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일본으로 떠나는 날이었다. 그동안 이 여행을 가기 위해 같이 가는 사람들끼리 많이 모여 의논하고 일본여행에 대한 책자도 읽고 했었는데 드디어 떠나는 것이다. 가이드도 없이 항공권과 숙소만 해결해 놓고 순전히 우리 힘으로 하기로 한 해외여행이라 걱정을 많이 했었다. 더군다나 우린 영어도 일어도 잘 못하는 사람들이라... 하지만 막상 당일 아침에 짐을 들고 출발하면서는 여느 여행을 떠나듯이 담담했다.
 새벽 5시 50분쯤 캐리어를 동네방네 덜덜덜 거리면서 끌고 큰 길가로 나가 201번 버스를 기다렸다. 아직 어둑어둑한 길거리, 사람들이 아직 깨지 않은 거리에 서게 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있어 먼길을 갈 때뿐이다. 여행처럼 특별한 일... 201번 버스 배차 간격이 30분인데 다행히 10분 정도 기다리니 왔고 35분쯤 달려 김해 공항 국제선에 닿았다. 다행히 약속 시간 전에 도착했다. 늦는 거보다는 일찍이 도착하는 것이 뿌듯하고 안심된다.
 승주 언니는 나보다도 일찍 왔고 곧 정란샘도 곧 왔다. 경란샘과 경미샘은 늦게 올 것 같았다. 먼저 온 사람들은 먼저 환전을 했다. 19만 5천 얼마를 주니 2만 2천 엔을 주었다. 환율이 100원에 889엔이었다. 처음보는 일본돈...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개화기 때의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낯설었지만 푸르스름하게 기름 먹은 듯이 뻑뻑한 외화는 이제 조금 익숙하다. 
 경미샘과 경란샘이 왔다. 우린 핀잔을 줄려고 한껏 벼르고 있었는데 막상 샘들 얼굴을 보니 말이 슬~들어갔다. 오는 길이 힘들었는지 선생님들 얼굴이 굳어 있어서... 이 사람들이 강하게 나오네. 비굴한 우리들^^  늦게 온 샘들은 환전을 하고 우리는 티켓팅을 했다. 내 캐리어는 크기가 커서 부치도록 했다. 규정에 보니 가로*세로*폭의 합이 115센티미터 이내가 기내 반입이었다. 무게는 10kg을 넘지 않을 것.
 티켓팅 후 1층으로 내려갔다. 우리가 내려갔을 때가 8시쯤... 아직 1시간이나 남았다. 면제점에서 선물을 몇 가지 사고 배고픔을 달래려 오뜨를 사서 하나씩 까먹으며 비행기 타는 것을 기다렸다. 8시 30분쯤 비행기로 향했다. 비행기에 올라 좌석 34A에 앉았다. 내가 그렇게 바라던 창문가 자리. 운이 좋았다. 깔끔하고 그런대로 먹을 만한 샌드위치 기내식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창 밖의 구름 구경도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넘어 10시 30분쯤 칸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처음부터 우리와 다른 것이 많았다. 잔뜩 쓰인 알아볼 수 없는 일본어가 우리가 일본에 왔다는 것을 실감나게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행기와 공항 사이에 버스로 연결하는데 반해 일본에서는 어떤 통로가 비행기에 바로 연결되고 또 모노레일이라는 전기로 가는 칸막이차를 타고 이동했다. 입국심사대에는 같은 비행기에서 내린 한국인 관광객들이 북쩍거려 시간이 꽤 걸렸다. 알 수 없는 말들을 하며 뭐라하는 사람들... 심사대의 사람들... 일본인들이 가득 있었다. 정말 일본이란 나라에 들어왔구나 싶었다.
 공항 건물을 벗어나 육교로 연결된 철도역으로 가서 빨간색 난카이센을 탔다. 여행책자대로 하나하나 나타나는 것이 신기했다. 처음으로 칸사이 스롯트 패스를 개시했다. 일본여행책자에는 남바역에서 내려 미도스지센으로 갈아타고 ‘니시나까지마 미나미가따’역에서 내리라고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는 남바역 전에 한번 더 갈아타도록 되어 있었다. ‘니시나까지마 미나미가따’역은 ‘신오사까’역 전에 조그마한 역이었다. 우리로 치면 ‘서면’역이 크고 복잡한 곳이라면 ‘개금’역이 단촐하고 조용한 동네역인 것처럼. 2번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건널목을 건너 쭉 걸어올라가니 입구에 ‘新大阪신오사카’라는 글귀가 크게 붙어 있는 호텔이 나왔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우리 선생님들이 그래도 기본은 있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준비를 많이 하고 와서 그런지 마치 아는 동네인 양 잘 찾아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가 1시쯤으로 아직 체크인이 되지 않아 짐만 맡겨 두었다. 당연히 현지인과의 의사소통은 무조건 정란샘 몫이었다. 일본인들은 몇 개의 단어를 알아들었고 성심성의껏 대해주었다. 외국에 나와 보니 영어를 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 안에 있을 때에는 별로 영어를 배워야한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역시 당장에 필요한 것이어야 절실해지나 보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 지금 당장 공부하는 것들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으니 필요 없게 느껴지는 것이겠지...
  호텔을 나와 다시 지하철로 향했다. 오늘 관광을 맡은 사람은 나이기 때문에 내가 앞장 섰다. 잘 찾아서 인도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묵직하게^^ 우리가 처음으로 관광할 곳은 ‘오사카죠, 오사카성’이다. 가는 방법은 ‘홈마찌’역에서 내려 ‘주오센(중앙선)’으로 갈아 타고 ‘타니마찌욘쬬메’역에서 내린다. 표지판이 잘 되어 있어서 찾는데 그리 어려움은 없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책에서 봤던 ‘오사까역사박물관’과 ‘BK플라자’가 그대로 있었다. 매번 여행에서 준비하면서 책자에서 봤던 것을 그대로 실제 눈으로 볼 때 너무나 반갑고 신기함을 느낀다. 박물관답지 않게 고층에 우뚝 솟은 현대적인 건물. 마치 특급 호텔처럼 보인다. 20분쯤 걸어가니 ‘오사카성’으로 들어서는 문이 나왔다. 오사카성 주변에는 공원이 있는데 지금은 한창 공사 중이었다. 그 곳에 말을 타고 있는 소녀(소년?) 동상이 서 있었는데 승주 언니가 “저 손에 들고 있는 거 바나나아이가?”한다. 자세히 보니 평화의 상징 비둘기인데... 우리 모두 배가 많이 고픈가보다. 오사카 성의 성벽은 거대한 돌을 그대로 짜맞추어 놓은 듯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양식을 코라이몬(고려문)이라고 한단다. 물론 고려에서 도입된 양식이다. ‘오데몬’을 지나 ‘사꾸라몬’을 통해 드디어 중심 건물인 ‘텐슈까꾸(천수각)’ 앞에 도착했다. 입장료는 600엔인데 스롯트 패스권으로 할인 받아 500엔을 냈다. ‘텐슈까꾸’ 올라가는 곳에 깃발이 계속 세워져 있었는데 흰 바탕에 국화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꽃, 화투에 그려지면 딱 맞을 법한 풍의 꽃이 찍혀져 있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건 우리나라를 쳐들어왔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문의 문양이란다. 그래서 그 문양이 그려져 있으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랑 관련있다고 생각하면 된단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오랜 시간이 지났고 내가 직접 겪은 당사자도 아니고 이젠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이나 분노가 무뎌지긴 했지만 그래도 썩 기분 좋지는 않다. ‘텐슈까꾸’는 내부 총 8층 건물이다. 멀리서 보면 그럴 듯이 멋있지만 막상 가까이서 보면 꼭 전체적으로 하얀색 페인트를 칠하고 중간 중간에 검은색 페인트로 띠를 둘러 칠해놓고 금박무늬를 박아 놓고 잘 단장해 놓은 새 집 같았다. 그리고 안에는 현대식으로 개조해 엘리베이터까지 갖추어져 있었고 모든 층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까와 이에야스에 대한 이야기와 물품을 전시해놓은 박물관처럼 되어 있다. 진짜 옛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세월의 때가 묵어 있는 성의 모습을 기대했던 우리는 적잖이 실망했다. 이건 유물(遺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걸 것이 이 성은 진짜가 아니라 1665년 벼락을 맞아 불타버린 것을 1931년에 철근 콘크리트 공법으로 재건축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전쟁광이자 원흉인 사람이 일본인들에겐 영웅처럼 떠받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불쾌했다. 일본 전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사람이니 그들에겐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텐슈까꾸를 나와 뒷길로 해서 오사카성을 빠져 나왔다. 손에 움켜쥐고 싶은 은빛 조각 같은 트윈 21 빌딩을 배경으로 다리 위에서 지나가시는 아저씨께 부탁해서 5명이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아저씨께서는 적극적으로 자리를 바꾸어서 다른 배경으로 찍도록까지 해 주셨다. 감사했다. 하지만 찍힌 사진이 괜찮았냐하면 꼭 그건 아니었다.
 ‘쯔루미료꾸지센’의 ‘오사카비지네스파꾸’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우리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는 지하철노선(센)이다. 거기서 ‘신사이바시’역에서 하차, ‘미도스지센’으로 갈아타고 ‘남바’로 갔다. 거기서부터는 위로 걸어 올라가면서 쇼핑만 하면 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 배가 너무 고팠다. 사실 아침도 못 먹고 비행기 기내식으로 오후 4시까지 견디고 있는 거였기 때문이다. 먹거리가 많은 곳이 ‘도똠보리’라고 하는데 우리는 지하철의 안내판을 보고 어디를 통해 나가서 어디로 둘러보며 봐야할지 궁리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나타나 ‘한국에서 오셨어요?’라고 물어 보시는 한 아주머니. 한국분이었다. 지나가시다가 한국말이 들려 돌아보니 여인네들이 안내판에 붙어서서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셨단다. 우리랑 한참 안내판을 보며 무얼 할 거면 어디로 가는 것이 좋고, 무얼 할 거면 어디로 가는 것이 좋다고 조근조근 말씀해주셨다. 너무 감사했다. 꽤 긴 시간을 우리에게 할애해주신 것이다. 또 너무 감사했다. 그 친절한 마음씨가... 어디에서든 우리를 도와주는 수호천사 같으신 분들이 짠 하고 나타나시니, 우리가 운이 좋은 것인가? 그 아주머니가 가시고 나서 우리 모두 동의한 것은 아주머니가 참 친절하시고 피부가 참 좋다는 것이었다. 나이는 30대 후반으로 보이시는데 정말 잡티하나 없는 윤기있는 맑은 얼굴이었다. 역시 여자인 우리는 어쩔 수 없다.^^
 우린 일단 100엔샵을 지나 도똠보리로 올라가기로 했다. 100엔샵... 우리 돈으로 1000원 정도이다. 우리나라에도 1000냥 마트가 많은데 그런 것도 일본에서 들어온 것인가? 하지만 우리나라 1000냥보다 다양한 종류로 괜찮은 것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살림도구 장만할 것도 아니고, 일본여행기념할 만한 것들로 살 것은 딱히 없어 그냥 튀김용 기~인 젓가락하나를 사고 나왔다. 명절 때 튀김할 때 쓰면 좋을 것 같아서... 샘들은 흉기같다나... 나와서 도똠보리로 나왔다. 주린 배를 진정시키며 위로 계속 걸어 올라가니 또 여행책자에서 봤던 커다란 게가 10개의 다리를 흔들면서 간판 위에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카니도라꾸 가게의 간판이다. 우리나라에도 얼마전부터 게요리집 간판에 저런 큼지막한 게가 붙어 있더니 저걸 본떠온 걸까? 아무튼 유명한 집들이 모인 거리에 도착한 것 같았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쿠이다오레따로 인형이 느릿느릿 양철북을 두드리고 있었고 쿠리꼬 간판도 보였다. 그리고 커다란 용머리가 눈에 띄는 킨류라멘집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조그마하지만 손님들이 가득 앉아있는 듯한 스시집에 들어갔다. 스시.. 우리에게 친숙하고 또 진열대에 가격이 꽤 싸게 느껴졌기 때문에 더 선뜻 들어갔다. 그리고 일본에는 가게마다 진열대에 음식 모형을 두는 것이 추세인 것 같았다. 대부분의 가게 앞에 음식 모형과 가격표가 진열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포장된 과자도 그 위에 과자 모형과 가격표가 그대로, 커피, 조각케이크 모두 다 그런 식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그 모형이 더 맛스러워 보이고 모형자체가 너무 예뻐 하나 갖고 싶었다. 스시집에 들어가 앉아 메뉴판을 들여다보고는 당황했다. 스시가 접시 당 파는 것이 아니라 하나, 하나가 120엔씩으로 우리가 메뉴판을 보고 요리사에게 찍어주면 요리사는 그때그때 만들어 하나씩 내어주는 식이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우리는 정말 말 못하는 거나 마찮가지였다. 그래서 소심하게 말 걸지 못하고 정란샘을 통해서 이것 저것 시켜달라고 했다. 다시 한번 외국에서는 영어를 할 줄 알면 편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요리사는 영어는 할 줄 몰라도 눈치껏 시원시원한 대답으로 우리를 기분좋게 해 주었다. 스시맛은 꽤 좋았다. 그리고 골라먹는 재미도... 그리고 우리나라 음식점에 비하면 싼 편이고... 내 기억에 해운대에 있던 일식집에서는 접시 하나에 2000원에서부터 5000원, 10000원까지도 했던 기억이 난다. 정말 부담스러운 가격이 아닐 수 없다. 거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앞에 접시는 쌓여 가고... 우린 우리가 ‘말 못하는 돼지들’이라고 생각했다. 잘 먹고 나와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타꼬야끼를 팔고 있었다. 일본에서 먹어봐야 하는 것이 이것이라든데... 그래서 우리는 호두과자크기같은 10개를 사서 잔뜩 기대하면 하나씩 집어 입에 넣었다. 안에는 문어 다리 도막이 살짝 익혀져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하나를 먹고 선생님들은 더 안 먹으로고 했다. 그렇게 맛있는지는... 글쎄? 그래 아까워서 나도 한 개 더 먹고 몇 명이 더 먹어 다 없애긴 했다. 타꼬야끼 맛을 봤다는데 의의를 두자. 우린 다시 남바쪽으로 내려와 쇼핑을 하기로 했다. ‘비꾸 카메라’라는 쇼핑센터로 갔다. 하지만 우린 의기소침했다. 8층에 100엔샵도 있었지만 앞서 말했듯이 딱히 살 것이 없었고 그 외 괜찮은 것은 우리나라에 비해 너무 비쌌다. 우리 돈으로 10000원 이상... 여행자에게 10000원은 큰 돈이다. 우린 거기를 나와 ‘신사이바시’의 쇼핑센터로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한 잔 했다. 처음 커피를 마시기 위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곳, 맥도날드, 도토루에 들어갔다. 그런데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 담배 냄새와 연기가 너무 지독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아는 바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던 곳이라 당황했고 문화적인 차이를 느꼈다. 그래 그 곳을 나와 지나가다 보니 벽이 없이 트인 스타벅스가 나왔다. 일단 담배냄새가 날 것 같지 않아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우리를 기분좋게 했던 것은 커피값이 너무 싸다는 것이다. 우리 돈으로 거의 2천 얼마 돈이었다. 우린 너무 행복한 기분으로 커피를 두 잔 시켜 나눠 먹었다. 행복했다. 몇 일간 주어진 선물 같은 시간... 우리나라를 벗어나 낯설지만 신기하기만 한 것들에 감탄하기만 해도 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함께 해서 더 좋고, 거기서 자유를 만끽하며 먹는 커피 맛이란... 맛있는 커피에 힘을 얻어 ‘신사이바시’를 찾아갔다. 조금 헤매기도 했지만 물어 물어서 무사히 정상 괘도를 찾아... 누가 일본인이 영어 못한다고 했는가? 우리만큼은 하는 것 같던데... 먼저 간 곳은 ‘다이마루’라는 백화점. 이 백화점은 19세기 말에 지어진 유서깊은 곳이라는데 그 만큼 외관이 고풍스럽고 우아했으며 이 건물 자체가 역사적 의의가 있을 듯했다. 하지만 역시 너무 비싸서... 우리나라 백화점보다도 더 비싸니... 다 그림의 떡이었다. 예쁘지만 우린 아무 것도 살 수 없었으므로 가볍게 무기력함을 느끼며 빨리 그 건물을 나왔다. 그리고는 파르코 거리에 Loft로 갔다. 우리나라의 미니몰과 비슷한 곳이었다. 하지만 비싸긴 마찬가지... 하지만 화장품 값은 우리나라보다 싼 것 같았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고가로 팔리는 메이커 화장품은 우리보다 훨씬 싼 것 같았다. ‘부르조아’ 화장품은 립글로즈가 우리나라에서 얼마인지 잘 모르겠지만 면세점에서 15000원하던 것이 거기서도 같은 가격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일반 백화점보다는 싸다. 그곳에서 메모지 꼽는 것을 하나 샀다. 여러 동물모양이 있었는데 목이 긴 것이 마음에 들어 기린을 골랐다. 350엔. 일본에서는 아직 비닐봉지를 그냥 끼워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50원씩 받는데... 우리나라에서 공짜로 안 주는데 익숙해있다 여기서는 그냥 끼워주니 그것도 너무 인정스러웠다. 내가 너무 좋게만 생각하는지... 계산할 때 내 손에 짐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것까지도 비닐봉지에 넣어주겠다고 먼저 이야기했다. 손님의 상태 하나하나까지 살피고 배려해 주는 마음씀씀이에 사실 감동했다.
  우리는 다시 그곳을 나올 때가 8시 정도쯤. 피곤이 몰려왔다. 오후에는 쇼핑하며 둘러만 봤는데도 꽤 피곤했다. 몇 명은 숙소로 가고 싶어 했고 몇 명은 쇼핑하면서 솔직히 산 것이 없어 서운해서 몇 군데를 더 둘러 봤으면 했다. 우린 여기까지 왔으니 몇 군데 더 둘러보기로 했다. 그래서 맞은편 ‘오빠(OPA)’를 갔다가 ‘토뀨한즈’, 옆 상가들을 둘러봤다. 특별히 살 건 없었다. 고만고만한 것들은 우리나라에도 다 있고 우리보다 더 비싸 굳이 살 필요가 없고 괜찮은 것들은 역시나 값이 나가 살 수가 없는 것들이라서... 그리고 일본에서는 7시만 조금 넘어도 상가들이 문을 닫았다. 원래 그런 것인지 혹시 불경기라 그런 것인지... 그래서 우리가 다닐 때도 불이 꺼진 상가가 많았다.
  그런데 다니면 다닐수록 우리 곁을 지나가는 세련된 오사카인과 우리가 비교되면서 우리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네들은 이미 봄인 양 가볍게 입고 거의 모든 사람이 부츠를 신고 정성들여 아이라이너, 마스카라를 필수로 해서 화장하고 살짝 염색하고 웨이브진 머리는 금방 미용실에 갔다온 듯했다. 반면 우리는 절대로 춥지 않도록 두터운 외투를 골라 입고 왔으며 얼굴은 바람에 화장기가 사라진 지 오래이며 장시간 걸어나니느라 다 피곤한 얼굴에 눈까지 충혈되고, 머리는 못 빗어 엉클어진 채였다. 우리는 우리가 마치 중국관광객 같다고 느꼈다.
  최대한 많이 둘러 보고 난 후에야 우린 숙소로 돌아왔다. 그냥 들어가기가 서운해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이랑 컵우동을 샀다. 거기도 롯데제품이 있었다. 우리나라랑 똑같은 과자가 일본이름을 달고 있는 게 신기했다. 계산대... 정말 깍뜻하고 친절한 일본인들... 다시 느낀다. 숙소에 들어와 체크인을 하고 짐을 찾았다. 지배인님인지 나이가 조금 지긋하신 분이 프론트에 있으셨는데 정란샘이 나중에 하는 말, “영어 발음이 장난이 아니예요.” 누가 일본인이 영어 못한다고 했어... 정란샘은 혼자 방을 쓰도록 되어 있었고 우린 아침 공항에서 승주언니랑 나, 경미랑 경란이 같은 방을 쓰기로 ‘뗀~찌’로 정했었다. 경미와 경란이 408호, 승주언니랑 나는 411호, 정란은 414호. 각자 숙소에 들어가 씻고 408호에 모여 좀 먹고 내일 6시 30분에 밥을 먹기로 하고 방으로 돌아와 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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