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 아래 잠들다 창비시선 229
김선우 지음 / 창비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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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못 그의 시를 봤을 때(『내 혀가 입 속에 있기를 거부한다면』)는 정말, 당황했다. 너무나 표현이 성적인 묘사를 쓰면서도 그런 마음에 참, 다가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문단에서 주목받던 시인이었으나, 표현도 눈엔 그럭저럭(그 시절 나는 눈에 튀는 상상력을 좋아했다. 그래서 이 시집이 그냥 야한 이야기로 보였음에는 너무나 당연하다.)이라, 한참동안을 덮어둘 수밖에 없었다. 시안이 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나 보다. 『도화 아래 잠들다』를 샀는데, 역시 같은 이유로 덮어버렸다. 그녀가 현대문학상을 받고, 올해의 좋은 시까지 올라오는 수준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 반면 한참동안 어리둥절한 표현으로 엄청난 폄하를 받고 충격을 받고 있었다. 요즘 나의 시는 일견 괴팍한 상상력을 벗어나, 큰 테두리에서의 기교을 시도하고 있는데, 상당수의 경우가 부모님의 사랑이나, 가족의 사랑이다. 지금까지 시를 쓰면서 그 시를 좋게 생각한 적은 없다. 오히려 ‘사기’라고 폄하하면서, 웃어넘긴 것이 사실이다. 내 마음이 내가 만든 시를 받아들일 만큼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두어 달 전쯤에 그의 시집을 다시 꺼내 읽게 되었다. 그때서야 이 시가 눈에 보였다. 첫 시 「민둥산」을 보자마자 나는 감탄하고 말았다. 민둥산의 모습을 온갖 자연물들의 관계함으로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그저 관계로써만이 아니라, 그것이 아름답게까지 보이기 시작하였다. 올해의 좋은 시로 올라왔지만 시큰둥했던 「능소화」역시, 꽃에서 자궁을 보게 되는 색다른 체험이었다. 단지 야한 시어를 쓰는 시인이 아니라, 어느 평론가의 표현대로 모성의 시인*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보인 시선의 차이는 사랑을 모르고 알고의 차이 같다.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은 초기 시집이지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만한 충격과 힘과 ‘낯설게 하기’적인 표현을 가진다. (백미혜의 『에로스의 반지』라는 시집에서도 여자의 몸을 묘사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집은 사람들이 낯 뜨겁게 보는 그런 모습을 제거하였다.)문단의 주목을 받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낭중지추(囊中之錐)이기 때문이다. (최영미 시인의『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주목을 받은 것과 비슷한 경우다.)

『도화 아래 잠들다』는 큰 테두리에서는 웬만한 상상력을 능가한다. 꽃도 여자의 몸이요, 민둥산도, 바다도, 정말 시의 세계는 끝없고 넓다. 처음 본 사람들은 그의 시가 야해 보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단편적인 표현으로 보자면 ‘젖꼭지’, ‘항문’, ‘오줌’, 전체적인 스토리로 봐서는 관계를 하는 장면, 월경, 소변을 보거나, 옷을 벗는 등, 보기 낯 뜨거운 장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적 의미로 풀이하면, 단지 외설로 보기 보다는 항상 진실된 고통을 봐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석남 시인의 강연회에 간 적이 있다. 장석남 시인은 이렇게 말씀하셨다.“시는 감정의 현현(顯現)이다. 감각적으로 그 대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예를 들어 ‘사랑’이 아니다. 객관적이고 남들도 알아볼 수 있는 것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그냥 그의 시적인 이미지만 보자면 그가 그리고 있는 것은 몸의 아름다움일 뿐이다. 주제 없는 시가 있을 수 없다면, 주제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도화 아래 잠들다」의 ‘절정을 향한 꽃들의 노동, 이토록 무욕한 꽃의 투쟁이/안으로 닫아건 내 상처를 짓무르게 하였네 전생애를 걸고 끝끝내/ 아름다움을 욕망한 늙은 복숭아나무 기어이 피워낸 몇 날 도화 아래’ 같은 표현처럼 여성들이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딛고 목적을 끝내 이뤄낸 한 마디로 ‘위대한 여성’ 들의 아픔과 위대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 『페넬로페의 옷감짜기-우리시대 여성시인』- 김용희의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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