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중독 사회 - 첨단기술은 인류를 구원할 것인가
켄타로 토야마 지음, 전성민 옮김 / 유아이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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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

 

1. 213쪽의 haven은 번역이 잘못되었거나 영문을 잘못 썼거나.

2. 276-7쪽의 온정 계급은 영문으로 무엇인지? 혹시 paternalism을 말하나? 그렇다면 좀 이상함. 온정주의는 긍정적 의미로 잘 쓰이지 않는데, 이 책에서는 새로운 중산층의 자기초월 추세를 가리키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나?

 

이 책에서 나는 이처럼 기술의 미묘한 모순과 이 모순에 따르는 커다란 결과를 다루고자 한다. 즉, 기술이 사회에서 맡은 역할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 기술 산업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와 이것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우리에게 어떠한 혼란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알아보겠다. (13)

우리는 어릴 적 생물 수업 시간에 우리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배우고, 윤리 수업 시간에는 정부가 어떻게 일하는지를 배운다. 하지만 컴퓨터 수업 때에는 컴퓨터를 어떻게 쓰는지만 배우지 컴퓨터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배우지 않는다. (43)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복잡하지만, 나는 어떤 기술이 언제 좋고 언제 나쁜지, 그것을 먼저 알 수 있는지 쉽게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43)

"좋은 때는 정보 통신 기술로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고, 안 좋을 때는 정보 통신 기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어 버린다." (32)

즉 사람이 기술로부터 얻는 것은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다. 이는 당연해 보이지만, 그동안 기술사회학 관련 문헌에서는 중요한 주제가 아니었다. (62)

"사회를 해방시키려거든 그들에게 인터넷을 주면 된다." 이것이 바로 기술이상주의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기술로 굶주림을 끓어 냈던 스타트렉처럼 고님은 인터넷으로 독재정치를 뿌리 뽑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혁명에 직접 가담한 사람이 그렇게 말을 했는데, 이 말을 반박하면 무례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육에서 기술을 과대 선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셜 미디어가 민주주의적 변화의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은 면밀히 살펴보면 맞지 않다. (67)

일찍이 1996년, 즉 구글이 나오기 2년 전이자 페이스북이 나오기 8년 전이었을 때, ... 현재의 현상을 예측했었다. 두 사람은 "인터넷 사용자는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과는 상호작용을 최소화하는 반면, 비슷한 가치와 생각을 가진 사람과는 상호작용을 하려고 한다"고 기록했다. 두 사람은 이러한 현상을 `사이버발칸화...`라고 불렀고, 심리학자들은 이를 관심이 있는 자극에만 노출되려는 `선택적 노출...`라고 불렀다. 온라인 한편에서는 백인우월자들을 볼 수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유연애를 추구하는 히피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인터넷을 초월한다. 미국인 모두가 월터 크롱카이트... 앵커가 나오는 방송에 채널을 맞추고 똑같은 뉴스를 듣던 시대는 지났다. 사이버발칸화가 위험한 이유는 사람들이 점차 급진적인 성향을 띠면서 인내심이 사라지고 자신의 가치과 결정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으려 한다는 데 있다. (87)

저비용 기술이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아닌 이유는 디지털 격차가 어떤 격차의 원인이 아니라 하나의 증상이기 때문이다. 증폭의 법칙에서 볼 때, 기술은 가교가 아니라 기중기이다. 이미 있던 격차는 기술 때문에 더 벌어지고 있다. (90)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수동적으로 의도하는 것이므로 원치 않았던 결과에 잘못이 있는 것이다. 즉, 의도하지 않은 결과란 없다.

각주36) 새로운 기술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다. 따라서 그 결과를 예측하고 감시하고 관리하는 데 실패하는 것은 일종의 소극적인 의도가 된다. (329)

실행자는 패키지 개입을 실행하는 개인과 기관이다. 실행자는 기술을 설치하고 운영한다. 또한 제도를 구축하고 운영하며, 정책을 변경하고 발표하며 집행한다. 그리고 시스템을 구축하고 통제하며 관리한다. 실행자가 필수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실행자의 진가를 좀처럼 알아보지 못한다. 그라민은행 직원보다는 유누스 같은 리더만 인정받거나, 천연두 백신을 투여하는 의료계 종사자보다는 백신을 발견한 에드워드 제너...가 인정받거나, 타흐리르 광장에 있던 이름 모를 시위자보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한 와엘 고님이 인정받는다. 당사자들을 모두 호명해야 한다면 개입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할 수 없겠지만, 실행자를 간과하면 훌륭한 개입마저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또한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또 다른 특성이다. (117)

세 번째 이유는 잘못된 구현이다. 한 문장으로 로시는 사람들이 오늘날 소위 `예비시험 열병pilotitis`으로 불리는 이유는 정확히 집어내고 있다. 이것은 사회 프로그램이 예비시험 단계에서 잘되는 것처럼 보여도 대규모로 확대되면 실패한다는 것을 뜻한다. 로시는 "기량이 뛰어나고 헌신적인 사람이 소규모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과 YOAA...를 평상시처럼 덜 뛰어난 사람과 덜 헌신적인 사람에게 일을 시켜 운영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썼다. 즉, 예비시험은 보통 막대한 재능과 동기부여로 성공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무관심한 관려에게 넘어가면 그것은 실패하게 된다. 즉, 사회 프로그램의 성패는 프로그램 설계가 아니라 실행자에 달려 있다. (121)

물론 기술은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예컨대 투표로 시민의 권리를 강화할 수 있고, 소액신용대출로 생계를 넉넉하게 꾸릴 수도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다`가 항상 `그렇게 될 것이다`는 아니다. 현대사회는 기술 중심의 장치에 집착하고 있지만, 작동 스위치 위에는 사람의 손가락이 있으며, 조종부에는 사람의 손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압축 포장된 미봉책에 쉽게 반할까? 이유를 알면서도 왜 그것을 진정한 해법이라고 내세울까? 이러한 원인은 심오하며 오랫동안 논의가 계속되어 왔다. (125)

그러나 탐스는 한술 더 떠서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회사의 주목적이 자선인 것처럼 오해하게 하여 사람들의 선의를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자신이 과거에 좋을 일을 했다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미래의 무관심을 정당화하려는 성향이 있는데, 심리학자들은 이를 두고 `도덕적 자기 허용moral self-licensing`이라 부른다. 따라서 탐스의 많은 고개들은 보다 가치 있는 활동을 아껴서 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는 나이키에서 신발을 샀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 무엇보다 더 위험한 것은 사회적 자기 허용이 광범위해지는 것이다. 탐스와 같이 자신의 활동을 크게 선전하다 보면, 우리 사회가 계몽된 소비주의로써 세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에 빠질 수 있다. (144)
......
사회적 기업으로 진정한 사회 변화를 달성하는 것은 비영리단체보다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의 과대 선전으로 인해 사람들은 비즈니스의 성공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혼동하고 있다. (145)

우선 이 개념들은 모두 측정을 맹목적으로 숭배한다. ...... 따라서 백신 주입이든, 노트북 지급이든, 대출금 지급이든, 투표든지 간에 패키지 개입이 인기 있는 한 가지 이유는 바로 측정하기 쉽다는 것이다.
물론 측정은 발전 정도를 검증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다른 중요한 가치를 보지 못하고 측정 가능한 것만 우선시하게 될 위험이 있다. 우리는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알아도 휴대전화로 얼마나 유익한 통화를 하는지는 모른다. 우리는 투표자 수는 알아도 부당함에 항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위험을 무릅쓸지는 모른다. 언젠가 이런 무형의 것들도 계량화될지는 모르나, 그때 가서도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은 많이 있을 것이다. 격언에도 있듯이 `측정 가능한 것이라고 해서 모두 중요하지는 않다. 그리고 중요하다고 해서 모두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152)

2009년 ... 그는 "우리 모두 확신이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걸 재조명하고 재건해야만 한다. 개발 방식과 사회 모델과 더불어 우리가 원하는 문명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사르코지는 현대사회가 처해 있는 심각한 진퇴양난의 상황을 명확히 지적했다. 우리에게는 발전에 대한 정의와 방향성에 대한 보다 훌륭한 이야깃거리가 필요하다. 계몽주의는 본래 몬적을 달성했고, 기술 중심적인 가치 또한 훌륭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계속해서 이것들에 집착하고 있다. (160)

규칙2 사람의 올바른 영향력을 위해 패키지 개입을 사용하라: 간디는 녹색 재단이 이미 하고 있던 것을 관찰한 후 자신의 활동을 증폭하려고 기술을 사용했다. 또한 체계적이지 않았던 사회 추세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케냐의 경우,M-PESA로 불리는 모바일 송금 시스템으로 인해 도시에서 농촌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상당히 증가했다. 그것은 도시 이민 근로자들이 고향에 돈을 송금하는 문화 때문이었다. (171)

규칙3 패키지 개입의 무차별적인 확산을 피하라: 디지털 그린은 농부들과 친밀하며 능력이 있는 협력 단체하고만 일했다. 또한 어린이 교육 등 다른 영역으로 다각화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협력 다체가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술의 대량 확산 자체에 목적을 두는 건 자원 낭비이며 비생산적이다. (172)

그렇지만 진정한 문제는 모다 세심한 태도를 요하며 그것을 알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어보는 것이다. "어떤 긍정적인 결과가 증폭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부정적인 결과가 증폭되면 안 되는가?)" (187)

나는 때때로 내면적 성장에서 `지혜...`와 `미독...`이라는 단어를 혼용해서 사용하겠지만 이 단어들이 이상적이지 않은 이유는 백발의 노인이나 얌전한 젊은 처녀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내면적 성장은 나이나 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좋은 의도와 안목과 자기통제를 향상시키는 것이다. 즉, 개인을 전문가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차츰 위대한 내면적 성장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204)

이러한 통계는 일부 개발 전문가로 하여금 소녀의 교육이 세계 빈곤을 퇴치하는 특효약에 가장 가깝다고 여기게끔 한다. 하지만 이 수치에서는 교육이 넓은 범위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파트리노는 교육윽 농업과 연관시키지만 과연 학교교육이 농업과 관련이 있을까? 최신 교과과정에서는 농업을 가르치지 않는다. 왜 소녀가 이수한 초등교육이 훗날 자신의 아이 생존율에 영향을 미칠까? 소녀는 3학년 때 신생아 간호를 배우지 않는데 말이다. 이처럼 교육이 높은 평가를 받더라도 항상 타당한 이유로 평가받는 것은 아니다. 문법과 구구단, 이름과 날짜와 인지능력을 배우는 것을 교육이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있는 것읻. 생산적인 삶을 위해 지식이 필수라면 우리에게는 훨씬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217)

그냥 봐도 이러한 변화가 패키지 개입을 통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어떤 사람은 가전제품과 피임법이 사회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혁명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입은 출판 사산업에서 아마존의 효과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증폭하는 것이지, 주요한 원인은 아니다. 피임약은 1960년 미국에서 사용이 허가되었지만 미국의 여성운동은 적어도 1800년대 중반가지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 참정권은 1920년 에 이루어졌고, 1963년에 동일임금법이 통과되었다. 이러한 이정표를 지나면서 팽등을 위한 투쟁은 지속되었고, 여성 스스로 전면에 나서 싸웠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에 대한 국가의 관점이 바뀌면서 이를 뒷받침했다. 이 모든 힘은 측정하기 어렵고 하나로 묶기 힘들다. (264)

기술 중심적인 목표를 위한 목표를 위한 인센티브는 준비되어 있다. 남은 일은 본질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균형 있는 발전을 원하는 사람, 자기초월의 동기부여를 가진 사람, 진정으로 사회 변화를 원하는 사람에게 가장 의미 있는 활동은 기술 중심적인 가치로 지원받을 수 없다. 패키지 개입은 상대적으로 쉽지만 개인과 집단의 생각과 의지를 함양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가 원하는 건 더 많은 사람이 멀고 험한 길을 택하는 것이다. (305)

여기서 직접 맗하지는 않았지만 로시가 언급만 하고 체념했던 네 번째 문제가 있다. 그것은 패키지 개입의 수혜자에게 요구되는 것에 관한 내용이다. 로시는 수혜자에게 동기부여와 역량이 없다면 어떤 프로그램도 효과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이런 문제를 다루는 것 자체가 그 정책을 넘어섰다고 느꼈다. 로시는 `대규모의 인성 변화는 민주사회의 사회 정치 제도가 가진 영향력 그 이상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이 2부에서 다룰 중요한 내용이다. 나는 로시가 너무 쉽게 포기했다고 생각한다.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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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 유재현의 역사문화기행
유재현 지음 / 창비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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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이 실은 인도차이나전쟁이었다는 점 지적하고, 잊혀졌지만 사실 그 의미는 무지 깊은 베트남-캄보디아 전쟁의 존재 드러내고, 베-캄-라 삼국(을 같게 보는 것은 한-중-일 같다고 보는 거나 마찬가지)의 차이 보여준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책. 다만 베-캄 전쟁에 대한 독해는 일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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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 유재현의 역사문화기행
유재현 지음 / 창비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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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오다이는 가톨릭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가톨릭세력과 행보를 같이했던 것은 아니다. 베트남의 가톨릭세력이 프랑스 인도차이나 식민통치의 첨병역할을 하고 1954년 이후에는 남베트남 응오딘디엠... 독재정권의 버팀목이 되어준 동안에 까오다이는 불교와 함께 남베트남에서 반독재투쟁을 벌였던 양대 종교세력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핏줄보다는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31)

호찌민이 항상 틀렸다는 것도 아니지만 항상 옳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도 인간이었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한 인간이 좌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과오에 대한 평가 없이 호찌민 사후 그에 대한 베트남식 영웅화가 진행되면서 모든 과오가 묻혀버리고 재생산되었다는 데 있다.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략과 군사적 지배, 라오스에 대한 군사적 개입, 경제정책의 실패와 외교정책의 실패. 베트남 공산주의식 관료주의와 군사주의의 만연 등은 주변여건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호찌민이 남긴 과오의 재생산일 뿐이었다. 언젠가 그것이 이 위대한 혁명가의 모든 공을 덮어버리게 된다면 우리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혁명가 한 사람을 또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42)

또 하나, 쯔놈시로 유명한 여류시인 호쑤언흐엉...의 시조 한수.

금침...을 덮는 년과 추위에 떠는 년이 있으니,
시팔, 첩의 운명이다.
열 번 중에 다섯 번도 있을까 말까,
한 달에 두 번도 있으나마나.
매를 견디며 먹으려 하나 밥은 쉬었고
머슴살이와 같으나 새경을 주지 않는 머슴이구나.
이 몸이 이 길을 알았다면,
관두고 혼자 살았을 것을.

<첩살이>란 제목이 붙은 시이다. 강퍅한 여성의 처지를 단숨에 씹어뱉는 호기가 절로 느껴진다. (126)

5월에서 10월까지 계속되는 우기가 끝난 후인 1월은 건기이기는 해도 더위가 맹위를 떨치기 전으로 우리의 가을처럼 좋은 계절이다. 이때에 똔레삽 호수의 둑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은 원래 호숫가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달리 전통음식인 쁘라혹(Prahok)을 만들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다. 이들은 리얼(riel)이라는 물고기를 잡아 우리의 젓갈과 유사한 생선발효식품을 만든다. 쁘라혹이 크메르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음식인가는 캄보디아의 화폐단위가 리얼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214)

근현대사가 진행되는 동안 라오스는 전쟁의 소요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청해 전쟁에 뛰어들거나 앞서서 전쟁을 일으킨 적도 없다. 혁명을 했지만 혁명 뒤에 늘 따라오게 마련인 `피바다`에 주체를 못할 만큼 몸을 적시지도 않았다. 예컨대 공산주의정권이 들어서고 승려에 대한 시주를 금지했지만 불교신자들의 불만이 늘자 이내 쌀의 시주를 허용했던 것이 라오스였다. 덕분에 승려들은 절의 텃밭을 직접 일구면서 반찬만 스스로 알아서 해결했다. 사원에서 승려들을 모조리 몰아낸 베트남이나 캄보디아와는 달리 라오스는 공산주의와 불교가 오래 전부터 그럭저럭 양립하는 나라이기도 한 것이다. (288)

왕파오의 몽족군은 CIA와 미군 특수부대에게 훈련을 받았고, 병력 수는 1961년에 9천여명, 1969년에는 5만명에 달했다. 이들은 1964년부터 1973년까지 CIA와 미군의 비밀작전에 동원되어 빠뎃라오와 북베트남 정규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고 그 격전지는 북동부의 후아판지역과 시엥쿠앙지역이었다. 이 지역이 미군의 맹폭지역임은 앞서 말한 바 있다.
CIA가 나서 벌인 이 전쟁은 비밀전쟁이었으므로 미군은 전쟁 후 인도차이나에서 발을 빼면서 자신들이 훈련시키고 끌어들였던 몽족을 헌신짝처럼 내버렸다. 미국이 물러난 후 위기의식을 느낀 왕파오는 라오스를 떠날 것을 결정하고 태국 우돈의 CIA지부를 찾아가 몽족군 모두를 새로운 정착지로 철수시켜줄 것을 요구했지만 CIA는 C-130 수송기 한 대만을 보냈다. 1만명 이상이 몽족군의 거점이었던 롱첸으로 모여들지만 CIA는 사흘 동안 고작 1천여명만을 태국의 난민캠프로 수송하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 그러나 몽족의 엑소더스는 줄을 이어 산악지대의 능선을 걷고 메콩강을 건너고 태국 국경을 넘어 난민촌에 수용된 수는 1978년까지 5만여명을 넘었다.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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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슬픔 아시아 문학선 1
바오 닌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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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같이 세찬 흐름, 혼란스런 설정. 끼엔의 외부도 내부도 디테일이 너무 살아 있어 괴롭다.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전시성폭력. 그 생존자인 프엉은 끼엔과 절연하고, 대신 벙어리 여인이 그의 작품을 살려낸다. 슬픔이 결국은 삶으로 돌아서는 힘 되며 예술은 그 힘의 표현이라는 전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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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슬픔 아시아 문학선 1
바오 닌 지음, 하재홍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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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끼엔의 영혼을 흔들어 깨웠다. 끼엔에게도 한때는 젊은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지만 마음과 외양, 끼엔이라는 인간 자체가 아직 전쟁의 폭력과 야만에 훼손되기 전의 시절, 욕망과 도취와 열정으로 가슴에 거품이 가득 일던 시절, 어리석을 만큼 무모했던 시절이었다. 사랑의 고통으로, 질투와 회환으로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던, 지금의 저들처럼 사랑스럽던 시절이 그에게도 있었다. 아아! 전쟁이란 집도 없고 출구도 없이 가련하게 떠도는 거대한 표류의 세계이며 남자도 없고 여자도 없는, 인간에게 가장 끔찍한 단절과 무감각을 강요하는 비탄의 세계인 것이다. 끼엔에게는 자기의 영혼이 황폐해지는 것을 막을 기회가 없었다면 그의 젊은 부대원들만큼은 반드시 일상의 구속과 억압에서 벗어나 아직 남아 있는 사랑의 마지막 한방울이라도 누려야 했다. 내일이면 모두 사라져 버릴 것들이니. (47)

"그래, 곧 전쟁터로 간다지? 내 너를 말릴 생각은 없다. 난 이미 늙었고 넌 아직 젊은데 네 의지를 어찌 꺾을 수 있겠느냐. 다만 내 마음을 이해해 주면 좋겠구나. 세상에 대한 인간의 의무는 살아가는 것이지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란다. 그것은 삶의 여러 가지를 두루 경험하는 것이지 거부하는 게 아니야.... 네게 목숨이 가장 중요하다는 충고를 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네가 죽음으로써 무언가를 보여 주려는 인간의 모든 유혹을 경계하길 바란다. ..."
놀라웠다.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끼엔은 의붓아버지의 말에서 신의를 느꼈다. ... 그리고 문득 왜 어머니가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이 여린 남자에게 갔는지 이해할 것도 같았다. (80)

"네 어머니와 나의 시대는 끝났다. 아들아... 지금부터 넌 혼자다.... 최선을 다해 네 시대를 살아가야 해. 이제 곧 새 시대가 올 거야. 눈부시게 아름답고 멋진 시대가.... 커다란 불행 같은 건 없을 게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슬픔이란 것은 사라지지 않겠지.... 여전히 슬픔은 남을 거야.... 슬픔은 대를 이어 계속되겠지. 아버지가 네가 남겨 줄 거라곤 아무것도 없구나. 슬픔이란 것밖에는...."
아버지는 그림조차 남겨 주지 않았다. 평생 동안 쉬지 않고 그리고 또 그렸던 소중한 보물들을 몽땅 불태워 버렸다. 죽음의 신이 저승길을 재촉하는 것을 예감한 어느 날 밤, 아버지는 당신의 그림을 한 점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불태웠다. ... 인생의 소중한 세월을 한참 더 흘려보내고 나서야 끼엔은 아버지의 마지막 말에 담겨 있던 고통과 괴로움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고,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에 자신에게 중요한 말을 남기고 싶어 했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168)

베트남-미국 전쟁에서 나는 그와 같았고, 평범한 병사들과 같았다. 같은 운명으로 수많은 우여곡절, 승리와 패배, 행복과 고통, 잃은 것과 남은 것을 함께 나누었다. 그러나 우리들 개개인은 전쟁에 의해 각자의 방식으로 파멸되었다. 개개인의 마음속에서 개별적인 전쟁을 시작한 날부터 공통의 전투와는 전혀 다른 싸움을 따로 하게 되었다. 사람에 대해, 전쟁 시절에 대해 가슴 깊은 곳의 인식이 지극히 달랐으며, 당연히 전후의 운명이 제각각 달랐다. 우리가 서로 같다고 말할 수 있는 점은 전쟁에 쫓고 쫓기는 심각한 과정 속에서, 서로 완전히 같아 보이는 환경이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처지에 처해 있었다는 것이다. (324)

그러나 우리는 같은 슬픔, 전쟁의 거대한 슬픔,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행복보다 고귀한, 고상한 슬픔을 가지고 있었다. 슬픔 덕에 우리는 전쟁을 벗어날 수 있었고, 만성적인 살육의 광경, 무기를 손에 쥔 괴로운 광경, 캄캄한 머릿속, 폭력과 폭행의 정신적 후유증에 매몰되는 것도 피할 수 있었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길은 아마도 전혀 행복하지 않고 죄악이 가득할 수 있지만 그것만이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삶의 길이다. 왜냐하면 평화로운 시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분명 그것이 작가가 작품에서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으리라.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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