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의 생각 세계사 시인선 124
이규리 지음 / 세계사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저 여자 내 생을 설명하는 거라면

누군가 그 아래 의자를 놓아주지 않을까


[……]

서서 죽는 꿈

어찌해도 저 生은

의자가 없었다

비명조차 잘라먹은,

                    ―「마네킹」 중에서


이 시집에서는 욕구와 같은 주체가 많이 발견된다. 마네킹은 그런 시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 하겠다. 이 생은 사회에 원인이 있는 것인가? 시인 자신에 대한 문제의식도 그렇다 치겠지만, 이렇게 되어버린 것은 사랑의 변질에도 원인이 있는 듯하다.


한데 쏟아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농심라면이다

퉁퉁 불어터진 면발과

식은 국물로

허기를 채우던 밤은 이제 가라

[……]

복제된 사랑 안에서 오늘 누가 울고 있나

추억도 나날이 소비되는 것

[……] 

쇼핑백 속 훌쩍거리는 비애덩어리들

[……]

대량 생산된 코카콜라처럼 마셨던

여름이 있을 뿐

                      ―「앤디 워홀의 생각」


「앤디 워홀의 생각」은 사랑에 대한 단상을 늘어놓고 있다. 과학문명이 이 사회를 발전시키기도 했지만, ‘대량 생산’ 된 코카콜라와 농심라면은 불어터져―즉 붓기와 허세만 가득한―이 세상이 사랑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현대문명을 말하고 있다. 그런 곳에서 추억은 나날이 소비된다. 이런 세상에서 일그러지거나 불량이 되어버린 추억이 없을 리 만무하다. 우리는 허기를 채우려고 라면을 먹지만, 밤에 먹는 라면은 얼굴을 붓게 만든다.


아주 조금씩 울고 가는 아이도 있다

저쪽은 이제 내가 잊어야 하는 곳

내 몸은 너무 커서 자전거 바퀴나 유리지붕으로 들어갈 수 없다

내가 하는 놀이는 그림자를 옮기는 일

                    ―「그림자 놀이」중에서


그의 추억은 불량이다. ‘아주 조금씩 울고 가야 하는 아이’에서 보듯, 이 세상은 울고 싶은 것을 다 울어버리자면 그 울음이 그칠 날이 없다. 그의 사랑은 성숙하여서 ‘자전거 바퀴’나 ‘유리지붕’으로 들어가는 등, 천진성을 상실하고 있다. 무거워져서 그 흔한 ‘그림자를 옮기는 것’이 그의 놀이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무거워진 시인은 아직도 울고 있다.


꽉 조인 하루가 있어요 그대는 내게 소화불량이거나 체지방이에요 [……] 그리움이 막 조여와요 그건 썩지 않는다 말하지 말아요 허연 콜레스테롤 같은 시간 도려내고, 내 흰 뼈와 살들만 남길 거예요

                      ―「코르셋」 중에서


시인은 다 자란 사람이다. 꽉 조이는 코르셋 같은 세상에서 탈출을 꿈꾼다. 그의 하루는 꽉 조여 있으며, 그것은 소화불량이라고 느끼며 쓸데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움은 썩지 않는 것을 안다. 시인은 그것을 벗겨 내려고 용을 쓰려고 한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것인가? 벗겨 내려면 일단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추억은 껌 같아서 무조건 긁개를 들고 눈을 감고 죽어라 긁어내면 긁히지 않는 것이다.


상처는 아물어 갈 때 자꾸 가렵다고 한다

[……]

나는 저 상처의 무게를 안다

다른 사람의 삶에 간섭했던 허세를 안다

어디가 가려운 것은 부끄러움을 보는

다른 증세이다

[……]

긁어 덧나지 않게 나를 견디는 일

                      ―「가려움증」 중에서


시인은 이 통증이 ‘가려움’ 이라는 것을 안다.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간섭해서 생긴 상처일 수도 있고, 부끄러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인은 애초에 뭐라고 했던가? ‘상처는 아물어 갈 때 가렵다’고 했다. 이미 시인은 아픔에 대한 고찰이 끝나있다. 다만 이것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아문 상처를 뚫고 나오는 연둣빛 잎사귀

망설이던 등을 낯선 시간이 밀어주었다

                      ― 위와 같은 시


이미 시인은 기나긴 시간에 의해 치유가 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뚫고 나갈 자신은 없고, 주저주저― 시인은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인 듯하다. 이 시도 똑같은 맥락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일찍부터 공허를 품고 다닌 게 아닐까.


[……] 빈틈으로 보이는 안과 밖, 어쩌면 나는 오래 전에 분홍빛 꽃이었는지 모른다.

                      ― 「재촉하다」 중에서



이미 꽃이 되어 있는 자신을 각성하지만, 나는 일찍부터 공허를 품고 있었다. 그 공허를 버리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두천 문학과지성 시인선 9
김명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7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명인 시인의 시는 두 갈래의 윤곽을 드러내보이고 있는 것 같다. 몇 주 전 같이 공부하던 선생님의 얘기로는 시인은… 교수가 된 뒤로 퇴보하고 있다나…. 내 생각으로는 『길의 침묵』까지는 모든 시가 균질을 유지하고, 어떤 시인보다 안정감 있고 좋은 시를 써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동문 시인 형님(형식상으로는 후배님)이 김명인 특집으로 토론할 때 말씀하시기를, 정반대의 말을 하고 계셨다.

앞의 세 개와 뒤의 꺼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나… 아무튼 사상적으로 『동두천』(시집으로 토론할 때엔『물 건너는 사람』이 제외되었다.)은 ‘어둡다’에 속한다. 맨 마지막 시를 보자


은빛 빛살이 가득 담겨 와

아저씨의 고함 소리가 흥겹게 뱃전을 두드렸을 때


문득 바람이 일고 일시에

파도가 바다를 가로질러 곤두박질 쳐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우뢰 같은 주먹이 철썩

뱃전을 갈기고 황홀한 물보라가 갈라서


[……]

가슴에 섬뜩 와 닿는 까집힌 배의 밑창이

또 한번 솟구치면서 如反掌으로 뒤집혀 가고

                    ―「바다 및 일기」 중에서


정말 슬프게 하기 위해선 기쁨이 필요하다. 어부들은 힘차게 달려나가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물보라가 일고 배는 손바닥 뒤집히듯이 부수어진다. 이 자연재해야 요즘에 어쩔 수 없는 일로 생각한다고 해도, 그의 시는 곳곳에서 어둠이 그려졌다.


고래는 눈을 뜬 채 누워 있다 聖者처럼

옆구리에 부러진 작살을 꽂고

흰 가슴을 드러내고

잘린 지느러미 곁에 우리들이 무심히 보고 있는

피를 조금 내비치며

                    ―「고래 Ⅰ」 중에서


활강해야 할 고래는 작살에 꽂혀 누워 있다. 이 고래를 잡은 우리의 현실이 고래를 잡았으니 압도될 것이다 하면 그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멍한 눈빛이다.


사람들은 흩어지고

흩어지며 저녁 무덤인 우리들이

저렇게 자지러지는 파도 소리에 숨죽이는 동안

고래는 다시 묶여서 차에 실려 떠났다

그리고 우리들이 남아서

새로 낳은 아이들만 비겁하게

캄캄한 풍경 속으로 바칠 뿐

                    ― 위와 같은 시.


후후… 고래가 이렇게 험악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에 놀랄 수도 있다. 하나, 정말 슬픈 것은 따로 있다. 「동두천」 연작과 「嶺東行脚」 연작이다.


우리 모두를 함께 울게 하던 그 한 마디 말

하늘 아래 나를 버린 엄마보다는

나는 돈 많은 나라 아메리카로 가야 된대요


[……]


이 강변의 세상 헛된 강변만이

오로지 진실이고 너의 진실은

우리들이 매길 수도 없는 어느 채점표 밖에서

                    ―「東豆川 Ⅳ」 중에서


아버지, 밤이면 아메리카를 꿈꿔도 될까요?

                    ―「東豆川 Ⅸ」 중에서


(이것이 모두는 아니겠지만)이것에 의하면 슬픈 현실은 저 대단한 나라 ‘아메리카’ 때문이다. 이 시집이 나왔던 것이 79년임을 감안하면 그 사고가 엄청나게 대담한 것이었다. ‘양공주’, ‘주한미군’, ‘꿀꿀이죽’ 등등 여러 단어가 미국과 관련되어 나온 단어들이다. 현실에 안주하고 살더라도 이 현실은 아주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항상 당하고 힘들어하지만 끊임없이 동경함, 약한 마음 가운데서도 강해지고 싶은 것이 우리네 마음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기에 사람들은 슬퍼하고 있다.

현실절망이나 반항으로 끝났을 지도 모르나, 그는 ‘현실 안에서의 저항(혹은 순응)’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런 ‘소극적’ 극복의지가 있기에 이 시는 더욱 서글퍼진다.


파도에 가려지는 순간마다 수없이

지우고 켜지고 또 지워지며

어둠에 묶인 어둠들이 떠오른다.

지난 여름 내내 달아 설치던

철없이 들뜬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嶺東行脚 Ⅵ」중에서


친구들은 철없이 들떠 있다. 시 뒤의 구를 보면 그들이 처한 현실이 그다지 맑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 아니면 달리 몸 부딪힐 곳 없어서

스스로 몸부림쳐 부서지는 물거품에 흩어지며

원양선을 탈까, 더러 낚시에 물린 물고기로 퍼득일까.

                    ― 같은 시.


그들의 미래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들떠있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하지만 시인은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이것은 무엇이 주는 것일까?


계절을 받고 또 계절을 내주고 섰는

산 속으로 들어서며

가을이 가고 있군 가을이

풀잎 위에 떨구는 산여치의 울음

바람음 개개울 위에 새 주렴을 펴고 있다

뒤따라가며 우리도 또한 흩어질 것이냐?

묵묵히 견디고 섰는

더 괴로운 물풀도 만나고 싶다

괴로움도 이제는 괴로움이 아니라고

친구여 맨살에 끊임없이 감기는 물소리

홀로 흐를 때

물소리는 한결같이 차갑게 스민다

                    ―「편지」 중에서


‘더 괴로운 물풀’, 최악의 상황인 이들에게 ‘더 괴로운’ 무언가를 찾아낼 여지가 있을까? 그들은 더 괴로운 무언가를 보고 힘을 얻는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조금만 괴로워도 짜증이 나는 사람들이다. 이 시집은 어두움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더 밝다. 더 바람직하다.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람에서 요람으로 - 세상을 보는 글들 17
윌리엄 맥도너 외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기존의 환경운동가가 제창해왔던 3R(Reduce, Reuse, Recycle)은 지금까지 환경을 생각하는 환경운동의 일환으로서 사람들이 영향 받은 바가 적지 않다. 거의 십여 년 동안 이 사상은 절대적으로 대한민국 전역을 지배해 왔다. 이런 절대적인 생각에게 온 몸으로 도전하는 책이 『요람에서 요람까지』 이다. 재활용은 기존 자원의 두 번 사용으로 그만큼 쓸데없이 사용되는 것을 막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아니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그 방법은 요람에서 쓰레기통으로 가는 방식, 즉 언젠가는 문제가 발생할 방식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재활용 종이는 그 것이 처음 사용될 즈음엔 자원의 낭비를 막았다는 생각을 할 법 하지만 그 종이에선 온갖 먼지와 유해물질, 게다가 그 방법을 반복할수록 질이 나빠진다고 한다. 이 악순환을 이 책에서는 ‘다운 사이클링’ 이라고 부른다. 이 책은 ‘다운 사이클링’ 을 하지 말고 “그 시작을 바꾸어 긍정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자” 고 하고 있다. 그 주장을 이 책의 재질에서 먼저 실천하여 보이고 있다. 이 책은 그냥 종이처럼 보이지만 나무로 만든 종이가 아니고 플라스틱에서 만든 종이다. 젖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구적으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이 좋은 방법을 이 책에서는 ‘업 사이클링’ 이라고 부르고 있다.

일단 이 책의 장점을 말하자면 더 나아질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못한 깊숙한 방면까지 파고 들어가 그 것의 단면을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사회 자체의 단점을 끄집어낸다. 이 생각은 수많은 재활용을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쓸데없는 공론에서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것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다운 사이클링 되는 사회적 자원들, 그것을 이 책에서는 그 시작 자체를 부정하고 나서는 것이다. 즉 “쓰레기는 곧 식량이다!” 라는 말을 모토로 이 사회의 잘못된 자원 사용의 시작을 고쳐야 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이 책의 단점이 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이상론에 그칠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첫 번째, 우선 이 책의 가격을 보자. 만 오천 원, 그것도 전면 262쪽. 다른 소설책이 이것과 똑같은 분량이라면 팔 내지 구천 원을 했을 정도이다. 시집이라면 세, 네 권을 샀을 가격이다. 완전 칼라에 사진까지 끼워 넣었어도 만 이천 원이 되기가 힘들다. 게다가 이 책은 흑백이다. (내 기억으로 완전 칼라였던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도 구천 원이었다.) 소설책을 취미로 사보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 가격이라면 충분히 부담을 느낄만한 가격이다. 당연히 출판 시장은 위축될 것이다. 이 것이 도서업계라는 측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 이 책은 너무 시시콜콜한 것까지 걱정하고 있다. 우리가 언제 재활용 용지에서 만든 책에서 나온 유해물질을 걱정하였는가? 단지 조금 더럽다고 생각할 뿐, 그 이상은 문제없다는 듯 그 책을 읽고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읽으며, “내가 얼마나 유해물질을 받고 있을까?”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지독한 소심쟁이일 것이다. 아니, 그 가능성 자체를 뛰어넘어 누가 그런 책을 읽겠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미 상당수의 노트, 그리고 소설가 공지영 씨의 작품 『봉순이 언니』도 재활용지로 만든 책이다. 이 책에 의하면 다운사이클링에 의한 것이다. 물론 이 책은 “환경을 생각하여” 라는 말을 반드시 붙였다. 서로가 모순되는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한국의 도서업계는 이제 ‘느낌표’ 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인해 자리를 조금씩 잡아가는 판에 모든 도서를 이제부터 업 사이클링이 가능한 플라스틱 종이로 만든다? 그 결과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다.

세 번째, 후진국을 고려하지 않았다. 수출이 증대되고 국익이 증대되는 듯 보였던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는 환경문제를 들먹이면 성장에 방해되는 사람이라고 해서 질책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환경은 나중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째서 소설가 조세희씨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품 중 「기계 도시」에서 우리는 더러운 환경의 썩은 도시를 보고 있을까? 그런 문제가 없었다면 문학에서 환경문제가 거론되는 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그런 시대는 지나고 이제 우리는 개발 도상국에서 선진국 중간에 있다. 하지만 뒤에서 우리의 과거를 밟고 있는 아프리카나 중동, 남미에 있는 후진국들을 외면할 것인가? 그들도 분명 발전을 하고 싶고, 언젠가는 선진국이 되어야만 한다. 그들이 말하는 값비싼 시작 자체를 구현하기 어렵다. 그 대표적인 예가 브라질이다. 일본이 돈을 주면서 벌목을 하지 말라는 부탁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이유라고 한다면, 지구의 허파가 되는 브라질이 대량 벌목을 시작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세계 전체에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브라질은 지금도 곳곳에서 벌목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수많은 후진국가는 아직도 후진적 기술, 즉 이 책에서 말하는 다운사이클링, 혹은 그것도 이루어지지 않는 일회용 생활을 하고 있다. 이런 생활 중에서 누가 환경을 생각하고 누가 조금 더럽다는 것을 생각하는가? 오직 살아남는 것을 생각할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 책에서는 생태적 효과성을 실현하기 위한 다섯 가지 단계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대안에는 허점이 많이 있다. 조목조목 예를 들어 여기에 대한 허점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1단계, 범죄자를 제거하라- 우리나라에서는 씨가 먹힐 수 없는 문제들이다. 원래 정해져 있었던 체계를 모두 바꾸라는 이야기는 너무나 비경제적이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이 책에서의 사고를 현대 사회에 적용하자는 말을 일반인에게 한다면 십중팔구 이런 대답을 듣게 될 것이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 난리야? 값 오르고 혼란스러워지는 것보다는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낫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사고가 대중화되어 있지 않은 이상은 이런 체계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2단계-이미 알려진 정보에 기반한 개인적 선호도를 따른다- 이 사고는 우리나라의 현재까지의 행태를 보아오면 그 허점이 절실히 드러난다. “나 하나쯤이야”로 대표된 우리나라의 이기주의, NIMBY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편한 쪽을 선택하지, 스스로 환경을 위해 불편한 쪽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너무나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3단계-‘적극적으로 긍정적인’ 리스트를 만들어라- 우리 나라에서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내 생각은 한 마디로 회의주의적이다. 새만금, 부산부근의 고속철도, 멀리 보지 않더라도 북한산 관통도로만을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행정은 환경 중심이 아니라 지역중심이다. 위도에 핵 폐기물 처리장에 들어서고 어쩌고 하는 문제, 위도 사람들이 그곳에 핵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는 것을 절대로 반대했는가? 아니다. 일부의 환경운동가들만이 ‘절대’안정성이 없는 그 곳에 핵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했을 뿐, 문제는 보상금이다. 절대적으로 지역이기주의가 판치고 있는 한은 우리나라는 그런 정책을 시행하기가 어려우리라 본다.

음식에서도 이런 문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국산을 국산으로 둔갑시켜 파는 경우는 우리나라에 아주 흔하다. 이익 중심인 것이다. 이익이 아니라면 우리나라가 손 댈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4단계- 긍정적 리스트를 충분히 활용하라- 3단계에서 했던 이야기를 들어본다면 이 단계에서는 그다지 할 말이 없다. 쥐어짜서 뭔가 대안이 나온다면 즉각 실행하는 것이 도리에 맞다고 본다.

5단계- 재창조하라 - 우리나라는 다운사이클링(DownCycling)에 절대 의존하고 있다. ‘기본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절대 다운사이클링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요즘 잘 나오는 재활용 권장의 광고도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오히려 비관적 사고로 바뀌었다. 우리나라가 환경문제에 더 신경을 쓴다면 몰라도, 이 상황은 너무나 타개가 힘든 상황이다.

네 번째, 대한민국의 사고에 약간 맞지 않는다. 체리나무 이야기를 했는데, 대한민국 가로수는 열매가 달리는 나무가 거의 없다. 이유는 자동차에서 나오는 매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그 책에서는 사람들이 밟아 넘어질 우려 때문에 체리나무 식수를 금지했다고 했다. 원전을 그대로 번역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생활과는 약간 거리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그것은 대한민국 시골에서 듣는다면 배꼽이 빠지도록 웃을 판이다. 체리나무, 우리 식으로 생각하면 은행이나 복숭아, 딸기 등, 그런 것이 떨어져서 미끄러져 사람이 넘어졌다고 생각해 보자. (원래는 농촌에 어린 아이가 드물어서 그런 일이 잘 발생할 수도 없겠지만 말이다.) 무슨 말이 나올까? 대번에 놀림감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책은 한 마디로 말해서 너무 세심한 걱정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후진국, 혹은 빈민층에 대한 고려’가 있었으면 하고, ‘이상론이 아닌가 점검도 필요하다’ 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책, 아니 이 출판사에서 나오는 일부 책에 대해 논하자면, 너무 극단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 책을 찾는 도중, 우리가 쓰고 있는 자원의 비관론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내용의 책이 있다. 지금 이대로만 써도 지구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고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에 의존한 책이다. 제목은 『회의적 환경주의자』, 그 책은 더더욱 비싸다. 오만 원. 무슨 대학교 전문서적 내지 두꺼운 백과사전 값도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개진하는 책일 뿐이다. 이런 책은 도서관에서나 빌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굵은 책 아니 (그것을 따지기 전에) 비싼 책으로 자기 생각이 널리 퍼지길 바란다면 무리일 것이다. 이런 책이 많이 팔리길 바란다면 소도 웃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너무 비대중적이 아닌가? 이 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관악기를 불 때, 딴 사람이 듣게 하려면 크게 불어야지 작게 불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적어도 이 책들의 비싼 가격은 이 사상이 일부 상류 내지 중류층에 머물게 하고 있다. 하류층 사람, 혹은 후진국 사람에게는 좀 센말로 한다면 “배부른 소리 하고 앉아있네, 그렇게 편하게 누워서 배 뚜들기면 재밌으시우?” 라는 소리를 들어야 싸다는 이야기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적어도 경제적인 차원이다. 우리 나라는 아직도 멀었다. 사람들의 사고를 고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런 문제는 조금씩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때, 우리나라의 고질병, ‘밀어붙이기 행정’이 있다. 박정희 집권 후부터 거의 3~40년, 그런 식으로 행정이 진행되어 왔다. 우리나라가 이익을 본 것도 있겠지만, 엄청난 환경의 대미지를 감수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환경을 생각하게 된다면 그런 면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밀어붙이기식’ 행정이 절대로 없어야한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화 아래 잠들다 창비시선 229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못 그의 시를 봤을 때(『내 혀가 입 속에 있기를 거부한다면』)는 정말, 당황했다. 너무나 표현이 성적인 묘사를 쓰면서도 그런 마음에 참, 다가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문단에서 주목받던 시인이었으나, 표현도 눈엔 그럭저럭(그 시절 나는 눈에 튀는 상상력을 좋아했다. 그래서 이 시집이 그냥 야한 이야기로 보였음에는 너무나 당연하다.)이라, 한참동안을 덮어둘 수밖에 없었다. 시안이 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나 보다. 『도화 아래 잠들다』를 샀는데, 역시 같은 이유로 덮어버렸다. 그녀가 현대문학상을 받고, 올해의 좋은 시까지 올라오는 수준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 반면 한참동안 어리둥절한 표현으로 엄청난 폄하를 받고 충격을 받고 있었다. 요즘 나의 시는 일견 괴팍한 상상력을 벗어나, 큰 테두리에서의 기교을 시도하고 있는데, 상당수의 경우가 부모님의 사랑이나, 가족의 사랑이다. 지금까지 시를 쓰면서 그 시를 좋게 생각한 적은 없다. 오히려 ‘사기’라고 폄하하면서, 웃어넘긴 것이 사실이다. 내 마음이 내가 만든 시를 받아들일 만큼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두어 달 전쯤에 그의 시집을 다시 꺼내 읽게 되었다. 그때서야 이 시가 눈에 보였다. 첫 시 「민둥산」을 보자마자 나는 감탄하고 말았다. 민둥산의 모습을 온갖 자연물들의 관계함으로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그저 관계로써만이 아니라, 그것이 아름답게까지 보이기 시작하였다. 올해의 좋은 시로 올라왔지만 시큰둥했던 「능소화」역시, 꽃에서 자궁을 보게 되는 색다른 체험이었다. 단지 야한 시어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 어느 평론가의 표현대로 모성의 시인*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보인 시선의 차이는 사랑을 모르고 알고의 차이 같다.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은 초기 시집이지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만한 충격과 힘과 ‘낯설게 하기’적인 표현을 가진다. (백미혜의 『에로스의 반지』라는 시집에서도 여자의 몸을 묘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집은 사람들이 낯 뜨겁게 보는 그런 모습을 제거하였다.)문단의 주목을 받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낭중지추(囊中之錐)이기 때문이다. (최영미 시인의『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주목을 받은 것과 비슷한 경우다.)

『도화 아래 잠들다』는 큰 테두리에서는 웬만한 상상력을 능가한다. 꽃도 여자의 몸이요, 민둥산도, 바다도, 정말 시의 세계는 끝없고 넓다. 처음 본 사람들은 그의 시가 야해 보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단편적인 표현으로 보자면 ‘젖꼭지’, ‘항문’, ‘오줌’, 전체적인 스토리로 봐서는 관계를 하는 장면, 월경, 소변을 보거나, 옷을 벗는 등, 보기 낯 뜨거운 장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적 의미로 풀이하면, 단지 외설로 보기 보다는 항상 진실된 고통을 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석남 시인의 강연회에 간 적이 있다. 장석남 시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시는 감정의 현현(顯現)이다. 감각적으로 그 대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예를 들어 ‘사랑’이 아니다. 객관적이고 남들도 알아볼 수 있는 것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그냥 그의 시적인 이미지만 보자면 그가 그리고 있는 것은 몸의 아름다움일 뿐이다. 주제 없는 시가 있을 수 없다면, 주제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도화 아래 잠들다」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날 도화 아래’ 같은 표현처럼 여성들이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딛고 목적을 끝내 이뤄낸 한 마디로 ‘위대한 여성’ 들의 아픔과 위대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 『페넬로페의 옷감짜기-우리시대 여성시인』- 김용희의 분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스 정류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1
가오싱젠 지음, 오수경 옮김 / 민음사 / 200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각자의 개성을 살려서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들춘「버스정류장」도 환상적이지만 야인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통해 사람들의 이기성과 과학의 허구성등을 폭로한「야인」 도 좋은 작품이었다. 「독백」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주제성이 확연하게 살아있다.

「버스정류장」은 각자의 개성적 인물을 뛰어나게 형상화시키고 있는데, 나는 끝부분의 멘트가 마음에 들었다.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듯 하면서도 그들 모두의 이야기의 결론은 맞아 들어가고 있다는 것, 주제형상화능력에 있어 뛰어난 것 같다.

「야인」은 다성부라는 형식의 희극이다. 한데 특이한 점이 한 가지 있다. 배우는 멋대로 바뀌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생태학자는 그것의 연구 때문에 부인과도 결별하고, 생태학자와 여러 등장인물들, 즉 야인 반대론자나 미국인들은 세모를 끼고 야인은 없다니 있다니, 서로의 주장을 일삼고, 세모는 그 가운데서 짜증을 낸다. 결국 과학으로 밝혀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과, 그 과학이 얼마나 인간을 황폐화시켜왔는지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 사 봐도 후회하지 않을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