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겨울연가'라는 드라마에 맹인으로 나온 김희선을 보며 동생이랑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장애를 가진다면 차라리 눈이 안 보이는 게 나을까,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나을까라는... 이런 생각은 한창 학창시절 이런 저런 감상적인 상상을 할 때에도 해 본 적 있는 것 같다. 실제 그런 장애를 가진 사람이 들으면 자신들이 어쩌지 못하는 불행을 가지고 쉽게 이야기한다고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동생은 귀가 안들리더라도 캄캄한 상태로 있는 것보다는 이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을 볼 수 없는 것 자체가 상상도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하다고 했다. 나는 어린 시절에는 동생처럼 이야기하곤 했었는데 그때는 어느쪽이 더 났다고 어느쪽이 더 안 좋다고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건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고 어느쪽도 다 미칠 것같이 괴로운 일일 것 같아서이다.

 올해 나는 클럽활동에서 '수화반'을 맡게 되었다. 그리고 강사분을 초빙했는데 어떻게 연락이 되어 모시게 된 분이 실제 농아이신 분이다. 귀는 희미하게 들려서 앞에서 말을 해야 하는 정도이고 말의 높낮이와 빠르기가 일반인과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말씀은  잘 하신다. 처음 수업을 좀 걱정했었는데 경력이 많으셔서 수업도 잘 하셨다.

 나는 수화수업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수화를 배울거라 생각했는데 '장애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우리는 수화를 왜 배우는가'부터 시작했다. 옳은 것 같았다. 사실 장애인들의 언어인 '수화'를 배우면서 왜 배우는지를 모르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 이는 뭔가 잘못된 것이다. 학교에 가면서도 왜 학교를 가는지를 모르고 가는 것처럼...  그리고 우린 이상하게도 수화를 배우면서도 우리 자신과 농아인들과 연결시키지 못한다.  아무래도 우린 단지 그냥 손짓이 예뻐서, 재미있을 것 같아서 수화를 배우나 보다.

 강사분은 우리가 수화를 배우는 것은 '수화'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과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게끔 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수화를 할 수 있다면 그건 나쁜 눈에 안경을 씌워주는 격으로 그들은 더이상 장애인이 아닐 수 있다고 했다.  영어를 배우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수화를 배우는 것은 남을 위한 것이었다. 우린 아예 관심이 없거나 남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장애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말씀하시면서 농아들의 생활은 물속에 잠수한 채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했다. 눈을 뜰 수 있고 볼 수는 있지만 말을 할 수도 없고 귀가 먹먹해서 들리지도 않는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평상시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불편하겠구나'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순간 얼마나 미칠 것 같이 답답할지 느낌이 왔다.  

 수업을 마치고 함께 식사를 하러 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농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였다. 농아들은 사실 겉으로는 멀쩡하니 표가 나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막연히 무어라도 하고 살 거라고 생각한단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자. 들리지 않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당신이라면 고용하겠는가? 아마 몇일 함께 일할려 하다가도 곧 너무 답답해서 그만두라고 하지 않을까? 당신이 수화라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실지로 농아들을 고용해주는 곳은 거의 전무하단다. 마땅히 할 일을 구하지 못해 생계가 위협받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기도 하고...  가장 안타까운 것은 사회의 무관심이란다. 나와 상관없는 불행쯤으로 생각하는 것.  몇해 전 명동성당에 농아들 몇 백명이 모여서 기본 생계를 보장해 달라고 농성을 했단다. 소리 지를 수 없으니 그들은 호루라기를 부는 것으로 대신 했다고 한다. 강사분은 이런 일이 있었으나 다음날 어느 신문에도 기사 한줄 실리지 않았다며 한숨을 쉬셨다.

 귀가 안 들리는 것이 더 나을지, 눈이 안 보이는 것이 더 나을지 판단한다는 것은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건 감히 함부로 말로 할 수 있을만큼의 고통이 아니다. 당사자가 아니고는 모를 고통일 것이다....   우리가 그들 만큼 느끼지는 못하더라도 함부로 말하거나 나와 상관없는 일인 듯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의 일이 나와 같은 인간의 일이기에... 

  그날 수업에서 새삼 장애인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고 있는지, 정상으로 여겨지고 살아가는 우리가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전의 냉정한 마음을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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