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 친구가 결혼식을 올렸다. 고등학교 1학년때 같은 반이 되어서 그땐 거의 단짝처럼 지내다가 졸업후 학교가 갈리면서 소원해졌는데 재작년쯤인가 다시 연락이 닿아서 그후론 자주 연락도 하고 잘 지내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그 친구는 아마 화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언제 연락 자주했냐고^^ 항상 내가 연락을 잘 안한다고 불만이 많당) 그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많이 무덤덤하고 무신경한 나를 좋게 봐주고 챙겨주는 고맙고 소중한 친구이다.

  그 친구가 몇달전에 불쑥 결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많이 놀라고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결혼이라니... 그 전부터 털어 놓지도 않고 혼자 끙끙 앓는 일이 있었는데 언젠가는 부딪혀보고 결단을 내릴 거라고 했었다. 그게 이 일인가보다. 그리고 결국 부딪혔고 일이 자기가 생각지도 못할 만큼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결단은 결혼으로 내려졌단다. 아무튼 그날 난 많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이때껏 그런 일을 털어놓지도 않은 것이 섭섭하기도 하고, 나 개인적으론 슬프기도 했지만, 모든 것이 분명해진 그때 그 친구의 얼굴은 너무 밝고 편해 보였다.  (난 요즘 누군가의 결혼 소식을 들으면 우울하고 슬프다. 난 아직 혼자이므로. 누군가의 결혼은 분명 축하하고 잘 된 일이지만 개인적으론 슬픈 것이 사실이다. )

  창원의 한 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왔었다. 그 친구가 초등학교 선생님이라 친척들 외에는 대부분 다 초등학교 교사인 그 친구의 대학 동기들이나 학교 선생님들일 것같았다. 그리고 아이들도 많이 있었다. 난 내 활동 범위가 아닌 것같아 조용히 식을 지켜보고 왔다. ^^  그 어느 주례사보다도 손에 장미꽃 한송이씩 들고 주저함없이 목청껏 불러주는 아이들의 축가가 너무나 감동스러웠다. 정말 선생님의 결혼을 축하하는 마음이 가득한 것같았다. '우리 예쁜 선생님이 오늘 결혼을 하네요. ~ ~ ~ ~서로 마주보며 행복하게 사세요.'  그런 가사였다.

 난 요즘 결혼식을 보고 있으면 자꾸 눈물이 나려한다. 정말 내 결혼식도 아닌데 내가 이러는 게 당황스럽다. 그 친구를 보내는 섭섭한 마음에서인지 ... 언젠가 저런 것을 같이 꿈꾸던 사람이 생각나서인지... 어쩌면 나에게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순간이라는 슬픈 생각에서인지...

 또 이런 생각도 한다. 나에게도 저 순간이 온다면 내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결혼할 나이가 되어서 그냥 무난한 누구나와가 아니라, 평생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우리 예쁜 내 친구, 현명한 친구.  물론 행복하게 잘 살겠지만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렇게, 현명하게 잘 헤쳐나가면서 살아갈 것이라 믿는다.  친구야 , 조금 한가해지면 다시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꾸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얼마전 '겨울연가'라는 드라마에 맹인으로 나온 김희선을 보며 동생이랑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장애를 가진다면 차라리 눈이 안 보이는 게 나을까,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나을까라는... 이런 생각은 한창 학창시절 이런 저런 감상적인 상상을 할 때에도 해 본 적 있는 것 같다. 실제 그런 장애를 가진 사람이 들으면 자신들이 어쩌지 못하는 불행을 가지고 쉽게 이야기한다고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동생은 귀가 안들리더라도 캄캄한 상태로 있는 것보다는 이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을 볼 수 없는 것 자체가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하다고 했다. 나는 어린 시절에는 동생처럼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그때는 어느쪽이 더 났다고 어느쪽이 더 안 좋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건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고 어느쪽도 다 미칠 것같이 괴로운 일일 것 같아서이다.

 올해 나는 클럽활동에서 '수화반'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강사분을 초빙했는데 어떻게 연락이 되어 모시게 된 분이 실제 농아이신 분이다. 귀는 희미하게 들려서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정도이고 말의 높낮이와 빠르기가 일반인과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말씀은  잘 하신다. 처음 수업을 좀 걱정했었는데 경력이 많으셔서 수업도 잘 하셨다.

 나는 수화수업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수화를 배울거라 생각했는데 '장애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는 수화를 왜 배우는가'부터 시작했다. 옳은 것 같았다. 사실 장애인들의 언어인 '수화'를 배우면서 왜 배우는지를 모르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이는 뭔가 잘못된 것이다. 학교에 가면서도 왜 학교를 가는지를 모르고 가는 것처럼...  그리고 우린 이상하게도 수화를 배우면서도 우리 자신과 농아인들과 연결시키지 못한다.  아무래도 우린 단지 그냥 손짓이 예뻐서, 재미있을 것 같아서 수화를 배우나 보다.

 강사분은 우리가 수화를 배우는 것은 '수화'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과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게끔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수화를 할 수 있다면 그건 나쁜 눈에 안경을 씌워주는 격으로 그들은 더이상 장애인이 아닐 수 있다고 했다.  영어를 배우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수화를 배우는 것은 남을 위한 것이었다. 우린 아예 관심이 없거나 남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장애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말씀하시면서 농아들의 생활은 물속에 잠수한 채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했다. 눈을 뜰 수 있고 볼 수는 있지만 말을 할 수도 없고 귀가 먹먹해서 들리지도 않는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평상시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불편하겠구나'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순간 얼마나 미칠 것 같이 답답할지 느낌이 왔다.  

 수업을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하러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농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였다. 농아들은 사실 겉으로는 멀쩡하니 표가 나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막연히 무어라도 하고 살 거라고 생각한단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들리지 않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당신이라면 고용하겠는가? 아마 몇일 함께 일할려 하다가도 곧 너무 답답해서 그만두라고 하지 않을까? 당신이 수화라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실지로 농아들을 고용해주는 곳은 거의 전무하단다. 마땅히 할 일을 구하지 못해 생계가 위협받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가장 안타까운 것은 사회의 무관심이란다. 나와 상관없는 불행쯤으로 생각하는 것.  몇해 전 명동성당에 농아들 몇 백명이 모여서 기본 생계를 보장해 달라고 농성을 했단다. 소리 지를 수 없으니 그들은 호루라기를 부는 것으로 대신 했다고 한다. 강사분은 이런 일이 있었으나 다음날 어느 신문에도 기사 한줄 실리지 않았다며 한숨을 쉬셨다.

 귀가 안 들리는 것이 더 나을지, 눈이 안 보이는 것이 더 나을지 판단한다는 것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건 감히 함부로 말로 할 수 있을만큼의 고통이 아니다. 당사자가 아니고는 모를 고통일 것이다....   우리가 그들 만큼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함부로 말하거나 나와 상관없는 일인 듯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의 일이 나와 같은 인간의 일이기에... 

  그날 수업에서 새삼 장애인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고 있는지, 정상으로 여겨지고 살아가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전의 냉정한 마음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00와 이야기해 보아야겠다. 분명히 밝은 아이인데 요즘 눈빛이 불안해 보인다. 꼭 눈물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2. 반장과 이야기해 보아야겠다. 작은, 그러나 기 죽지 않는 내 편. 반장. 다독거려 주어야겠다.  

3. 00. 우리반에서 가장 커서 아이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항상 불만이 가득찬 표정으로 기분 나쁘면 거친 말도 서슴지 않고 한다. 아이들이 무서워한다.

4. 00와 이야기해보아야 한다. 얼마전 아이들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학교오기가 싫다고 했었다. 더 나아졌는지 괜찮은지...  오늘 아파서 늦게 왔다. 마음이 아파서 몸까지 아파한걸까....

약한 모습으로 착하기만 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선생님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내가 중심을 잡아야할 것같다.  나를 조금 내세워야 할 것같다.  그래도 되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길 위에 서면 나는 서러웠다.

갈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길이었으므로.

돌아가자니 너무 많이 걸어왔고,

계속 가자니 끝이 보이지 않아

너무 막막했다.


허무와 슬픔이라는 장애물,

나는 그것들과 싸우며 길을 간다.

그대라는 이정표,

나는 더듬거리며 길을 간다.

그대여, 너는 왜 저만치 멀리 서 있는가.

왜 손 한 번 따스하게 잡아주지 않는가.

길을 간다는 것은,

확신도 없이 혼자서 길을 간다는 것은

늘 쓸쓸하고도 눈물겨운 일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담임, 교실 안팎의 의사소통 통로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꽃이 되고 싶다

 

김명희(경북 안동여중 교사)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에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의사소통이다. 아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보다 나은 학급운영을 고민하고, 좀 더 괜찮은 수업을 고민하는 교사라면 한 번쯤, 아니 시시때때로 고민해 보았을 아이들과의 의사소통 문제. 아이들과 잘 소통하기 위해 교사인 나는 어떠해야 하는지, 먼저 나로부터 고민해 보자. 나는 과연 아이들에게 잘 다가가고 있는지, 나의 미숙함이 아이들과의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데서부터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은 가능해질 것이다. 교사는 훈시자도, 전달자도 아니다. 동등한 인간 대 인간의 만남으로서 의사소통을 고민한다면 나의 언어 방식부터 되돌아보자.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상대의 모습도 진정 보일 것이다.


그 옛날 나빴던 경험이 지금 가장 좋은 교훈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한 마디 이유라도 물어보면 안 되는 걸까? 선생님들은 자기가 왜 기분이 안 좋은지를 차근차근 말 좀 해 주면 안 되나? 지금의 아이들도 선생님께 불만과 의아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 학생 시절의 억울하고 속상했던 경험이 그대로 나의 학생들에게 되돌려져 되풀이되고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중학교 1학년, 서울로 유학을 가 낯설게 3월을 보내고 있던 때였다. 영어선생님이 들어오셔서 교과서를 읽는데, 안 그래도 얼굴이 고와 홀려 있는 터에 생전 처음으로 유창한 외국어를 들으니 앞에 서 있는 선생님이 황홀하도록 예쁘고 신기하였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헤에~' 하며 웃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책 읽는 것을 멈추고는 "너, 나와!" 하시더니, 나의 뺨을 힘껏 날리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데다가 변명할 틈도 없이 복도에 나가 서 있으라는 바람에 나는 그저 추운 복도에서 한 시간 동안 수치감 속에 떨기만 했다. 그러나 추위와 수치감보다도 더한 것은 '대체 내가 왜 맞았을까?' 하는 궁금함이었다. 감히 그 이유를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지금 교사가 되어 생각하니 선생님이 그때 "너 왜 웃었니?" 한 마디만 물었어도, 아니 "! 얘, 책을 읽는데 네가 웃으니까 마치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다"라고 한 마디만 하셨다면, 적어도 변명이나 해명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랬다면 이후 영어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을까!


비언어적 행동을 읽어 내는 마음의 여유와 사랑

 오래 전 밤 11시까지 야간 자습을 하던 고등학교 3학년 교실에서 있었던 일이다. 피로와 어두운 침묵으로 가득찬 교실, 이 한 시간만 지나면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마지막 힘을 쏟으며 들어선 순간, 이 밤늦은 시간에 유난히 교실이 깨끗하고 교탁 위에는 분필통이 단정하게 놓여 있어 기분이 유쾌해졌다. 게다가 그 안에는 예쁜 껌종이로 옷을 입힌 분필들이 한 상자 가득한 게 아닌가. 낭만도 사랑스러움도 사라져 가던 고3 교실에서 모처럼 따사로운 인간 냄새를 맡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마음과는 달리 무심결에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뭐야 이거, 고3이! 시간이 얼마나 걸릴 텐데!" 그리고는 돌아서서 무심히 칠판에 제목을 적고 있는데, 갑자기 뒷자리에서 후다닥 하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린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차마 뒤를 돌아볼 수가 없었다. 뒤를 돌아봤을 때는 이미 늦었다. 저 뒷자리에 앉아 있던 늘 말 없고 공부를 잘하던 한 아이가 그 넓은 교복치마를 한껏 펄럭이면서 쿵쿵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휘익 분필통을 집어들고선 다시 쿵쿵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그런 무례한 모습을 아이들도 처음 보았는지 교실은 죽은 듯 조용하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는 사과해야지.' '교실을 나갈 때까지는 사과해야지.' '스쿨버스를 탈 때까지는 사과해야지.' … '졸업할 때까지는 사과해야지.'

 그러나 결국 사과를 못했다. 지금까지도 못했다. 그 아이의 이름조차 모른다. 굵은 테의 안경을 쓰고 말수가 없던, 지금은 엄마가 되고도 남았을 아주 오래된 제자. 지금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부끄러움과 죄책감으로 마음이 무겁다. 회복이 안 된다. 그런데 찾을 길이 없다. 어떻게 사과하나.

 학생의 말없이 바라보는 표정이나 사소한 몸짓 하나, 그리고 목소리에 담긴 빛깔과 냄새, 감정, 분위기… 같은 비언어적인 행동을 섬세하게 읽어 내기에는 교사로서 나이가 너무 어린 27세였다고 하면 자위가 될까? 아니다. 아직 인간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이 무엇을 담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내는 데에는 뛰어난 시각이나 청각이 필요한 게 아니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사랑이 필요할 뿐. '마음'만 있으면 된다. 마음으로 바라보고 다가갈 때 비로소 우리 아이들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과의 진정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정답이 없는 대답으로 말하기의 두려움 없애기

  요즘 아이들, 흔히 어른을 능가하는 것처럼 굴기도 하고, 또 우습게 여기는 모습도 보이지만, 정작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할 자리에서는 의외로 부끄러워하며 쑥스러워서 몸을 비틀거나 입을 꼭 다물고 있기가 예사다. 게다가 여전히 사회적 관념이 남아 있어서 '선생님은 어른인데 뭐 이런 게 문제되겠나?' 하며 아직도 선생님과 어른들에 대해 환상에 가까운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으레 자기들만이 잘못하고 또 용서받는 미숙한 인간들인 양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간혹 교사가 아이들 때문에 기분이 상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거나 또 행복과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을 잘 모르기도 한다. 또한 교사들 역시 '교사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교육신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인간임을 제쳐놓고서 오직 교사로서의 책임을 다하고자 나 아닌 ? 摸?자의 모습으로 아이들 앞에 서곤 한다. 그럴 때면 어쩔 수 없이 거짓이 나오고 자기 기만이 나와 결국 스스로 해방되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래서 조․종례 시간이나 교과 시간, 틈만 나면 집단상담을 통해 정답이 따로 없는, 즉 자기 느낌을 정직하게 드러내는 훈련을 하여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읽고 인정하며 자신감을 키워 볼 일이다.


  * 어떤 때 나는 기분이 좋아지는가/나빠지는가?

* 최근에 즐거웠던/속상했던 일은 무엇인가?

* 내가 잘하는/못하는 것은? …

* 전에는 잘/못했는데 지금은 못하는/잘하는 것은?

  * 최근에 실천하고 있는 새로운 일이 있다면?


 어느 날인가 공교롭게도 들어가는 학급마다 속상한 일이 있어 종일토록 열이 가득 올라 있었다. 종례를 들어갔는데도 아이들이 쳐다보지도 않기에 "선생님이 왔는데 본 척도 안 하고! 나 무시당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 나는 오늘 아침부터 애들이 말을 안 들어 너무나 화가 나 있고 지금도 기분이 안 좋아. 우리 반에 왔으니 너희들이 나 좀 기분 좋게 해 줘 봐." 그러자 아이들은 한꺼번에 쏟아지듯 말을 내 붓는다.

"할미꽃을 꺾어 드린다." (-평소에 늘 들꽃을 좋아한다고 했다.)

"명희 선생님!" (-나는 '명희 선생님'이라고 불리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고 한 적이 있다.)

"억척이가 참 잘생겼어요!" (-억척이는 내 짚차의 이름으로, 나를 칭찬하려면 억척이를 칭찬하면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산에 불을 지른다아!"

 엉, 뭐라고? 산에 불을 질러? "아니 얘들아, 산에 불은 왜?" "선생님이 나뭇잎 타는 냄새가 좋다고 하셨잖아요! 산에 불을 지르면 하루종일 타니까 선생님 기분이 좋아지실 거잖아요." 아, 세상에! 그로부터 나는 약 5분간 배를 부여잡으며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곤 언제 기분이 나빴더냐는 듯 날아갈 듯 즐겁고 행복해졌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아이들이 미워지고 교단이 지겨워질 때면 이 말을 생각하곤 웃음지으며 옷깃을 다시 여민다.

 

                                                                                 <다음 주에 이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2005년 5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