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 전설적 포토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파의 2차대전 종군기
로버트 카파 지음, 우태정 옮김 / 필맥 / 200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필맥
카파이즘(Capaism).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정신을 일컫는 말이다. 의미를 좁히면 종군기자, 그 중에서 사진기자의 자세를 의미한다. 어원은 사람 이름에서 비롯됐다. 헝가리 태생의 로버트 카파에서 따왔다. 카파는 1930~40년대 전선을 넘나들며 카메라로 신화를 쓴 사진작가이자 종군기자다. 본명은 앙드레 프리드만이지만 신화는 본명을 기억하지 않는다.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는 카파가 직접 쓴 2차대전 종군기다. 이 책은 1987년에 민영식씨가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란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한 적이 있어 낯설지 않다. 책 제목은 <라이프>지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찍은 카파의 사진에 붙인 설명에서 비롯됐다. 사진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 <라이언일병 구하기>를 상상해 보라.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총알이 빗발치던 오마하해변을 떠올린다면 카파의 손 떨림은 당연한 것이다. 1944년 6월의 프랑스 오마하 해변의 물은 차가웠고 상륙정에서 내렸지만 해안까지는 100m나 남아 있는 상태. 주위로 총탄이 날아들어 물이 튀고 적의 총탄이 쫓아오는 것 같은 상황. 카파는 당시를 그렇게 적고 있다.

카파는 상륙정을 타고 노르망디 제1파 병사들 틈에 섞여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스페인 내전, 중일전쟁, 2차대전 등을 겪어 온 카파에게 전쟁은 역사적 순간이지 더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노르망디만큼은 달랐다. 그만큼 전선이 치열했고 사선이 가까웠다.

"또 다른 박격포 한 발이 날아와 철조망과 바다의 중간지점에 떨어졌다. 그 파편에 병사 한 명이 죽었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로 찍었다. 전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포탄 한 발이 또 터졌다. 나는 전혀 겁먹지 않고 콘탁스 카메라 파인더에 눈을 댄 채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 댔다."

▲ 1944년 6월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 <라이프>에 실린 이 사진 설명이 바로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였다.
ⓒ 라이프
적어도 상륙작전 초반에 카파는 담대했다. 그러나 '미친 듯 눌러 댄' 덕에 필름 한통이 어느새 바닥나고 새것으로 갈아 끼우려는 순간, 엄습해 오는 두려움을 느꼈다. 손이 떨려서 새 필름을 장착하지 못한 텅 빈 카메라를 보자 새로운 공포에 휩싸인 카파는 핏빛 해안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카파가 찍은 사진은 종군기자들 중 가장 훌륭한 사진으로 기록된다. 사진 현상을 하던 암실 조수 역시 흥분한 나머지 건조과정에서 너무 많은 열을 가하는 바람에 유제가 녹아 대부분 망가지는 불상사도 겪었다. 106장의 사진 중 고작 8장을 건졌는데, <라이프>는 사진에 '카파의 손은 몹시 떨리고 있었다'라는 설명을 붙였다.

스페인 내전의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으로 명성

카파를 보도사진가로 세상에 각인시킨 것은 1936년 스페인 내전 때 찍은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이란 사진이다. 그해 <라이프> '올해의 표지'를 장식한 이 사진은 참호를 뛰어나온 인민전선파 한 병사가 기관총을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한 병사가 넓디넓은 하늘을 향해 양팔을 벌린 채, 피폐한 대지로 쓰러지기 직전의 순간을 극적으로 사진에 담았다. 이 사진의 감동은 구도나 표정, 배경이 아니다. 찰나적 긴장의 연속인 전장의 극적인 순간을 담아 낸 현장성에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난 세기에서 가장 뛰어난 전쟁기록사진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 카파를 유명하게 만든 '어느 인민전사파 병사의 죽음'.
ⓒ 라이프
이 사진으로 포토저널리즘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카파는 이후 종군을 하면서 주로 전쟁터를 담는 일에 천착한다. 어쩌면 그의 연인 게르다 타로의 황망한 죽음 때문일지도 모른다. 카파는 1934년 세 살 연상의 공산주의자 게르다와 사랑에 빠진다.

게르다 역시 당시 스페인 내전에 종군하던 인민전선파 사진작가였다. 1937년 카파가 잠시 프랑스 파리에 와 있는 사이 홀로 스페인에 남아서 취재를 하던 게르다는 후퇴하던 공화파의 탱크에 치여 죽는다. 카파는 전쟁의 허망한 실상을 뼈저리게 느끼고 오랜 시간 게르다의 죽음을 슬퍼했다.

1938년 6개월간 중일전쟁을 취재한 카파는 1939년 다시 스페인 내전을 기록한다. 그리고 2차대전 발발과 함께 미국, 영국,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전선의 가장 앞에서 때론 아군보다 적진 깊숙이에서 전쟁의 역사와 상처를 오롯이 담았다. 18년간 다섯 곳의 전쟁터다.

2차대전 막바지인 1945년에는 미 공수부대와 함께 독일에 침투, 연합군의 라이프치히, 뉘른베르크, 베를린 함락을 가장 먼저 세계에 타전했다. "만약 당신의 사진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라는 말은 카파이즘의 정수(精髓)다. 그는 언제나 교착된 전선이 아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단에 있었던 것이다.

카파의 이름이 쉬 잊히지 않고 이어져 오는 이유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치열한 전장에서 억압받는 이들 편에서 전쟁의 실상을 알리고자 했다는 점이다.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럴드 트리뷴> 종군기자 출신 존 스타인벡은 "카파의 사진은 그의 정신 속에서 만들어지고, 사진기는 단순히 그것을 완성시킬 뿐"이라고 회고하는 장면에서 명성의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카파의 사진은 그의 정신 속에서 만들어진다"

19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는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난 카파는 1931년 좌익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조국에서 추방돼 베를린으로 건너간다. 이곳에서 <데포트>라는 사진통신사 암실보조원을 하면서 자질을 인정받아 현장 취재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에 쫓겨 파리로 이주하게 된다.

▲ 카파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연인 게르다.
ⓒ 프레드 슈타인
그가 사진에 몰입한 것은 어쩌면 모국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함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진은 만국 공통언어이기 때문이다. 파리 생활에서 게르다를 만난 카파는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사진작가에서 보도작가로 전환하는 전기를 맞는다.

당시 그는 카메라를 표현의 도구로 사용해 정치적 현실에만 초점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게르다의 죽음은 그에게 전쟁의 실상과 비인간성을 통찰하는 안목을 길러주었고 '정신'으로 사진을 찍는 카파이즘의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치열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구촌은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만 같았다.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워낙 거대한 전쟁을 치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전쟁을 앞세워 기록된다.

종전과 함께 미국 시민권자가 된 카파는 <매그넘>이라는 사진배급사를 차린다. <매그넘>은 잡지사의 청탁을 받아 요구하는 사진을 찍어 바치는 것이 아닌 찍고 싶은 사진을 찍어 사진은행을 만들었다가 파는 에이전시다.

카파의 <매그넘>은 이전의 사진 유통체계에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 사진작가들의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담보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이로써 보도사진 분야는 보다 개성 있고 전문성을 가진 분야로 발전했다.

다시 찾은 전장...게르다 곁으로 날아간 삶

▲ 카파의 마지막 사진.
ⓒ 라이프
1954년 운명의 시간이 밝았다. 일본 언론사 초청으로 일본에 머물고 있던 카파에게 <라이프>는 급변하는 인도차이나 반도 상황을 취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제 막 불혹을 넘긴 카파에게 전장의 화약 냄새는 여전히 큰 매력이었다.

북베트남 전장에 도착한 카파는 5월 25일 하노이 남쪽에서 프랑스 부대에 합류해 푸른 초원을 걷고 있었다. 잠시 후 셔터소리 대신 정적을 깨는 폭음이 들렸다. 카파의 카메라가 크게 흔들렸고 그와 함께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지뢰를 밟은 것이다. 이후 카파는 다시는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게르다가 있는 하늘로 날아갔다. 그이 나이 마흔한 살이었다.

카파는 일생 동안 약 70만 장의 사진을 남겼다. '위대한 카메라의 시인'은 카파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이 책은 카파의 자전적 전기의 일부로 2차대전에 대한 종군 기록물이다. 안타깝게도 스페인내전, 중일전쟁, 이스라엘전쟁, 인도차이나전에 대한 기록은 없다.

이 책은 오래 전부터 사진작가들의 '바이블'로 여겨져 왔다고 한다. 책에는 사진기술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없는데 말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포착해 낸 전쟁의 실상과 그 이면의 휴머니즘. 바로 '카파이즘'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작된 역사 - 페르세포네에서 뉴턴의 연대기까지
우베 토퍼 지음, 문은숙 옮김 / 생각하는백성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여기 조작된 역사가 있다. 물론 조작이라는 증거가 명백하다. 그러나 조작은 아이러니하게도 공식적인 역사로 인정받고 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유물을 조작해 팔아서 치부하려는 욕망 때문이 아니다. 뿌리 깊은 맹목적 이데올로기와 종교적 이유가 숨어 있다.

조작된 역사는 증거를 앞세워 복원하면 되지 않겠냐는 반문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지배자의 역사는 '잃어버린 고리'를 자기 것으로 채우고 자신들과 가치관이 다른 것은 부정하고 악으로 몰아세우게 마련이다. 따라서 조작된 역사를 되돌리는 것을 극도로 회피한다. 그래서 역사는 승자의 것이라 하지 않았나.

기득권, 즉 역사를 조작한 무리들은 이러한 역사의 균열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혼돈이 두려워 과거의 조작 따위는 애써 무시한다. 그러는 사이에 역사 조작은 세대를 이어 교육되면서 역사관을 망쳐 놓는다.

조작된 역사는 비가역적이다

밀가루 반죽같이 멋대로 빚어진 그릇된 역사관으로 말미암아 세계사는 연대적 오차, 시각적 오독에 휘말리게 된다. 이는 곧 인간사의 왜곡이며 조작인 셈이다. 이를 되돌리기란 시간을 거스르는 타임머신이 없는 이상 어렵다. 저자도 대체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쪽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독일의 우베 토퍼는 30년간 모국은 물론 유럽의 역사 서술을 바꾸기 위해 조작된 역사를 파헤쳐 온 소위 재야 학자다. <조작된 역사>는 지난 1999년 펴낸 <만들어진 역사>의 연작인 셈이다. 우베는 비가역적일 것만 같았던 조작된 역사를 현장방문과 문헌을 통해 촘촘하게 세상에 드러냈다.

그렇다고 역사가 가역적으로 제자리를 찾지는 않는다. 우베의 한마디로 역사가 뒤바뀐다면 '세계사 연대기'는 매일 뜯어 고쳐도 모자랄 것이다. 다만 역사 조작이 우리의 상상을 초원할 정도로 버젓이 행해졌고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드러내는데 목적을 다한다.

이 점에서 작자는 세상을 혼돈에 빠트리기보다는 엇박자라도 삐걱거리면서 돌아가는 역사가 그나마 낫다는 입장이다. 우베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조작된 유물들을 확실히 만천하에 드러내고 그와 관련된 문헌들이 믿지 못할 것임을 밝혀두자는 것이다.

'잃어버린 사슬' 선점에 따라 역사는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감시의 눈이 없으면 역사는 언제고 또다시 조작될 수 있는 구조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바로 '잃어버린 사슬' 때문이다. 누가 그럴 듯하게 이 사슬을 선점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사실 조작된 역사에 대한 비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1450년대에 역사 조작은 조직적으로 끊임없이, 그리고 더욱 거세게 행해졌으며 동시에 최초로 비판가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1650년대에 들어서서야 '역사 사기'에 대한 삭제 작업이 진지하게 이루어진다. 문제는 '반짝 관심'일 뿐 역사를 사기극에서 벗어나게 하기는 어려웠다. 역사바로세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온전치 못하다. 때론 사학자들의 실수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조직적 범죄도 많다. 차라리 책을 열지 말 것을. 머리가 지끈거리며 무거워 진다. 우베도 처음엔 같은 생각이었으리라. 조작이나 마나 그냥 스쳐갈 것을.

역자에 따르면 저자의 역사관 저변에는 우주빙하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학계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우주생성이론으로, 이로 인한 지구의 재난과 역사의 단절, 공백 때문에 역사 일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공백을 메우는 과정에서 인위적 사실, 즉 조작된 역사가 채워져서 잘못된 역사체계가 만들어 졌다는 것이 우베의 설명이다. 다분히 독특한 야사(野史)적 관점이다. 우주빙하설의 진위 이전에 저자가 조작의 근거로 내세우는 주장은 방대하다. 방대함이 때론 읽기 불편함을 주지만.

그나마 고고학에 관심이 있어서 역자 후기가 책 말미에 있는 것을 알았지 녹녹치 않은 책이다. 전문용어는 물론 지명, 인명 등 고유명사가 주는 딱딱함과 무료함, 그리고 방대한 참고문헌 인용이 유발하는 널뛰기 지식, 마지막으로 대중적이지 못한 소재에서 오는 난독증까지. 쉽게 손이 가는 책은 아니다. 추천 역시 마찬가지다.

조작된 '페르세포네' 조각상

▲ 페르세포네 조각상
ⓒ페르가몬박물관
독일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페르세포네 조각상. 박물관 도록 설명에 따르면 얼마 전 이탈리아 남부 타렌트란 지방에서 기원전 480~460년 사이에 만들어진 높이 1.5m짜리 대리석 조각상이 발견됐다.

조각상은 데메테르의 딸이자 하데스의 아내인 지하세계의 여신 코래, 즉 페르세포네의 실물 조각상으로 밝혀졌다. 우베는 이 작품이 이탈리아 출신 ‘도세나’라는 고대 미술품 위조가의 위작이라고 지적한다.

채석장 석공보다 돈 벌기 쉬운 조작으로 방향을 바꾼 도세나는 가톨릭교를 믿는 이탈리아 국민들이 좋아하는 마돈나상을 만들다가 점차 유물 위조에 손을 댄다. 도세나가 노린 것은 바로 '잃어버린 고리' 부분.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에 대담한 위조가 가능했다.

위작에서 파손된 부분은 대부분 위조자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려워 한 부분이다. 이 조각상에서는 양 손에 무엇이 들려져 있는지 분명치 않자 아예 파손된 모양으로 만들었다. 빈약한 가슴 역시 도세나의 위작 특징 중 하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폐 꿈꾸는 자들의 초상 - 세계 화폐 인물열전
박구재 지음 / 황소자리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지폐 속에서 세상 밖을 응시하는 인물들의 눈빛을 들여다보자. 혹시 그들의 홍채 속에 머물러 있는 작은 역사가 보이지 않는가. 암울하고 고단했던 시간과의 싸움을 거쳐 끝내 삶의 승리를 거머쥔 그들의 눈빛은 오늘날 많은 이들의 땀내 나는 손을 거쳐 면면이 이어져 오고 있다.

각국의 지폐 속에 새겨진 인물들의 열전인 <지폐, 꿈꾸는 자들의 초상>은 작은 위인전이다. 전 세계 22개국 39명의 지폐 초상 인물들의 모노드라마를 보여준다. 등장인물은 1인이지만 그들이 빚어낸 역사는 장대한 뮤지컬 이상으로 생동감 있고 역동적이다.

한 나라 경제력과 집약된 역사의 결정체라 일컫는 화폐. 특히 지폐에 초상으로 얼굴을 올린 이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개인만이 만족한 삶이 아닌 인류공영과 문화인류를 지향한 업적을 남기고 사라지거나 현존한 인물들이다.

또한 지폐에는 인물뿐만 아니라 각국의 전통과 문화, 기술력이 총체적으로 담겨있다. 지폐의 역사는 위폐와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5㎝ 지폐 속에 촘촘히 담겨 있는 인물, 역사, 위폐방지 기술, 그리고 전통과 문화 등을 한 권의 책으로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책이 제공하는 정보는 짧지만 유익하다. 개인의 간략하지만 뚜렷한 삶의 궤적을 동행하면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또 인물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를 만나는 것은 봄비 같은 단맛이 난다.

아르헨티나 의학도 출신이면서 쿠바혁명에 가담해 임무를 완수한 체 게바라가 카스트로의 질문을 잘못 들어 쿠바중앙은행 총재가 된 일화, 자습을 시키기 위해 1에서부터 100까지 모두 더하라는 덧셈문제를 내고 돌아 서는 선생님에게 즉답을 내놓은 10살의 가우스(독일 수학자), 자국에 오면 부귀영화를 보장하겠다는 스페인 국왕의 제의를 거절한 스웨덴 식물학자 린네….

이들 개인의 소사가 후일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대단하다는 표현만으로 모자라다. 어린왕자처럼 하늘로 날아간 생텍쥐페리, 인류에게 무상으로 라듐을 선사한 마리 퀴리, 동심에 정의를 심은 그림형제, 에베레스트 산 초등에 성공한 에드먼드 힐러리, 중국 인민의 붉은 별 마오쩌둥, 그리고 어린 백성을 긍휼히 여겨 눈과 귀를 열어 준 성군 세종대왕까지.

나라마다 인물초상 선정에 독특한 차이를 만나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예술과 문화의 나라 프랑스는 유로화 사용 전까지 지폐에 정치인을 등장시키지 않고 문화예술인과 과학자를 새겨 넣었다. 생텍쥐페리(50프랑)를 비롯해 작곡가 드뷔시(20프랑), 화가 폴 세잔(100프랑), 건축가 구스타프 에펠(200프랑), 그리고 500프랑에는 과학자 퀴리 부부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이탈리아 역시 유로화 이전인 1970년대에는 예술가, 탐험가를, 1985년 이후 발행권종에는 문화예술계 인사로 장식했다. 모차르트가 들어 간 오스트리아의 50실링 지폐는 1990년 유럽은행권 콘테스트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폐 디자인상을 받았다.

대통령 위주의 미국과는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멕시코, 쿠바, 칠레 등 남아메리카 지역 지폐들에는 유독 좌파지도자, 혁명가들이 많다. 제국주의 지배에서 독립한 나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인물들이 과거의 초상이라면 영란은행(BOE)의 모든 권종에 새겨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현존 인물이다. 골프로 한 시대를 휘어잡았던 ''필드의 신'' 잭 니클로스는 스코틀랜드 5파운드 지폐를 장식했다. 인도네시아는 독재자 수하르토의 초상을 넣었다가 국민적 반감이 거세지자 통용중인 지폐를 회수하는 소동을 빚는 등 현존 인물에 대한 초상은 역사적 검증 부족으로 가급적 회피한다.

모양새도 나라마다 특성을 보인다. 대부분 가로 도안를 채택한 데 반해 스위스, 이스라엘 등은 돈을 세는 시각(視角)을 기준으로 세로 도안을 사용하고 있다. 세로 도안은 은행권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는 판단이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았다. 다만 도안배치에 효과적이고 여백을 가득 메울 수 있는 장점은 있다.

싱가포르 은행권은 가로 18㎝, 세로 9㎝로 세계 평균인 14.8㎝, 7.05㎝보다 2~3㎝나 크다. 우리나라도 새로 발권된 5천원권이 기존보다 작아졌다. 이는 지폐가 커서 지갑에 넣기가 불편하다는 지적 때문이었다는데, 이 보다는 위폐방지를 위한 도안교체에 따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지폐는 폴란드 은행권으로 가로 12㎝, 세로 6㎝이다.

지폐의 액면가는 소득수준, 지급결제 관행 등에 의해 결정된다. 최근 발행한 최고 액면가치는 싱가포르의 1만싱가포르 달러로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5799달러에 이르는 고액권이다. 또 이란의 1만리알은 1.3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액면단위가 가장 컸던 것은 1924년 독일이 발행한 100조 마르크. 1차 세계대전 후 전쟁배상금 마련과 경제부흥을 위해 무분별하게 고액권을 남발한 결과다.

이처럼 지폐 속에는 인물초상의 역사와 함께 한 나라의 정체성까지 엿볼 수 있는 쏠쏠함이 있다. 그리고 지폐 제조기술과 함께 발전하는(?) 위폐 범죄의 수법, 이를 방지하기 위한 신기술의 개발은 컴퓨터와 컴퓨터바이러스 간의 전쟁을 보는 듯하다.

미국의 대북 압박 수단으로 최근 이용하고 있는 슈퍼노트(100달러권) 위폐 논란에서 보여지 듯 위폐 제조와 유통은 한 나라를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다. 그러나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위폐 제조는 ''예술적 경지''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정교해 지고 있다.

12세기 영국에서는 위폐가 범람하자 헨리 1세는 조폐기관 직원들의 위폐제조 가담 혐의를 잡고 직원 100여명의 손목을 자른 일화가 있다. 위폐에 대한 응징이며 동시에 비극인 셈이다. 최근에는 인쇄기술의 발달로 전문가들도 위폐를 단박에 알아내기 힘들다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14가지의 위조방지 장치가 들어 있는 스위스 지폐는 위폐범들이 몹시 싫어하는 돈인 셈이다. 지폐는 위폐에 의해 가끔 일생을 마감하는 비운을 맞기도 하지만 그 속에 그려진 인물들의 역사는 어떤 위폐도 위조할 수 없는 영원불변성을 담고 있다. 이런 보이지 않는 이유로 지폐에 인물 초상을 넣은 것이 아닐까.

경제부에 몸담았던 현직 기자가 엮은 책은 가장 세속적인 가치(돈) 속에서 철학과 문화적 가치(인물과 사상)를 끄집어냄으로써 ''돈''의 중요성을 새삼 깨우치게 한다. 매일 접하는 흔한 소재를 세계사와 버무림으로써 맛난 비빔밥이 됐다. 책을 다 읽을 무렵 느껴지는 포만감은 이 때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 마음의 푸른 눈
함정임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푸른색으로 시작해 푸른색으로 끝을 맺는 함정임의 단편집 <네 마음의 푸른 눈>은 색이 주는 묘함 때문에 몽롱하다. 지극히 세속적인 듯하지만 읽고 나면 어느새 뒤통수부터 저릿해지면서 텅 비어버린다. 그녀의 글 궤적을 좇다보면 시나브로 색채 속으로 말려들어가는 환상이 느껴진다.

<버스, 지나가다>를 내고 3년 동안 그녀는 낯선 곳을 떠돌며 그곳에서 만난 운명(작가의 말로는 운명이려다 만 것)을 엮었기 때문이다. 미완의 운명에서 완성된 운명보다 뚜렷한 푸른색을 얻어 냈다는 그녀는 이번 작품을 통해 현실과 환각적 몽환이 겹치는 경험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11편의 작품이 실린 이번 단편집은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문학동네> <세계문학> <현대문학> <작가세계>와 같은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을 모은 것이다. 특히 장편연재를 제외하고 지난해만 중단편을 무려 여덟 편을 발표하는 다작을 했다.

그녀는 '소설'에게 빚 갚음을 위해 쓰고 또 썼다고 한다. 그러나 쓰기는 마음먹기로 되지 않고 언제나 독기를 요구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었던 것은 한 가지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내가 진 이 빚은 정녕 무엇인가? 소설가로 데뷔한 이래 나는 늘 소설에게 미안했다."

표제작인 <네 마음의 푸른 눈>에 등장하는 '일산 아이'는 외국 생활에 따른 이중 언어습득 과정에서 오는 유사자폐를 가지고 있다. 그는 말하지 않았고 언어장애를 치료받고 있었다. 생각과 삶의 이중구조는 가끔 현실에서 달아나기 좋은 재료다. 작가는 일산 아이의 입을 빌어 이번 단편집의 주제를 말하고 있다.

"Nothing is real"

주제가 주는 몽롱함과 더불어 단편을 엮은 단편집을 평하기는 쉽지 않다. 자칫 작가의 의도된 주제를 한참 비켜가는 결례를 범할 수 있고 또 하나는 의도된 공통의 주제가 없는 것을 억지로 짜내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오류를 피해가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작가의 입을 통해 직접 듣는 것이다. 물론 작가의 말에서 대부분 작가가 관통하는 세계를 엿볼 수 있지만 이번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작가가 숨겨놓은 '몽환의 덫'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단편집에 대한 평은 의도된, 혹은 의도되지 않은 주제와 작가의 근황을 엮는 이메일 인터뷰를 했다.

- 지난해는 소설에게 진 빚이 정량적으로 단편 여덟 편 정도인 듯하다. 아니면 더 많을지도. 늘 소설에게 미안한 이유에 대해 말해 달라(책 말미 '작가의 말'과 달리).
"소설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나에게 온 어떤 것이다. 생애 첫 단편으로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까지 소설가를 꿈꿔본 적이 없다(믿기에 어렵겠지만!). 데뷔 이래 늘 소설과 낯가림을 해왔고, 매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낯선 세계를 여행하는 여행자의 심정이었다. 데뷔 때부터 직장생활(문학사상 기자, 작가세계 편집장, 솔출판사 편집부장)과 병행하면서 창작해온 관계로 늘 부족한 시간에 시달려왔다.

그러나 1998년 이후 전업 작가 생활을 하면서 중·장편도 시도하고, 소설을 본업으로 인접 장르에 대한 글도 쓰게 되었는데, 이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들을 창작할 당시에는 유럽예술묘지기행서인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와 파리기행서 <인생의 사용>, 미술 에세이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 등 에세이 작업이 몰려 있어서 소설을 위한 시간을 온전히 내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것은 작가에게는 작품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문예지의 소설 청탁을 다음호로 미루고, 미루고 하면서 갖게 된 안타까움, 아쉬움의 표출이다. 늘 마음속에는, 언제 한번 제대로 소설을 써보았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다. '소설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소설을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인간)로 섬길 때 가능한 표현이다. 나는 소설 이상의 애인을 둔 적이 없다. "

- 푸른색이 주는 이미지가 여행(또는 여정) 속에서 만난 미지의 인연들과 어떤 상관관계를 갖는지 설명해 달라.
"<네 마음의 푸른 눈>에서의 푸른 눈은 심안(心眼)의 빛이다. 그것은 순간적인 찰나의 빛으로 영원한 소통이 가능한, 그러니까 훼손된 자아의 치유, 또는 소외된 자아의 만남(환원)의 순간을 의미한다. <푸른 모래>에서의 그는 소설의 여정이 작가의 여정을 이끄는 신비로운, 초월적 인연을 선사하고 있다.

지금 나는 소설처럼 일산에서 부산 청사포 바닷가에 살고 있다. 청사포는 푸른 모래의 모티브가 된 지명이다. 실제 청사포의 청은 맑을 청이지만, 이곳 해운대 청사포 사람들은 도로 표지판에서 한자의 '淸'자에서 물 수(水) 변을 지우고 푸를 청(靑) 자로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맑은 모래, 푸른 모래, 푸른 뱀(靑蛇)…. 소설을 정밀하게 읽어보면 이러한 이미지와 의미의 변주가 가능할 것이다."

- 작품 속에 참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작가의 분신으로 숨어 있음직한 등장인물에 대해 귀띔해 줄 수 있는지. 또는 가장 연민을 갖는 인물이 있다면 이유를 설명해 달라.
"<문어에게 물어봐>는 <문학동네> 젊은 작가 특집의 '자전소설'란에 들어간 작품이다. 소설가의 소설치고 자전 소설 아닌 것이 있으랴마는, 자전이라는 타이틀을 비석처럼 거느리고 있으니 가장 흡사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푸른 모래> 또한 그렇다. 가장 연민을 갖는 인물은 <네 마음의 푸른 눈>의 일산 아이다."

- 많은 작품 중에서 11편을 묶은 의도된 주제(또는 의도한 바)가 있으면 설명해 달라.
"의도는 없다. 나는 새로움을 중요시하는 작품 스타일을 갖는 작가지만, 또한 무엇보다 자연스런 흐름을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이기도 하다. 의도라고 하자면, 원래는 10편으로 마무리가 되었던 것인데, 나중에 <푸른 모래>를 넣었다.

<푸른 모래>와 더불어 같은 시기 발표한 작품은 다음 작품집에 수록할 예정인데, 그러고 보니 딱히 열한 편의 의도라기보다 책 한권의 형상을 위한 의도가 없지 않다. <네 마음의 푸른 눈>에서 <푸른 모래>로의 이행, 그러면서 푸른 빛, 환각의 현상학적 환원의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 지난해처럼 중·단편 다작인지 아니면 장편인지, 번역을 준비하고 있는지 등 앞으로 작품 활동에 대해 말해 달라.
"그동안 소설집을 6권 출간했다. 그러니 중단편(거의 단편)을 50편 이상 창작한 셈이다. 장편은 두 권이고, 올해 출간 예정인 연재한 장편이 한 권이니 단편에 상당히 치중된 편이다. 처음에는 시 또는 시적인 것으로 글을 시작한 이유도 있지만, 호흡 면에서 나는 단편에 적합한 작가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스토리(서사)보다는 의미(시적 이미지)의 창출에 오랫동안 사로잡혀 있었다. 현재는 서사와 이미지의 강한 결합을 꿈꾼다. 장편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계간 <작가세계>에 <내 남자의 책>을 연재 중이며 프랑스의 현대 작가 브누아 뒤퇴르트르의 경장편들을 번역중이다. "

- 그간 독자나 문단에 펼쳐 놓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면 해달라.
"함께 소설가의 길을 걸으며, 또 그 소설가들의 소설을 읽으며 살아온 모든 이들에게 동지감을 느낀다. 소설에게 미안한 마음을 떨치고, 오직 그것에 전념함으로써 자유로워지고 싶다. 새처럼."

함정임은 누구?

1990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광장으로 가는 길>로 등단. 소설집 <이야기, 덜어지는 가면> <밤은 말한다> <동행> <당신의 물고기> <버스, 지나가다>, 중편 <아주 사소한 중독>, 장편 <행복> <춘하추동> 등이 있다.

서양 최초의 여성 화가의 일생을 그린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에릭 바튀의 아름다운 일러스트 동화집 등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여행과 일상을 아우르는 산문집 <하찮음에 관하여>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프랑스 기행서인 <인생의 사용>, 유럽 묘지 기행서 <그리고 나는 베네치아로 갔다>, 미술에세이 <나를 사로잡은 그녀, 그녀들> 등을 펴내는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1964 전북 김제생. 이대 불문과 졸. 한신대 대학원 문창과 졸(2006). 현 동아대 문창과 교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잘사는 나라 못사는 나라 - 석혜원 선생님의 지구촌 경제 이야기
석혜원 지음, 고상미 그림 / 다섯수레 / 200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원-달러 환율이 IMF 구제금융 이전인 97년 10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는 요즘, 도대체 환율 변동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두고 파고들지 않고서는 뭐라 설명하기조차 힘들다.


이런 허점이 알려질 새라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을 알았는지 아이들이 엄마에게 기습적으로 질문한다. 달러에 대한 환율이 내려가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아뿔싸! 이를 두고 '머피의 법칙'이라 했던가. 엄마는 뼈아픈 일격을 당하고 폐지 뭉치에서 아침나절에 버린 신문을 뒤적인다.


옛날에는 경제도 모르는 이가 대통령을 하기도 했는데 엄마 노릇 하기가 이리 힘들어서야, 하며 한숨을 쉬면서 신문을 펼치지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오늘따라 원-달러 환율 기사가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질 않는다.


이런 소동이 벌어질까 걱정이 됐을까? 석혜원은 엄마이자 선생님으로서 경제 용어, 원리, 행위를 쉽게 설명한 지구촌 경제이야기 시리즈 <잘 사는 나라 못 사는 나라>를 최근 출간했다.


필리핀계 은행인 메트로은행 서울지점 부지점장인 석씨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경제를 전문분야로 하는 선생님이다. 그럼 석 선생님이 엄마로서 어떤 답을 내놓는지 들어보자.


"달러에 대한 환율이 내려가면 우리 돈의 가치가 더 올라갔다고 한단다. 1달러에 1000원 하던 환율이 900원으로 낮아지면 1달러를 바꾸는 데 필요한 우리 돈이 100원 적어졌으므로 그만큼 가치가 올라간 거야."


이를 경제 용어로 '원화절상'이라고 한다. 원화가 절상되면 수입보다는 수출업체가 힘들어진다. 수출대금을 원화로 바꾸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기야 수출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간다. 듣고 보니 참 쉬운 설명이지만 막상 설명하려다 보면 꼬이기 십상이다.


책은 환율과 같은 알쏭달쏭한 경제상식을 비롯해 잘 사는 나라 못 사는 나라의 척도인 국민소득, 국내총생산, 국민총소득 등의 용어 정의, 경제성장과 경제발전의 개념, 무역 및 수출입, 국제수지 등에 대해 실례를 들어 꼼꼼히 설명하고 있다.


딱딱하고 복잡한 경제 분야라서 아이들이 쉽게 식상해 할까 봐 문답식으로 풀어가는 구성이 재미있다. 책 전체가 문어체 아닌 하나의 묻고 답한 내용을 옮겨 놓은 모양이다. 책이 담고 있는 용어나 범위 등을 따져보면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들 눈높이에 알맞다. 그 아래 또는 그 이상 연령대에서는 너무 어렵거나 다소 심심하게 느낄 만하다.


중간 중간 어른들도 알아두면 좋은 정보들이 나와 어른들도 심심찮게 손이 가는 책이다. 외환보유액이 많을수록 좋을까란 질문에 독자는 어떻게 대답겠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정 외환보유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외환보유액이 많으면 외환시장을 안정시키고 국가신인도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지만 외환을 투자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외환 위기를 겪은 우리나라의 경우 피해의식 때문인지 국민이 외환보유액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정보다. 고상미씨가 그린 삽화도 내용과 잘 어울리면서 볼거리를 제공한다.


책은 끝으로 변화에 적응해야 잘 살 수 있다고 잘라 말한다. 공룡의 멸종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요, 경제의 세계 역시 동물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퇴행한다고 지적한다. 예로 코카콜라와 노키아는 변화에 빠르고 능동적인 대처했기 때문에 100년 이상 장수하는 기업이 됐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