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재발견 1 - 마케이누(負け犬)의 절규
사카이 준코 지음, 김경인 옮김 / 홍익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웃다 쓰러짐! 톡톡 끊어지는 일어 단문체에 가장 효과적인 글이 이런 시크한 세태만평인 듯. 스스로 `노처녀`된 입장에서 '일본 노처녀와 그 사회'를 갖고 놀면서 파고드는데, 사적인 테마를 이렇게 맨 얼굴로 상대하는 것도 재주고 내공. 03년 이후 어떻게 진화하셨는지 최근 나온 책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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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재발견 1 - 마케이누(負け犬)의 절규
사카이 준코 지음, 김경인 옮김 / 홍익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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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A를 보면서, `역시, 이 친구들은 행복하구나!` 하고 절실하게 느꼈다. 이것 또한 진심이다!
매일같이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생활이란 결국 `배고파!`, `졸려!`, `쉬 마려!` 등의 본능적인 요구에 반복적으로 시달리는 것이다. 거기엔 진의니 속셈이니 술책이니 하는 것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따라서 눈앞에 가엾은 사람이 있으면 느끼는 그대로 `아, 얼마나 가엾은 사람인가!`라고 말하는 게 그들의 생활에서는 거의 유일한 진실일 것이다. 그렇게 명쾌한 생활이 행복하지 않을 리 없다. (18)

혼자 사는 여자가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주거 조건이란, 말하자면 `정리정돈, 안전, 중용` 이렇게 세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집에 불이 꺼져 있다는 사실에 편안함을 느낀다. 집에 돌아오기 직전까지 데이트를 즐겼다고 하더라도 자기 손으로 열쇠를 열고 고요하게 어둠이 가라앉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 드디어 혼자다!`라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67)

오페라뿐만이 아니다. 해외에서 유명하다는 뮤지컬은 기본이고 작은 소극장에서 하고 있는 연극에 전통적인 마당놀이까지 그녀들의 관심 분야는 참으로 넓고도 깊다.
불경기가 어떻고 사회상이 어떻고 해도, 문화적인 공연의 열기가 식지 않는다는 건 역시 혼자 사는 여자들의 힘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붐을 이끌어 가고 있는 주역이 바로 혼자 사는 여자들인 것이다. (107)

그런 나에게 중독 증상이 없을 리 없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공연관람 취미에는 이미 오래전에 감염되었다. 오페라도 보고, 이름난 산이란 산은 다 돌아다니고, 붓글씨도 배우고, 고전문학도 틈틈이 읽었다. 앞으로 기회만 되면 장구도 배우고 싶고, 다도도 배우고 싶고, 도자기의 고장도 들러보고 싶다.
또한 나에겐 수예 중독도 의심된다. 나는 십자수가 좋다. 시종일관 십자의 바늘땀을 놓아가면서 조금씩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그 단순 작업의 반복으로 인해 구축되어 가는 환상의 세계, 그것을 보는 충족감이라니! (116)

노처녀들이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지적 호기심이라는 듣기 좋은 말을 앞세워 오페라를 보는 것처럼, 결혼한 여자들은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사랑이니 모성이니 하는 말로 포장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다.
여성의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80년이라는 오랜 인생의 여가를 때우기 위해,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중독 대상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장하고 있다.
"직업에 귀천이 없듯이 중독에도 귀천은 없다!" (118)

외관만 보면 개인차가 있을지 몰라도 노처녀의 내면은 이미 노화가 상당히 진척된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독신에게는, 자기만 생각하는 시간이 노인들처럼 많기 때문이다.
기혼자들이 결혼 생활의 유지와 자녀 양육을 위해 기를 쓰고 발버둥치는 동안, 그녀들은 오로지 자기를 뒤돌아보고 반성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틀렸다` 하고 궁리를 하는 동안에 정신은 이미 닳고 닳아서 노인 특유의 체념 같은 것이 자리잡게 된다. (138)

내 주변을 둘러볼 때, 결코 남 얘기 할 건 아니지만, 이 여자 참 무섭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는 걸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자이다. 즉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나, 이래 보여도 젊다는 얘기 많이 들어요! 내 나이로 도저히 안 보인대나 어쩐대나......` 하는 말을 무슨 자랑처럼 강조하고 다니는 여자일 경우가 많다.
그들은 진짜 젊은이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아직 버리지 못한 데다가 `나처럼 젊고 싱싱한 사람이 무서울 리 없지!` 라고 스스로의 공포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무섭다. (148)

하니만 노처녀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노처녀의 2대 특징은 바로 `무섭다`와 `순수하다`이다. 동년배의 주부와 노처녀를 비교해 보면, 그들의 순수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151)
......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진짜 의미는 뭘까, 요즘 나는 이렇게 종종 생각해`라거나 `사람을 믿는다는 게 과연 어떤 것일까? 지금까지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라고 말하는 노처녀의 눈가에는 어제오늘 새로 생겼을 주름이 깊게 새겨져 있지만 눈망울만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만약 신흥종교 관계자가 신도의 확대를 원한다면, 지금이야 말로 노처녀를 노릴 때라고 말해 주고 싶다. (157)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 및 정부 당국의 공무원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늦은 결혼이나 출생률 감소와 같은 문제는 여성을 어떻게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제부터라도 명심 또 명심해 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오타쿠 남성이 현실 세계의 여자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정책을 개발해 주시고, 소극남이 책임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연애를 할 수 있도록 세뇌를 시키고, 여비남에게는 주제도 모르는 높은 이상을 버리도록 명할 것이며, 추남에게는 좀더 자신감을 가지고 밀어붙일 수 있도록 지도 계몽하고, 실패남은 실패 요인을 고치도록 선도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미래는 상당히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도 이것이 가능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174)

유럽이나 미국처럼 커밍아웃이 일반화되지 않은 일본에서는, 독신여성과 게이의 교류는 아직 거의 성립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게이 친구 대신이 되어 줄 존재가 필요하게 되고, 그 존재가 바로 절대 연애 감정이 생길 것 같지 않은 남자 소꿉친구들이다.
나에게도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어릴 적 남자친구가 하나 있다. 일단 직장이 없는 관계로, 평일이든 한밤중이던 언제든지 전화를 걸 수 있고, 신세 한탄을 하고 싶을 때도 편하다.
한밤중에 전화로 수다를 떠노라면, 비록 성은 다를지라도 인생의 샛길로 빠져 버린 사람들끼리만 느낄 수 있는 연대감 같은 걸 느끼고는 한다. (219)

여성잡지를 읽다 보면 `전 남자친구가 생기지 않아서 고민이에요`라는 상담 내용에, 카운슬러를 자처하는 사람이 마치 `미혼 바이러스`가 감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렇게 대답하는 경우가 있다.
"절대 같은 입장에 있는 여자들끼리만 서로 어울려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이론에 따르면, 노처녀끼리의 우정을 키우는 건 어리석음의 극치를 달리는 것이라는 말이다.
......
그러나 나는 말하고 싶다. 노처녀에게 있어 우정은, 없어서는 안 될 오아시스며 동아줄이라고 말이다. (227)

나는 무엇을 위해 태어난 것일까?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 하게 된다지만, 아무리 되짚어 봐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 그런데 노처녀가 되고 나서 나는 생각한다. `노처녀는, 무엇 때문에 노처녀가 되었는가?` 라는 것을.
......
그럼에도 세상에 이 정도로 많은 노처녀가 있다는 사실은, 그래도 뭔가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겠느냐고 나는 생각한다. 아무 의미도 없이, 신께서 이렇게 대량의 노처녀를 만들어 내실 리가 없지 않느냐고 말이다. (242)

주부잡지 계열의 여성지가 세상의 여성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심하지 말라!` 라는 것이다.
`나는 정말 이대로 좋을가,진정한 나란 누구인가?`
이처럼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의문을 품고 매일같이 후회하고 고민하지 말고, `남편과 아이와 돈과 멋을 얻는 게 곧 행복`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의심하지 않는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 이 잡지들의 편집 목표이다. (262)

여기까지 오는데 이래저래 참 많은 이야기를 해왔지만, 진정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어떤 연예인 오빠를 쫓아다니든 프랄멩코를 추든 박사학위를 받든, 다시 말해 어떤 불길한 기운을 드리우고 다니든 노처녀 본인은 알 바 아니다. 노처녀 여러분! 앞으로도 주저하지 말고 달리고 달려서, 끝 간 데까지 뚫고 나가기를 바란다.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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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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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초시공 죽음론. 단 이 죽음은 무덤 속 어둠이 아니라 삶이란 비루한 대낮에 스치는 한 줄기 시원한 바람 같은 것. 이 바람 지각하고 매혹되었던 사람들 중에 문학에 기대어 안간힘 다해 그 선 넘지 않았던 엄마와 그 엄마가 욕망했던 삶 살고 평생 글로 쓰고 훌쩍 선 넘어 날아간 아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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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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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좋은 하루라고 느끼며 일할 준비를 하면서도 아직 일에 착수하지 않은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가장 신기한 시간 중 하나다.
지금 이 순간에는 앞으로 펼쳐질 시간들이 주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그녀의 마음은 흥얼흥얼 노래를 읊조린다. 오늘 아침 그녀는 혼미함을 극복하고, 말하자면 막힌 파이프를 뚫고 황금에 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서 형언하기 어려운 제2의 자아를, 혹은 조금 더 순수한 자아를 느낄 수 있다.
......
생기를 북돋우는 이 세상의 신비들을 인지하는 것이 내적 능력인데, 그녀가 매우 운이 좋을 때는 그런 능력을 빌려 곧장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녀는 그런 상태에서의 글쓰기를 가장 만족스럽게 여기지만, 그에 접근하는 행운은 아무 예고도 없이 왔다가 이내 사라져버린다. 그녀는 펜을 집어들고 종이 위를 움직이는 펜에 손을 내맡길 것이다. (54)

그를 조금만 더 알게 되면, 그에게 그대란 존재는 그 자신이 비극과 희극을 엮어내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능력으로 창조해낸, 본질적으로 허구인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것도 그 허구의 인물은 그대의 진정한 본질이 아니라, 리처드 자신이 극단적이고 당당한 인물들이 사는 세상에 살 필요가 있어서 만들어낸 그런 인물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머릿속에서 구상된 서사시 속의 한 존재가 되어 그의 삶과 열정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 남느니, 차라리 그와의 관계를 청산하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클래리사를 포함한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그가 불어 넣어주는 `과장의 느낌`을 즐기다가 결국, 그 느낌에 의지하여 살게 된다. 아침에 정신을 맑게 하기 위해서 커피 한잔을 마시거나 밤에 정신을 흐리게 하려고 한두잔의 술에 의존하듯. (89)

"솔직히 말해 딱 한 가지를 빼고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 정말로 나는 당신에 대해서, 우리 둘에 대해서 쓰고 싶었어. 내 말 알겠어? 우리가 꾸리고 있는 삶과 우리가 가졌을지도 모르는 삶에 대한 모든 것을 쓰고 싶었어. 우리가 죽을 때 선택할지 모르는 모든 방식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고." (97)

버지니아는 클래리사 댈러웨이에게 하녀들을 다루는 탁월한 솜씨를, 친절하면서도 위엄 있는 태도를 부여할 것이다. 클래리사 댈러웨이의 하녀들은 그녀를 사랑할 거야. 그들은 그녀가 주문하는 것 이상을 해낼 거야. (124)

클래리사는 이 모든 것을 다 잘 알면서도 그것들로부터 멀찍이 서 있다. 그녀는 자신의 귀신의 존재를 느낀다. 도저히 파괴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하면서도 더없이 흐릿한 그녀의 한 부분을, 아무 것도 갖지 않은 그녀의 한 부분을, 그리고 한 줄로 늘어선 노란색 항아리들과 빵 한 조각 달랑 놓여 있는 조리대, 그리고 물 한 방울이 가늘게 떨다가 무게를 얻어 떨어지는 크롬 수도꼭지를 박물관을 찾은 여행자처럼 경외감과 초연함으로 관찰할 수 있는 그녀의 한 부분을 느끼는 것이다. (129)

엔젤리카가 여전히 풀을 뽑느라 바삐 움직이면서 대답한다. 앤젤리카와 장미 정원으로 향하기 전에 버지니아는 한동안 바네사의 손을 잡은 채 서서 아이들을, 마치 그 아이들이 뛰어들든지 말든지 해야 하는 물이 가득한 수영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성취라고 버지니아는 생각한다. 이야기 속의 값싼 실험들이 낡은 사진들이나 가장복...들, 그리고 할머니가 마음속으로 창조해낸 풍경을 그린 도자기 접시들과 함께 사라져버린 뒤에도 이런 일은 여전히 살아남을 것이다. (165)

문을 열어주고 거의 현기증을 느낄 만큼 부푼 기대감을 달래며 현관으로 나간다. 너무도 강렬하고 독특한 그 감정은 다른 상황에서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어서 그녀의 언젠가 그 감정의 이름을 그냥 루이스의 이름을 따서 짓기로 작정했다. 그것은 그냥 루이스 감정이다. 헌신과 죄의식, 매력과 무대 공포증 같은 요소,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한 희망이 그 감정을 관통하여 흐른다. 루이스가 나타날 때면 언제나 그가 매우 반가운 뉴스 한 토막을, 그것도 너무나 훌륭해서 그 범위나 심지어 정확한 본질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그런 뉴스를 들고 올 것 같다. (172)

그녀는 공포...에 질렸다. 아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그녀는 누워보려고 몇 분 동안 애를 썼다. 책을 읽어보려고도 노력했지만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아이와 케이크, 그리고 키티와 나눈 키스로 인해 힘이 다 소진된 듯 공허한 기분을 느끼면서 두 손으로 책을 잡고 침대에 누웠다. 차양을 내리고 침대 머리맡의 등을 켜고 책을 읽으려 애쓰면서 침대에 누웠을 때, 그녀는 이게 사람들이 미친다고 하는 그것인가 하고 궁금해졌다. 이런 식으로 상상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발광하고 있는 누군가...를 생각할 때면 그녀는 비명과 울부짖음, 환각을 떠올렸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미치는 것에도 다른 길이, 훨씬 더 조용한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감각이 무디고 절망적인데다 기운마저 없는 나머지, 슬픔같이 강렬한 감정조차 위안이 될 수도 있는 그런 방식 말이다. (196)

그래도 그녀는 삶을 끊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기쁘다(그녀가 돌연히 알게 된다). 가능한 모든 선택을 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에는, 그리고 어떤 두려움이나 교활함도 없이 그대의 모든 선택을 고려해보는 행위에는 커다란 위안이 담겨 있다. 그녀는 버지니아 울프를, 순결하고 불안하고 일상의 삶과 예술의 불가능한 요구 사이에서 좌절감을 느낀 울프를 상상해본다. 버지니아 울프가 주머니에 돌을 넣고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걸음걸이를 상상해본다. 로라는 계속해서 자신의 배를 문지른다. 그것은 아마 호텔에 투숙하는 일만큼이나 쉬울 수도 있어, 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사실 그것은 호텔 투숙보다 더 간단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211)

한편 클래리사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기꾼, 넌 내 딸은 속였지만 나를 속이지는 못해. 침략자는 척 보면 알아. 돈을 호기 있게 쓰는 것 따위에 대해서도 훤하게 알아. 그건 어렵지 않지. 만약이 네가 큰 소리로 몇 시간 동안 외친다면 군중들은 그 소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모여들 거야. 군중들의 심리란 게 원래 그런 거니까. 하지만 그들은 오래 머물지 않아. 네가 그 사람들에게 그 자리에 남아 있을 동기를 충분히 부여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너는 더없이 공격적이고, 권력을 키우고자 애쓰는 대부분의 남자들 못지않게 저질이야. 너의 시절은 왔다가 이내 사라지고 말 거라고. (224)

샐리와 클래리사는 서로의 애정에 인색하지 않다. 물론 그런 애정이 좋지만, 지금 샐리는 집에 가서 그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를, 달콤함과 편안함뿐 아니라 열정을 훨씬 초월하는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다.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죽은 모든 사람과 관계있으며, 그것은 또한 형용하기 어려운 행운과 코앞으로 닥쳐오는 통렬한 상실에 대한 그녀의 예감과도 관계가 있다. 클래리사에게 어떤 일이라도 닥친다면, 샐리의 삶은 계속되겠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절대 정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은 환희뿐만 아니라 환희의 다른 반쪽인 끊임없는 두려움과도 관계있다.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견딜 수 있어도 클래리사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254)

"그녀를 기억해? 당신의 또 다른 당신 말이야. 그녀는 지금 무엇이 되어 있을까?"
"이 몸이 그 여자야. 내가 그 여자라고. 나한테는 당신이 안쪽으로 몸을 거둬들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아. 제발 그렇게 해, 응?" (273)

그에게 말을 걸고 싶지만, 이제 그렇게 할 수 없다. 그저 머리를 살짝 그의 등에 대어볼 뿐이다. 만약 말을 걸 수만 있다면 그녀는 그가 어떻게 하여 창작에 대한 용기를 잃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가장 중요할 텐데,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거센 비난에도 어떻게 남다른 사랑을 할 용기를 가졌는지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할 것이다. 아울러 그녀 자신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그를 사랑했고, 정말로 무지무지 사랑했으면서도 삼십 년도 더 전에 어느 길모퉁이에서 그를 떠나야 했던(그리고 사실 그 외에 그녀가 할 수 있었던 일이 달리 뭐가 있었을까?) 사연에 대해 그에게 말하고 싶다. (280)

그녀는 비교적 일상적인 삶...을 향한 욕망에 대해, 그리고 그가 그녀의 파티에 나타나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헌신을 보여주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에 대해서도 고백하고 싶어진다. 결국엔 그가 목숨을 버리는 날이 되고 말 바로 그날에도 그의 입술에 키스하기를 주저하고, 혼자 마음속으로는 오직 그의 건강을 위해서 그렇게 했노라고 위로했던 사실에 대해서도 용서를 빌고 싶다. (280)

몇몇 사람은 창에서 뛰어내리거나 스스로 물에 빠지거나 알약을 삼킨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대부분의 절대 다수는 서서히 어떤 질병에 먹히거나, 아니면 아주 행운아라면 세월에 먹힌다. 위로 삼을 것이라곤 아주 간혹 우리의 삶이 아주 뜻밖에도 활짝 피어나면서 우리가 상상해왔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안겨주는 그런 시간들이 있다는 점이다. 비록 아이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그리고 심지어 어린이들까지도) 이런 시간 뒤에는 불가피하게 그보다 훨씬 더 암울하고 어려운 다른 시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 인간은 도시를, 그리고 아침을 마음에 품는다. 무엇보다도 우리 인간은 더 많은 것을 희망한다.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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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조정래 감독, 강하나 외 출연 / KD미디어(케이디미디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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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 배려해 잔혹의 수위를 많이 낮춘 듯하다. 주제와 효과에서 모두 한국전통무속을 깊이 들여왔는데 때로 심한 신파조라 거부감도 들었으나 상영후 등장한 감독 말로는 `작정하고 한 일`이란다. 물가 굿판 장면에서 나타난 일본병사들에 소름 쫙. 참았던 눈물이 할머니들의 그림에서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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