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기사 돈끼호떼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정구석 옮김 / 소학사(사피엔티아) / 2003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순간, 느낌으로 이 책을 집어들었다.

도서관에서는 이 책이 그나마 부드러운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외에 돈 끼호테의 책들은 너무나 딱딱하게 다가왔다. 범우사부터 혜원까지…

다소 안이한 발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현대 시대가 말하듯 돈 끼호테가 가짜 기사란 생각은 아예 버리고 보았다.

현대에 자기의 모습을 고수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책의

겉표지엔 당당하게 그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얼마나 당당한가? 그는

현대에 모습을 드러낼 때 더욱 그 모습을 더욱 발하는 것 같다.

현대인들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모양을 볼때, 무척이나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그 경우에, 우리는 두 가지 경우를 택할 수 있다.

미친듯이 돈 끼호테를 욕하면서 이렇게 산다던가,

“저런 놈이 어떻게 이런 세계를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풍차는 풍차일 뿐이잖아! 저런 미친 X가 어떻게 이런 시대를 살아갈 수 있겠어?”

라면서 치기어린 옛 시절을 후회하며 산다던가, 혹은,

“저 괴물을 쳐부수면 둘씨네아로의 귀향이다!”

이러면서 정작엔 맞딱뜨린 "풍차"라는 현실에 좌절하고 쓰러지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하겠는가?

 

이 '풍차'를 풍차로 읽어주겠는가? 엄연히 돈끼호테는 중독자요,

시대착오자이다. 이 시대가 그를 용납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에 가까울 수도 있다.

다만, 그가 꿈꾸는 사회상이 너무나 옳은 것이라면,

우리는 좌절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 그것은

자기의 소득에 안주했을 뿐 아니라… 쟁취하는 일생을 살지 않았기 때문…

게다가 그 원인을 찾지 못하고, 분기만 일으키는 실수로 인해,

즉, 자기 반성이 없음으로 인해 인류의 1/4를 살해했다.)

나는 이제 당신에게 돈 끼호테인지 아닌지를 묻고싶다.

 

우리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비정상인 시대의 정상인들이 어떻게 비정상인을 욕할 수 있겠는가?”

 

현대의 삶에 갇혀 사는 것보다는, 잠시동안 미쳐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이 시대엔 정말 진짜 기사들이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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