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봄날의 장례식 시평시인선 8
강정숙 지음 / 시평사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소녀, 하늘의 명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가슴팍에 켜켜이 쌓였던 분노와 그리움이 용암반죽처럼 들끓어 올랐다. 참을 수 없었던 소녀는 스승 몰래 맺힌 어혈을 토했다. 선홍빛 토악질을 들킬 새라 손가락을 깨물었다. 허공으로 퍼진 선혈이 낙하하면서 활자가 되어 박혔다. 당선이다.

지난 2002년 <흔들의자>로 중앙일보 신인문학상(시조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늦깎이로 등단한 강정숙 시인이 그간의 글을 묶어 첫 시집 <환한 봄날의 장례식>을 펴냈다. '담담한 어조로 자신의 뼈아픈 과거사를 풀었다', '시집의 제목처럼 가벼움 속에 녹아든 무거움, 무거움이 밀어 올리는 가벼움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곱씹다보니 단순하게 평할 글이 아니다. 개인사를 꼬깃꼬깃 담았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냈다는 것은 비평시장의 '상품'이 되고자 한 것이기에 취사(取捨)의 몫은 시인의 손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천이 된 시인의 굴곡을 논하기엔 평면적인 평자(評者)의 불혹살이가 다소 가소롭다.

게다가 '비린내와 함께 찾아 온' 초경에 시인은 죽어있었고 외려 '배도 오지 않을' 폐경기에 비로소 많은 것을 비우고 새롭게 태어남을 그린 두개의 시, 두 줄의 시어를 맞닥트리고 서평 쓰는 것을 대략 접었다.

그 대신 시인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책에 있는 이메일을 이용 했지만 좀체 회신이 없다. 그래서 시인이 이끌고 있는 인터넷 시동인 카페를 수소문해 간신히 연락이 닿았다. 덕분에 시인과 채팅도 하고 이메일 인터뷰도 가능했다. 책에 있는 이메일 주소가 잘못된 것이란 것도 알게 됐다.

- 첫 시집을 펴낸 소감은.
"처음 책을 펴내는 사람들의 공통 심리가 대체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바로 부끄러움이죠. 내 속을 까발린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더 잘 쓰지 못 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겠지요. 그리고 다소 막막해 지기도 합니다. 어떤 평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물론 욕심을 버렸다고는 하지만 말입니다.

문단에도 참 여러 계층이 존재하는 게 염연한 사실이고 보면 그 중심부에 들지 못하는 99%의 시인들, 혹은 시인 지망생들의 안타까움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역설로 말해서 다 글 잘 쓰는 사람들만 있다면 세상은 오히려 재미없을지도 모릅니다."

- 유년을 거쳐 장년에 이르는 현재까지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는 시어인 성(性, 또는 정체성)의 문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글을 쓸 땐 크게 의식하지 못한 점이지만 막상 책으로 묶고 보니까 제게 일관되게 부닥쳐온 것들이 정체성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많은 형제자매 속에서도 유독 외톨이(시인은 유년기를 시골에서 할머니와 고모랑 셋이 보냈다) 생활을 했던 유년기와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도 두려워했던 사춘기며 이후 폭력적 남성과 억압된 여성 모두에게 연민 내지 저항적 의식을 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 내면이 결국 알게 모르게 정체성 찾기로 귀결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전반적으로 은유적인 표현이 많은데 직설법을 쓰지 않는 이유는.
"미국의 시인이자 평론가인 T. S 엘리엇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메타포 안에서 이성과 감성은 통합된다'.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날(膾)것이나 인접성 보다는 유사성에 바탕을 둔 은유체계 속에서 감성은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좋은 글이란 진정성과 새로움을 동시에 갖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 시조로 등단했는데 시와 차이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
차이가 크다고 봅니다. 자유시는 행보가 자유로운 대신에 자칫 개인적 사념이나 사유의 방만에 빠질 수 있고 시조는 율격의 엄격함 때문에 사유가 갇히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시의 자유로운 사유를 어떻게 정형의 틀 안에 잘 담을 것인가가 시조인의 숙제입니다.

결국은 자유시와 시조는 한 몸인데 그것을 발현해 내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두 가지를 다 잘해보고 싶습니다. 시조로 입문하였으니 시조 사랑엔 변함이 없습니다. 제 다음 목표는 좋은 시조시집을 엮는 것입니다."

- 현재 동인 활동과 근황에 대해 소개해 달라.
"두 곳에서 동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2004년 첫 동인집 <이 위험한 경계>를 펴낸 '시와 색' 이라는 동인의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다음카페 'e시인회의'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제 근황은 불교적 사유 안에서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애착이나 집착에서 벗어나 되도록 많은 것을 놓아주고, 버리는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 하루 중 주로 창작하는 시간과 1인3역(女婦母)을 하면서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시간을 정해놓고 하진 않습니다.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다가도 시상이 떠오르면 즉석에서 적습니다. 살짝 귀띔해드리면 사실은 책을 내고 나니 많이 부끄럽습니다. 제 책이 혼신을 다한 열정의 산물이라 해도 많은 부분이 개인적 차원에서 머문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바깥을 바라보며 시대의 아픔이나 나 아닌 타인, 혹은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을 꺼내어 위무해주거나 다독여주는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그것도 아주 유쾌한 어조로 써보고 싶습니다. 그동안 가정에 충실하고 아이들 잘 키우느라 남달리 늦게 입문했지만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을 써야하는 한 인격체이면서 또한 아내로서 엄마로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만 이제는 글로써 인정받고 싶습니다.

시인은 인터뷰 내용과 관계없이 자신의 소회를 밝힌 글에서 한발 재길 틈 없는 문단의 척박함을 슬퍼했다. 문단의 현실과 시인의 안타까움이 뒤범벅되어 다른 이의 마음까지 무겁게 한다."

"소수를 제외하고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각 학교의 문창과나 사회교원의 시창작반, 혹은 문화센터 회원들이 오로지 좋은 글을 쓰겠다는 하나의 일념으로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만 대부분은 입문도 하기 전에 지치고 좌절하고 맙니다. 제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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