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A를 보면서, `역시, 이 친구들은 행복하구나!` 하고 절실하게 느꼈다. 이것 또한 진심이다! 매일같이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생활이란 결국 `배고파!`, `졸려!`, `쉬 마려!` 등의 본능적인 요구에 반복적으로 시달리는 것이다. 거기엔 진의니 속셈이니 술책이니 하는 것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따라서 눈앞에 가엾은 사람이 있으면 느끼는 그대로 `아, 얼마나 가엾은 사람인가!`라고 말하는 게 그들의 생활에서는 거의 유일한 진실일 것이다. 그렇게 명쾌한 생활이 행복하지 않을 리 없다. (18)
혼자 사는 여자가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주거 조건이란, 말하자면 `정리정돈, 안전, 중용` 이렇게 세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집에 불이 꺼져 있다는 사실에 편안함을 느낀다. 집에 돌아오기 직전까지 데이트를 즐겼다고 하더라도 자기 손으로 열쇠를 열고 고요하게 어둠이 가라앉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 드디어 혼자다!`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67)
오페라뿐만이 아니다. 해외에서 유명하다는 뮤지컬은 기본이고 작은 소극장에서 하고 있는 연극에 전통적인 마당놀이까지 그녀들의 관심 분야는 참으로 넓고도 깊다. 불경기가 어떻고 사회상이 어떻고 해도, 문화적인 공연의 열기가 식지 않는다는 건 역시 혼자 사는 여자들의 힘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붐을 이끌어 가고 있는 주역이 바로 혼자 사는 여자들인 것이다. (107)
그런 나에게 중독 증상이 없을 리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공연관람 취미에는 이미 오래전에 감염되었다. 오페라도 보고, 이름난 산이란 산은 다 돌아다니고, 붓글씨도 배우고, 고전문학도 틈틈이 읽었다. 앞으로 기회만 되면 장구도 배우고 싶고, 다도도 배우고 싶고, 도자기의 고장도 들러보고 싶다. 또한 나에겐 수예 중독도 의심된다. 나는 십자수가 좋다. 시종일관 십자의 바늘땀을 놓아가면서 조금씩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그 단순 작업의 반복으로 인해 구축되어 가는 환상의 세계, 그것을 보는 충족감이라니! (116)
노처녀들이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지적 호기심이라는 듣기 좋은 말을 앞세워 오페라를 보는 것처럼, 결혼한 여자들은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사랑이니 모성이니 하는 말로 포장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다. 여성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80년이라는 오랜 인생의 여가를 때우기 위해,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중독 대상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장하고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중독에도 귀천은 없다!" (118)
외관만 보면 개인차가 있을지 몰라도 노처녀의 내면은 이미 노화가 상당히 진척된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독신에게는, 자기만 생각하는 시간이 노인들처럼 많기 때문이다. 기혼자들이 결혼 생활의 유지와 자녀 양육을 위해 기를 쓰고 발버둥치는 동안, 그녀들은 오로지 자기를 뒤돌아보고 반성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틀렸다` 하고 궁리를 하는 동안에 정신은 이미 닳고 닳아서 노인 특유의 체념 같은 것이 자리잡게 된다. (138)
내 주변을 둘러볼 때, 결코 남 얘기 할 건 아니지만, 이 여자 참 무섭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는 걸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자이다. 즉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나, 이래 보여도 젊다는 얘기 많이 들어요! 내 나이로 도저히 안 보인대나 어쩐대나......` 하는 말을 무슨 자랑처럼 강조하고 다니는 여자일 경우가 많다. 그들은 진짜 젊은이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아직 버리지 못한 데다가 `나처럼 젊고 싱싱한 사람이 무서울 리 없지!` 라고 스스로의 공포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무섭다. (148)
하니만 노처녀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노처녀의 2대 특징은 바로 `무섭다`와 `순수하다`이다. 동년배의 주부와 노처녀를 비교해 보면, 그들의 순수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151) ......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진짜 의미는 뭘까, 요즘 나는 이렇게 종종 생각해`라거나 `사람을 믿는다는 게 과연 어떤 것일까? 지금까지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라고 말하는 노처녀의 눈가에는 어제오늘 새로 생겼을 주름이 깊게 새겨져 있지만 눈망울만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만약 신흥종교 관계자가 신도의 확대를 원한다면, 지금이야 말로 노처녀를 노릴 때라고 말해 주고 싶다. (157)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 및 정부 당국의 공무원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늦은 결혼이나 출생률 감소와 같은 문제는 여성을 어떻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제부터라도 명심 또 명심해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오타쿠 남성이 현실 세계의 여자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책을 개발해 주시고, 소극남이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연애를 할 수 있도록 세뇌를 시키고, 여비남에게는 주제도 모르는 높은 이상을 버리도록 명할 것이며, 추남에게는 좀더 자신감을 가지고 밀어붙일 수 있도록 지도 계몽하고, 실패남은 실패 요인을 고치도록 선도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미래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도 이것이 가능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174)
유럽이나 미국처럼 커밍아웃이 일반화되지 않은 일본에서는, 독신여성과 게이의 교류는 아직 거의 성립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이 친구 대신이 되어 줄 존재가 필요하게 되고, 그 존재가 바로 절대 연애 감정이 생길 것 같지 않은 남자 소꿉친구들이다. 나에게도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어릴 적 남자친구가 하나 있다. 일단 직장이 없는 관계로, 평일이든 한밤중이던 언제든지 전화를 걸 수 있고, 신세 한탄을 하고 싶을 때도 편하다. 한밤중에 전화로 수다를 떠노라면, 비록 성은 다를지라도 인생의 샛길로 빠져 버린 사람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연대감 같은 걸 느끼고는 한다. (219)
여성잡지를 읽다 보면 `전 남자친구가 생기지 않아서 고민이에요`라는 상담 내용에, 카운슬러를 자처하는 사람이 마치 `미혼 바이러스`가 감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렇게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절대 같은 입장에 있는 여자들끼리만 서로 어울려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노처녀끼리의 우정을 키우는 건 어리석음의 극치를 달리는 것이라는 말이다. ......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다. 노처녀에게 있어 우정은, 없어서는 안 될 오아시스며 동아줄이라고 말이다. (227)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난 것일까?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 하게 된다지만, 아무리 되짚어 봐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 그런데 노처녀가 되고 나서 나는 생각한다. `노처녀는, 무엇 때문에 노처녀가 되었는가?` 라는 것을. ...... 그럼에도 세상에 이 정도로 많은 노처녀가 있다는 사실은, 그래도 뭔가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겠느냐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 의미도 없이, 신께서 이렇게 대량의 노처녀를 만들어 내실 리가 없지 않느냐고 말이다. (242)
주부잡지 계열의 여성지가 세상의 여성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심하지 말라!` 라는 것이다. `나는 정말 이대로 좋을가,진정한 나란 누구인가?` 이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의문을 품고 매일같이 후회하고 고민하지 말고, `남편과 아이와 돈과 멋을 얻는 게 곧 행복`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의심하지 않는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 이 잡지들의 편집 목표이다. (262)
여기까지 오는데 이래저래 참 많은 이야기를 해왔지만, 진정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어떤 연예인 오빠를 쫓아다니든 프랄멩코를 추든 박사학위를 받든, 다시 말해 어떤 불길한 기운을 드리우고 다니든 노처녀 본인은 알 바 아니다. 노처녀 여러분! 앞으로도 주저하지 말고 달리고 달려서, 끝 간 데까지 뚫고 나가기를 바란다.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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