부 고관에게 꾸르베는 이렇게 응수했다고 한다. '이제사 그걸 알았습니까? 참으로 놀랍군요. 각하. 나는 프랑스에서 가장 거만한 사람입니다.'

  그의 이러한 오만방자함은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고 그림을 그려 밥을 먹기 원했던 화가의 지나친(?) 성실함에 비롯된 것이리라"

최영미, <시대의 우울> 중에서

+ 그림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은 분들께 - 조이한, 진중권의 천천히 그림읽기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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