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나라크가 놈에서 비참한 상태로 살아가던 누나와 나를 구해준 것은 좋은 친척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좋은 친척이 오래 할 만한 일을 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동정심에서 한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일이었는지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아르나라크는 세이굴러크 누나와 나를 불건강하고 불안전하며 서구식 일변도인 환경에서 건져내 우리의 전통적인 환경으로 옮겨 주었다. 그 환경에서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매일 해야 하는 일들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협동과 고된 노동, 성실성, 나눔, 유머 등과 관련된 유서 깊은, 그리고 더없이 소중한 교훈들을 배웠다. 바로 그런 덕목들 덕에 나는 옛 시대의 생활 방식에서 현대 세계로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27)
우리가 코체부에 만 일대의 해안과 노아타크 강변에 있는, 이카투크와 퀴미크푸크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살았던 시절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아득한 옛 시절부터 영위해왔던 삶의 가장 깊이 있는 교훈과 지혜들을 내게 각인시켜준 시절이었다. 우리는 자연이 지닌 힘들을 경외해야 한다는 걸, 낭비가 큰 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더불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꼭 필요한 일이라는 걸, 오로지 더불어 일함으로써만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63)
그러나 나날의 삶은 모험이었고 우리 모두는 아니그니크, 곧 삶의 숨결을 즐겼다. 많은 이들이 간간이 죽을 고비를 겪기는 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큰 기대감을 갖고서 하루를 맞았다. 오늘 날씨는 어떨까? 몇 마리의 뇌조를 집 안에 들여놓을 수 있을까? 운 좋게 몇 마리를 쉽고도 빠르게 잡을 수 있을까? 여우가 덫에 걸렸을까? 농어 그물을 다시 들여다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누가 개들을 데리고 가서 가문비나무 단을 실어 오는 일을 맡을까? 양식과 생필품을 들여놓기 위해 마을에 갈 때가 되지 않았을까? (76)
과거 수천 년 동안 우리 이누피아트 사람들은 내륙에 살았던 이트퀄리트 사람들과 팽팽하게 대치하면서 살아왔다. 이트퀄리트 사람들은 문화나 언어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인디언 부족이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인디언을 악당으로 보는 관점을 아무 저항감 없이 받아들였다. 우리는 할리우드가 우리한테 던져준 미끼를 덥석 받아먹고 기꺼이 ‘좋은 사람들‘의 편을 들었다. 우리는 이누피아트 사람들이 영화에 나오는 인디언의 적들보다 인디언들과 훨씬 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101)
나는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해본 적이 몇 번 있었다. 총, 칼, 도끼, 얼음같이 싸늘한 물, 광막한 황야가 다 손쉬운 자살 수단이 되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퀴비트, 곧 포기한다는 것은 이누피아트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말이었다. 이누피아트 사회에서는 그런 태도가 절대로 용납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은 만여 년 동안 북극지방에서 살아온 터라 그런 교훈을 잘 체득해왔다. 무기력하고 나약한 사람은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는 설 자리가 없었다. 누군가가 포기한다면 그와 그의 가족은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현실은 그처럼 간단명료했다. (124)
그즈음 나는 가장 중요한 핵심 하나를 깨닫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 민족에게는 투사들이 전혀 없다는 것을. (167)
우리 가족은 다른 사람들이 자식들한테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서 했다. 그들은 그 새로운 교육 방식이 자녀들을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줄 것이라 믿었다. 그들은 사실, 우리가 정처 없이 표류해가고 있고 최선을 다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던져졌다는 진상을 알 길이 없었다. 우리는 우리를 안내해줄 부모도 없는 상황에서 문화적 변화로부터 비롯된 온갖 갈등과 마찰에 시달렸다. 우리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십 대의 온갖 문제들과 직면했다. 우리는 조언을 해줄 사람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온갖 유혹과 맞닥뜨렸으며, 누구도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지 않는 상태에서 학업을 계속해나가려 애썼다. (285)
내 생애의 그 시점에서 내가 맞닥뜨린 것은 바로 그런 암담한 미래의 모습이었다. 지금도 그것은 그때 못지않게 생생하게 내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슬픔의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놈에서 이런 파국을 체험해온, 여러 세대에 걸친 우리 민족을 떠올리자 그 슬픔은 나를 완전히 삼켜버렸다. 나는 나 자신 때문에, 우리 가족과 친구들, 우리 민족과 조상들 때문에 흐느껴 울었다. 나는 술에 만취해 망각의 늪 속에 빠져든 사람들 때문에, 원주민이라는 의식 자체를 상실한 사람들 때문에, 자신의 삶과 맞닥뜨릴 수가 없어서 삶을 끝장내버린 사람들 때문에 흐느껴 울었다. (289)
당신이 바깥세상에서 무엇을 하며넛 지내왔든 간에 이런 세계에 들어오면 당신은 옛날의 그 사람으로 돌아간다. 당신은 돈 버는 법을 체득했을 수도 있고 고향 땅을 떠나서 지내는 동안 스키넥터디...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에 오면 당신은 옛날 그 사람이 된다. 이곳 사람들은 당신의 인간 됨됨이,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높이 쳐온 자질들을 기준으로 해서 당신의 성공 여부를 평가한다. 이곳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겸허함과 협동심, 너그러움, 좋은 의도 같은 것들을 부와 학문적 성취, 정치적 힘 같은 것들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여긴다.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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