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공장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9
이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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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소녀들은 서툴지만 진심이었다. 온 마음을 다해.


“뭐 어때. 그냥 노는 건데.” -43쪽


시작은 ‘노는 거’였다. 변함없는 오동면의 자연 안에서 단짝 친구 넷은 일회성 나들이가 아닌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갖고 새로운 일상을 꿈꿨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빈 공장의 아지트가 그들만의 아지트가 아닌 모두의 아지트가 된 것이다. SNS의 위력으로 그들의 ‘카페, 공장’은 여기저기로 팔려나갔다. 한 번도 느껴 볼 수 없던 새로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유정, 차영진, 염민서, 최나혜. 넷은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같은 동갑내기 단짝들이다. 있을 건 다 있는 시골 오동면에서 그들이 즐길 만한 문화는 거의 없었다. 서울의 유명 카페에 놀러 갔다 와도 그때뿐, 오동면으로 돌아오면 평화롭지만 숨 막히는 일상이 되풀이될 뿐이다. 그러던 중, 빈 공장 하나에 그들의 아지트가 탄생했다. 처음엔 믹스커피로 시작해 나중엔 핸드 드립 커피로 발전, 디저트까지 얹어 팔게 되는 진짜 ‘카페, 공장’을 운영하게 된다. 처음엔 좋아서 시작했던 일이 점점 버거워지기 시작한다. 늘어나는 사람들, 끝없는 주문, 잘해도 못해도 어디에나 있기 마련인 불청객까지. 아직 어른이 아닌 그들 넷이 감당하기엔 벅찬 상황까지 파도처럼 밀려든다. 우정이 흔들리고, 평범했던 일상이 위태로워져도 그들은 카페에 나가 일을 한다. 그렇게 계속 이어질 것 같던 꿈도 현실에 부딪히자 사그라지고 만다. 그 시절 소녀들은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또라이였던 것 같다. 좋아서 무작정 시작한다. 앞일은 별로 상관없다. 안 해서 모르는 채 살기보다 직접 겪고 ‘그땐 그랬지’ 하는 편이 훨씬 멋진 일 같았으니까. 책과 글에 정신이 나갔던 나 또한 그랬다. 무모하고 겁 없고 서툴러도 재미있었다. 몰입하면 힘들어도 좋아서 계속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그만큼 보람 있는 일이었기에. 네 소녀도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진상이 와도 카페에서 일하고, 부모님들이 가지 말라 해도 찾아갔던 게 아닐까.


“우리, 그때 참 재미있었지?” -211쪽


2년 후 만난 그들은 2년 전보다는 덜 무모하고, 덜 서툰 ‘어른’의 느낌을 풍겼다. 손목이 나가게 커피를 만들던 유정은 커피를 놓지 않았고, 브라우니와 치즈케이크를 맛나게 만든 최나혜는 계속 밀가루를 만지고, 메뉴판과 엽서를 예쁘게 만들던 염민서는 미술을 전공하려 부단히 노력하고, 카페 운영에 힘썼던 차영진은 경영을 전공하게 된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꿈이다.


꿈은 잠깐 사그라질 수도 있다. 그래도 사람은 계속 꿈을 꾼다. 뭔가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며 살아간다. 어른이 되어도 꿈을 꾼다. 어릴 때 꿈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면 《카페, 공장》으로!




* 자음과모음에서 도서 증정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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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빛나는 순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윤예지 그림, 박태옥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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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인가 나보다 다른 사람 생각하는 일에 더 애를 썼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니 ‘나’를 잃은 내가 보였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 웃고 있는 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사람 하나 없는 내가, 어떻게든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상냥한 척 친절한 척 배려 넘치는 척하는 내가 보였다.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행복한 척했는데 사실은 누구보다 슬프고 힘들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몰랐다. 지나고 보니 그런 내가 보였다. 무얼 위해, 누굴 위해 그렇게 애를 썼던 걸까. 내가 ‘나’를 위해 살아오긴 했나 싶게 나를 잃었던 적이 있었다.


이 작품을 보면서 그때의 어린 청춘 하나가 눈에 밟혔다. 그때는 ‘나’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다.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아서 몰랐다. 나조차도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나를 사랑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그때는 정말이지 티클 만큼도 알지 못했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더 행복했을까?


그건 또 아닌 것 같다는 말씀. 그 퍽퍽한 시간이 있어 지금 더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이가 나를 아껴 주고 사랑해 주는 마음처럼, 나를 안아 주고 사랑해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 마음이 더 타오를 수 있게 도와준 파울로 코엘료의 따스하고 단호한 말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그의 글 중에 《연금술사》가 가장 유명하다지만 가슴에 닿은 첫 글은 이 작품이다.

1장에서는 나를, 2장에서는 오늘을, 3장에서는 우리를, 4장에서는 순간을 되짚어 보았다. 간결하지만 힘이 있는 말들에 포근히 위로받기도 하고, 마음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새로운 그림이 글과 어우러져 나타나는데 빨리 읽고 싶지 않았다. 좀 더 아껴 읽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 글자, 한 문장 꼭꼭 씹어 마음에 담고 싶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도록 자주 꺼내 읽고 싶은 책이다.

나를 잃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 오늘이 막막해 주저앉고 싶은 사람, 사랑을 있는 그대로 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 지금 당장 치유의 온기가 필요한 사람. 그 모두가 《내가 빛나는 순간》을 만나길 바란다. 스스로가 소중해지면 곁에 있는 사람도 소중해진다. 스스로를 사랑하면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된다. 나를 잃지 않으면 내가 빛나는 순간은 언제까지고 계속된다. 부디 먼저 사랑하는 사람일 수 있기를.




* 자음과모음에서 도서 증정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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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숲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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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 미스터리에 이토록 절절한 사랑이라니!


어떤 미스터리 작품에서도 이런 낭만을 느낀 적이 없다. 가가 형사 시리즈 첫 번째 《졸업》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라 훨씬 읽기 수월했다. 뭔가에 빨려들듯 몰입했다. 마음의 움직임도 생각 그 이상으로 다가왔다. 역시 어른의 사랑은 다른 건가 싶었다.


이번엔 발레리나가 한 남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다카야나기 발레단’의 발레리나 사이토 하루코는 정당방위를 주장한다. 발레단에 소속된 아사오카 미오는 연출가인 가지타 야스나리에게 하루코가 사람을 죽였다는 다급한 연락을 받는다. 이명과 함께 찾아온 불행.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연이어 가지타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고, 한 번도 연습에 빠진 적 없는 발레리나 모리이 야스코는 갑자기 모습을 감춘다. 세 사건은 연결되어 있는가? 대체 누가 어떤 목적으로 발레단 사람들을 노리는가? 예측이 쉽지 않은 반전이라 더 각인된 것 같다. 진실에 닿으면, 누구라도 탄식하게 되리라.


특히, 가가가 미오를 대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가가 형사 시리즈 중 가장 로맨틱한 추리소설로 손꼽히는 이유를 가감 없이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이토록 사랑의 기운이 충만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단내가 폴폴 났다. 《용의자 X의 헌신》이나 《성녀의 구제》만큼 절절한 느낌은 아니지만 찡하게 울리는 마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저 형사, 아까 갑자기 뛰어들었어. 생각나?”
“뛰어들어요?”라고 미오는 되물었다.
“네가 쓰러지려는 순간에 바로 옆에 있던 사람보다 더 빨리 뛰어왔다니까. 아마 밖에서 미오가 춤추는 걸 내내 지켜봤던가 봐.” -138쪽


가가는 웃음을 짓고, 그러다가 딸기를 들고 온 게 생각나서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거 먹어봐요. 꽤 맛있을 거 같던데.” -343쪽


감정을 실은 말보다 담담한 어조에 진심이 느껴진다. 선명하고 분명하게 진실에 가닿는다. 이것이 저자의 문체다. 다시 만나고 싶었던, 다시 읽고 싶었던 사랑했던 문체인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에 다시 빠져들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이 작품,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핏빛으로 가득한 미스추는 진 빠져서 보기 힘든 분들께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단숨에 읽어지는 페이지터너.


가가 교이치로가 형사가 된 분명한 이유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어쩌다 가가는 교사에서 형사로 전직했을까. 다음 세 번째 이야기 《악의》에서는 밝혀지려나. 기대를 역시나 품게 되는 시리즈가 아닌가. 가가, 얼른 또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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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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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믿으면 안 된다. 그게 남자든 여자든!


2013년 11월에 실종된 열네 살 소녀, 한나 캐스웰. 2016년 12월에 실종돼 1년 후 사체로 발견된 열네 살 소녀, 사스키아 모리스. 그리고 2017년 11월에 사라진 맨디 알라드. 대체 이 소녀들에게 무슨 일이 닥친 걸까. 왜 열네 살 소녀들만 사라지는가. ‘고원지대 살인마’는 대체 어떤 인물인가. 의구심이 끝없이 피어올랐다. 뭔가 스릴러의 참맛 같았달까. 현재 시점과 범인 시점이 교차해 진행된 덕분에 긴장감 가득한 연출이 소름 끼치게 적절했다.


요즘 여자아이들은 남자들을 닮아간다. 입에 담배를 꼬나물고, 코에 피어싱을 하고, 발에 꼴사나운 구두를 신는다. 도무지 여자아이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다. -309, 310쪽


스릴러 오랜만에 읽어서인지 무척 집중했던 것 같다. 열네 살 소녀들만 데려간 저 정신 나간 인간의 정체를 알고 싶어 졸려도 읽고, 새벽에 깨서도 읽었다. 그랬던 것치고는 속도가 거북이었지만 덕분에 진득하니 빠질 수 있었다. 세 소녀의 실종은 연관되어 있을까? 왜 꼭 열네 살 여자아이만 사라진 걸까? 범인은 하나일까? 이 세 가지 물음에 답을 찾고자 했다. 읽을 분량이 줄어들수록 예측 또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이야기 자체의 반전도 괜찮았다. 조금 더 충격적인 결말일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잔잔했다. 그래서 더 좋았다. 다음을 기약하는 이런 결말, 사심 담아 너무 좋다.


“솔직히 자네 혼자서 이 집에서 쓸쓸하게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낸다고 생각하면 나까지 기분이 우울해져. 그날 아침에 우리 집에 와서 나랑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건 어떤가? 함께 해변을 산책하고 나서 아침 식사도 하고, 선물도 교환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589쪽


수사를 책임지고 있는 스카보로 경찰서 케일럽 헤일 반장과 런던경찰국 케이트 린빌 경사의 호흡이 생각 외로 너무 멋졌다. 호흡이 멋지기가 어디 쉬운가? 이 두 사람은 만나면 멋진 분위기를 자아낸다. 눈에 확 들어오는 미인은 아닐지라도 남다른 직감으로 수사에 임하고 때론 진정한 사랑을 찾는 모습이 소녀 같은 여린 모습의 케이트. 무심한 듯하지만 한 번 꽂히면 열정을 갖고 파고드는 집념의 케일럽. 두 사람의 다음 이야기도 기다려지는 걸 막을 수 없다. 좀 더 빨리 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이 작품 전작인 《속임수》에서의 두 사람 호흡도 궁금해 읽을 예정.




* 밝은세상에서 도서 증정받아 작성하는 서평입니다. 진심을 담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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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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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의 구제》 이후로 저자의 작품을 한동안 멀리했다. 비슷한 전개와 예측 가능한 결말에 조금은 마음이 시들해진 것이다. 새롭고 더 자극적인 작품들을 접하다보니 다시 저자의 작품이 보고 싶어졌다. 리딩투데이를 통해 함께 읽는 시리즈 도서를 알게 됐고, 10여 년 만에 저자의 작품을 다시 읽게 되었다. 감회가 새롭다면 새로웠다.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아쉬움이라는 감정도 막을 수 없었다. 《성녀의 구제》를 통해 느꼈던 완성도 높은 이야기와 여운이 《졸업》에서는 그보다 약하게 느껴져 아쉬울 따름이다.

가가 교이치로가 등장하는 작품을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풋풋한 대학생 시절의 가가부터 만나 다행이다 싶었다. 어른 가가 교이치로도 기대되지만 아직 여물지 않은 새싹 가가를 먼저 만나고 싶었다. 가가는 고교시절부터 함께 하던 친구들이 있다. 사토코, 나미카, 쇼코, 도도, 하나에, 와코. 대학시절 내내 함께 한 친구들. 그 중 한 명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이들의 청춘도 함께 일렁이기 시작한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진실에 닿으려는 추적 도중 친구 한 명이 설월화 다도 의식 중 또 희생되고 만다. 소중한 친구들의 목숨을 앗아간 자, 대체 누구란 말인가.

사람의 목숨보다 더 소중히 지켜야 될 명분이란 대체 무엇일까. 사람은 어디까지 약해지고,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 걸까. 모든 이야기 끝에 찾아오는 씁쓸함이 떫은 차를 마시고 난 뒷맛 같았다.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를 믿을 때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걸까. 보이는 전부가 전부가 아님을 어떻게 알아차려야 하는 걸까.

누구보다 친한 친구들인데 왜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을까, 라는 생각이 그녀의 의식을 혼란에 빠뜨렸다. -397쪽

가가 교이치로의 첫 등장. 중반부터 예리하게 빛난다. 사토코와 나미카가 초반 분위기를 휘어잡아서 그 둘이 주인공 같기도 했다. 찰떡호흡 여성콤비 같았달까. 다음을 기약할 순 없지겠지만. 가가의 활약은 다음을 조금 더 기대해 보는 걸로! 형사가 되지 않겠다던 가가는 어떻게 형사가 되어 활약하게 되는 걸까. 가가 형사 시리즈 두 번째 《잠자는 숲》에서 그 전모가 밝혀지려나. 기대를 내려놓고 싶은데 자꾸 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조건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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