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
에드워드 권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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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있는 요리사들 책을 읽다 읽으니 확실히 젊은 사람의 투지 향상심 호승심 돋보임. 한국 직업사회의 후진성, 요리계도 한치도 다르지 않음. 이 분이야 극복했지만 그렇지 못했을 여린 영혼들은? 요리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정당하게 질책하는 손님의 존재가 요리계를 발전시킨다. 좋은 손님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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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별을 요리하다
에드워드 권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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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러한 결심을 리츠칼튼에서 함께 일하던 외국인 총조리장에게 이야기했다. 그는 집안 형님처럼, 학교 선배처럼 진지하고 성의있는 태도로 내 말을 끝까지 경청해주었다. 사실 한국의 조직문화에서 말단직원이 까마득한 상사에게 답답한 속내를 드러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총조리장이 외국인만 아니었다면 가까이 다가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을 것이다. (84)

그 사건 이후 나의 요리인생은 다시 시작되었다. 기초부터 다시 다져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매일 퇴근길에 슈퍼마켓에 들렀다. 내게 미국의 슈퍼마켓은 서울의 서점과 같은 의미였다. 수많은 치즈와 해산물, 다양한 육류와 가공식품들이 바로 살아 있는 요리책이었다. 아이쇼핑에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는 그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모든 점원들이 나를 알아볼 정도가 되었다. 처음에는 수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살피던 그들도 나의 직업을 알게 된 후로는 웃으며 이해해주었다. (100)

한국의 주방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대번에 불호령이 떨어지거나 해고를 각오해야 할 만한 사태였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요즘에는 한국도 많이 변해가고 있다지만, 그래도 당시의 내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관경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조리장인 에릭이 그 젊은 친구의 이견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106)

그날도 어김없이 사비에르는 5시를 좀 넘겨 출근을 했고, 나는 이미 대걸레를 들고 주방의 바닥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내 모습을 보자마자 그는 나는 밀치고 대걸레를 빼앗았다. 그때 그가 한 말이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다.
"에드워드, 내가 있는 이유는 당신 같은 후배요리사들이 더욱 일에 정진하고 노력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기 위해서네. 청소 같은 건 내게 맡기고 당신은 당신 할 일을 하라고."
기업으로 말하면 상무급 임원이 대걸레로 바닥 청소를 자청한 셈이다. 한국사회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파격이었다. (111)

세계인을 상대로 우리 고유의 맛을 소개할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내가 택한 방식은 세계인들을 한식으로 끌어들이기보다 한식을 자연스레 그들 가까이 놓아두는 것이다. 커다란 연회가 있을 때 전체 메뉴의 조화 속에 한두 가지의 한국음식을 꺼워넣어본다. 그리고 외국인들의 반응을 살피고 평가를 받는다. 몇 차례의 시도 끝에 그들의 입맛에 통하는 한식의 맛을 찾아내고 그 식재료를 분석한다. 그 다음에는 한식의 식재료를 가지고 더욱 다양한 음식과 메뉴로 확산시켜 나간다. (127)

물론 오산이었다. 외국생활을 하는 동안 외국인들로부터 받아야 했던 상처보다 한국에서 받게 될 상처가 훨씬 크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 일일이 찾아다니며 삼고초려를 해도 예전의 후배 밑에서 일을 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조리장은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그래도 요리사라는 작업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만 있다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역시 오산이었다. (155)

다음날에는 어김없이 새벽 6시에 출근을 했다. 총조리장이 새벽부터 웬 청승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외국에서 일을 하면서 스스로 길들여진 것은 ‘남보다 한두 시간 먼저, 남보다 한두 시간 늦게‘라는 습관이다. 직위와 상관없이 늘 남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강박처럼 굳어진 것이다. ...
"제가 부하직원들보다 연봉을 더 많이 받잖아요. 그러니까 일도 더 많이 하고 더 열심히 해야죠. 사비에르라는 사람이 가르쳐줬습니다." (169)

외국생활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서구인들은 요리사에 대해 상당히 예의가 바르다. 두바이 역시 서구화된 문화권이라 그런지 왕조차 이렇듯 요리사에게 친절했다. 해외에서는 아무리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음식만으로 요리사와 얼마든지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
당시 내가 일하던 레스토랑을 자주 찾던 스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피어스 브로스넌이다. 그는 항상 말쑥한 차림새와 재치 있는 유머로 나와 우리 직원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답지 않게 상당히 겸손한 성격이었고, 요리에 대해서도 놀라울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항상 셰프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와 이야기를 하다보면 할리우드 스타가 아니라 스타 셰프와 대화를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193)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한 호텔에서 2년 이상 근무하는 것을 자제하고 있다.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버즈 알 아랍처럼 아무리 무제한 계약이라 하더라도 몇 년쯤 일하다보면 직원들 눈치가 보인다. 따뜻한 자리라 해서 나 한 사람이 너무 오래 버티고 있으면, 나 한 사람으로 인해 10여 명의 다른 능력있는 인재들이 새롭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막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게을러지는 것을 스스로 통제하기 위해서다. 모든 시스템, 동료들과 친해짐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easy going‘을 미리 견제하자는 것이다. (250)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얼굴을 맞대고 혹평을 하지 않는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한국인들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한국인들은 요리가 만족스럽지 못했을 경우 다시는 그 식당에 가지 않지만 서양인들은 집으로 돌아가 장문의 컴플레인 메일을 써서 보내고 몇 달 후에 제대로 시정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그 식당을 찾는다. 요리사의 입장에서는 실로 무서운 충성도가 아닐 수 없다. (264)

마지막으로, 스스로 음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올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잘 먹었습니다" 하고 인사를 한다. 이는 단순히 배를 충분히 채웠다거나 맛있게 먹었다거나 하는 의미가 아니라 "좋은 경험을 하고 갑니다"라는 뜻이다. 요리사는 손님들에게 좋은 경험을 선사해주는 사람이다. 단순한 기술인들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다. (269)

"이미 말씀드렸듯이, 조직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색깔이 아직 희미하고 성숙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꾸 그 색깔을 드러냄으로써 키워나가야 합니다. 세계시장에서는 튀지 않는 복지부동이 통하지 않습니다. 드러내지 않으면 곧 도태됩니다. 세계시장을 무대로 자신의 꿈을 펼쳐나가려면 무언가 달라도 달라야 합니다."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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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실패의 기록은 육원전. 고기 육에 동그란 원이겠지?

(* 한자는 한국어의 일부입니다. 이렇게 익숙치 않은 단어에는 한자 병기가 필요합니다, 출판사님.) 

 

이것도 보기엔 쉬웠다. 그러나:

 

1. 고기 다지기: 팔 떨어진다. 아무리 도마를 내리쳐도 고기가 끊어지질 않는다. 정말 칼갈이 아저씨를 한 번 불러야 하나?

 

2. 수분 제거: 고기도 두부도 확실하게 수분을 제거해야 한다고 해서 면보를 아끼지 않고(계속 갈아 써야 하는 면보와 행주 때문에 음식을 한바탕 하고 나면 설거지 말고 빨래도 해야 한다. 엄마마마 하시는 것 보면 면보 한 장, 행주 한 개를 요리 도중에 계속 빨아 쓰던데, 난 손이 느려 그게 안 되기도 하고 그렇게 하면 비위생일까봐 좀 찝찝하기도 하다.) 체중을 실어 눌러 주었다. 그러나 두부는 '찌익~' 하고 면보 밖으로 삐져 나올 뿐 축축한 건 변함 없다. 더욱 충격인 건, 기름 위에 올려둔 고기 일부에서 두둥 빨간 핏물이 번져나오는 장면! 고기가 일부 아직 얼어 있었던 것 같은데, 어쨌든 팬 위에서 핏물 흐르는 것 보니 아~ 두통!

 

3. 기둥 세우기: 아름다운 육원전은 키가 훤칠하다. 원기둥의 기둥이 잘 살아 있고, 기둥과 위 아래 뚜껑이 닿는 모서리 선이 선명하게 나타나야 한다는 말씀. 그러려면 기름에 올린 반죽을 세로로 세워서 360도 살살 돌리면서 기둥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기둥 세우기를 하긴 했는데, 테가 안 난다. 과감하질 못했던 것 같다. 기둥을 잡기 위해서는 기름 아주 가까이로 두 손이 가야 하는데, 손에 기름이 튈까봐 겁이 났었다.

 

4. 팬 깨끗하게 유지: 손질을 했더라도 고기는 조리 과정에서 사소한 이물질을 계속 방출한다. 국물이면 숟가락이나 체로 계속 떠주어야 하고, 지짐이면 팬을 계속 닦아주어야 한다. 아는데, 막상 지짐을 시작하자 키친 타올 들고 팬에 뛰어들 짬이 없었다. 낑낑 거리며 기둥 하나를 세우고 나면, 옆에 놓인 반죽은 이미 색이 변하고 있다. 줄 지어 있는 전들 돌보느라 팬의 다른 곳에 시꺼먼 애들이 설치며 돌아다녀도 눈에 안 들어온다. 아니, 눈에 들어와도 어쩔 수가 없다.

 

요리를 마칠 때 쯤 되니 배고픈 중생들이 거실에서 왔다갔다하고 있다. 

완성된 육원전을 접시에 담아다 주니 잘 드신다(여럿이 먹으려고 아래 사진에 나온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만들었음.).

 

고기 다 익었어? 

익었단다. 

다행이다. 

 

좀 기다렸다가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중생1: 괜찮은데 간이 하나도 안 되어 있다.

중생2: 간은 안 되었지만 따뜻해서 맛있다.

중생3: 김치와 먹으면 된다.

 

: 간이 안 되어 있다고?!!!

 

맙소사, 그러고보니 반죽에 소금을 안 넣었다. 

 

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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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작과.

튀김이지만 기름을 많이 쓰지 않고, 무엇보다 들어가는 재료가 초간단하다.

 

이 메뉴, 예전에 타래과라는 이름으로 중학교 가정 교과서에 나왔던 것 같은데,

그 때 실습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당시 가정 선생님이 참 훌륭하고 매력 있는 분이셔서 추억이 많다. 오자 정자 숙자 쓰시는 분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는 것이,

이 분의 짱짱한 카리스마로 인해 나를 포함해 이 분에게 가정을 배우는 모든 아이들에게는

가정이 주요 과목의 하나, 때로는 국영수 보다도 더 중요한 과목이었다는 사실. 

정말이지 과목은 선생님 하기 나름이다.

아, 그리운 그 시절. 

 

현실로 돌아오자. 

예전에 한 번 해보았다면 만드는 과정에서 기억이 날 법도 한데, 그 때 타래과는 그냥 패쓰했나보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였지만 내 손으로 해보니 역시.

역시!

그 모양은 나오지 않는다.

반죽은 제대로 되었는데 성형에서 뭐가 잘못된 것인지, 어디서 자꾸 균형이 무너지는지 원인을 모르겠다.

 

엄마에게 맛 보시라고 했더니 왈, "이거 너무 달지 않니?".

시럽을 통째로 묻혀서 그렇다. 집에서 먹을 때는 종지에 꿀을 별도로 담아 내야겠다. 

반죽에 쓴 생강 맛이 사라지다시피 한 것도 쌩단맛이 도드라지는 이유이다.

생강과 설탕(배숙과 같은 맛의 조합) 간 긴장감을 살리면 더 나아지리라. 다음엔 생강즙을 강하게.

 

튀기기는 잘 되어서 색도 파삭한 식감도 좋다. 잣소금 뿌리니 한결 고급스럽고.

 

설거지를 끝내고 아침에 읽다 만 <방랑식객>을 마저 읽는데 마침 매작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매화나무에 참새가 앉은 그림이라는 건 동의하지 않지만, 이 네이밍에 담긴 풍류정신은 높이 사마.

임세프님 왈, 매작과를 차와 함께 내라고.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단 차 말고 카테킨 진한 일본이나 베트남 녹차 등과 짝 지어주면 깔끔한 다과상 나오겠다.

 

부엌창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늦가을 햇살 덕분에 나의 제1호 매작과가 좀 덜 못생겨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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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식객 - 생명 한 그릇 자연 한 접시
SBS 스페셜 방랑식객 제작팀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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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계의 에릭 호퍼? 읽어보면 실제로 半철학자고 그 스케일이 때로 장자급. 현장에서 즉흥요리하고 훌쩍 떠나는 대가적 풍모. 강한 자만이 우연에 삶을 맡길 수 있다. 아토피와 재중 동포 부분에서 얻을 것 많다. 공허한 한식 세계화 말고 이런 실질적인 문제들 한식으로 케어하는 꾸준한 노력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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