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일기
하인리히 뵐 지음, 안인길 옮김 / 미래의창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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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섬에서는 유럽에서 '점령할 목적으로 군대를 파견'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유일한 민족이 살고 있다. 반대로 그 민족은 덴마크와 노르만족 그리고 영국인들에게 차례로 점령당했다. 아일랜드가 내보낸 것은 군대가 아니라 신부였다. ... 천 년 이상 지났지만, 유럽의 중심에서 멀리 벗어나서 대서양 깊숙이 자리 잡은 이곳 아일랜드에 유럽의 불타는 심장이 자리 잡고 있다. (15)

토니는 다시 그곳을 떠났다. 떠날 때는 50세였는데 집 모퉁이에서는 서른 살로 변했다. 언덕을 지나면서 나귀를 어루만질 때는 열여섯 살이 된다. 폭샤 울타리 뒤로 사라지기 전, 그 순간에는 그 옛날의 소년이었다. (56)

그런데 아무도 늦게 시작하는 것에 대해 전혀 화를 내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다. "신이 시간을 만들 때 충분히 만들었다"고 아일랜드 사람들은 말한다. 이 말은 분명 깊이 생각할 가치가 있다. 시간은 우리가 지상에서 할 일을 처리하라고 준 기본 요소이다. 그러니 사용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시간이란 언제나 초연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없는 사람은 괴물 같은 기형아일 뿐이다. 이런 사람은 어디서 시간을 훔쳐서 유용한다. (82)

이 조그만 선물이 경찰관에게 본디 성가신 속세의 아일랜드 생활로 돌아오게 만든 것 같았다. 졸지에 경찰관의 얼굴이 다시금 늙고 부어 보였다. 그가 시큰둥하게 물었다.
"그런데 운전면허증 좀 보여주시겠어요?"
동향인은 찾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무얼 찾을 때 꾸며내는 동작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간단하게 "아, 잊었어요."하고 말했다.
경찰관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말했다. "본인이 맞는 것 같군요." (119)

이상한 이 주법에는 또 다른 문구가 하나 있다. 고향 마을에서 적어도 3마일 떨어진 곳에서 온 여행자에게는 시원한 음료를 거절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129) ... 두 그룹의 취객들이 만난다. 3마일을 규정한 법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마을과 술집만 바꾼다. 경건한 이 가톨릭 국가에서 일요일 수많은 저주의 말이 하늘로 올라간다. 이곳은 로마의 용병들이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땅이다. 이 나라는 로마제국의 국경 밖에 있는 가톨릭 유럽의 한 조각이다. (134)

독일에서는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없을 거야." ... 그러나 아일랜드에서는 이와는 거의 반대다. 여기서는 다리를 삐고, 열차를 놓치고, 파산했을 경우, "더 나쁜 일도 생길 수 있었다"고 말한다. (163)

"그 놈 정말 좋은 녀석이었어요." 우리를 역까지 태워다 준 택시 기사가 말했다. "아주 매력 있는 녀석이에요."
"누구 말이에요?" 내가 물었다.
"오늘 말입니다." 그가 말했다. "참으로 멋지고 귀여운 녀석 아니에요?" 나는 그의 말에 동의했다. 택시 값을 지불하면서 올려다보았다. 때가 끼어 거무튀튀한 어느 집의 벽이 보였다. 마침 한 젊은 여자가 오렌지색의 우유통을 창들에 내놓았다. 여자가 내게 미소 지었다. 나도 미소를 보냈다.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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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내면을 검색하라
차드 멩 탄 지음, 권오열 옮김, 이시형 감수 / 알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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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1. 명상을 data-based 과학적 실천으로 `개선`함; 2. 개인/공동체의 평화/번영이 아니라 세계평화 실현을 목표로 함--그래서 정치의식의 함양이 중요; 3. 그러나 가부장적 Do it아니라 무위와 조화의 지향하는 Feel it을 주장--게으른 보살이 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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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내면을 검색하라
차드 멩 탄 지음, 권오열 옮김, 이시형 감수 / 알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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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좌우된다."
고요하고 맑은 마음이 하는 일은 그 공간을 넓히는 것이다. (46)

엘린은 지혜를 담아 평상시처럼 차분하고 즐겁고 절제된 태도로 답해주었다. 그의 말은 단순했지만 지극히 심오한, 삶을 변화시키는 통찰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바로 행복이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허용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행복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란 사실, 이러한 깨달음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참 허탈하다. 유사 이래 인류는 행복을 움켜쥐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해왔는데 알고 보니 그저 숨쉬기에 유의하는 것만으로 지속 가능한 행복을 낚아챌 수 있었다니 말이다. 인생 참 재밌다. 적어도 내 인생은 그렇다. (63)

어떤 문제를 낳게 한 것과 동일한 사고방식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알베트 아인슈타인 (120)

깊은 자기 이해와 뻔뻔한 정직성은 자신에게 숨길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정확한 자기평가에서 나온다. ... 또 자신의 가장 소중한 열망과 가장 어두운 욕망에 대해 스스로에게 정직해지며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삶의 최우선순위와 무시해도 될 정도로 하찮은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결국 우리는 알몸 그대로의 자기 모습에 편안해지는 경지에 이르며 이때 자신이 모르는 수치스러운 비밀이 사라진다. 자신에 대한 문제 중 우리가 상대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이것이 자신감의 기초다. (131)

감각적 고통pain과 정신적 고통suffering은 질적으로 달라서 하나가 반드시 다른 하나를 뒤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것. (154)

마틴 셀리그만은 이를 '설명양식Explanatory Style'이라 칭한다. 이는 실패를 경험할 때 그것을 자신에게 설명하는 방식이다. 낙관적인 이들은 개인적인 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실패에 반응한다. 그들은 실패가 일시적이고 특별한 상황에 한정된 것이며 결국 노력과 능력에 의해 극복될 수 있다고 느낀다. 반면 비관적인 이들은 개인적인 무력감으로 실패에 반응한다. 그들은 실패가 장기적이고 인생 전반에 걸친 일반적인 현상이며 자신의 부족함 탓에 극복할 수 없다고 느낀다. (209)

옛날에 한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경건한 삶의 절반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인지요?"
스승이 대답했다.
"아니다. 경건한 삶 전체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다." (217)

자기인식과 공감 사이에는 흥미로운 관계가 있다. 자기인식능력이 높으면 공감능력 역시 높을 가능성이 크다. (219)

일대일 상호작용을 위한 공감기술을 배웠으므로 이제 좀 더 어려운 기술로 게임 수준을 높여보자. 바로 조직의 감정적 흐름과 권력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익힐 차례다. 이 기술은 흔히 '정치의식political awareness'이라 지칭된다. (247)

두 번째 핵심통찰은 모든 어려운 대화에는 내용과 그에 수반되는 감정 외에도 그보다 더 중요한 정체성의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정체성 문제는 가장 깊이 숨겨져 있고 표면화되지 않은 경우가 아주 많지만 대개는 그것이 가장 두드러진 문제다. (293)

한가한 시간에 세상을 구하라. (315)
......

게으른 보살

깊은 내면의 평화와
위대한 측은지심으로
매일 세상을 구하겠다는 열망을 품어라.
하지만 성취를 위해 애쓰지는 말라.
그저 마음 가는 일을 하라.
...
마음 가는 일이 무엇이든
그것이 바로 해야 할 일이므로.
그러므로 그대
지혜롭고 인정 많은 존재여
한껏 즐기면서 세상을 구원하라.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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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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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훌륭한 작품! 시의 반복 같은 독특한 문체와 꿈-장치를 통해 피어나는 기묘하고도 풍부한 현실감. 부모의 욕심으로 죽어서도 욕을 보는 손자와 아들의 죄를 견디다 못해 제 손으로 그 목숨을 거두는 조부가 하늘과 땅처럼 작품을 받치고 그 사잇공간에서 죽음과 광기와 재생의 축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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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씨 마을의 꿈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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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등불이 꺼지자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났다. (60)

"고칠 수 없다고 해도 고치려는 시도는 해 봐야지."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고칠 수 없으면 고치지 못하는 거지요. 이 병을 팅팅의 몸에 옮겨서 재가를 할 수 없게 만들 수만 있다면 전 죽어도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101)

"딩 선생님, 선생님께서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나무가 다 베어지면 마을이 마을 같지 않을 거에요. 전 관을 만들지 않아도 좋습니다. 사실 죽기 전에 집사람에게 붉은 비단저고리를 주고 싶었어요. 이 일은 결혼하기 전에 집사람에게 약속한 일이거든요. 사람이 죽고 나면 관이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마을의 나무가 전부 베어져 버리는데 말입니다." (261)

고열이 멈추지 않자 강해진 열병이 맹렬하게 공격해오는 바람에 죽은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이 세상과 이별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딩씨 마을과 할아버지와 삼촌 두 식구 곁을 떠나야 했다. 그녀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 삼촌과 딩씨 마을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발열로 인해 자고 있는 삼촌이 깰까 두려워 침대 밑으로 내려가 옷을 입고 바닥에 있는 돗자리 위에 누운 채 발열에 의해 사망한 것이었다. ...... 살포시 웃는 모습이 마치 죽기 전에 우리 삼촌에게 한 일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평생 만족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가는 미소를 띤 채 세상을 떠났다. (350)

"아버지, 제발 잊지 마세요. 앞으로 또 누가 예전에 피를 사고팔던 이야기를 거론하면 그게 전부 제 동생 딩량이 한 일이라고, 저 딩후이와는 애당초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하세요. 저 딩후이는 평생 매혈 우두머리를 한 적이 없다고 하시라고요." (372)

아버지는 내게 음친을 맺어주려 했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구한 여자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이름은 링즈였다. 내 누나뻘 되는 셈이었다. 그녀는 다리에 약간의 장애가 있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장애인데다 주기적으로 발작을 일어켰다. 사흘이 멀다하고 발작을 일으켰다. 그녀는 발작을 일으켜 강물에 뛰어들어 익사한 것이었다. 이번에 음친을 맺게 된 그녀는 결혼을 해보지 못하고 죽은 여자 혼령들 가운데 가장 못생긴 여자였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녀를 나와 맺어주려는 것이었다. (417)

"여보게, 다들 듣고 있지? 내가 좋은 소식 한 가지 알려주겠네. 내가 우리집 큰아들 딩후이를 때려 죽였다네. 뒤에서 몽둥이로 내리쳐 때려 죽였단 말일세...... ." (447)

다행히 그날 밤, 또 비가 내렸다. 그 쏟아 붓는 것 같은 소나기 속에서 할아버지는 드넓게 펼쳐진 평원 위에 한 여인이 손에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을 것을 보았다. 버드나무 가지에 진흙을 묻혀 높이 흔들고 있었다. 한 번 흔들자 당에 수많은 진흙 인간들이 생겨났다. 다시 한 번 진흙을 묻혀 흔들자 또다시 땅 위에 수천 수백의 진흙 인간이 생겨났다. 쉬지 않고 진흙을 묻혀 쉬지 않고 흔들어댔다. 땅 위에 온통 진흙 인간들이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진흙 인간은 비오는 땅에 물방울만큼이나 많았다. 할아버지는 새롭게 펄쩍펄쩍 뛰기 시작하는 평원을 보았다.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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