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의 사물들
김선우 지음 / 눌와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딱 한 번 읽었다. 그렇게 깊은 내용을 이해했다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마음이 없잖아 있다. 그러나 그의 글은 한 번 봐도 힘이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한 가지 사물을 집요하게 해석해내는 이 힘!

사실 나는 이 책을 리뷰로 한번 읽어보고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좀 더 보고 사려고 서점에 가서 책을 봤더니, 와, 더 생각할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으로 샀다. 그의 생각의 폭이 너무나 자유롭고 넓었기 때문이다.

거울에서 나르시소스를 떠올리기도 하고, 쓰레기통에서 억압된 사물들을 꺼내기도 하고…그의 글은 흡사 시같다. 아니 시다. 이 산문집은 그렇게 시와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아니 또 하나의 시다.

내가 아주 절실하게 되새김질하고 있는 생각들이 모두 이 책에 나와 있었다.

그 중 하나를 꺼내본다. 문단 모두를 써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만 끝부분만 써도 될 것 같아서 옮긴다.


나무 한 그루 꽃 한 송이 갖가지 사물들이 실은 너무도 풍성한 말을 거느린 언어의 마법사들이라는 것을 날마다 새롭게 깨달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극진하게 들을 수 있는 낮은 무릎이 필요하다.


극진하게 들을 수 있는 무릎이라… 사실 김선우의 시, 아니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필수다. 그의 힘은 그 곳에 있다. 모든 것을 자세히 살피고, 그것을 경청하고, 그것의 ‘극진한 마음으로 헤아리는’ 자세.

극진, 극진이 여기선 많이도 나온다. 정말 그 말이 엄청난 말인데…. 의역을 해보면 “다 닳도록” 이란 뜻을 붙일 수 있겠다. 모든 글과 모든 사물을 해석하는데 다 닳도록 집요하게 하는 것이다. 이 마음은 이 수필집을 읽는 데만 필요한 것 일까?

아니, 대부분의 글을 읽는 데 이것은 사실상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글이 아닌 것은 안 말해도 알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이해하려면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글을 읽는 것이 우선 아닐까? 그 다음에야 그의 생각을 잘 알릴 수 있고, 내 생각을 알릴 수 있다.

인터넷 신문에 보면 가끔 뜨는 MBC의 손석희 님, 가끔씩 상대를 찌르는 질문을 한다. 그 질문은 너무나 핵심을 파고든 것, 아니면 약점을 절묘하게 집은 것이라서 상대가 응답할 수 없을 정도의 예리한 질문을 하는데, 그의 인터뷰 중에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토론 비결은 바로 “경청”에 있다고 그는 말했다.

먼저 나를 내세우기 보다는 남을 이해하고, 그것을 더욱 깊이하여, 그와 동시에 나도 깊게 하는 길로 가는 것이다. 그도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고 그러므로 등단 몇 년 만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큰 시인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더 낮은 무릎을 가져야 그만큼 시를 잘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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