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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 - 미국.베트남 적과의 대화
히가시 다이사쿠 지음, 서각수 옮김 / 역사넷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월남전(1961-1975)에서 미국인 사망자는 5만8천명, Vietnam 사람들은 무려 3백80만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McNamara는 1961년 미 국방장관으로 선임되어 68년까지 이 전쟁을 이끄는 자리에 있었다. 비록 대통령이 최종 결정을 내리지만, 육해공 3군의 모든 군사력을 손에 쥔 그는 이 전쟁 기간동안 말 그대로 막강한 power의 최정상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월남전을 '맥나마라의 전쟁'으로 불렀듯이...
그런 그가 4반 세기가 지나서, 1995년 Vietnam Hanoi시를 방문하여 그의 오래된 적장 Vo Nguyen Giap을 만나고, Vietnam전에 대한 교훈을 얻고자 과거 사실들에 대한 일련의 meeting을 두 나라 사람들과 함께 진행한다. Meeting의 제목은 'Missed opportunities?'였다. 곧, '두 나라가 이 전쟁을 좀 더 일찍 평화적으로 끝낼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가?' 하는 것이었다. 이 meeting의 회의록이 나중에 <Argument without End: In search of Answers to the Vietnam Tragedy>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그 회의록의 대화 내용은, 일본의 한 NHK 기자가 썼듯이 '말 그대로 다른 문명간의 대화이자, 전쟁 당사자들이 아니고선 할 수 없는 생생한 고백의 연속'이다. 우리나라에도 이 내용을 다룬 NHK의 documentary 책자가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두드러진 미국과 Vietnam 사람들 간의 인식의 차이가 있다. American들이, 혹은 McNamara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며칠간 회의가 진행되면서 McNamara는 마침내 당시 Vietnam의 전쟁 지도자들에게 깨어놓고 묻는다.
"당신들은 당신들 국민이 미국의 폭격 앞에 그렇게 무참히 막대한 규모로 죽어 나가는데도, 당시 미국이 제시한 비밀 평화 협상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희생자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마음이 정말있었다면, 그 협상 조건들이 최소한 유리한지 어떤지는 그 때 검토해 보았어야 하지 않았는가요? 나는 이 점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 질문에 격노한 Vietnam 측의, Tran Quang Co는 여기에 이렇게 대답한다.
"I would like to answer Mr. McNamara's question..... I must say that this question of Mr. McNamara's has allowed us to better understand the issue. During the coffee break, an American colleague asked me if I had learned anything about the U.S. during the decisions of the past few days. And I responded that I have learned quite a lot. However, thanks to this particular question, I believe we have learned still more about the U.S. We understand better now that the U.S. understands very little about Vietnam. Even now - in this conference - the U.S. understands very little about Vietnam."
"When the U.S. bombed the North and brought its troops into the South, well, of course, to us there were very negative moves. However, with regard to Vietnam, U.S. aggression did have some positive use. Never before did the people of Vietnam, from top to bottom, unite as they did during the years that the U.S. was bombing us. Never before had Chairman Ho Chi Min's appeal - that there is nothing more precious than freedom and independence - go straight to the hearts and minds of the Vietnamese people as at the end of 1966."
그리고, 덧붙인다.
"만약 당신이, 'Vietnam 지도자들은 국민들이 희생을 당하고 고통을 받는 현실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공습을 받아도 전쟁을 계속한 것이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전혀 잘못된 것입니다.
만약 반대로 미국과 평화를 위한 협상을 시작한다고 하면, 우리는 이와같이 비 오듯 폭탄이 퍼붓는 가운데 왜 협상에 응해야 하는지를 국민들에게 설명해야만 했을 것입니다.
잘 들어십시요. 그 전쟁은 여기 Vietnam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잊지말기를 바랍니다. 전쟁의 아픔을 가장 뼈 아프게 체험한 것은 우리였습니다. .....
Vietnam이 잃은 것은 미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커다란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전쟁을 계속하고 싶을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왜, 왜, 우리가 그렇게도 격렬한 폭격을 받으면서도 협상 제안에 응하지 않았는지, 당신은 압니까?
그건 말입니다. 독립과 자유만큼 고귀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Vietnam인은 노예의 자유를 받아들이지 않아요."
Vietnam은 협상의 창구는 활짝 열어 놓았지만, 그 쏟아지는 미국의 의도적인 北爆의 환경 아래서는 그 때 도저히 그 협상에 응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Vietnam 사람들에게 그 전쟁은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쳐들어 오는 적들을 물리치기 위한 결사적 독립 항전이었던 반면, 미국인들에게 그것은 'domino 효과'의 공포와 '제국'의 오만함에 사로잡혀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통과의례로서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전쟁에 대한 서로의 인식이 이렇게 달랐기에, 전쟁에 임하는 자세가 필연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McNamara와 Pentagon은 결국 Vietnam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단지 'costs', 'losses' 또는 'collateral damage'로서만 보았던 것이고, McNamara는 Vietcong이나 북Vietnam (월맹)에 대응해서 단순히 'cost'만 높이면 그 전쟁은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섣부르게 기대했던 것이다.
30년이 지나서도 그의 뛰어난 분석적인 머리에는, 무엇이 옳았고 무엇이 그릇된 것이었는지에 대한 도덕적 문제는 자리잡고 있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어떻게 했으면 그가 했던 일을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여, 성공적으로 잘 수행할 수 있었을까만 염두에 두고 아쉬워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죽은 자들로부터 어떤 지혜도 얻지 못하는 사람인가?
혹은, 이것이 두렵게도 미국인들이 문제에 접근하는 보편적인 사고의 틀은 아닐런지?
훗날 Hanoi meeting에서 얻은 교훈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McNamara는 그랬다고 한다.
"하나는, 우선 적을 이해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록 적일지라도 최고 지도자 끼리는 대화를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참고로 McNamara는 소련이 붕괴된 직후인 1992년엔, 과거 'Cuba 위기'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개시하여, 구 소련의 지도자와 Cuba의 Castro 등 과거 가상 적국의 지도자, 당사자들을 만나 새로운 사실들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McNamara란 사람은 미국의 전형적인 합리적이고 유능한 '성취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가 맛 보았을 power의 막강함과는 달리, 과연 가치있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기록을 남겨 역사적 사실을 보존하고, 또 사후에라도 사실 확인과 진실 규명을 위해 노력 하는 자세는, 개인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그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와 풍토가 반영된 결과이리라... 우리가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 분명히 본받아야 할 점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