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손의 의사들 - 의사와 기업의 유착관계를 밝힌다
제롬 캐시러 지음, 최보문 옮김 / 양문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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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미국신장학회 학술대회장. 후원 제약사의 회사명이 인쇄된 이름표를 목에 걸고 다니는 움직이는 광고판 의사들이 커다란 가망을 둘러매고 학회장을 휘젓고 있다. 그들의 가방 속에는 인체 모형, 부채, 약 샘플, 사탕, 볼펜, 야구모자, 마우스패드, 손전등 등이 아무렇게나 담겨져 있었다.

2001년 3월 뉴욕 버펄로의 알레르기 전문의 로버트 라이스만 박사는 총 13개 제약사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아스트라제네카, 아벤티스, 쉐링, 노바티스, 3M 등이 학회기간 중 박사에게 저녁식사를 초대한 것이다. 돌아갈 때 현찰 1000달러를 얹어주는 곳도 있다.

세계적인 의학저널 <뉴잉글랜드의학저널> 편집장 출신인 제롬 캐시러의 <더러운 손의 의사들>은 의사들이 제약사와의 결탁이 얼마나 은밀하고 치밀하게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식사대접은 가장 일반적인 제약사의 판촉 방법. 부부동반 여행권, 스포츠 경기 입장권, 수련의나 전문의의 식사, 현금 등 제약사는 여러 형태로 의사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이러한 행위는 자사제품을 처방하고 홍보해 달라는 암묵적인 로비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제약사의 이러한 편의제공과 관계없이 소신 있는 처방을 내린다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      

수많은 의사들은 제약사의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별다른 활동 없이도 정기적으로 제약사 명의의 입금액을 확인 할 수 있는 것이 의사와 제약사 간의 현실이다. 심지어 환자와 의사 간의 소송에서 자사 제품이 들어 있을 경우 소송지원까지 서슴없이 행하는 제약사가 있을 정도다 보니 소비자는 암울하기만 하다.        

의사들은 제약사가 순수한 동기로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다. 의사들은 '뇌물'은 받지만 자기는 성실성을 지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저자는 매수되고 있다는 인식과 매수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욕구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 앞에서 의사들은 자기기만을 한다고 지적했다. 부정을 부정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환자치료에 전념하지 못하는 상황이 야기되는 순간이다.

이 책은 가톨릭의대 북클럽 회원들에 의해 국내에 소개됐다. 의사로서의 자기성찰과 미래에 대한 약속이 담겨 있는 책인 셈이다. 옮긴이 최보문 교수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핵심을 가르치는 데 반면교사의 역할을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책의 출판을 결정했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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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팅 원 - 연기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로버트 코헨 지음, 박지홍 옮김 / 경당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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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입니까? - 김수근 추모 20주기 기념 개정판
김수근문화재단 엮음 / 공간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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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혜화동 대학로에 가면 작고한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들이 꽤 많이 있다. 올망졸망 모여 있는 아르코미술관, 아르코 예술극장, 샘터 사옥, 국제협력단 건물, 서울대병원 연구동 등이 그의 작품이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살아있는 김수근 갤러리'다.

대학로에 세워진 작품들은 바깥벽에 대부분 붉은 벽돌을 사용했다.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고 정의한 벽돌예찬론자 김수근의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다. 그가 벽돌을 편애(?)하는 이유는 실용과 예술이라는 건축예술을 한껏 살리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급해도 벽돌은 한꺼번에 쌓지 못한다. 때문에 한장 한장 단정히 쌓지 않으면 무너지거나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벽돌이 지닌 조소성은 무한히 인간화되는 과정을 상징한다"고 벽돌 예찬론을 펼친바 있다.

예서 창경궁 길로 조금만 걸으면 현대사옥 옆구리에 있는 김수근 건축예술의 산실 공간 사옥이 나온다. 나이 마흔이던 1971년에 지은 검정 벽돌 건물이다. 이곳은 그가 열네 살 때 해방을 맞은 언저리이기도 해 공간이 주는 의미는 색다르다. 그는 이곳에서 15년을 더 혼신을 다해 종합 문화예술 활동을 이끌다 지난 1986년 지병인 간암으로 타계했다.

종합문화예술인의 길을 걸어 간 건축가

김수근은 누구?

ⓒ오정택
1931년 함경남도 청진생. 경기고, 서울대 건축과를 거쳐 도쿄예술대학, 도쿄대에서 수학했다. 55세의 나이로 타계하기까지 비록 길지 않은 생애였지만 한국건축의 큰 맥을 이룬 인물이다. 김중업(1922~88)과 함께 한국현대건축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잠실올림픽주경기장, 서울법원종합청사, 국립진주박물관, 부여박물관, 워커힐 힐탑바, 마산양덕성당, 경동교회, 불광동성당, 자유센터, 서울법원종합청사 등이 그가 남긴 작품들이다.

1980년 <타임>지가 서울의 메디치 로렌초라고 평가하고 1985년에는 일번 가지마출판사의 '세계 101인의 건축가'에 선정되기도 했다.

국민포장(1970), 범태평양 건축상(1971), 보관문화훈장(1976), 이태리 공화국 문화공로훈장(1979), 철탑산업훈장(1984), 은탑산업훈장(대통령)(1986) 등을 수상했다.
김수근이 우리 곁을 떠난 지 20년. 지인들이 그를 위해 글을 모았다. 이미 타계 16년이 되던 2002년에 모아서 한차례 책을 출간했었다. 이번 것은 개정증보판 제목을 <당신이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입니까>로 달았다.

김수근문화재단에서 엮었다. 건축가와 문화재단, 어쩐지 생소한 조합이지만 생전 그의 발걸음과 그와 깊게 교우했던 이들(원고 집필자)의 면면을 보니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건축계에서는 이승우 종합건축 대표, 박춘명 예건축 대표, 강병기 걷고싶은도시만들기 시민연대 대표, 전상백 한국건축 대표, 조구현 신세대건축 대표 등 우리나라 건축 1세대들이 앞 다퉈 그와의 추억 보따리를 풀었다.

그리고 미술평론가 박용숙, 유홍준 문화재청장, 사진작가 정정웅, 이종복 도서출판 심설당 대표,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교수, 한국민예연구가 김기수, 작곡가 강석희, 화가 권옥연, 가야금 명인 황병기, 무용가 최현, 수필가 조경희, 미술가 이구열, 이제는 같이 천국 생활을 하고 있을 백남준과 시인 구상까지….

그의 문화예술 사랑은 공간 사옥에 '공간사랑'이란 소극장을 마련한데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이곳에서 당시 무명이던 김덕수 사물놀이, 병신춤의 공옥진, 살풀이 춤의 이애주씨의 공연을 올려 예술 차원에서 인정받도록 후원했다.

이 보다 앞서 1966년에는 국내 최초라고 할 수 있는 종합예술지인 <공간>을 창간하는 등 우리 문화를 알리고 기록하는데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1997년 잡지 제호를 'SPACE'로 바꿨다. 그러고 보니 올해로 벌써 불혹을 맞았다.

그의 이런 행보에는 공간을 통한 여러 예술분야의 통합운동에 대한 이상을 담고 있던 것이라고 윤승중 전 김수근문화재단 이사장은 회고했다. 말년의 그를 만난 일본 사진작가 무라이 오사무의 회고는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그분이 병원 입원 중 수술 직전에 그린 화집을 보여주셨다. 그림선의 혼란스런 격렬함 속에서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에게서 배어나오고 있는 동요를 느꼈다. 그분이 역Y자 지퍼모양 그린 것을 보여주면서 물었다. 내가 이해 못하고 허둥대자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수술한 내 배입니다' 그 분다운 농담"

책 표지 사진은 오사무씨가 찍은 것이다. 1985년 일본 교토통신사 의뢰로 완성 직전의 잠실올림픽경기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부탁했는데 병중의 김수근이 쾌히 응한 것이다. 당시 이미 병세가 악화돼서 수술과 요양을 거듭하고 있던 터라 애써 웃음을 만들기 쉽지 않았을 때다. 그것이 이듬해 영정 사진이 될 줄이야.

김수근과 공간 사옥을 접하다보니 얼마 전 취재했던 북촌창우극장의 허규가 겹친다. 원서공원을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는 공간과 북촌창우, 그리고 지금은 가고 없는 우리 문화를 위한 열정으로 뭉친 주인들. 이들은 각각 건축과 연출이 전문이지만 국민들에게 '문화종합선물세트'를 선사하기 위해 애썼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헌정집과 함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게-건축가 김수근 이야기>란 책도 출간됐다. 또 사라져 가는 그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가 지은 아르코 미술관에서는 그의 삶과 예술을 현재의 눈으로 바라보는 '지금 여기(Here and Now) 김수근'전을 이달 28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회는 건축가로서의 사명감, 자연과 인간의 조화, 전통과 현대에 대한 고민 등 한국 건축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그의 건축사상을 한눈에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고 한다. 책과 함께 그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일 듯하다.

▲ 김수근의 대표적인 작품들.
ⓒ 아르코예술극장

책 제목에 얽힌 일화

1980년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가 건축가인 김원(현 김수근문화재단 이사장)을 조사하러 왔다. 건축사면허도 없이 행세하고 다닌다는 투서가 국보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군사정부 시절이라 검찰은 군에서 넘어 온 사안이라서 가볍게 처리할 수 없다는 이유로 5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이에 김원은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으나 괘씸죄에 걸려 6개월 징역형에 처해진다.

다시 상고를 하자 2심 판사가 자기가 알고 있는 건축가 김중업, 김수근 이름을 대며 증인으로 불러 올 수 있겠냐고 했다. 김수근은 후배의 부탁에 기꺼이 응했다. 이 재판에서 재판장이 증인에게 물었다.

"증인이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입니까?"

이 말을 시작으로 "이 사건의 피고인이 무죄라고 생각하는가요?"라는 재판장의 마지막 물음까지 김수근은 특유의 달변으로 후배의 무죄 변론을 했다. 결과 무죄판결을 받았고 검찰이 상고한 대법원에서도 원심대로 무죄가 확정됐다.

김원은 당시 김수근에게 증언을 부탁하기 위해 "선생님, 저의 재판에 좀 나와주십시오"라는 말을 수백 번 연습했다. 그러나 김수근은 그의 부탁에 즉답으로 "알았어, 그게 언제지?"하고 답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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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CEO - 고전에서 경영철학을 배우는
마이클 탕 지음, 안찬수 옮김 / 굿모닝미디어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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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포르투갈 축구 대표팀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 감독이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단순히 팀을 40년 만에 4강에 올려놓은 용장으로서가 아니다. 그가 중국의 병법서 손자병법을 축구전술에 활용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중국 병법이 서양에서는 꽤나 신기한 모양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시장독점과 특허 침해 혐의로 소송에 휘말렸을 때 빌 게이츠 회장이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참고했던 책 중 하나가 <손자병법>이었다.

또 1991년 걸프전쟁을 승리로 이끈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 역시 <손자병법>을 전술에 응용했다고 전해진다. 서양인들이 손자병법과 같은 중국 고전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가. 2500년 전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병서가 21세기에도 통한다는 방증 아닐까.

최근에 중국 고전에 담긴 지혜를 간추린 번역서 한권이 출간됐다. 마이클 탕의 <고전에서 경영철학을 배우는 유쾌한 CEO>라는 다소 긴 제목의 처세 책이 그것이다.

이 책은 중국 고전을 영어로 써서 서양에 소개된 점에서 흥미롭다. 원제는 < A Victor's Reflections-and other Tales of China's Timeless Wisdom For Leaders >이다. 너무 식상하다고 판단했는지 다시 우리말로 옮겨지면서 제목이 생뚱맞게 변했다.

책에는 스콜라리가 지혜를 빌렸던 <손자병법>은 물론 다양한 중국 고전이 등장한다. 귀에 익은 <논어>, <맹자>는 물론 <열자>, <장자>, <도덕경>, <육조단경> 같은 철학과 종교 서적, <전국책>, <사기>, <춘추좌씨전>, <여씨춘추> 같은 역사책, <손자병법>, <손빈병법> 같은 병법서가 등장한다.

또 교훈적인 글로는 <안씨가훈>과 <주백로치가격언>이 인용됐고 <신서>, <설원> 같은 설화집, <삼국지>, <초한지>, <삼언이박> 같은 문학작품에서 <소녀경>까지 망라하고 있다. 이 중 <손자병법>은 서양 사람들이 가장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중국 고전이다.

왜 현대인은 고전에 빠져 드는가

저자는 중국 문화혁명 때 한학자였던 할아버지에게 고전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현재 뉴욕과 상하이를 오가면 중국에 대한 벤처캐피탈 투자 분야에서 활동 중인 비즈니스맨이다. 그는 독자들에게 고전을 통해 중국의 지혜를 배워 이를 비즈니스 사회에 접목시켜보라고 권한다.

이 책은 지난 2001년 <하버드생이 본 중국 고전의 지혜>란 제목으로 출간된 것을 다시 찍은 것이다. 책의 특징 중 하나는 앞서 열거했듯이 지금껏 나온 고문 해설서에 비해 고전인용 스펙트럼이 무척 넓다. 각 고전에서 가장 재미나고 교훈적인 내용 100여 편을 엄선했다.

역자인 안찬수씨는 이 책을 한마디로 이야기책이자 역사책이며 지혜의 책이라고 했다. 때문에 현대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취감을 맛보려는 사람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후기를 적고 있다.

고전을 풀어 놓은 책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만큼 읽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대인은 왜 고전을 읽나. 현대의 가치관이 분명 과거와 다른데, 서점가에 고전이 넘쳐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고전의 핵심은 객관적 불멸'이란 속성 때문일 것이다.

비근한 예로 지금은 우리에게 고전 주인공인 돼 버린 공자에게 그 속성을 찾을 수 있다. 공자는 겸손하게도 온고지신(溫故知新), 술이부작(述而不作), 학이시습(學而時習)이란 학습 방법을 통해 자신 또한 고전을 통해 지식을 얻었다고 했다.

술이부작은 옛 고전을 읽고 단지 풀어 쓴 것이지 창작은 아니라는 의미로 공자가 말한 것이다. 공자 자신도 고전을 통해 지혜를 얻었다는 의미다. 공자 시대 역시 고전을 '학이시습'하고 지식을 '온고지신'하는 것을 학습의 덕목으로 삼은 것이다.

얼마 전 외신은 중국 장쑤성(江蘇省) 쉬저우(徐州)사범대학에서 문제 학생들에게 고전을 읽힌다고 전했다. 처벌 학칙에 고전읽기를 추가해 사서삼경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면 '개과자신(改過自新)'이란 문구를 학생부에 기록, 벌을 대신하는 것이다. 개과자신은 잘못을 고쳐 새사람이 됐다는 뜻이다. 고전의 효용성을 가장 현명하게 사용하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고전은 새로움을 잉태한 선현의 지혜

저자 탕 역시 이것을 바라고 책을 냈다. 그 또한 공자처럼 고전에서 지혜를 얻으며 '술이부작'을 한 것이다. 책에는 공자이야기, 맹모삼천, 적벽대전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고전도 많다. 특히 <주백로치가격언> 같은 것은 불과 500여 자로 구성됐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는 교육효과가 좋아 중국인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격언 중 하나이다. 한 문장만 소개한다. '다른 사람에게 준 것은 생각지 말고 받은 것은 잊지 말라'(施因忽念 受恩莫忘). 글자 여덟 자가 지나온 수많은 시간을 생각게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과거가 현재에서 재해석 되면서 역사를 변화시킨 예로 르네상스를 손꼽는다. 알다시피 르네상스는 문예부흥이다. 중국불교는 인도에서 가져 온 고전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이처럼 고전은 새로움을 잉태하고 있는 선현들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손자병법>을 선물했다. 그에 대해 갖가지 해석이 난무했는데, '부전이굴(不戰而屈)'을 전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뜻풀이가 가장 가슴에 와 닿았다.

부전이굴은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을 뜻한다. 북한 미사일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북미 상황. 부시 대통령이 후 주석이 선물한 손자병법을 한번 쯤 들춰봤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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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베르메르 - 누가 명화를 훔치는가
구치키 유리코 지음, 장민주 옮김 / 눌와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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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3월 18일 밤. 미국 보스턴 펜웨이에 있는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미술관에 도둑이 침입한다. 그리고 몇 점의 그림을 훔쳐간다.

도난당한 그림은 즉각 신고 됐고 500만 불이라는 거액의 현상금이 붙는다. 수사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나섰다. 도대체 어떤 그림이기에 이처럼 거액의 현상금과 FBI까지 나섰을까.

당시 도난 작품은 렘브란트의 '검은 옷의 부인과 신사', '갈릴리 바다의 폭풍', 그리고 이 둘보다 더 가치 있다는 베르메르의 '세 사람의 연주회'다.

두 사람은 17세기 네덜란드를 대표하던 화가였기 때문에 이들 작품은 가드너 미술관 2층 네덜란드관에 함께 전시돼 있다 변을 당했다.

도둑은 벽에서 액자를 떼어낸 후 바닥에 놓고 액자 안쪽을 커터 칼로 도려내는 난폭한 방법을 사용했다. 현장에 떨어진 그림물감 조각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림이 많이 상했을 것이란 추정도 가능하다.

안타까운 순간이다. 그렇다면 누가, 왜 이러한 짓을 하는가. 뜻밖에도 그림도둑은 돈을 노린 단순 절도도 있지만, 정치적 목적까지 가지고 있는 자들도 있다니 흥미롭다.

명화 절도, 금전적 목적만이 아니다

저널리스트 구치키 유리코의 <도둑맞은 베르메르>는 가드너 박물관에서 도둑맞은 베르메르의 그림을 중심으로 그림 한 점이 유명해지는 과정과 그림을 둘러싸고 엮여있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유리코는 이미 <베르메르, 매혹의 비밀을 풀다>를 지어낸 베르메르의 전문가. 이번엔 도둑맞은 명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풀었다.

1990년 도난 당시 베르메르는 사실 렘브란트보다 지명도가 떨어졌다. 그러나 1995~96년 워싱턴과 네덜란드에서 열린 개인전을 통해 베르메르는 렘브란트를 가볍게 누르고 네덜란드 대표화가로 등극한다. 개인전에는 무려 78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 베르메르의 <세 사람의 연주회>, 캔버스에 유채, 72.5 X 64.7cm(1665~1666)
ⓒ 이사벨라스튜어트가드너
렘브란트의 작품은 유화만 300여 점이 남아있는 반면 베르메르의 작품은 30여 점에 불과하다. 희소성의 가치가 가장 빛을 발하는 곳이 미술계가 아니던가. 그의 '세 사람의 연주회'에 대한 감정가액은 최소 1억불에 달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베르메르 작품 도난 사건이 전에도 많았다는 것이다. 이미 세 점의 그림이 범죄 표적이 되어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 중 '편지를 쓰는 여인과 하녀'는 두 번이나 도둑맞는 운명을 겪기도 했다.

베르메르는 작품 수에 비해 도난이 잦다. 이유는 테러집단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그림 자체를 인질화시켜 교섭을 이끄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 가치란 다름 아닌 희소성이 만들어 낸 그림 값이다.

가드너 미술관 도난사건은 피해규모가 사상 최대로 추정되고 있다. 모두 2~3억 불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 당초 100만 불이던 베르메르의 작품 현상금은 1997년 500만 불로 치솟았다.

이유는 시중에서 유통시킬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에 현상금을 받고 되돌려 달라는 의미다. 그러나 아직 사건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가드너 도난사건 미궁...피해액 3억 불 추정

또 한 가지 흥미 있는 것은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다. 1999년 뉴욕으로 이주한 저자는 신문에서 그림 도난사건 기사를 자주 접한다. 가드너 사건에 대한 후속기사를 접한 것도 이때다. 작품 목록과 작품 판매처(사실이 아니지만)로 일본이 언급된 것이 저자의 흥미를 끌었다고 한다.

수많은 미술품 도난사건 중에서 베르메르에 초점을 맞춘 것은 그의 작품들이 매우 상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했다.

1970년대 이후 일어난 미술품 도난사건을 통해 미술시장이 활성화 되고 있고 범죄자들은 미술품을 현금화하기 쉬운 유가증권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범인들은 비싼 것 ‘한 방’을 노리게 됐고 베르메르는 구미 당기는 표적이 된 것이다.

가드너 미술관에는 세로 161.7cm, 가로 129.8cm의 액자가 아무 것도 채워져 있지 않은 채 걸려있다. 렘브란트의 ‘검은 옷의 부인과 신사’란 그림이 있던 자리다. 대신 안쪽 벽지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있다.

'이 갤러리에 있는 내용 없는 액자가 말해주는 것처럼 1990년 3월 18일 밤, 경관으로 위장한 강도가 가드너 미술관에 침입해 몇 점의 작품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컬렉션 대부분은 무사했으며 갤러리에도 특별한 손상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 작품이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하며, 또한 도난당한 미술품에 대한 수사 열기가 식지 않고 계속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작품들의 도난과 관련된 정보를 알고 계신 분은 연방수사국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과연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림을 훔쳐 갔는지. 그림의 향배와 500만 불의 주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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