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 사회 귀족의 나라에서 아웃사이더로 살기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지난 달, 원정까지 가면서 헌책방을 찾아 나섰던 일이 있다. 딱히 뭘 사겠다는 욕심보다는,
좋은 책을 만나고 싶다는 욕심에 전날 밤을 새웠음에도 불구하고, 성신여대 근처에 있는
헌책방을 하나 찾아내었다. 한 두세 시간을 골랐을까, 다른 곳에서는 유난히도 찾기 힘들었던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찾아내고는 어찌가 기뻐했던지..
대학교 1학년 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던 책이었기에, 살 기회는 잘 안되고 그래서 혹
헌책방에 가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번번히 허탕을 치고 만난터라 더욱 반가웠다.
아직 다시 읽지는 않았지만, 다시 읽게 되면 아마도 스무살 때의 마음과 지금 바로 홍세화씨의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을 읽어버린, 적어도 아주 조금은 내가 무식했었다는 것을 깨달은 지금은
많이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우리는 여전히 힘든 세상을 살아나가고 있다. 그 힘들다는 것이 나라를 빼았긴 슬픔이 아닌,
전쟁 후 겪는 피폐함이 아닌, 60~70년대를 거쳐 80년대까지 사상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던 나라에서
살고 있는 힘겨움이 아닌, 그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힘든 삶으로 생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과거에 거창했으나, 이제는 시민들, 심지어는 학생에게조차 외면받고 있는 학생운동이라는
우리의 '무지'깨닫기는 이제 한두 사람의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만 남아 있는 것 처럼 보인다.
NL이니 PD니, 조중동이니, 수구/보수/진보/좌익/우익이니 하는 따위의 말들이 내 이야기가 아닌 양
치부되는 모습들 또한 나 역시도 자주 보게 된다. 바로 무지에 대한 무감각일 것이다.

 홍세화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프랑스에서 살고 있지 않은 내가 불행하다는 생각 보다는,
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화가 더 나기 마련이다. 수구라는 말이
나이를 먹으면서, 조직에서 몸 담고, 더 이상 접근할 수 없는 어떤 경계선에 부딪혔을 때,
뼈져리게 더욱 느껴짐을 이렇게 타인의 목소리를 빌어서라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음은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한 사람의 목소리로 이 책에 거론된 사람들의 인물됨이나 자리됨을 따진 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조금만 눈을 뜨면, 아주 조금만 눈을 뜨면
내 주변에 불합리한, 있어서는 안될, 가끔은 말이 안되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 보이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책을 시작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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