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하게 먹는 즐거움 - 한 그릇으로도 온전하게, 일즙일채 식사법
도이 요시하루 지음, 구수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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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에 요리에서 손을 놓았다가 가을바람과 함께 주방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맘 다잡는 용으로 읽은 책. 매일 반복되는 가정요리의 의미와 아름다움. 반복되기에 능숙해질 수도 깨달음도 있는 것이다. 잡념 없이 단순한 삶, 계절이 오가는 것을 설레이며 바라보고 그 계절이 주는 것을 받아 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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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하게 먹는 즐거움 - 한 그릇으로도 온전하게, 일즙일채 식사법
도이 요시하루 지음, 구수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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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편안한 장소로 돌아오는 생활 리듬을 만드는 일이다. 그 기둥이 바로 식사다. 날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장소로 돌아오는 일상을 만들어야 한다. (14)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식문화는 즉흥적인 행위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우리의 전통 요리를 멸종위기종이라고 우려하듯, 실제로 우리의 가정 요리가 점차 사라져 간다. 식문화는 우리 마음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곧 정체성이 되며 자신감과 신뢰를 형성한다. 문화는 소중히 여겨야 하고, 변화에는 신중을 가해야 한다. 초밥과 가이세키...가 일본 요리로서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가정 요리가 사라진 식문화는 그야말로 허울 좋은 것일 뿐이다. 가정 요리는 인간의 힘이다. (28)

이렇듯 무언가를 먹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한 행동이 뒤따른다. 먹기 위한 이런 행위 전부를 ‘식사‘라고 한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고, 일어서고, 손을 움직이고, 육체를 사용해 먹어야만 한다. 즉 삶의 원점이 되는 식사 행위에는 다양한 지능과 기능을 키우는 일종의 학습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근원적인 힘이 된다. 이러한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는 몸은 ‘매일 하는 식사만큼은 제대로 하고 싶다‘고 ... 전한다. (41)

자신이 직접 요리하면 어떤 식재료, 어떤 조미료를 사용할지 직접 결정할 수 있다. 어떤 식재료를 사용할지 고민하는 것은 부엌에서 벗어나 사회나 대자연을 생각하는 것과 연결된다. 식재료를 어디서 누구한테 살지, 그 식재료가 어느 곳에서 자랐는지, 어느 바다에서 잡혔는지를 알면 식재료를 통해 많은 사람, 나아가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요리함으로써 인간은 그 근본이 되는 것과 직접 이어진다. (51)

인간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다. 요리에서 실력이나 능력, 요령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은 가장 순수하다. 그리고 순수한 것은 가장 아름답고 귀중하다. 이런 것들은 아이의 마음에 강하게 남는다. 부모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당시에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아이가 경험을 쌓아 어른이 된 후 언젠가는 분명 알게 된다. "보상을 바라지 않는 가정 요리는 생명을 만드는 일"이라고 시미즈 히로시...가 가르쳐줬다. (106)

그리고 정서를 주고받음으로써 몸속에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무언가를 판단하는 기준을 갖추게 된다. 자신 안에서 흔들리지 않으며 변화하지 않는 ‘정수定數‘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경험이 없으면 이 정수를 갖출 수 없다. 정수가 없으면 비교를 할 수 없으므로 판단도 할 수 없다. ...... 그리고 정수는 음식에 대한 판단력뿐만 아니라 인간을 보는 눈, 물건을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능력, 진짜와 가짜를 알아보는 힘, 상상력을 키우는 근간이 된다. 이것들은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살아가는 힘이 된다.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무언가를 판단해야만 하는 상황에 무수히 놓일 때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121)

자연이 만든 식재료는 전부 신과 동일하므로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그런 짓을 하면 벌을 받는다. 마치 신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깨끗이 씻은 손으로 하나하나 정성스레 요리했다. 식문화는 기후, 풍토와 함께 대자연을 두려워하고 신을 느끼면서 형성됐다. 그렇게 재료를 섞지 않은 결과, 그것이 맛으로 이어졌다.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세련된 요리는 태어나지 못했을 터이다. (148)

해마다 모두가 봄을 기다려 벗꽃을 보러 나갔으며, 가을이 깊어지면 단풍이 어느 정도 물들었는지 궁금해했다. 송사리가 알을 낳았다. 매미 소리가 요란했다. "아, 가을벌레가 울고 있어"라고 계절의 변화를 귀로 알아챌 수 있었다. 즐거운 소풍을 가기 전에는 날씨가 신경 쓰여 데루테루보즈...를 만들었고, 소풍 당일이 되면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도시락을 들고 집을 나섰다.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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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사회 - 폭염은 사회를 어떻게 바꿨나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 홍경탁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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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허리케인이나 지진, 토네이드, 홍수처럼 화면을 통해 장대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재난에 큰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다른 극단적인 기상이변의 사망자 수를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폭염이 대중적인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는 이유는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내지 않거나 다른 기상 재난처럼 엄청난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폭염의 희생자들이 노인, 빈곤층, 고립된 이 등 대개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말 없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목숨을 소리 없이 앗아가는 폭염을 치명적으로 만드는 사회적 조건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자와 뉴스 독자...의 인상에 남지 않은 것이다.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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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고기는 썩지 않는다 - 유쾌한 미각 탐험가의 산촌생활 분투기
고이즈미 다케오 지음, 박현석 옮김 / 사과나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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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포레스트가 농촌 여성의 자연적인 삶 이야기였다면, 이 책은 와일드 마운틴. 너무 야생이라 매혹되는 만큼 두려움도 같이 생겨 내가 정말 이것을 원하는지 모르겠음. 평생에 영혼을 움직이는 만남 몇 안 되는데, 욧샹과의 조우는 그 급인 듯. 산사냥꾼의 대물림 지혜 욧샹에서 끊기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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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백제 - 백제의 옛 절터에서 잃어버린 고대 왕국의 숨결을 느끼다
이병호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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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부여 지역의 경우 조사를 주도적으로 이끌 대학이 없는 상태에서 부여박물관과 부여문화재연구소만 활동하고 있었다. 두 기관에서는 수십 년 동안 연차적인 발굴 조사를 실시했지만 공무원의 인사 특성상 2~3년이 지나면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야 했기 때문에 지역 전문가를 키우지 못했다. 특히 부여에서 가장 오래된 부여박물관 사람들이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에 대한 연구가 부진했던 것이다. (73)

그렇지만 발표 날짜가 정했고 하루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박물관 업무 때문에 발표문조차 제대로 작성하기 힘들었고, 주말이나 휴일에 잠시 휴식을 취할 때도 부담감 때문에 항상 마음을 졸이면서 지냈다. 그 경험을 통해서 다짐한 것이 있다. 앞으로 준비되지 않은 발표는 절대 맡지 않겠노라고, 또 다른 사람이 기획해서 의뢰하는 발표보다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내가 쓰고 싶은 것을 미리 계획해서 준비한 것만 발표하겠노라고. 그다음부터는 일부러 나에게 발표를 의뢰한 줄 뻔히 알면서도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도 이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쓰고 싶은 주제를 찾아서, 자신의 일정과 형편에 맞게 조절해서 발표하는 것이 중요하다. (100)

다만 정림사지에 관한 논쟁을 지켜보면서 여전히 안타까운 것이 있다. 논쟁이 처음 두 차례 발굴품을 보관하고 있는 부여박물관과 세 번째 조사를 주도한 부여문화재연구소 사이의 대립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내 논문에 대한 반론을 쓴 사람들은 모두 3차 현장 조사에 참여했던 부여문화재연구소 출신들이다. 부여박물관의 경우 나밖에 논문을 쓰지 않았지만 정림사를 주제로 한 특별전이나 일제강점기 발굴보고서를 재작성할 때 기본적으로 나의 주장에 동조한다. 부여문화재연구소 사람들은 처음 두 차례 조사에서 발굴한 자료들을 알지 못한 채 자신들이 직접 조사한 자료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고, 부여 박물관 사람들은 과거의 중요한 자료들을 좀 더 신속하게 공개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164)

이러한 파괴가 자행된 시점은 이 사원이 폐사된 직후, 즉 금동대향로가 급박하게 땅속에 묻힌 직후인 백제 멸망기의 어느 때였을 것이다. 전쟁기의 혼란을 틈타 사리기와 같은 보물을 노린 도굴꾼들에 의해 목탑의 심주가 파괴되고 사리감 속에 모셔진 값비싼 금속공예품들도 사라져 버렸다. 백제 멸망기에 이루어진 도굴의 흔적은 바로 인근에 있는 능산리고분군에 관한 2016년도의 발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에 이루어진 문화재 도굴을 모두 일본인의 소행으로 치부하는 것도 현대인이 가진 또 하나의 편견이다. (215)

1920년 간행된 쌍릉 보고문에서 야쓰이는 "상세한 내용은 후일 특별보고문에 상세히 기록하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1921년 아버지의 병세를 핑계로 조선을 떠나 일본으로 건너간 다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야쓰이의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행동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지금도 여러 사람이 혼란을 겪고 있다. 그들이 별 생각 없이 훑고 지나간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257)

동남리사지처럼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자료를 정리하는 일은 많은 인력과 비용이 투입되는 일이지만 그 성과는 그다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가장 기초적인 자료 정리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누군가 새로운 곳으로 올라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내가 생각하는 박물관은 그런 일을 하는 곳이다.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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