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의사는 비 갠 하늘을 보며 그대에게 기도한다 - 상 마지막 의사 시리즈
니노미야 아츠토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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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생명이라는 씨앗을, 절망은 죽음이라는 열매를, 증오는 연민으로


작년 봄, 벚꽃 하면 생각나는 작품 중 단연 첫 번째로 떠올랐던 《마지막 의사는 벚꽃을 바라보며 그대를 그리워한다》 후속 작품이 올 봄 출간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설레고 반갑고 감사했다.


환자를 대하는 방식에 있어 상반된 신념을 가진 두 의사가 있다. 환자에게 무조건 치료를 권하기보다 환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키리코 슈지. ‘사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어떻게 해서든 최선을 다해 병을 치료하려는 열정 넘치는 후쿠하라 마사카즈. 무사시노 시치주지 병원 부원장을 맡고 있다.

서로 닿을 수 없는 수평선상에 있는 두 사람을 이어 주던 유일한 친구 오토야마가 떠난 뒤, 무사시노 시치주지 병원을 나와 작은 의원을 꾸리는 키리코. 부원장이지만 병원장 눈 밖에 나 잡일 정도만 맡고 있는 후쿠하라. 이 두 의사에게 한 연인이 찾아온다. HIV에 감염된 연인 말이다. 여자 하라 미호는 후쿠하라에게, 남자 미조구치 슌타는 키리코에게.


하나의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삶을 대하는 자세부터 다르다. 한쪽은 희망을 갖고 살고자하고, 한쪽은 완전히 절망에 빠져 모든 걸 포기하고 억울한 마음에 위험한 일까지 벌이려 한다. 한쪽은 생명, 한쪽은 죽음. 생과 사가 명확하게 대비되고 있다.


“선생님, 들어주세요. 전 꿈이 있어요.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지만 꿈이 있어요.”

“꿈이오?”

“엄마가 되고 싶어요.”

-39쪽


후쿠하라는 미호에게 HIV에 걸렸어도 보통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함께 잘해나가자고, 병을 이겨내자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마냥 무섭고 엄청나게 큰 병인 줄 알았는데 본인 의지만 있다면, 의사의 올바른 판단과 의학의 힘을 빌리면 충분히 건강하게 누리고 싶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걸 미호를 통해 배웠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병을 얻었지만 절망에서 금세 벗어나 살고자 했다. 희망은 또 다른 의지를 낳고 반짝거리는 생명을 잉태한다.


“의사 선생, 당신이 그랬지? 개인의 취향을 존중한다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자유라고. 안 그래? 분명히 말했잖아? 이제 와서 내 행동을 부정하진 않겠지?”

“네.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죽기 전에 남김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권리예요.”

-139쪽


키리코는 슌타에게 지극히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말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 없던 거라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것이라고. 병에 걸려 병원에 가지 않는 것도, 치료를 받지 않는 것도 바라는 게 그런 거라면 그래도 좋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매정하다 느낄지 모르겠다. 의사로서 소명 의식이 부족한 게 아니냐고도 할지 모르겠다.


선택은 환자가 할 수 있다. 그래야만 한다. 병을 이겨낼지 병에 먹힐지는 환자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다. 키리코는 줄곧 그런 마음으로 환자를 대했을까. 그 마음에 한 점 의심도 후회도 없는 걸까.


두 의사 중에 누가 더 훌륭하고 누가 더 옳은지는 모르겠다. 의사는 환자가 아프다 찾아오면 치료해 주는 사람이다. 키리코도 후쿠하라도 본인이 옳다 생각하는 방식으로 처방을 내렸을 뿐이다.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다. 그 결과에 대한 무게는 오로지 자신의 몫인 것이다.

비가 갠 하늘을 함께 올려다보며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두 사람. 그만큼 외모도 다른 두 사람. 어떤 때는 앙숙 같아 보이고 어떤 때는 절친한 친구처럼 보인다. 그런 두 사람에게 숨겨진 과거가 드러난다. 깊은 인연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사람과 사람으로 연결되는 사연에 가끔은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아-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놀랍고 서글픈 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키리코는 어릴 때부터 병원과 친했다. 퇴원하면 곧 입원하고 곧 퇴원하면 다시 입원. 지겹도록 이어지는 현실에 아이임에도 키리코는 아이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키리코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난다. 절대 꺼지지 않을 불꽃을 품은 여인.


“나랑 너 중에 누가 더 먼저 낫는지 대결하자. 하긴, 넌 이미 완전히 포기한 것 같으니까 사실상 내가 나은 시점에서 내가 이기게 되지만. 키리코의 말이 맞다면 난 언젠가 포기하게 되잖아? 내가 포기하면 질 걸로 해도 돼.”

“왜 포기하지 않아요?”

“나을 거라고 믿으니까.”

-220~221쪽


간절하게 바라는 삶도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 있다. 사람은 하나의 생명이 꺼질 때까지 살 수 있다. 그 생명이 꺼지기 전에 소중한 걸 지키고 싶어 한다. 눈앞에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에리. 세 남자의 기억 속에서 절대 잊히지 않을 존재. 나 또한 절대 잊지 못할 사람. 그녀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배운 것 같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고 싶은 사랑. 사람의 인연이 교차되고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다.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인해 살아가게 된다.

곁에 있는 사람의 생명과 삶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 새삼 일깨워 준다. 마음이 동하고 그리움이 인다. 지금은 곁에 없는 이들에 대한 기억이 사무쳐 힘들기도 했다. 이 따스한 봄날, 너무도 사랑했던 사람이 무척이나 보고 싶다. 두 권을 다 읽고 나니 그리움은 더욱 짙어졌다.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또 한 번 떠올리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줬으니. 사람으로 태어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지 알려 준 고마운 작품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그래도 사실이 그렇다. 한 사람의 생명이 끝나도 그 생명이 남긴 소중한 생명은 또 다른 희망을 가진 채 살아간다. 그렇게 나도 살아가고 있다.


마지막 의사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을 바라고 있다면 욕심인 걸까. 이대로 두 의사를 보내고 싶지 않은데. 부디 내년 봄, 벚꽃 흩날리고 촉촉한 봄비 내릴 적에 다시 설렐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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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중록 1 아르테 오리지널 1
처처칭한 지음, 서미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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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녀 한 자락에 깃든 수많은 빛깔의 소리


알고 싶었던 영역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중국을 배경으로 한 글은 어떨까 생각했다. 아주 막연하고 아득해 현실감이 없었다. 크게 마음에 와 닿는 글을 만나지 못 해서였을까. 헌데, 제대로 만났다. 노력해 봤지만 로맨스 장르는 한동안 볼 수 없었다. 역시나 미스터리, 스릴러, 추리 장르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미스터리와 사극 그리고 로맨스의 조화라니. 생각할 수 없던 조합이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케미스트리. 그 어떤 글보다도 진한 인상을 남겼다. 한 작품, 한 작품 읽을 때마다 올해의 작품이 바뀌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반갑다. 그만큼 좋은 글이 많이 출간되고 있는 거니까!


가족 모두 독살했다는 누명을 쓰고 남자로 위장해 도망치던 황재하. 하필 정체를 들킨 상대가 대당 기왕 이서백. 문무 모두 출중한 이 남자, 냉정하고 지극히 이성적이다. 누추한 복장에 남장까지 한 살인자를 단번에 믿어 줄 만큼 호락한 자가 아니었다. 하긴, 누구라도 그러하지 않았을까. 지명 수배된 자를 뭘 보고 믿는단 말인가. 그리하여 제안된 거래. 열흘. 단 한 번의 기회. 황재하는 타고난 영민함과 사려 깊은 통찰력으로 그 한 번의 기회를 잡아 이서백 곁에 머물 수 있게 된다.


자신을 관찰하는 시선을 느꼈는지 황재하도 가만히 눈을 들어 이서백을 힐끔 보았다. 그 잠깐의 순간에 이서백은 황재하의 더할 수 없이 맑고 깨끗한 두 눈을 보았다. 속눈썹에 가려져 보일 듯 말 듯한 눈동자는 가을 호수 같은 신비로움을 지닌 채 복숭아꽃 같은 얼굴 위에 박혀 있었다. -56쪽


이서백은 곁에 있는 황재하를 자꾸 본다. 눈앞에 있으면 더 집요하게 본다. 창백한 피부도, 맑은 두 눈도, 환관으로 위장해 하나만 찔러 넣은 비녀도 자꾸만 이서백 눈에 밟힌다. 그게 왜 그렇게도 설레게 다가오는지! 누군가를 마음에 서서히 들이는 모습이 달빛이 스미듯 고요하고 깊어서 보는 내내 심장이 떨렸던 것 같다.


사건 해결을 위해 어느 하나 허투루 듣고 보는 법이 없는 황재하. 같은 여자인데도 반할 만큼 진솔하고 솔직하다. 그 올곧고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심성 때문에 자꾸 시선이 가는 게 아닐까. 사건을 정리할 때 습관적으로 머리에 꽂은 비녀를 뽑아 쓰는 버릇 때문에 이서백의 꾸지람도 많이 듣지만 집중하는 모습조차 사랑스럽다. 절대 가족을 살해했을 리가 없다! 목숨 걸고 진실을 밝히려는 모습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이서백이 왜 그렇게 빤히 보는지 알겠다. 열일곱의 나이에 어떻게 그런 기백이 나오는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 훤칠한 사람 모습이 하나 보였다. 고요한 달과 별을 배경으로 궁에서 걸어 나오는 황재하를 바라보는 그 얼굴은 평온했으나, 그 눈 속에 비친 달과 별 그림자는 물결이 일렁이듯 미세하게 반짝이며 요동쳤다. -463쪽


황재하 눈에도 이서백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는 듯도 하고.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저 황재하는 어떻게 하면 촉으로 돌아갈지, 누명을 벗을지만 생각하는 듯도 하니까. 대체 어떤 이가 황재하에게 그런 누명을 씌운 걸까. 괘씸해서 화가 난다.


이서백 또한 대단하지 않은가. 스물 초반의 나이에 당나라 최고라 칭송 받다니. 게다가 외모 또한 어찌나 출중한지. 설정이긴 하나 옛사람들은 하나 같이 다 똑똑하고 잘난 듯도 싶고. 저자가 얼마만큼의 애정으로 이들을 써 내렸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인물 하나하나에 사연을 불어 넣어 생동감 넘치게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허구의 이야기이긴 하나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인 기왕을 살려낸 것부터 범상치 않다 생각했다. 이토록 매력적인 기왕 이서백을 누가 구축할 수 있을까. 츤데레의 정석을 달리고 있는 이 남자, 어디까지 그럴지 지켜보고 싶다. 황재하에게 끝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눈빛이 심상치가 않은데.


한 권당 분량이 500쪽이 넘는데도 미친 듯이 속도 붙여 읽었다. 끝까지 읽지 않으면 궁금해서 자꾸 맴도는 작품은 참 오랜만에 만났다. 사랑이 미스터리를 만나니 혼 빠지게 재미있다. 2권까지 소장 중인데 3, 4권 출간 서둘러 줬으면 좋겠다. 흐름 깨지 않고 끝까지 읽고 싶으니까. 아무리 미친 분량이라도 다 감내할 수 있다. 저들과 함께라면. 헛소리가 자꾸 웃겨서 미워할 수 없는 주자진도 자꾸 눈에 밟힌다. 왜 그 멍청한 것 같으면서도 선하고 좋아하는 것에는 물불 안 가리는 모습이 좋은 건지.


읽기에 흥미 잃은 사람도 《잠중록》을 본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몰두할 수 있을 것이다. 장담한다. 끝 쪽까지 읽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끝까지 함께 하게 된다. 함께 하게 될 것이다, 가 아니다. 반드시 그렇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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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 스트라이크 창비청소년문학 88
구병모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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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사랑은 다르지 않음을


자신과 다름을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람은 자신과 다르면 우선 경계하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자신보다 약하거나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열등하게 여긴다. 함부로 대하고, 짓밟으려 하고, 상처를 준다. 사람이라서 그럴 수밖에 없다지만 가혹하지 않은가. 똑같이 행복하게 살아갈 존재 아니던가.


여기, 우리와 다르지 않지만 다른 존재가 있다. 한 번쯤은 생각해 봤던 존재일 것이다. 천사로 비유되는 모습과 같은 익인(翼人), 날개가 달린 사람 말이다. 허나, 이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다. 사람, 말이다.


비오는 도시인과 익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날개가 보편적인 익인보다 작게 태어난 게 특징이다. 온몸을 감쌀 만큼 커다란 날개를 가진 동생들과 아버지와 어머니와는 다르게 비오의 날개는 그 크기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다친 생명들을 제 힘으로 회복시켜 주려 하는 인정이 넘치는 소년이다. 하지만 그 마음에 미치지 못하는 능력 때문에 괴로워한다.


“이 아이는 이렇게나 작은데, 내 날개는 그보다 더 작아서, 감싸 줄 수도 낫게 해 줄 수도 없어요.” -10쪽


…… 그냥 그대로 꼭 안아 주면 돼. 너의 두 팔로, 너의 가슴에. -11쪽


비오의 아버지, 다니오는 제 피가 흐르지 않는 아들에게도 저토록 따뜻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갖고 있지만 도시인의 아이를 임신한 익인, 시와를 품어 새로운 가정을 이뤄냈다. 비오 다음으로 시와와의 사이에서도 아이 둘을 더 낳는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사라진다. 그의 행적을 찾기 위해 익인들과 함께 시청 청사를 습격한 비오(익인들의 목적은 다니오를 찾는 게 아니었지만 비오의 목적은 그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부상을 입고 인질로 잡혀 병사 하나에게 괴롭힘 당하던 그때, 루가 나타난다. 루는 도시인이지만 시청 안에서 외롭게 지내는 존재이다. 익인을 향한 호기심에 나섰다가 비오에게 잡혀 익인 마을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익인들과 지내며 루는 지금까지 느꼈던 감정 말고도 많은 감정을 알게 된다.


“가혹한 일이지요.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행식이란, 그날 당장이 아니더라도 조만간 혼인이 있을 것을 염두에 두는 의식입니다. 비오가 혼인을 해선 안 되는 이유는 대강 알고 계실 테지요. 안됐지만 그런 겁니다.” -106쪽


“세상에 왔는데, 좋아서 태어난 게 아닌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그게 당신들의 초원조가 말하는 연결과 포용인가요. 비오와 같은 아이를 품지 못할 만큼, 초원조의 날개는 그렇게 작은가요.” -107쪽


누군가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다름에 대한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렇게 미숙하고 덜 자란 마음들이 강해지고 성장한다.


이런 독특한 세계관을 다룬 작품은 오랜만이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동하지 않지만 이 작품은 달랐다. 세계관은 말이 안 되는데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나 갈등, 풍습, 인식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성장소설’이라 하면 좋을 것 같았다. 다 읽고 나서 마음이 조금은 자라난 것 같았으니까.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걸 갖고 싶어 남에게서 얻으려 한다. 그걸 얻기 위해 어떤 존재는 생명을 잃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사람은 그토록 잔혹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더 슬플 때도 있다.


자신의 생각이 옳으면 그게 누구 앞이라도 하고야 마는 루도 참을 줄 알았다. 그러다 비오에게 자신의 진심을 털어 놓게 된다. 그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진심을 쏟아낼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사람이 된 게 아닐까. 이때는 알지 못 했더라도. 루는 다시 도시로 돌아가려 비오와 함께 날게 된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유영기의 공격을 받고 비오와 루, 둘 다 큰 부상을 입고 만다. 위기의 순간, 비오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 그리고 루를 꼭 안아 준다. 체온이라도 나눠 주기 위해. 루에게 뭐든 전해 주기 위해. 비오 덕분에 목숨을 건진 루는 우여곡절 끝에 도시로 돌아간다. 돌아가 다시 날기 위해 떠나려 한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다만 이 순간 그를 만나고 싶다. -299쪽

네가 어디 있건, 어디서 날고 있든 간에 기다려 줘. 지금 곧 거기로 갈게. -299쪽


루와 비오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은 사람도 성장하지 않았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 그 어떤 역경이 있다 해도 사람은 사람의 도움으로 이겨낼 수 있고 결국, 성장하게 된다. 아주 오래 전 읽었던 우오즈미 시리즈가 생각났다. 조금 특별한 두 사람 이야기지만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면에서는 아주 비슷하고 닮았다. 두 사람은 결국 만났을까? 만났기를, 결국엔.


장르가 어떻든 사람에 대한 사랑은 다르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덤덤한 것 같아도 따뜻하고, 아주 친절하지는 않지만 소중한 걸 놓치지 않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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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배심원 스토리콜렉터 72
스티브 캐버나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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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토록 사악한 진실


작품 소개부터 시선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지간한 미스터리 스릴러 소재는 전부 접해 봤다고 생각했는데 큰 자만이었다. 사건의 진범이 배심원으로 등장하는 법정 스릴러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대놓고 잔인하면서 일말의 양심조차 없는 사이코패스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었다.


조슈아 케인. 그는 프롤로그 등장부터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새삼 치밀하고 깔끔하게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단숨에. 엘턴이라는 법원 우편배달부를 살해하고 그가 얻은 건 하단에 빨간 띠가 둘러져 있고 그 위에는 흰 글씨로 ‘즉시 개봉할 것. 중요 법원 소환장 재중.’이라고 인쇄된 우편물들이었다. 6, 70통의 그런 봉투를 다섯 장씩 놓고 카메라에 담아 그들의 개인 정보를 알아낸 그는 완벽하게 그들 중 한 명이 된다. 상상도 못할 방법으로 한 사람의 흔적을 없애고 그 사람이 된다. 그 방법에 소름이 돋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토록 잔악하고 악마 같은 인간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일에 임했다. 심지어 고통이나 인정 같은 것도 연기를 할 정도였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난 자였다.


케인을 대적할 상대로 에디 플린이라는 변호사가 등장하자 극의 흥미로움은 배가 되어 더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전직 사기꾼이었던 그는 판사인 해리 포드의 도움으로 변호사가 될 수 있었다. 아내 크리스틴과 열두 살의 딸, 에이미를 위해 안정적인 수입을 원했다. 그는 의뢰인에게서 거짓과 진실을 구분할 줄 아는 신념 있는 변호사였다. 스타들의 공식 소송자인 변호사, 루디 카프의 ‘제안’을 처음엔 단칼에 거절했다가 그 제안의 주인공인 배우, 로버트 솔로몬의 자료를 보고 그를 도와야 한다고 확신하게 된다.


바비가 진범이 아닌 증거들이 하나둘 발견되면서 사건의 끝에 연쇄살인범이 연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진실에 다가갔을 때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디 플린이라면 억울한 자의 누명을 벗기고, 진범을 찾아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런 캐릭터의 활약은 독자들이 매우 좋아할 만한 부분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모래그릇》에서도 ‘이마니시 에이타로’라는 형사가 그런 역할을 맡아 줬다. 작품 흐름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진범을 밝혀내려는 강한 의지와 신념이 소란하지 않게 이어진다. 그런 면에서 에디 플린과 아마니시 에이타로는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다른 매력이 있다면, 화자가 진범과 그를 좇는 자, 두 시점이 번갈아 가며 나온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더 생동감 있게 현장을 느낄 수 있고, 서둘러 결말에 도달하고 싶었다.


모래그릇의 경우는 범인을 모른 채 그에 도달하는 과정이라 약간의 답답함이 있었다면, 열세 번째 배심원의 경우는 범인은 이미 알고 있는데 어떤 방법으로 사건을 은폐했으며 어떻게 수면 위로 드러나는지를 밝혀 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데서 후련하다고 해야 하나. 엉켰던 실타래의 매듭이 풀리는 것처럼 속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법정 용어에 대해 몰라 찾아가며 읽어야 했는데, 그 부분도 즐거웠다. 새로운 지식을 얻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제본의 특권을 누릴 수 있게 해 준 북로드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북로드라는 출판사를 몰랐다면 얻을 수 없는 특권이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현재도 확약하고 있는 인권 변호사라는 점 또한 이 작품을 읽고 싶게 만든 하나의 요소로 작용했다. 경험보다 확실한 전달은 없다. 저자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이제 어지간한 미스터리 스릴러가 좀 식상하다 여겨진다면 이 작품을 권하고 싶다. 법에 대해 무지하다 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단, 악마에게 너무 매료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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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X - 남자 없는 출생
앤젤라 채드윅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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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남자 없는 출생. 이 글은 처음부터 아주 파격적이고 논란이 될 화제로 시작된다. ‘난자 대 난자’ 수정을 통해 소수자 즉, 동성연애자도 정자 기증 없이 임신할 수 있게 되는 사회가 열린다.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고, 닿고, 기대다 보면 자연스럽게 임신과 출산을 그려 보게 된다. 로지 루이스 바컴(31세) 또한 사랑하는 애인, 줄리엣 커티스(34세)의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 둘은 평범하게 만나 서로에게 끌렸고, 연인으로 발전해 만남을 이어가던 커플이었다. 보통의 다른 연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같은 성염색체를 가진 동성이었다. 즉, 아이를 가지려면 정자 기증 밖에 길이 없었다. 그런 그들 앞에 희망 같은 수가 생긴 것이다.


작품은 줄스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초반에는 사랑하는 애인이 자신의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호기심과 설렘에 크게 매료된다. 그러나 그 설렘도 오래 가지 못 했다.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과 적대적인 눈빛, 거기서 더 나아가 폭력적이기까지 한 행태와 시위까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둘을 몰아붙여 댄다.


점점 지쳐가는 줄스와 로지. 줄스는 보편적이라면 모성을 느껴야 하는데 임신을 한 건 아니라 그런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 하고 기쁜 척, 감격스러운 척 연기를 한다. 그 모습에서 비단 그녀만 그런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나토 가나에의 《모성》이라는 작품에서도 어머니가 자식에게 느끼는 애틋한 감정 즉, 모성을 다뤘다. 여기서의 모성은 줄스가 느끼는 모성과는 성격이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이 글을 읽는 내내 미나토 가나에의 모성이 떠올랐다.


모성이라는 감정은 본능적인 것일까, 학습된 것일까. 어렵고 복잡한 감정이다. 아직 아이를 가져 본 적 없는 독자 입장에선 더더욱 어려웠다. 로지 배 속에서 자라는 아이에게 줄스가 모성이라 불리는 감정을 전율처럼 느끼지 못한 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직접 자신의 배 속에 품고 있는 게 아니니 더더욱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모성이란 무엇이다, 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줄스는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와 아이 둘 다 지켜야 할 묵직한 책임감을 안고 있었다. 기자인 그녀는 직장 상사로부터 온갖 괴로운 일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그들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한다. 뿐만 아니라 로지가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을 느껴 보기 위해서도 끝까지 노력한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줄스와 로지 사이에 검은 그림자가 계속해서 맴돈다.


쓰러질 것 같은 그들에게 자꾸만 시련이 주어질 땐 보는 것조차 지쳐서 읽는데 애 좀 먹었다. 차분한 어조로 조목조목 탄탄해서 지루할 틈은 없었다. 다만 두 사람이 처한 상황과 분노가 치미는 현실 앞에 함께 지쳤다. 난난 수정으로 태어날 여자아이들 때문에 세상에서 남자가 사라질 것 같다니. 지금 현재 아들을 둔 어머니는 그 말에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도는 언제나 위협적으로 다가오곤 했으니까. 허나 그런 일이 일어나기엔 난자 대 난자 수정이 자연임신을 하는 사람들보다 많은 것도 아닌데, 이름 모를 병이 걸린 것도 아닌데! 그들은 왜 그렇게 분노해야 했을까. 터무니없는 의견을 내세워 SNS에 자랑하듯 떠드는 남자도 있다. 모두들 너무 과장되게 생각하고 극단적인 행동까지 서슴지 않았다. 다수가 개인을 공격하는 일. 얼마나 비통하고 억울하고, 슬픈 일인가.


작품 해설까지 읽고 나서야 ‘아, 이 알찬 책을 끝까지 볼 수 있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무턱대로 소수자들을 배척하고 모함하고 욕보이게 하는 태도는 분명 고쳐야 한다. 가치관이 맞지 않아 이해하기 어렵다 해도 그들을 비난할 자격을 누구도 갖지 않았으니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난자 대 난자 수정이라고? 뭔데 이렇게 당당하지? 하는 의문이 생긴 분들은 꼭 이 작품에 접근해 보길 바란다. 진정한 행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은 분들께도 감히 추천한다.


마침표가 찍히니 아쉬운 마음이 큰 작품이라. 더 행복한 모습도 많이 보고 싶었는데. 저자의 차기작도 이처럼 아쉬움이 커 자꾸 생각나는 글이길 소소하게 바라 본다.




*한스미디어에서 도서 지원 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주관적이고 솔직한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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