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의 사물들
김선우 지음 / 눌와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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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딱 한 번 읽었다. 그렇게 깊은 내용을 이해했다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마음이 없잖아 있다. 그러나 그의 글은 한 번 봐도 힘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한 가지 사물을 집요하게 해석해내는 이 힘!

사실 나는 이 책을 리뷰로 한번 읽어보고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좀 더 보고 사려고 서점에 가서 책을 봤더니, 와, 더 생각할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으로 샀다. 그의 생각의 폭이 너무나 자유롭고 넓었기 때문이다.

거울에서 나르시소스를 떠올리기도 하고, 쓰레기통에서 억압된 사물들을 꺼내기도 하고…그의 글은 흡사 시같다. 아니 시다. 이 산문집은 그렇게 시와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또 하나의 시다.

내가 아주 절실하게 되새김질하고 있는 생각들이 모두 이 책에 나와 있었다.

그 중 하나를 꺼내본다. 문단 모두를 써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만 끝부분만 써도 될 것 같아서 옮긴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갖가지 사물들이 실은 너무도 풍성한 말을 거느린 언어의 마법사들이라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깨달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극진하게 들을 수 있는 낮은 무릎이 필요하다.


극진하게 들을 수 있는 무릎이라… 사실 김선우의 시, 아니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필수다. 그의 힘은 그 곳에 있다. 모든 것을 자세히 살피고, 그것을 경청하고, 그것의 ‘극진한 마음으로 헤아리는’ 자세.

극진, 극진이 여기선 많이도 나온다. 정말 그 말이 엄청난 말인데…. 의역을 해보면 “다 닳도록” 이란 뜻을 붙일 수 있겠다. 모든 글과 모든 사물을 해석하는데 다 닳도록 집요하게 하는 것이다. 이 마음은 이 수필집을 읽는 데만 필요한 것 일까?

아니, 대부분의 글을 읽는 데 이것은 사실상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글이 아닌 것은 안 말해도 알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이해하려면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글을 읽는 것이 우선 아닐까? 그 다음에야 그의 생각을 잘 알릴 수 있고, 내 생각을 알릴 수 있다.

인터넷 신문에 보면 가끔 뜨는 MBC의 손석희 님, 가끔씩 상대를 찌르는 질문을 한다. 그 질문은 너무나 핵심을 파고든 것, 아니면 약점을 절묘하게 집은 것이라서 상대가 응답할 수 없을 정도의 예리한 질문을 하는데, 그의 인터뷰 중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토론 비결은 바로 “경청”에 있다고 그는 말했다.

먼저 나를 내세우기 보다는 남을 이해하고, 그것을 더욱 깊이하여, 그와 동시에 나도 깊게 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그도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고 그러므로 등단 몇 년 만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큰 시인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더 낮은 무릎을 가져야 그만큼 시를 잘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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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소년
지미 지음, 이민아 옮김 / 청미래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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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은 시종 짧은 글로 일관한다. 그러나 별로 가벼운 느낌은 아니고, 진중하다.

행복에 대한 담론 같았다.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림 하나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글 한 줄에 생각이 굉장히 많다.

"눈 앞에 있던 것이 더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것인가?"로 연결된다.
결국 행복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세상에 남아있던 달은 남김없이 사라졌다. 우리는
과연 나에게 있던 것이 사라지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엄청나게 짜증을 내다 결국에는 대체물로 막다가 결국에는 싫증을 낸다.

달이 사라졌다.
사람들은 사람들 서로가 삭막해졌다는 것을 안다.
장인 정신을 중심으로 살다가 장삿속 중심으로 바뀐 것처럼.
한데, 왜 그럴까?
한국인이 빨리빨리 한다, 라기 보다는, 다 아는 모던타임스라는 영화를 떠올리고 싶다.
너무나 빨리 한 나머지 민망한 짓거리까지 하는 찰리 채플린. 결국은 병원행을 갔던 것도 같은데..
자본주의는 어떤 때는 굉장히 야만적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된 것이 너무 이익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예를 들어보자. 마케팅이란 것도 사람간의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상업인들이 진정 휴머니즘으로 마케팅을 하는가?
그런 사람들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사람이 없어서 물건이 안팔리거나, 우리에게 나쁜 소문을 내면 안좋기 때문에 그렇게 친절하게 하는 것 뿐이다.

결국, 정말 성심을 다하지 않은, 혹은 눈에 띌 정도로 하지 않은 마케팅이면 가짜 달인 덤핑을 이기지 못한다.  

그런 것들은 유지가 무척 힘들다.
결국 버려진 달처럼 싫증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교장선생님은 달빛따위는 필요없다고 말하지만,
그도 이미 살아갈 힘이 모자란 사람이다.
싸게싸게! 빨리빨리! 많이많이!
도대체 그것들 사이에 해답이 있는가?

휴머니즘에 의한 행복을 순수하게 지키려는 사람은 이미 그 행복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이 책에서와 같이 너무 크다. 너무나 세상과의 괴리감과 통증이 너무 크다.
이 세상 밖에서의 고요한 행복. 그러나 이 세상안에서는 불가능하다.
U-Topia가 이상세계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에서 불가능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든 억지로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기도 한 것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나마 행복한 우리들.
U-Topia를 이루어나갈 수 있다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면 우리는 미쳐버렸을것이다.

그림책은 잘 안보는데,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사면서 보게 되었다. 짧은 글의 그림책에도 이런 깊이를 담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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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젊은시
김광선 외 지음 / 문학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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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랫분과는 생각이 다른 듯 하네요...

영풍에서 잠깐 이 책을 읽어보았었는데...

2002,2003,2004 여러 당선작들 중 상당수가  들어 있고...

...여러 시인들의 당선작을 합쳐놓은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매년 좋은 사람의 당선작을 모아본다는 의미는 좋지만...

당선작 말고 다른 문예지에 발표된 좋은 작품을 내거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이유로 해서 저는 신춘문예 당선시집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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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 1 - 시 김수영 전집 1
김수영 지음, 이영준 엮음 / 민음사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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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관

김수영의 시는 일반적으로 모더니즘적 시도라 말을 한다. 해방 직전의 ‘…이어라’ 식의 구투는 『김수영 전집』에 있는 시들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들다.

김수영의 시는 전체적으로 ‘생활’과 맞닿아 있다. 이 시를 보면 약간 그런 면이 있다.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장난을 한다


나는 발산할 형상을 구하였으나

그것은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


국수――이태리어로는 마카로니라고

먹기 쉬운 것은 나의 反亂性일까

                          ― 「孔子의 생활난」(1947) 중에서


여기서 생활이 찾아보기 힘들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시에서 나는 ‘발산할 형상’, 즉 피어나려고 힘을 쓰지만, 작전 같은 것이기에 어렵다고 돌려 말하고 있다. 시인은 이 삶이 절대 살기 쉬운 것은 아니란 것은 안다. 그러나 먹기 쉬운 것을 찾는 것은 부인한다. 이러한 사고관은 그의 시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그의 시를 이 관점에서 천천히 살펴보기로 하자.


2. 해방 직후의 시


웃음은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서러운 것일까

푸른 목

귀여운 눈동자

진정 나는 기계주의적 판단을 잊고 들어갑니다

[……]

이보다 더 추운 날처럼 나는 여기서 겨울을 맞이하다가

오랜 시간이 경과된 후에도

이 웃음만은 흔적을 남기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

시간에 달린 기이다란 시간을 보시오

내가 어리다고 한탄하지 마시오

                  ―「웃음」(1948) 중에서


웃음을 자기 스스로 짓는(작위적인) 일을 싫어하는 시인, 그런 웃음을 피한 그는 시련을 맞이한다는 것을 아나보다. 하지만, 웃음을 짓고 있어봤자 그런 웃음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자신은 어리며 남은 긴 시간을 보라고 한다(그는 자신이 답답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나보다). 여기서 시인의 미래관은 비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시인을 그리 만든 것일까?


아버지의 사진을 보지 않아도

비참은 일찍이 있었던 것

[……]


조바심도 습관이 되고

그의 얼굴도 습관이 되며

나의 無理하는 生에서

그의 사진도 무리가 아닐 수 없이


그의 사진은 이 맑고 넓은 아침에서

또 하나 나의 팔이 될 수 없을 비참이오

행길에 얼어붙은 유리창들같이

시계의 열두시같이

재차는 다시 보지 않을 편력의 역사……


나는 모든 사람을 피하여

그의 얼굴을 숨어보는 버릇이 있소

                  ―「아버지의 寫眞」(1953)중에서


시인의 삶이 아주 힘들었던 모양이다. 사진을 보지 않아도 그에게 ‘비참은 일찍이 있었던 것’ 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말이다. 그의 삶도 아버지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재차는 다시 보지 않을 편력의 역사’라고 말하지만, 맨 끝 행에서 그는 말을 번복한다. ‘그의 얼굴을 숨어보는 버릇’이 있다면서 말이다. 그는 힘들었던 과거(일제시대)를 무척이나 싫어하겠지만 과거를 보지 않고 현대를 살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꽃은 시련으로 피어나는 것처럼―

    

3. 전후의 시


이후의 시에서도 해방기의 생활에 대한 사고는 여전히 그의 시에서 지속되어 나타난다. 그의 삶은 해방 이후나 전쟁 이전이나 다 같은 시련이라서 그런 것일까? 이후에 나온 유일한 시집의 표제작인 「달나라의 장난」을 봐도 그렇다.


도회 안에서 쫓겨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別世界같이 보인다

                  ―「달나라의 장난」중에서


그는 속임 없이 사는 것이 정말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다’며 역설적으로 말한다. 하지만 어디 그런가? 요즘이나 옛날이나 솔직히 살면 뒤통수 맞는 세상이다. 뒷돈에 비자금, 뇌물 여러 가지로 시끄러운 세상이다. 맹렬히 돌아가는 것을 까맣게 서 있는 것으로 비유한 시인의 발상이 놀랍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맹렬히 돌아가면 세상에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으므로 문제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 팽이를 ‘別世界같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별세계는 이데아, 즉 이상세계인 것이다. 꿈을 꾸는 듯 하지만 이 시에서는 시인의 반성도 들어가 있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 같은 시 중에서


시인은 반성을 하는 사람이다. ‘방심을 하여서는 안된다’는 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別世界의 別世界에 살기 위해 나 자신을 고쳐나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현대인의 모양은 이 시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람이란 사람이 모두 고민하고 있는

어두운 대지를 차고 이륙하는 것이

이다지도 힘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깨달은 것은

우매한 나라의 어린 詩人들이었다

헬리콥터가 풍선보다도 가벼웁게 상승하는 것을 보고

놀랄 수 있는 사람은 설움을 아는 사람이지만

또한 이것을 보고 놀라지 않는 것도 설움을 아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기의 말을 잊고

남의 말을 하여왔으며

그것도 간신히 떠듬는 목소리로밖에는 못해왔기 때문이다

설움이 설움을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젊은 시절보다도 더 젊은 것이

헬리콥터의 영원한 生理이다

                  ― 「헬리콥터」(1955) 중에서


헬리콥터에서 현대인을 상징한다? 우선은 참 놀라운 상상력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렇게 대지를 흔들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것을 깨달은 것은 詩人이라고 그는 자랑스럽게 말한다.

헬리콥터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 기체의 무거움이고, 정말 그것이 뜰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하지만 그 헬리콥터는 ‘풍선보다 가볍게’ 떠오른다. 시인은 이것을 보고 놀라는 사람도 놀라지 않는 사람도, 설움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놀라는 사람은 자기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에, 놀라지 않는 사람은 드디어 자신의 말을 찾아야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헬리콥터는 그런 젊음의 한 표현이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도 시인이 아는 바이다.


자의식에 지친 내가 너를

막상 좋아한다손 치더라도

네가 나에게 보이고 있는 시간이란

네가 달아나는 시간밖에는 없다


평화와 조화를 원하는 것이

아닌 현실의 選手

[……]


연기의 정체는 없어지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하필 꽃밭 넘어서

짓궂게 짖궂게 없어져 보려는

심술맞은 연기도 있는 것이다.

                  ―「연기」(1955) 중에서


연기는 언젠가는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연기를 시인은 현실의 선수라고 말한다. 끝의 연에서 잠깐 변화를 시도하는 연기의 모습도 보이지만, 그것은 짓궂게 ‘없어져 보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대인의 모습을 잘 그려놓은 것이라 하겠다. 다른 모양으로 돌파하려는 시도 나온다.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절벽」(1957) 중에서


폭포에 있는 물은, 어차피 떨어지고 말 것이다. 그런 폭포의 물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지는 물’이라고 말함과 동시에 ‘의미도 없이’, 그리고 ‘고매한 정신처럼’떨어진다고 말한다. 현대인은 폭포처럼 계속 나가떨어지며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또한 찬사를 받을 자격도 있는 것이다. 왜 찬사를 받아야 하는 걸까? 그 이유는 여기에서 드러난다.


나는 일손을 멈추고 잠시 무엇을 생각하게 된다

――살아 있는 보람이란 이것뿐이라고――

하루살이의 狂舞여


하루살이는 지금 나의 일을 방해한다

――나는 확실히 하루살이에게 졌다고 생각한다――

하루살이의 유희여

                  ―「하루살이」(1957) 중에서


보잘것 없는 하루살이의 삶을 보고 ‘살아 있는 보람’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하루살이는 그 하루를 미친듯이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그 모양을 보고 그것은 나의 일에 대한 방해이며, 그는 하루살이에게 졌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남짓해야 하루밖에 없는 그것의 삶에 비해, 그는 너무 풍족한 삶을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는 삶을 한탄하며, 또한 찬사를 보낸다.


4. 4 ․ 19 전후와 그 이후의 시


4․19가 그에게 미친 영향은 적지 않은 것 같다. 『김수영 전집』안에서 보면 4․19가 끝난 직후, 무슨 혁명시처럼 직설적인 화법이 나온 시들이, 다른 시기보다 더 많은 저작이 그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그 지긋지긋한 놈의 사진을 떼어서

조용히 개굴창에 넣고

썩어진 어제와 결별하자

[……]


이제야말로 아무 두려움 없이

그놈의 사진을 태워도 좋다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                     (1960. 4. 26) 중에서


그 놈? 아마도 이승만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런데 이 시는 전의 시와는 달리 상당히 직설적인 화법을 보이고 있다. 예전의 현대인의 아픔을 말없이 그려낸 그전의 시와는 달리, 이 시기를 전후로 그의 시는 직설적인 화법을 보인다. 어투도 상당히 거칠어졌다. 예전의 자유당 통치 시절을 그는 지독히도 싫어했나보다. 이 시에서는 4.26(지금은 4.19혁명이라 부른다)혁명을 무슨 천국이 온 것처럼 보는 것 아닌가 싶은 냄새도 있는데, 조금만 지나면 그것은 여지없이 부인된다.


기성 육법전서를 기준으로 하고

혁명을 바라는 자는 바보다

혁명이란 

방법부터가 혁명적이어야 할 터인데

[……]

불쌍한 백성들아

불쌍한 것은 그대들뿐이다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는 그대들뿐이다

최소한도로

자유당이 감행한 정도의 불법을

혁명정부가 구육법전서를 떠나서

합법적으로 불법을 해도 될까 말까 한

혁명을――

                  ―「육법전서와 혁명」(1960. 5. 25) 중에서


혁명을 일으킨 다음, 민주당 정부가 웬만큼 못했던가? 당쟁이 없었다라고 했다면 5․16의 명분은 적어도 주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그의 시각이 웬만큼 현실적으로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한데, 이 어투는 어떤 계기로 인해 조금 얌전해진다. 그 계기는… 바로 5․16쿠데타다.


깨끗이 버리고

[……]

내가 정말 시인이 됐으니 시원하고

[……]

이건 진짜 시원하고

이 시원함은 진짜이고

자유다

                  ―「신귀거래 2」(1961.6.12) 중에서


5․16을 계기로 그는 다시 현실의 시로 되돌아간다. 그의 시가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누이야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

네가 그렇고

내가 그렇고

네가 아니면 내가 그렇다

우스운 것이 사람의 죽음이다

                  ―「신귀거래 7」(1961.8.5) 중에서


5․16쿠데타는 미완의 혁명인 4․19를 실패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고, 시인은 이런 세상에 대해서 절망한 것 같다. 이 세상을 빠져나가거나, 아니면 이 세상을 비웃거나, 시인은 둘 중 하나를 고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이 진짜일까? 시인은 더욱 진지한 태도로 세상을 논하고 있다. 빠져나가는 것[解脫]이 아니라 풍자를 고른 것이다.


누이야

나는 분명히 그의 앞에 절을 했노라

그의 앞에 엎드렸노라

모르는 것 앞에는 엎드리는 것이

모르는 것 앞에는 무조건하고 숭배하는 것이

나의 습관이니까

[……]

동생뿐이 아니라

그의 죽음뿐이 아니라

혹은 그의 실종뿐이 아니라

                  ― 위와 같은 시


시인은 이 시대에 순응했다는 것을 돌려서 ‘그의 앞에 절을 했다’고 말한다.  ‘무조건 숭배’ 하는 것이 습관이라고 말하는 그다. 하지만 그는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좋을지 나쁠지는 아직 살펴봐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아프다’고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아프다

                  ―「먼 곳에서부터」(1961.9.30)


아픔이

아프지 않을 때는

그 무수한 골목이 없어질 때


[……]


아픈 몸이

아프지 않을 때까지 가자

나의 발은 절망의 소리

                  ―「아픈 몸이」(1961)


4․19의 아쉬움이 너무나 큰 것 같다. 혁명은 관두고 이 시대에 그냥 순응해 버려야 하는가, 하는 회의감도 생길 법 할 것이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가? 시인은 이런 시를 쓴다.


시간이 나비모양으로 이 줄에서 저 줄로

춤을 추고

그 사이로

4월의 햇빛이 떨어졌다

[……]


어깨를 아프게 하는 것은

老朽의 미덕은 시간이 아니다

내가 나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


―그러나 혼색(混色)은 흑색이라는 걸 경고해 준 것은

소학교 때 선생님……

                  ―「백지에서부터」(1962.3.18)


4월의 햇빛은 더 말할 것 없이 4월 혁명을 말할 것이다. 이 시에서는 통증의 이유도 해명이 된다. 내가 쿠데타정부에 섞이려 하기 때문에, 나를 잊는 것이야 말로 아픔이기에 그것은 혼색은 흑색이라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시인은 그 현실에 눈을 돌리고 현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혁명정부가 좋긴 좋은 건가보다….” 하는 보통 사람들과 섞이지 않기 위해서이다. 「만용에게」등의 시가 그렇다.


오늘은 기름진 피아노가

덩덩 덩덩덩 울리면서

나의 고갈한 비참을 달랜다

[……]

또 그 비참대로

값비싼 피아노가 값비싸게 울린다

돈이 울린다 돈이 울린다

                  ―「피아노」(1963.3.1) 중에서


피아노는 당시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피아노를 잘 다룬다는 것은, 현실을 잘 다룬다는 이야기와 상통할 것이다. 그 앞부분을 보자.


나의 새끼는 피아노 앞에서는 노예

둘째 새끼는 왕자다


피아노―즉 현실―를 모르는 사람은 노예가 되고, 아는 사람은 왕자가 된다. 이것은? 현실에 적응하는 사람은 잘 사는 사람이라는 결론이 남는다. 산업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던 60년대가 이 모양이었건만 70년대는 어떨꼬? 말 할 것도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나는 비참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삭막한 집의 삭막한 방에 놓인 피아노

그 방은 바로 어제 내가 혁명을 기념한 방

                  

자식들이 미래를 상징한 것이라고 하면, 지금의 나는 정신적인 세계를 상징한다. 지금의 나가 ‘거지’가 된 이유는 바로, 실패로 돌아간 혁명의 정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누군들 어때, 잘 먹고 잘살게 해주면 좋지―” 라는 식의 말이 통해먹는, 정신세계의 피폐화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시인은 정말 올곧은 사람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 보니!


절망은 나의 목뼈는 못 자른다 겨우 손마디뼈를

새벽이면 하프처럼 분질러놓고 간다

나의 아들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


마당에 서리가 내린 것은 나에게 상상을 그치라는 신호다

그 대신 새벽의 꿈은 구체적이고 선명하다

꿈은 상상이 아니지만 꿈을 그리는 것은 상상이다

[……]

오늘부터는 상상이 나를 상상한다


이제는 선생이 무섭지 않다

모두가 거꾸로다

                  ―「우리들의 웃음」(1963.10.11) 중에서


그래도 시인은 꿈을 버리지 않는다.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고 말하는 「절망」도 그렇다. 그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실망하지 않는 것일까?


거위의 울음소리는

[……]

웃는 얼굴을 더 웃게 하고

죽은 사람을 되살아나게 한다

                  ―「거위 소리」(1964.3) 중에서


거위 소리는? 그냥 꽥꽥이다. 누가 듣든 말든 그냥 내지르는 소리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소리는 웃는 얼굴을 더 웃게 하고 죽은 사람마저 살린다고 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떻게든 좋아지겠지, 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은 더러운 것을 씹은 표정일 수밖에 없다.


네 얼굴은 진리에 도달했다

어저께 진리에 도달했다

어저께 환희를 잃었기 때문이다

                  ― 「네 얼굴은」(1966.12.22) 중에서


환희를 잃은 네 얼굴이 진리에 도달했다고 한다. 기뻐하지 않는 것이 진실이라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반성도 시작된다.


그대의 길은 잘못된 길이다

―세계일주를 하고 온 길은 잘못된 길이다

―세계일주를 떠났다는 것이 잘못된 길이다

너무나 먼 잘못된 길이다

너무나 많은 잘못된 나라다

                  ―「세계일주」(1967. 9.26) 중에서


세계일주? 꿈꾸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나, 김수영도 성공했다면 세계일주한 것처럼 들뜬 혁명의 꿈을 꾼 사람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하게 될 수 있으리라는 꿈을 꾼 것은 ‘잘못된’ 것임을 그는 각성한다. 그는 생각 자체를 잘못했다고 말한다. 세상을 그리는 시를 쓰고, 심지어 「원효대사」가 등장하지만 이것을 깨는 것은 바로 죽기 전의 작품인 「풀」이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풀」(1968.5.29) 중에서


학창시절 때 심심치 않게 들은 시의 주제처럼, 그는 ‘각성한’ 민중의 힘을 알아버린 것이다. 이제 그런 민중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마지막 작품을 써놓고 무슨 극본처럼 떠났다….

 

선생님 말씀에, 시의 맛을 안 사람이라야 이 시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그의 시는 시 읽는 사람 가운데는 '중급자' 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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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기사 돈끼호떼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정구석 옮김 / 소학사(사피엔티아)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순간, 느낌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

도서관에서는 이 책이 그나마 부드러운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외에 돈 끼호테의 책들은 너무나 딱딱하게 다가왔다. 범우사부터 혜원까지…

다소 안이한 발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현대 시대가 말하듯 돈 끼호테가 가짜 기사란 생각은 아예 버리고 보았다.

현대에 자기의 모습을 고수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책의

겉표지엔 당당하게 그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얼마나 당당한가? 그는

현대에 모습을 드러낼 때 더욱 그 모습을 더욱 발하는 것 같다.

현대인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모양을 볼때, 무척이나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그 경우에, 우리는 두 가지 경우를 택할 수 있다.

미친듯이 돈 끼호테를 욕하면서 이렇게 산다던가,

“저런 놈이 어떻게 이런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풍차는 풍차일 뿐이잖아! 저런 미친 X가 어떻게 이런 시대를 살아갈 수 있겠어?”

라면서 치기어린 옛 시절을 후회하며 산다던가, 혹은,

“저 괴물을 쳐부수면 둘씨네아로의 귀향이다!”

이러면서 정작엔 맞딱뜨린 "풍차"라는 현실에 좌절하고 쓰러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이 '풍차'를 풍차로 읽어주겠는가? 엄연히 돈끼호테는 중독자요,

시대착오자이다. 이 시대가 그를 용납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에 가까울 수도 있다.

다만, 그가 꿈꾸는 사회상이 너무나 옳은 것이라면,

우리는 좌절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의 소득에 안주했을 뿐 아니라… 쟁취하는 일생을 살지 않았기 때문…

게다가 그 원인을 찾지 못하고, 분기만 일으키는 실수로 인해,

즉, 자기 반성이 없음으로 인해 인류의 1/4를 살해했다.)

나는 이제 당신에게 돈 끼호테인지 아닌지를 묻고싶다.

 

우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정상인 시대의 정상인들이 어떻게 비정상인을 욕할 수 있겠는가?”

 

현대의 삶에 갇혀 사는 것보다는, 잠시동안 미쳐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이 시대엔 정말 진짜 기사들이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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