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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생각 - 나는 야구에서 인생을 배운다
박광수 글.그림 / 미호 / 2013년 3월
평점 :
기차가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 틈 속에서 기다리던 한 사람의 얼굴만 찾고 있었다. 곧 만났다. 함께 역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갑자기 멈춰 서는 옆 사람. 그러면서 누군가를 쳐다보며 놀란 표정이다. 누굴 보았길래 그러나 싶어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알고 보니 유명한 야구선수였다. 아무리 다시 봐도 내 눈에는 체격이 큰 아저씨, 어디서나 보이는 그런 사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TV에서나 보던 야구 선수를 직접 바로 정면에서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척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때 야구에 무지한 내 눈에는 전혀 감흥이 없었지만 말이다.
‘야구’ 하면 야구를 밥 먹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이 먼저 떠오른다. 인대가 늘어나서 더 이상 공을 던질 수 없다고 병원 진단이 나올 때까지 사회인 야구를 했던 B씨, 출근하는 날보다 주말에 사회인 야구 경기 약속이 있을 때 더 이른 시간에 벌떡벌떡 일어난다는 K씨. 그런데 한 사람 추가다.
만화로 잔잔하고 아름다운 감동을 선사해주는 이 책의 저자 박광수씨. 곳곳에 열혈 야구 팬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스마트폰 어플 중 남들이 다 애용하는 카 무시기, 네 무시기보다도 가장 자주 들여다보는 것이 날씨 어플이라고 한다. 그 전에는 주말이 되면 방에서 자지 않고 마루에서 잤다고 한다. 새벽에 비가 내리지는 않는지 확인하려고. 한번 같이 경기한 프로 야구 선수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야구에 대한 열정과 재미에 푹 빠져 있을 줄이야. 그 전에 만화로만 봤을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신선했고 재미있었다.
표지부터가 튄다. 야구장의 푸른 잔디를 연상시키는 바탕색과 강렬한 흰색 무늬.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 것 같은 야구공의 이미지다. 야구를 인생에 비유한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지만 야구 규칙도 모르고 하다 보니 그 의미는 짐작하기가 어려웠고 늘 궁금했다. 그런데 이 책으로 명쾌하게 해소되었다.
야구는 앞의 사람을 인정하며 뛰는 운동이다. 내가 아무리 빠르다고 한들 선행 주자를 앞서 홈으로 들어오면 아웃을 당한다. 그렇게 인생의 순리를 배워나가는 것이 야구다.
대부분의 구기 종목 운동이 특정 선수에게 기회가 편중되어 있다. 야구를 제외한 구기 종목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포지션의 선수에게 거의 모든 기회가 주어지는 반면, 야구는 순번이 정해져 있으며 그 순번에 따라 모두에게 균등한 기회가 주어진다.
승리하면 조금 배우지만, 패배하면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 크리스티 매튜슨 p96
저자의 머리를 거쳐 정리된 야구 생각 외에도 주요 인물들, 야구 이야기, 마지막에는 몇 사람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제목 그대로 야구와 관련된 저자의 생각이 다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소재로 이렇게 책 하나로 엮어내는 작업도 무척 신나고 멋진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이야 말할 것 없겠지만 왕초보라도 입문서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하겠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