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 이야기 - 역사 속에 숨겨진 코드
박영수 지음 / 북로드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다빈치 코드>가 한동안 세간의 뜨거운 화제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명화 '최후의 만찬'속에 숨겨진 작가의 암호(code)를 풀어 가는 내용이다. 실제로 다빈치는 작품 곳곳에 자신만의 메시지를 암호화해서 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다만 진위는 확실히 모르지만.

영화 속에서는 암호의 한 형태인 애너그램(anagram), 피보나치 수열 등도 소개된다. 애너그램은 아무렇게나 써진 단어 중에서 철자를 뽑아내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일종의 글자 퍼즐이다. 평범해 보이는 단어나 문장을 풀이하면 새로운 뜻이 나타나기 때문에 암호로 종종 사용된다.

이탈리아의 과학자 갈릴레이(1564∼1642)는 애너그램을 즐겨 사용했다. 이유는 당시 교황청에서 지동설을 탄압하던 시기였던 터다. 이처럼 암호는 정치적인 이유와 함께 발전한다. 전형적인 예가 전쟁 암호다. 전시 암호체계는 승리와 패배라는 극단적인 결과와 직결된다. 따라서 어떤 무기보다 파괴력 있고 중요하다.

<암호 이야기>는 나라마다, 시대에 따라 특색을 가졌던 각종 암호 발전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다.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우리 주변에 숨어 있던 암호를 들춰내고 그것으로 인한 역사적 사건을 재미있게 쫓아간다. 쫓다보면 수많은 역사를 저절로 만난다.

암호는 정치적 이유로 발전한다

역사시대 직전 기원전 시대를 살다간 로마의 카이사르는 암살당하기 전 측근으로부터 경고성 암호문을 받았다. 만약 카이사르가 이때 암호문대로 몸을 피했다면 역사는 또 어떻게 흘렀을까.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카이사르로 하여금 죽음을 선택하게 했다.

원로원에 출석한 카이사르는 뜻밖에도 브루투스의 칼에 맞고 죽는다. 이때 유명한 한마디를 남긴다. "브루투스, 너마저…." 카이사르가 전달받은 암호는 알파벳을 세자씩 뒤로 물려 읽는(A→D) 환자(換字)방식이었는데 내용은 'BE CAREFUL FOR ASSASSINATOR'(암살자를 조심하라) 였다.

여자 스파이의 대명사 마타 하리 역시 암호를 사용했다. 그녀가 사용한 암호는 악보 암호로 알파벳과 적당한 음표를 대응시킨 것이다. 노래 한 곡을 악보로 옮겨서 건네주면 해독하는 방식이다.

그런 그녀가 프랑스와 독일의 이중간첩으로 포섭된 것은 정치적 목적이 아닌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그녀는 총살 당시 총구를 바라보며 태연히 죽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우리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암호를 매일 접하고 산다. 정확히 말하자면 암호의 속성을 가진 기호와 만나는 것이다. 현대인은 하루에도 수많은 그림들과 텍스트를 접한다. 그런 와중에 그것이 암시하는 상징을 읽어내기도 하고 강제로 주입 당하기도 한다.

기호를 읽어내고 이해하는 것은 곧 암호를 해독하는 행위와 같다. 우리 생활 자체가 암호를 맞닥뜨리고 풀어 가는 나날인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 적어도 한번은 암호를 만나 그것을 푼다. 컴퓨터를 켜고 로그인을 하는 행위도 암호를 푸는 것이다.

약속된 기호를 열쇠 삼아 '나'를 인증 받는 것은 암호 규칙인 셈이다. <군사 암호술>(1883) 의 저자로 현대 암호의 기초를 다졌던 오귀스트 케르크호프가 정한 암호 제조법은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먼저 실용적이고 적에게 해독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제일이다. 또 암호를 주고받는 상호간에 불편함과 별도 기록물(해법) 없이도 쉽게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전신(電信)으로 보내기가 가능하고 한사람이 간편히 취급할 수 있어야 하고 끝으로 똑똑하지 않아도 풀 수 있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컴퓨터 로그인은 정확히 이 규칙을 지키고 있다.

하루에 한번은 암호와 만난다

우리나라 암호 역사는 얼마나 될까. 책은 첫 단서를 <삼국유사>에서 찾는다. 신라 21대 비처왕 10년(488년), 어느 날 신령에게 전달받은 편지에는 '사금갑(射琴匣)'이라고 적혀있었다. 거문고 갑을 쏘라는 의미인데, 그곳에 활을 쏘니 내전 불사를 도맡는 중이 궁주와 사통하고 있더란 것이다. 때문에 여기서 편지는 곧 암호라는 해석이다.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가요 <정읍사>가 지은이의 속내를 암호로 포장해 쓴 것이란 해석이 눈에 띈다. 고려가요를 속요라고 부를 정도로 남녀상열지사를 노래하고 있고, 중국의 사서 중 하나인 시경 역시 남녀간의 사랑을 빗댄 시라는 것과 같은 의미란 것이다.

<정읍사>가 일종의 음사(淫辭)라는데, 사용된 단어들이 성기와 성교를 의미하고 전체 주제는 다른 여자와 성교를 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해석하고 있다. <정읍사>가 가진 이중적 언어구조가 현대의 암호 개념이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조선시대 어느 고을에 서로 사랑하지만 표현을 어려워하는 처녀와 총각이 살았다. 처녀가 먼저 용기를 내어 총각에게 쪽지 한 장을 건넸다. 그곳에는 '籍'자만 달랑 적혀 있었다. 총각은 글자가 '서적 적'이란 것만 알았지 내포된 처녀의 마음을 알 턱이 없었다. 책에는 이같이 독자를 총각으로 만드는 문제가 곳곳에 많이 나온다. 과연 처녀의 암호는 무슨 뜻이었을까.

※ 籍 : 스무여드레날 저녁 대숲에서 만나자는 뜻이다. 파자(破字)가 암호다. 竹(대나무 죽) + 二(두 이) + 十(열 십) + 八(여덟 팔) + 昔(석-저녁 석의 음을 빌려서)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년생아빠 2006-06-23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가볍게 읽을(또는 읽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