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혜란이가 지각을 했다. 혜란이가 교실에 들어오는 순간 아이들이 내 눈치 먼저 살핀다. 선생님이 어쩌시려나... 혜란이는 그전부터 지각을 많이 해왔었고 나에게 주의를 듣는 것을 많이 보았으므로
혜란이에게 또 큰 소리를 치고 싶지는 않았다. 내일이 시험인데 그냥 눈감을까?고민을 한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혜란이를 살짝이 밖으로 불러냈다. 혜란이는 이미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다 알고 있다. 고개를 못들고 발끝만 내려다 보고 있다. 손에는 비닐이 뜯기지 않은 수첩을 든 채...
혜란이는 성적이 나쁘지 않으며 공부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준비물을 챙기지 못한 사람, 수행평가를 '아직' 내지 않은 사람에 꼭 끼어있다. 차분하지도 성실하지도 못하다. 그래서 어제 과제나 준비물을 적을 수첩을 준비해와서 나에게 보이라고 했었다. 그 수첩인가 보다. 내심 내 말이 조금은 먹혔구나 싶어 흡족하다. (야단맞기 싫어서 그랬을지도...^^)
'왜 늦었니? 언제 교문을 통과했니?' 혜란이는 교문을 28분쯤 통과했는데 수첩사러 매점갔다가 어떤 남 선생님을 보고 겁이 나서 건물 뒤로 둘러 가다가 다른 남 선생님에게 걸려서 운동장을 일곱바퀴 돌다 왔다고 한다.
순간 나는 그 말이 사실이라면, 혜란이가 그 남선생님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정당한 변명을 왜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 겁부터 먹고 도망 먼저 치는지 답답해지기도 하고 가슴이 찡하기도 했다.
다시 한번 혜란이는 남에게 싫은 소리나 야단을 듣는 것을 못견뎌하고 두려워한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그런 두려움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혜란이는 뚜렷한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사과나 반성을 하기보다는 변명하고 돌아서 도망갈 생각을 먼저 한다. 어떤 땐 옳지 못한 방법까지 쓰면서...
다시 한번 혜란이에게 두서없는 설교를 했다. 성적이나 공부가 다가 아니라고... 성실하고 정당한 과정이 중요한 것이라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인정할 줄 아는 솔직함과 정직한 태도, 어렵고 곤란한 일에 피해가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태도가 필요한 것같다고 ... 그리고 이 순간도 선생님이 걱정해서 하는 이야기이며 절대 야단이 아니라고 강조를 한 뒤... 선생님과 함께 같이 고쳐나가면 된다고 이야기하고 교실에 들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