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과 풀로 만들기
인병선 지음 / 우리교육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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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간혹 텍스트가 아닌 사진이나 그림책에 대한 서평을 맞닥트리면 난감할 때가 있다. 그림이라도 뚜렷한 줄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면 더더욱 난처하다. 인병선씨의 <짚과 풀로 만들기>가 그런 경우다. 짚과 풀을 엮어 만드는 과정을 사진으로 담았을 뿐이다.

이런 저런 고민 차에 다행스럽게 관련 홈페이지가 있어서 참고할 만한 것을 찾아 방문했다. 짚풀생활사박물관 홈페이지(www.zipul.co.kr)를 찾으니 팝업창 두 개가 뜬다. 하나는 한국 축구의 세계제패를 기원하면서 만든 짚공 사진이고 또 하나는 대망의 신간 <집과 풀로 만들기> 출간 소식을 알리는 것이다.

'대망의 신간'이란 표현에서 저자나 독자 모두 간절하게 기다려왔다는 절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인 인씨는 잘 알려져 있듯이 '껍데기는 가라'의 시인 고 신동엽씨 미망인이다.

그동안 따라 다니던 '시인의 미망인'이란 꼬리표를 지난해 <시인 신동엽>(현암사)를 통해 떼어내기까지 20여 년간 저자는 묵묵히 우리의 짚풀 문화를 개척해 왔다.

그녀가 하는 일은 하찮게 버려지는 짚이며 이름 모를 들풀에다 생명을 불어 넣는 작업이다. 그녀의 손끝을 거치면 검불에 지나지 않던 짚풀도 멋진 작품으로 탈바꿈해 숨을 쉰다.

저자는 1978년부터 짚풀 문화를 찾아 전 세계를 누비기 시작했고 1987년 사단법인 짚풀문화연구회를 설립해 본격적으로 저변 확대를 위해 뛰어 들었다. 1993년에는 짚풀생활사박물관을 설립해 귀중한 체험활동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번 책에는 초등학생들이 체험할 수 있는 짚풀 공예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작품을 실었다. 짚공예의 기본인 새끼 꼬기부터 시래기두름, 달걀 꾸러미, 수박망태, 허수아비, 똬리, 망태기, 보릿짚 인형, 보릿짚 컵받침, 보릿짚 카드, 여치집, 도라지꽃, 장미꽃, 삼태기, 여치, 잠자리 등 26종이 담겨있다.

▲ 짚으로 만든 달걀 꾸러미.
ⓒ 짚풀생활사박물관
보아하니 종류가 각양각색이다. 실생활 용구부터 동식물 모양, 그리고 이름도 생소한 씨오쟁이, 닭둥우리까지. 씨오쟁이는 이듬해 심을 씨를 담아 보관하는 그릇을 말한다.

농사꾼에게 씨앗은 생명이다. 그래서 옛말에 굶어 죽어도 씨오쟁이는 베고 죽으란 말까지 있다고 하니 귀중함을 엿볼 수 있다.

닭둥우리는 공중에 다는 닭집을 말한다. 닭이 올라가 알을 낳고 품는 장소이기도 하다. 볏짚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보온과 통풍이 좋다. 닭둥우리는 많은 모양이 있는 데 책에서는 용마름을 짧게 엮어 뒤집은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수박망태를 들여다보자니 불뚝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맞아! 그때는 새끼줄로 엮은 망에 수박을 담아가지고 다녔지! 꼭꼭 잠겨서 떠올릴 기회조차 없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반가움. 이 책이 선사하는 유익함 중 하나일 것이다.

종려나무 잎으로 여치와 잠자리를 만든 것을 보면 실물을 방불케 한다. 색깔도 들어맞고 각선의 오묘함 역시 빼닮았다. 여치의 경우 제작과정 사진을 30장이나 보여주는 섬세함으로 처음 만드는 이들도 착실히 따라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렇듯 작품마다 충분한 사진 설명으로 완성도를 높여주는 친절함 역시 이 책의 유익함이다.

인씨에 따르면 짚과 풀로 못 만드는 것이 없을 정도로 응용 분야가 넓다. 또 조금만 신경을 쓰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자연재이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는다. 이보다 더 환경친화적인 취미생활은 없다는 말이다.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 직접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고 하니 올 여름방학엔 책 한 권 허리춤에 끼고 온 가족이 달려가 보는 것은 어떨까.

인병선씨는 누구?

1935년 평남 용강에서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 철학과를 다녔으며 1956년에 시인 신동엽과 결혼했다.

우리 짚풀문화에 대한 조사, 정리 작업을 꾸준히 해온 저자는 1991년에 '짚풀문화특별전'(국립민속박물관)을 열었으며 문화부 문화가족상 '화전(火箭)'을 수상했다.

1993년에는 짚풀생활사박물관을 설립하고 개관 특별전으로 '망ㆍ망태ㆍ망태기전'을, 1994년에는 '100주년 기념 동학농민 전쟁 민속전'과 '맥간공예-보리짚ㆍ밀짚 특별전'을 연 후 수많은 전통 공예 관련 전시회를 가졌다.

현재 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과 문화재청 근대문화재 전문위원, 세계박물관대회 상임위원, 한국박물관교육학회 이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1995년 문화부장관 상과 2005년 제2회 대한민국문화유산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들풀이 되어라>(1988), <짚문화>(1989), 벼랑끝에 하늘>(1990), <풀문화>(1991),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짚풀문화>(1995), <풀코스 짚문화 여행>(2000),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종이오리기>(2005), <시인 신동엽>(2005) 등이 있다.

한편 그녀가 운영하는 짚풀생활사박물관은 1993년 문화관광부에 등록하고 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서 운영하다가 2001년 현재의 종로구 명륜동으로 이전 개관했다.

짚풀 특히 볏짚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설립한 박물관은 전 세계를 통틀어 이곳 뿐이며 현재 짚풀 관련 민속자료 3500 점, 연장 200 점, 조선못 2000 점, 제기(祭器) 1000 점, 한옥문 200 세트, 이종석기증유물 457 점, 세계의 팽이 100 종 500 여 점 등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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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 이야기 - 생각하는 지혜 동화 03
유진아 지음, 안준석 그림 / 꿈소담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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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토리'라는 나무가 있었다. 엄마 신갈나무에서 떨어져 다람쥐의 먹잇감이 될 뻔하다가 운 좋게 싹을 틔어 나무의 일생을 살다간 도토리의 이름이기도 하다. 토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표현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나무다.

살아 반평생, 죽어 반평생을 살다간 토리. 살아서는 한 곳에서 뿌리를 박은 채 대자연과 사계, 그리고 자신을 찾아 온 운명과 벗하며 지고지순하고 무한한 사랑을 보여준다.

베어진 후에는 숯과 재가 되어 영원히 이 땅에서 사라지는 순간까지 보여준 희생정신을 따라가다 보면 가슴 뭉클한 감동을 만난다.

토리의 아름다운 삶을 보기 위해 책을 편다. 순간 우리는 싱그러운 봄날 대지를 뚫고 막 올라오는 연녹색 새순을 만난다. 아기 손 같이 고물고물, 잼잼, 땅을 간질이며 오르는 토리의 손을 잡아보자. 그리고 때묻지 않은 아기 눈빛 같은 이야기 속으로 빠져 보자.

한평생 지고지순한 사랑을 남기고 간 나무의 일생

엄마 몸에서 떨어져 첫 이별을 느낄 사이도 없이 다람쥐 먹이로 일생을 마감할 뻔한 토리. 그러나 인기척에 놀란 다람쥐가 토리를 묻고 가는 바람에 용케 땅속에서 겨울을 난다. 땅이 녹고 대자연이 기지개를 켜는 봄, 토리도 힘차게 고개를 세상 밖으로 내민다.

처음 맞는 세상은 경이롭다. 토리는 가장 먼저 빛을 접하고 눈이 부셔서 비틀거렸다. 그때 발아래 흙은 토리의 뿌리를 힘껏 잡아주며 세상을 향해 올곧이 서라고 격려한다. 빛 다음으로 토리를 반긴 것은 바람이었다. 바람은 지상에서 토리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고는 떠났다.

처음 맞는 이별이지만 토리는 슬퍼하지 않았다. 바람은 머물다가 떠나는 존재며, 기약할 순 없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기 때문이다. 또 내일이면 다시 떠오를 해님을 위안 삼아 슬픔을 기다림의 기쁨으로 승화시킨다.

토리는 아름다운 천성을 타고났다. 사람들의 관심이 없다며 풀이 죽어 있는 친구나무인 솔이를 한껏 치켜 세워준다. 둥지를 틀기 위해 날아 든 곤줄박이 부부에게 가슴을 열어 터를 내어주고, 이들이 낳은 세 마리 형제를 자기 자식인 양 돌본다.

특히 몸이 약한 둘째 줄이를 마지막까지 돌봐 이소(移巢)에 성공시킨다. 그리고 행복한 표정으로 속으론 이별의 눈물을 흘린다. 나무 등걸에 내려앉은 민들레 홀씨를 바람에 날려보냈고, 곤줄박이 가족을 모두 떠나보낸 빈 가슴에 어느 날 겨우살이가 자리 잡는다.

새똥인 줄 알았던 흔적에서 겨우살이가 움트는 것을 본 친구 솔이는 빨리 없애버리라고 난리를 편다. 겨우살이는 식물에 기생하면서 양분을 빼앗아 먹는 기생식물이다. 그러나 토리는 겨우살이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몸을 열었다.

그리고 겨우살이를 위해 물을 빨아 올려 공급했다. 숲 속에는 이제 토리, 솔이, 겨우살이, 그리고 잊을 만 하면 불어오는 바람 아저씨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간다.

자연의 이치와 삶의 지혜를 자연스럽게 전달

토리는 도토리 나무가 아니다. 참나무의 일종인 신갈나무다. 우리가 흔히 참나무라고 부르는 것에는 굴참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신갈나무 등이 있다. 나무껍질과 열매 모양이 조금씩 틀리다. 이들은 모두 도토리 열매를 맺고 베어져서는 대부분 숯으로 만들어진다.

책에는 지혜의 상징으로 나무꾼 노인이 등장해 자연의 이치와 삶의 지혜를 전달한다. 벌목을 하는데 있어서 나무를 대하는 경건한 마음에서부터 나이테를 보는 방법까지.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읊조리는 노인의 손에 의해 토리와 솔이, 그리고 겨우살이는 원치 않는 이별을 한다.

마지막 이별의 순간에 찾아 온 바람에게 더 이상 쉴 터를 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토리. 그 말에 몸부림치며 우는 바람 아저씨. 이미 토리의 몸에는 여러 번 도끼 날이 들이친 상처가 나 있다. 바람 아저씨는 마지막으로 신갈나무의 뺨에 입을 맞추고 이별한다. 숲은 인간에 의해 골프장을 개발되고 있었다.

베어진 토리는 숯막에서 뜨거운 불길을 견디고 숯으로 환생한다. 숯이 되는 과정에서 정신이 혼미해진 토리는 헛것을 본다. 그 동안 사귀었던 친구들이 눈앞을 스친다. 헛소리를 해대는 토리의 모습을 접하면 안타까움은 고조를 이른다.

토리는 숯이 되어서도 인간을 위해 공기를 정화하고 심술쟁이 풍란에게는 깨끗한 물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연약한 숯으로 살면서도 남을 위해 살아간 토리는, 그러나 끝내 부서지고 깨어져 볼품없이 내동댕이쳐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겨우살이와 극적인 재회를 한다. 겨우살이는 인간의 병을 고치는 약으로, 토리는 그것을 끓이는 불로, 이들은 그렇게 인간에게 베풀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한 모이었던 토리와 겨우살이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는 감동의 절정이다.

죽기 전에 토리를 만나게 해달라고 별님, 달님, 바람, 그 모든 것에 빌었다는 겨우살이의 고백에 토리는 다시 나무가 된다면 두 번 다시 겨우살이 같은 것은 키우지 않겠다고 했다. 시무룩해진 겨우살이는 자기가 싫으냐고 묻는다.

"그래. 절대로 헤어지지 않는 줄 알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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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돼지로 변했어요 - 우리 식탁 지키기 프로젝트 1
김미영 지음, 신재환 그림 / 애니북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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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먹을거리를 지키기 위해 농림부와 농수산물유통공사가 만화책을 내놨다. <아이들이 돼지로 변했어요>는 패스트푸드와 인스턴트 음식, 탄산음료의 폐해를 알리는 만화다. 제목에서 대충 알 수 있듯이 패스트푸드만 좋아하는 아이들이 급기야 돼지로 변한다.

책은 건강지킴단 단장인 건강박사님 부탁으로 초등학교 5학년인 머루와 쌍둥이 남매 다래가 돼지로 변한 같은 반 친구 포식이와 어린이들을 구하러 나서는 이야기다.

이들의 대척점에는 흑마왕의 부하 햄버거보이와 피자걸이 있는데 '음식 탓인지' 약간 모자란 캐릭터로 나오면서 번번이 머루와 다래에게 패하고 만다.

친구들을 구하러 가는 길에는 솔로몬의 지혜와 다윗의 용기가 필요했다. 농산물나라에서 아이들을 소생시킬 '신토불이 영양소'를 얻어야 했는데 곡식, 열매채소, 뿌리채소, 잎줄기채소, 과일 등은 머루와 다래에게 쉽사리 영양소를 내주지 않는다.

이유는 포식이가 그동안 이들을 홀대하고 멸시했다는 것이다. 곡식마을 곡식들의 항변을 들어보자.

"포식이가 식탁에서 우리를 얼마나 하찮게 여겼는지 알아. 난 그 녀석이 밥에 섞인 콩을 벌레 보듯 젓가락으로 건져 내던 것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찬밥 신세였던 건 나도 마찬가지야. 그 녀석 보리밥만 먹으면 방귀가 나와서 안 먹는다나? 몸에 좋은 섬유질이 많아서 소화가 잘 되느라 그런 줄도 모르고…."


영양소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머루와 다래는 포식이 대신 곡식들에게 사과했지만 외면당한다. 흑마왕은 머루와 다래가 영양소를 얻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거나 농작물을 죽이려하는 등 해코지한다.

그럴 때마다 머루와 다래는 용기와 지혜로 이겨내고 마침내 필수 영양소를 모두 얻어와 돼지 친구들을 본래 모습으로 되돌린다.

책은 농림부의 '우리식탁 지키기' 프로젝트 첫 번째 작품이다. 공공기관 홍보용 책자의 엉성함을 탈피해 계몽적 내용을 짜임새 있게 담았다. 농림부는 이어서 <고추 먹고 맴맴>, <꼬마 요리 천재의 산해와 진미>, <지구를 지키는 생명의 수호천사> 등 시리즈를 펴냈다.

내용도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니라 모험과 퀴즈, 이해와 설득을 적절히 섞어 흥미롭게 끌고 나간다. 다만 요즘 아이들 책이 너무 만화 형식으로만 쏠리는 아쉬움을 한번쯤은 지적하고 싶다. 허나 어쩌랴. 딜레마지만 아이들에겐 만화가 잘 먹히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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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꿈이 담긴 조선 최초의 신도시, 수원화성 - 신나는 교과서 체험학습 53
김준혁 지음, 양은정.이종호 그림 / 해피북스(북키드)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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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스의 '신나는 교과서 체험학습 시리즈' 53번째 <수원화성>이 나왔다. '정조의 꿈이 담긴 조선 최초의 신도시'라는 멋진 부제만큼 재미나고 유익한 책이다.

<조선 오백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 경복궁>에 이어 두 번째 책을 접하고 느낀 점은, 사진과 삽화가 훨씬 보기 좋아졌다는 것이다.

글은 수원시 학예연구사인 김준혁씨가 썼다. 오래전부터 정조와 화성을 연구한 전문가답게 꼼꼼하고 세심하게 어린이들에게 수원화성의 역사와 안팎을 열어 보인다.

특히 수원화성에 담긴 정조의 숨은 뜻을 재미나고 역동적으로 풀었다. 또 한편으론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조선의 실사구시 실학정신도 만나는 재미가 있다.

체험학습 시리즈라는 이름에 걸맞게 책을 펼치면 천연색 사진과 삽화가 시선을 단박 이끈다. 현장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려는 집필진의 땀 냄새가 느껴진다. 궁금증을 자아낼 만한 것이 나오면 어느새 부분사진에 친절한 설명을 달아 놨다.

수원화성은 기존의 성과 달리 치밀한 계획에 의한 공사였고 새로운 공법과 공사도구를 선보이면서 조선조 건축술을 한 단계 끌어 올린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원래 공기를 10년으로 잡았는데 거중기, 유형거, 녹로 등 기기를 이용해 2년 9개월 만에 마쳤다고 한다.

과학적인 공사 기구 덕분에 공기를 3분의 2나 단축할 수 있었다. 정조는 공사에 동원된 백성들과 강제 이주를 해야 했던 이들에게 노임과 이주비를 넉넉히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공기 단축으로 절감한 예산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책은 역사의 정신과 유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씨줄과 날줄처럼 짜임새 있게 엮었다. 유물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과 유물에 담겨져 있는 선조들의 정신까지 보여준다. 가끔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여주려는 욕심 때문에 한정된 지면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그리 나쁘진 않다.

수원화성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세계가 앞장서 보호하고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산이다. 자칫 수원화성은 역사 속에 묻힐 뻔했다. 일제의 훼손에 이어 한국전쟁 때 일부만 남고 대부분 폭격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옛것과 같이 복원했을까.

그것은 바로 '화성성역의궤'라는 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종의 공사보고서인 이 책은 공사의 처음과 끝을 10권 9책에 소소히 기록했다. 일정과 경비, 건축도구, 자재 단가, 심지어 회식 기록, 기술자 이름 등 모든 사항을 촘촘히 기록했기 때문에 이를 보고 1975년 3년 만에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정조는 수원화성을 왜 지었을까. 비운의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서? 아들인 순조를 도와 부강한 조선을 만들기 위해서? 이 두 가지 목적을 모두 충족하는 것은 물론, 총애하던 정약용으로 대표되는 실학의 실사구시를 제대로 한 번 구현해 본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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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이야기 - 역사 속에 숨겨진 코드
박영수 지음 / 북로드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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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다빈치 코드>가 한동안 세간의 뜨거운 화제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명화 '최후의 만찬'속에 숨겨진 작가의 암호(code)를 풀어 가는 내용이다. 실제로 다빈치는 작품 곳곳에 자신만의 메시지를 암호화해서 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다만 진위는 확실히 모르지만.

영화 속에서는 암호의 한 형태인 애너그램(anagram), 피보나치 수열 등도 소개된다. 애너그램은 아무렇게나 써진 단어 중에서 철자를 뽑아내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일종의 글자 퍼즐이다. 평범해 보이는 단어나 문장을 풀이하면 새로운 뜻이 나타나기 때문에 암호로 종종 사용된다.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이(1564∼1642)는 애너그램을 즐겨 사용했다. 이유는 당시 교황청에서 지동설을 탄압하던 시기였던 터다. 이처럼 암호는 정치적인 이유와 함께 발전한다. 전형적인 예가 전쟁 암호다. 전시 암호체계는 승리와 패배라는 극단적인 결과와 직결된다. 따라서 어떤 무기보다 파괴력 있고 중요하다.

<암호 이야기>는 나라마다, 시대에 따라 특색을 가졌던 각종 암호 발전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우리 주변에 숨어 있던 암호를 들춰내고 그것으로 인한 역사적 사건을 재미있게 쫓아간다. 쫓다보면 수많은 역사를 저절로 만난다.

암호는 정치적 이유로 발전한다

역사시대 직전 기원전 시대를 살다간 로마의 카이사르는 암살당하기 전 측근으로부터 경고성 암호문을 받았다. 만약 카이사르가 이때 암호문대로 몸을 피했다면 역사는 또 어떻게 흘렀을까.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카이사르로 하여금 죽음을 선택하게 했다.

원로원에 출석한 카이사르는 뜻밖에도 브루투스의 칼에 맞고 죽는다. 이때 유명한 한마디를 남긴다. "브루투스, 너마저…." 카이사르가 전달받은 암호는 알파벳을 세자씩 뒤로 물려 읽는(A→D) 환자(換字)방식이었는데 내용은 'BE CAREFUL FOR ASSASSINATOR'(암살자를 조심하라) 였다.

여자 스파이의 대명사 마타 하리 역시 암호를 사용했다. 그녀가 사용한 암호는 악보 암호로 알파벳과 적당한 음표를 대응시킨 것이다. 노래 한 곡을 악보로 옮겨서 건네주면 해독하는 방식이다.

그런 그녀가 프랑스와 독일의 이중간첩으로 포섭된 것은 정치적 목적이 아닌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그녀는 총살 당시 총구를 바라보며 태연히 죽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우리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암호를 매일 접하고 산다. 정확히 말하자면 암호의 속성을 가진 기호와 만나는 것이다. 현대인은 하루에도 수많은 그림들과 텍스트를 접한다. 그런 와중에 그것이 암시하는 상징을 읽어내기도 하고 강제로 주입 당하기도 한다.

기호를 읽어내고 이해하는 것은 곧 암호를 해독하는 행위와 같다. 우리 생활 자체가 암호를 맞닥뜨리고 풀어 가는 나날인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 적어도 한번은 암호를 만나 그것을 푼다. 컴퓨터를 켜고 로그인을 하는 행위도 암호를 푸는 것이다.

약속된 기호를 열쇠 삼아 '나'를 인증 받는 것은 암호 규칙인 셈이다. <군사 암호술>(1883) 의 저자로 현대 암호의 기초를 다졌던 오귀스트 케르크호프가 정한 암호 제조법은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먼저 실용적이고 적에게 해독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제일이다. 또 암호를 주고받는 상호간에 불편함과 별도 기록물(해법) 없이도 쉽게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전신(電信)으로 보내기가 가능하고 한사람이 간편히 취급할 수 있어야 하고 끝으로 똑똑하지 않아도 풀 수 있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컴퓨터 로그인은 정확히 이 규칙을 지키고 있다.

하루에 한번은 암호와 만난다

우리나라 암호 역사는 얼마나 될까. 책은 첫 단서를 <삼국유사>에서 찾는다. 신라 21대 비처왕 10년(488년), 어느 날 신령에게 전달받은 편지에는 '사금갑(射琴匣)'이라고 적혀있었다. 거문고 갑을 쏘라는 의미인데, 그곳에 활을 쏘니 내전 불사를 도맡는 중이 궁주와 사통하고 있더란 것이다. 때문에 여기서 편지는 곧 암호라는 해석이다.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가 지은이의 속내를 암호로 포장해 쓴 것이란 해석이 눈에 띈다. 고려가요를 속요라고 부를 정도로 남녀상열지사를 노래하고 있고, 중국의 사서 중 하나인 시경 역시 남녀간의 사랑을 빗댄 시라는 것과 같은 의미란 것이다.

<정읍사>가 일종의 음사(淫辭)라는데, 사용된 단어들이 성기와 성교를 의미하고 전체 주제는 다른 여자와 성교를 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읍사>가 가진 이중적 언어구조가 현대의 암호 개념이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조선시대 어느 고을에 서로 사랑하지만 표현을 어려워하는 처녀와 총각이 살았다. 처녀가 먼저 용기를 내어 총각에게 쪽지 한 장을 건넸다. 그곳에는 '籍'자만 달랑 적혀 있었다. 총각은 글자가 '서적 적'이란 것만 알았지 내포된 처녀의 마음을 알 턱이 없었다. 책에는 이같이 독자를 총각으로 만드는 문제가 곳곳에 많이 나온다. 과연 처녀의 암호는 무슨 뜻이었을까.

※ 籍 : 스무여드레날 저녁 대숲에서 만나자는 뜻이다. 파자(破字)가 암호다. 竹(대나무 죽) + 二(두 이) + 十(열 십) + 八(여덟 팔) + 昔(석-저녁 석의 음을 빌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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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생아빠 2006-06-23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가볍게 읽을(또는 읽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