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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의사는 비 갠 하늘을 보며 그대에게 기도한다 - 상 ㅣ 마지막 의사 시리즈
니노미야 아츠토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4월
평점 :

희망은 생명이라는 씨앗을, 절망은 죽음이라는 열매를, 증오는 연민으로
작년 봄, 벚꽃 하면 생각나는 작품 중 단연 첫 번째로 떠올랐던 《마지막 의사는 벚꽃을 바라보며 그대를 그리워한다》 후속 작품이 올 봄 출간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설레고 반갑고 감사했다.
환자를 대하는 방식에 있어 상반된 신념을 가진 두 의사가 있다. 환자에게 무조건 치료를 권하기보다 환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키리코 슈지. ‘사신’으로 불리기도 한다. 어떻게 해서든 최선을 다해 병을 치료하려는 열정 넘치는 후쿠하라 마사카즈. 무사시노 시치주지 병원 부원장을 맡고 있다.

서로 닿을 수 없는 수평선상에 있는 두 사람을 이어 주던 유일한 친구 오토야마가 떠난 뒤, 무사시노 시치주지 병원을 나와 작은 의원을 꾸리는 키리코. 부원장이지만 병원장 눈 밖에 나 잡일 정도만 맡고 있는 후쿠하라. 이 두 의사에게 한 연인이 찾아온다. HIV에 감염된 연인 말이다. 여자 하라 미호는 후쿠하라에게, 남자 미조구치 슌타는 키리코에게.
하나의 연인이었던 두 사람은 삶을 대하는 자세부터 다르다. 한쪽은 희망을 갖고 살고자하고, 한쪽은 완전히 절망에 빠져 모든 걸 포기하고 억울한 마음에 위험한 일까지 벌이려 한다. 한쪽은 생명, 한쪽은 죽음. 생과 사가 명확하게 대비되고 있다.
“선생님, 들어주세요. 전 꿈이 있어요.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지만 꿈이 있어요.”
“꿈이오?”
“엄마가 되고 싶어요.”
-39쪽
후쿠하라는 미호에게 HIV에 걸렸어도 보통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게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함께 잘해나가자고, 병을 이겨내자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마냥 무섭고 엄청나게 큰 병인 줄 알았는데 본인 의지만 있다면, 의사의 올바른 판단과 의학의 힘을 빌리면 충분히 건강하게 누리고 싶은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걸 미호를 통해 배웠다. 여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병을 얻었지만 절망에서 금세 벗어나 살고자 했다. 희망은 또 다른 의지를 낳고 반짝거리는 생명을 잉태한다.
“의사 선생, 당신이 그랬지? 개인의 취향을 존중한다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자유라고. 안 그래? 분명히 말했잖아? 이제 와서 내 행동을 부정하진 않겠지?”
“네.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죽기 전에 남김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 권리예요.”
-139쪽
키리코는 슌타에게 지극히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말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하고 싶은 일이 없다면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 없던 거라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것이라고. 병에 걸려 병원에 가지 않는 것도, 치료를 받지 않는 것도 바라는 게 그런 거라면 그래도 좋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매정하다 느낄지 모르겠다. 의사로서 소명 의식이 부족한 게 아니냐고도 할지 모르겠다.
선택은 환자가 할 수 있다. 그래야만 한다. 병을 이겨낼지 병에 먹힐지는 환자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다. 키리코는 줄곧 그런 마음으로 환자를 대했을까. 그 마음에 한 점 의심도 후회도 없는 걸까.
두 의사 중에 누가 더 훌륭하고 누가 더 옳은지는 모르겠다. 의사는 환자가 아프다 찾아오면 치료해 주는 사람이다. 키리코도 후쿠하라도 본인이 옳다 생각하는 방식으로 처방을 내렸을 뿐이다.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다. 그 결과에 대한 무게는 오로지 자신의 몫인 것이다.

비가 갠 하늘을 함께 올려다보며 각자 다른 생각을 하는 두 사람. 그만큼 외모도 다른 두 사람. 어떤 때는 앙숙 같아 보이고 어떤 때는 절친한 친구처럼 보인다. 그런 두 사람에게 숨겨진 과거가 드러난다. 깊은 인연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사람과 사람으로 연결되는 사연에 가끔은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르기도 했다.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아- 소리를 내고야 말았다. 놀랍고 서글픈 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키리코는 어릴 때부터 병원과 친했다. 퇴원하면 곧 입원하고 곧 퇴원하면 다시 입원. 지겹도록 이어지는 현실에 아이임에도 키리코는 아이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키리코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난다. 절대 꺼지지 않을 불꽃을 품은 여인.
“나랑 너 중에 누가 더 먼저 낫는지 대결하자. 하긴, 넌 이미 완전히 포기한 것 같으니까 사실상 내가 나은 시점에서 내가 이기게 되지만. 키리코의 말이 맞다면 난 언젠가 포기하게 되잖아? 내가 포기하면 질 걸로 해도 돼.”
“왜 포기하지 않아요?”
“나을 거라고 믿으니까.”
-220~221쪽
간절하게 바라는 삶도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 있다. 사람은 하나의 생명이 꺼질 때까지 살 수 있다. 그 생명이 꺼지기 전에 소중한 걸 지키고 싶어 한다. 눈앞에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에리. 세 남자의 기억 속에서 절대 잊히지 않을 존재. 나 또한 절대 잊지 못할 사람. 그녀에게서 진정한 사랑을 배운 것 같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고 싶은 사랑. 사람의 인연이 교차되고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다.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인해 살아가게 된다.

곁에 있는 사람의 생명과 삶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 새삼 일깨워 준다. 마음이 동하고 그리움이 인다. 지금은 곁에 없는 이들에 대한 기억이 사무쳐 힘들기도 했다. 이 따스한 봄날, 너무도 사랑했던 사람이 무척이나 보고 싶다. 두 권을 다 읽고 나니 그리움은 더욱 짙어졌다.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또 한 번 떠올리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줬으니. 사람으로 태어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하는지 알려 준 고마운 작품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그래도 사실이 그렇다. 한 사람의 생명이 끝나도 그 생명이 남긴 소중한 생명은 또 다른 희망을 가진 채 살아간다. 그렇게 나도 살아가고 있다.
마지막 의사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을 바라고 있다면 욕심인 걸까. 이대로 두 의사를 보내고 싶지 않은데. 부디 내년 봄, 벚꽃 흩날리고 촉촉한 봄비 내릴 적에 다시 설렐 수 있길 바란다.
*소미미디어에서 도서 지원 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주관적이고 솔직한 생각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