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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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눈, 세상을 말하는 입 그리고, 세상을 담는 마음

'사람은 누구나 좌파로 살거나 우파로 살 자유가 있지만 중요한 건 그런 선택을 일생에 걸쳐 일상 속에서 지키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정하는 일인 것 같다. 좌파로 사는 일은 우파로 사는 일에 비할 수 없이 어려우며, 어느 시대나 좌파로 살 수 있는 인간적 소양을 가진 사람은 아주 적다. 우파는 자신의 양심을 건사하는 일만으로도 건전할 수 있지만, 좌파는 다른 이의 양심까지 지켜내야 건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글 서두에는 좌파로 살아가는 자신의 신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이념과 사상이라는 테두리를 떠나서 그의 용기가 오히려 돋보일 수 밖에 없다. 좌파로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이 버려야만 하는 것들 뿐만 아니라, 자신이 좌파로 살아가기 위해서 거두어 들이고 계몽시켜야 할 의무를 그는 결코 묵묵하게 혹은 조용하게 치뤄내지 않는다. 그는 목소리를 높여 늘 용기와 깨어있는 지성을 말한다.

리뷰와 조금은 상이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광고를 무척 싫어한다. TV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유익한 점들 보다, TV가 긍정적으로 제시하고 보여주려고 하는 '집단지성'의 획일화를 싫어한다. 광고는 그 집단 지성과 획일화를 위해 그가 이야기하는 것 처럼, 지독히도 전략적인 사기다. 생산과 그 생산을 위한 인간이 중심이 되지 않는 광고는 늘 소비와 집단 최면을 향해 치닫는다. 우습게도, 골때리게도 나 역시 광고라는 큰 테두리 안의 직업군에서 일을 하고 있음에도, 광고가 가지고 있는 파워와 영향력을 잘 알고 있음에도 나는 광고를 둘러싸고 있는 집단과 직군과 직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물론 나의 직업과 역량을 부끄러워해 본 적은 없었지만, 반대로 그것에 대한 궁극적 우상화나 어떤 대단한 직업이어서 여타의 추종을 받으면서 나 이런거 하는 사람이다.. 라면서 말해 주는 것을 많이 부끄러워 한다. 친한 친구와 선전과 광고, 광고란 무엇인가에 대해 어설프리만치 단순한 설전을 펼친 적도 있었지만, 짝다리 짚고 서 있는 내 자세로써는 글쎄. 그저 과자 한 봉지, 컴퓨터 한 대, 자동차 한 대를 팔아치우기 위해, TV로 모여드는 '멍'한 상태의 소비자를 찾아 다니는 고도의 상술일 뿐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그가 이야기한 것 처럼, 소위 자본주의의 급물살을 타게 된 90년 대 이후로 우리나라는 '프로'라는 타이틀로 광고대행사의 AE라는 전문가들로 불리우며 찬미받는 존재를 양산하고,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광고라는 노선에 그들을 선봉장으로 이끌며 만들어온 사회가 현재의 대한민국이 아닌가. 월드컵을, 아니 2002년 대한민국을 월드클래스로 만들어 준 선봉장들 역시 그들이었고, 여전히 그들 안에서도, 밖에서도 그들만의 성전을 꾸미며 짐짓 프로이며, 지식인인 양 행동하는 사람들도 그들이다.

문자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그저, 직업이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적어도 광고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만이 화이트 칼라에, 최상위 직업군에, 미적, 예술적, 과학적, 심미적인 모든 것들을 알고 있고, 그렇게 우월하기 때문에(?) 자랑할 만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다시 리뷰로 돌아와서,(-_-;;)

작가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한다. 물론 작가의 각 칼럼이 게재된 때가 1999년도 부터 2001년도 경 까지이니 2006년도의 현재와는 조금 다른 상황으로 인한 다른 해석이 나올 수도 있으나, 그는 분명 통쾌하리만치 글을 잘 토해낸다.

"제가 옛날에 구사대였거든요." "구사대? 구사대가 뭐지?" "제가 옛날에 구사대였거든요." 구사대라, 회사를 구하는 대다 이건데, 어쨌든 그래서요." 30대 여자 코미디언과 40대 남자 가수는 어물쩍(방송용어로 순발력이라고 하는) 넘어간다. '구사대'라는 말을 모르는 30대 여자와 40대 남자를 어찌 생각해야 할까. 나는 당혹스럽다. 나는 '교양'에 대해 생각한다. 교양이란 무엇인가. 교양이 문화적인 지식이나 감정표현의 절제, 우아한 말과 행동 따위라는 생각은 봉건적이다...(중략).. 아마도 교양이란 '사회적인 분별력'일 것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그 뜻과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반드시 자기 힘으로가 아니어도.) 그게 교양이다... - 교양 p61~64

과연 한국 영화인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만한 사람들인가. 제 밥그릇이 걸린 일에는 '자신들이 놀랄 정도'로 열심인 영화인들은 남의 밥그릇에는 어떤 관심을 보였던가. 자신들의 불행을 언제나 민족이라는 이름에 호소하는 영화인들은 정작 민족이 불행할 때 어디에 있었던가...(중략).. 이번 싸움에서 한국 영화를 '민족 고유의 것'으로 해석하던 영화인들은 농민들이 신토불이를 외치며 미국쌀과 싸울 때 어떤 지지를 보냈던가. 이 나라의 유한 계급을 뺀 모든 백성들이 불행해진 구제금융 시대가 일년을 넘기고 있지만 그 동안 영화인들은 그 잘난 영화 예술로 세상의 어떤 모습을 그려냈던가.. - 염치 p89 ~92

폐업에 나선 의사들은 "이럴 바에는 개업할 돈으로 차라리 카페나 당구장을 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개업하지 말고 카페나 당구장을 하면 될 것이다. 카페나 당구장을 하는 인간은 의사보다 하등하단 건가. 자신들이 더 이상 특권층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여전히 특권 의식을 버리지 못하는 의사들의 이중의식은 그들의 권리주장의 공정성을 손상한다.. - 돌팔이2 p221 ~224

내 일생을 보내는 한 방법으로 이민이 등장한 건 지난 여름 어느 날 후배 녀석에게서 캐나다 벤쿠버의 무색무취한 삶 이야기를 듣고서다. 주 5일 노동으로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집을 마련하는 데 반생을 바칠 필요가 없다는, 교육과 의료가 무료이며 도무지 세상을 갈아엎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다른 이의 삶에 대해 간섭하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광활한 자연 곁에서 조용히 살아간다는, 벤쿠버의 무색무취한 삶은 이민에 대해서라면 어린 시절의 반감만 존재하던 나를 뒤흔들었다... - 이민 p253 ~256

세상을 보는 눈은 반드시 신문의 경제면을 펼쳐들고 부동산의 흐름과 주가 동향과 저축 금리를 따지며 '흐흠...'하고 손익계산을 할 수 있는 능력만은 아닐 것이다. 나를 돈독히 다스리고, 내 가족을 살피며, 내 동료와 내 주변의 지인들의 삶을 참견하고, 그리고, 더 크게는 나와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삶을 보다 합리적이고 투입에 대한 충분한 산출이 나오는 세상을 만들며 살아가는, 그런 것들을 돌보는 눈이 세상을 보는 눈이 아닐까.

30만원, 50만원, 100만원짜리 적금을 매달 부으며, 20~30년을 오로지 내 집 마련을 위한 융자 갚아나기와 아이들의 교육비로 평생 모으는 돈은 그렇게 어찌보면 허망할 수도 있는 우리의 삶은 누구나 그렇게 하니까.. 라는 핑계로 하루를 보내며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커다란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을 때, 우파의 소신보다 어렵고 힘든 좌파를 택하였다는 그의 말이 담긴 'B급 좌파'라는 책은 오히려 반대로 세상을 보는 눈과 마음이 더 잘 보이고, 어떻게 더욱 사람 냄새가 나는 것일까. 도무지 이 사람은 너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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