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6 - 볼라뇨 20주기 특별합본판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송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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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뇨는 ˝문학+병=병˝이라고 했다. 나는 ˝볼라뇨+메가 소설=우주에서 가장 완벽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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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
요나스 메카스 지음, 금정연 옮김 / 시간의흐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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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후에 직장 생활이란 걸 시작한 뒤부터, 나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일이 많았다. 연락을 주고 받은 지 오래되었던 중학교 동창과 책을 매개로 친해졌고, 전혀 연고가 없는 지역에 계시는 분과 북스타그램을 매개로, 직접 만나 친분을 쌓기도 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나간 상태였는데도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곳에 새로 입사한 분과 친구가 되기도 했다. 내게 행운이 있다면 이런 것들이겠지.

 

책의 세계가 넓고 깊은 만큼, 나의 친구들이 독서를 하는 이유들도 다양하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지식과 정보, 서사들을 입력해 그것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 같다. 신선한 언어, 낯선 언어, 새로운 언어로 사유의 폭을 넓히려고 하는 것도 같다. 이를 통해 자기만의 통찰과 지혜를 생성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래서 이른바 고전을 독파하기도 하고, 현대의 철학과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교양 과학 서적 등을 읽는다. 진리를 찾고 윤리적인 고민들을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는 것이다. 시나 소설, 에세이 같은 문학을 통해 삶을 더 잘 살아내기를 원하기도 한다. 나는 나와 기꺼이 친구가 되어준 그들을 통해 읽기라는 행위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읽기란 건 뭐지. 책을 왜 읽지. 나는.

 

나도 나의 친구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추구한다. 소위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읽으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검토한다. 때론 현대성을 탐구한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보다 잘 읽어내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변화와 연대의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시도다. 내 정신에 불을 질러줄 예술들을 찾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글들을 읽으면서는 어마어마한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활동했던 리투아니아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시인 요나스 매카스가 쓴 소설 혹은 에세이 혹은 헛소리일 뿐일지 모를 이런 글. 금정연 작가님이 번역한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

 

요나스 매카스의 영화를 본 적은 없고, 국내에 번역된 책은 이 책을 제외하곤 <영화작가들과의 대화>라는 인터뷰집 뿐이다. 그래서 뭐 잘 아는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글이 너무, 좀 지나치게 좋았다. 왜일까. 구체적이어서? 메타적이어서? 사실 소재 같은 건 중요하지 않고 글쓰기에서 중요한 건 글쓰기 그 자체라고 생각해서? 아님 그냥 웃겨서? 자기 맘대로 써놓은 글을 보고 왠지 속이 시원해서? 그래서 정신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된 듯한 감각이 주어진 것 같아서? 뭐 그 모두가 아닐까.

 

글쓰기는 다른 무엇과도 별 관계가 없다. 종이와 타자기가 전부다. 그래요, 데리다 선생님. 여기, 아마도 제가 궁극의 해체주의자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더라도요. 실로 의미 있는 어떤 것도 없다. 단어들, 단지 단어들. 혹은, 좀 더 정확하게는, 문자들. 당신은 그냥 앉아서 타자기를 두드린다. 그게 전부다. 문자에 이어지는 문자, 단어에 이어지는 단어. 어떤 단어일 수도 있고, 다른 단어일 수도 있다-별 차이는 없다. 그저 타이핑일 뿐. 문학은, 친구여, 저기 바깥의, 현실 세계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네, 현실 세계 같은 게 있다면 말이지만. 있는 건 전부, 타이핑이다. 단어들, 단어들을 타이핑하는 것.”

 

“나와 같다면, 그녀는 계속 할 것이다. 지금, 나처럼. 타자기에 꽂힌 빈 종이를 보고있노라면, 손가락이 근질근질해지며, 타이핑을 해야 하기에, 나는 자리에 앉아 타이핑을 하고, 타이핑을 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아무 목표도 없이, 내 글쓰기가, 내 타이핑이, 가능하다면, 허무에 가까울 만큼 공허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냥 타이핑을 한다. 그리고 전적으로 비-창의적이기를. 나는 창의성을 혐오한다. 창의성은 인생이란 예술에서, 아마도 내가 첫 번째로 싫어하는 것이다. 영화, 특히 영화에서. 그리고 음식, 그래, 음식에서도. 그 모든 창의적인 요리들, 특히 뉴에이지 사람들이 만든 음식들, 나는 그것들을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밖으로 나가 단순한, 옛날식의 햄버거를 먹고, 핫도그를 먹는다. 창의적인 것을 하는 사람들을 뭔가 혼내줄 방법이 있어야만 하는데, 그들은 정상적인 인간 발달의 적, 자연 발달의 적이다. 자 자 자,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할까, 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친애하는 오스카여, 원하는 대로 생각하시길, 당신 생각에는 쥐뿔도 관심 없으니까.”

 

“소설이 점점 더 자전적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어쩌라고. 요점은, 그것이 나를 계속 타이핑하게 한다는 거다. 당신이 읽든 말든,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요점은 타이핑이고, 올림피아 딜럭스와 나의 관계, 내 손가락들, 이 글자들, 너무 짧아서 5분마다 바꿔줘야 하는 이 리본-이것이 전부다. 친구들이여, 더는 없다네. 문학이랑은 아무 상관 없다. 하지만 이제 나는 자러 가야 한다. 내일, 친애하는 나의 올림피아 딜럭스여, 너에게로 돌아오리.”

 

내게 이 책은 무엇보다도 글쓰기에 대한 책이었다. 육체적인 행위로서의 글쓰기, 유물론적 글쓰기. 그런 글쓰기에 대한 책. 단문으로 쓰기, 철저하게 퇴고하기, 다 쓰고나서 소리내서 읽어보기, 논거를 잘 채집해서 튼튼한 주장을 담은 글 쓰기, 창의적으로 쓰기, 말하는 것처럼 쓰기 뭐 등등 어쩌고 저쩌고, 이런 글쓰기 책 말고 글쓰기라는 행위를 감각하게 하는 글쓰기. 펜을 쥐고 종이 위에 단어들을 한 자 한 자 새기는 글쓰기, 출퇴근길에 아이폰 메모앱으로, 쓰지 않으면 못 견뎌서 쓰는 글쓰기, 뭐라도 써야 살겠어서 쓰는 글쓰기, 기계식 키보드와 모니터 앞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는 그 글쓰기, 그 감각에서 희열을 느끼는 글쓰기. 읽는 내내 뭐라도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나는 그게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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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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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집중력이 필요하다. 트레바리에서 만나 꽤 친해진 친구가, 본인이 파트너로 활동하는 모임에 한 번 놀러오라고 해서, 영국의 저널리스트가 쓴 이 책을 열심히 읽고 감상문을 쓰는 때, 출퇴근길에 스마트폰으로 이 글을 쓰는 때, 나는 집중해야 한다. 모든 알림을 꺼놓고 아이폰 메모앱에 타이핑을 하는 데에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맞춰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벌써 만으로 서른네살이고, 오늘은 오후 9시 50분까지 일을 했는데? 그리고 내일은 헬스장 갔다와서 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식에 가야 하는데? 그런데도 책의 핵심 내용을 잘 간추려서 정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앞으로 삶의 지침은 어떻게 세우고 지킬지까지 간결한 문장에 담아낼 수 있을까. 10월 19일에 개봉하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플라워 킬링 문>도 함께 볼 사람이 없는 내가? 아 이거 그냥 내가 보고싶어서 쓴 거임.

농담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꽤 잘 한다. 책 읽고 핵심 내용 정리하기,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한 생각과 의견쓰기. 맨날 하니까. 그저… 그런 일반적인 서평형 감상문을 쓰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나는 이 책의 저자처럼, 외딴 시골 마을로 훌쩍 떠난 적은 없지만, 책의 지침, 즉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지침들은 최대한 따르며 사는 편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스마트폰은 웬만해선 많이 안 보려고 한다. 알림도 다 꺼놓았다. 앱도 일단은 필수적인 것만 사용한다. 은행앱, 카카오톡, 글쓰기를 위한 메모앱, 쓴 글을 남기기 위한 네이버 블로그 앱과 인스타그램 앱, 인터넷 서점 앱, 지도 앱, 카카오택시 앱, 지하철 앱, 팟캐스트를 듣기 위한 팟빵앱… 이제 보니 많구나….

수면도 항상 8시간을 지키려고 한다. 10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난다. 긴 글도 많이 읽는 편이다. 산책하면서 딴 생각도 많이 한다. 음식도 웬만하면 자연적인 식품을 먹는다. 가공식품을 완전히 피할 순 없지만. “아이들을 뛰어놀게 해야한다”고 하는데 나도 조카가 최대한 뛰어놀게 한다. 그리고 나도… 최대한 뛰어논다. 헬스장 가서 쇠질도 많이 하고…. 그래서 내 집중력이 어떤가… 하면 뭐 집중과 몰입을 못 한다고 괴로움을 느끼진 않는 편인 것 같다. 개인으로선 어쨌건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퇴근길이다. 오전 9시 30분까지 출근해서 일하고 또 일하고 회의하고 또 회의해서 퇴근한 시간은 오후 9시 50분. 일하는 동안, 회의하는 동안 집중력을 100% 발휘했다고 할 수 있을까. 글쎄 12시간 넘게 회사에 있었으면 그러기 힘들 것 같기도 하고… 😇 이 책에 따르면 주 4일제 정도는 해야 완전히 집중하면서 일하지 않겠냐고 한다. 물론 노동시간만 문제는 아니다. 기후 변화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지구가 열대화 되고 있다는데,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을까. 교육은 아이들이 집중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빅테크 기업의 감시 자본주의적 수익 모델, 즉 우리의 주의와 시간을 빼앗아야만 수익을 키울 수 있는 모델을 우리는 변화시킬 수 있을까. 끊임없이 쏟아지는 가공 식품들로부터 우리의 식탁을 지킬 수 있을까.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는 경제적 평형이라는 목표로 과연 전환될 수 있을까. 수없이 산적한 과제들을 우리는 (내가 아니라 우리는)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이런 테마를 다룬 책들을 읽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이 흥미로웠다면, 스웨덴의 정신과 의사이자 과학저술가인 안데르스 한센의 <뇌는 달리고 싶다>와 <인스타 브레인>, 수면 과학의 권위자 매슈 워커의 <왜 우리는 잠을 자야할까>, 컴퓨터공학자이자 작가인 칼 뉴포트의 <디지털 미니멀리즘>, 컴퓨터과학자 재런 러니어의 <지금 당장 당신의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할 10가지 이유>, IT미래학자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읽어보세요. 좋은 책들임.

자 이렇게, 농담부터 추천도서까지 엄청나게 집중해서 쓴 글이 끝났습니다. 이런 긴 글을 읽으려면 튼튼한 집중력이 필요하겠죠? 😊 우리 모두 <도둑맞은 집중력> 읽고 튼튼한 집중력을 가져봅시다. 제 글에 좋아요도 많이 눌러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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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책 -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카피책 시리즈
정철 지음, 손영삼 비주얼 / 블랙피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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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씨는 참 열정적이시네요” 살면서 많이 들은 칭찬 중 하나다. 지금껏 다녀온 회사들에서, 트레바리에서, 그 외의 다른 어떤 독서모임들에서 나는 이따금 이런 종류의 말을 듣곤했다. ‘열정적이다.’ 내가 정말 열정적일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을텐데,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열정’이란 말을 싫어한다. 구체적으로는 ‘열정’이라는 개념을 싫어한다. 말이 좋지. 열정이란 거, 인간을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주체’로 만드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개념 아닌가. 10년 전에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제시한 자기착취의 주체, 그 주체에게 필수적인 덕목이 바로 열정 아닌가 싶은 것이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고, 이른바 올바른 자기경영을 해나가야 한다는 압박에 짓눌리는 삶. 열정이 추동하는 삶이란 그런 삶처럼 느껴진다.

그럼 열정이 없는 삶을 지향하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단 한 번도, 무기력한 삶을 원한 적은 없으니까. 열정이란 걸 품지 않는 삶, 냉소적인 삶이 과연 행복할까. 궁금한 것도 없고 하고싶은 것도 없는 삶, 그런 삶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내게 이상적인 건 이런 거다. 가능하면 열정에 사로잡힌 삶을 살기. 하지만 자신의 열정과 욕망이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상황, 삶의 기쁨을 갉아먹는 상황은 피하기.

광고인으로서, 카피라이터로서 열정을 품고 일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고 또 필요할테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다. ‘하루 8시간의 수면’과 ‘출근 전에 하는 운동’,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보고싶은 영화를 보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 ‘마음 맞는 사람들과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히히덕거리는 것’도 직업인으로서 열정을 품는 것만큼 내 삶에 중요한 것이다. 그래야 열정이란 것도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피라이터 정철의 <카피책>을 읽었다. 열정적이어서가 아니라, 카피라이터라서. 카피라이터가 카피를 잘 써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카피, 잘 쓰려고. 언제나처럼. 앞으로 계속. 이 책엔 카피는 어떻게 쓰고 아이디어는 어떻게 내야하는지, 그 방법론이 32가지로 소개되어 있다. 카피라이터로 나름 연차가 쌓였고, 이런 광고주들, 저런 광고주들 참 많이 만나왔기에, 아예 처음 보는 내용들은 아니었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도, 실무에서 적용해온 것들도 많았고. 책의 맨 마지막엔 32가지의 실전 연습 페이지도 실려있다. 근데 맨날 하는 일이 이거라, 실습 예제들을 하나 하나 다 해보진 않았다. 😅

정리하자면 카피는 이렇게 쓰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깔나는 카피든 제품 혹은 브랜드와 연결되게. 때론 말과 글로 장난을 쳐서. 대구를 만들든지, 앞말을 맞추든지, 동음이의어를 활용한다든지 뭐 그런 방식으로. 그리고 무조건 쉽게. 초등학교 5학년생이 봐도 이해될 정도로. 그리고 이런 것도 필요하다. 소비자/고객의 언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것. 단어의 낯선 조합을 만들어 내는 것. 글자수를 맞추거나 각운을 맞춰서 카피에 리듬을 부여하는 것. 가능한 한 짧게 쓰는 것. 의성어나 의태어를 활용해 생동감을 더해보는 것. 단어를 더하거나 (즉 단어를 더해 구조를 맞추거나), 아예 빼거나(이를테면 동사만 남기는 식), 곱하거나(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것, 이를테면 “같이의 가치”, “집중에 집중하다” 같은 식으로), 나누는 것(핵심 내용을 헤드와 서브로 나누기). 반복과 나열을 활용하는 것. 제품이 아니라 사람에 초점을 맞춰보는 것. 브랜드 네임에서 카피를 따오는 것. 소비자/고객의 편익이 드러나게 하는 것.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을 때 생길 위협을 소구하는 것. 비주얼로는 어떻게 나올지, 어떻게 비주얼과 엮을지까지 함께 생각하는 것. 한자어는 최대한 지양하는 것. 소비자가 얼마나 현명하고 똑똑한지를 칭찬하는 것.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좀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기도 하다. 마침 침대 머리맡엔 아직 읽지 못한 정지돈, 금정연, 모리스 블랑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자크 데리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책들이 놓여있다. 조만간 또 광고나 카피라이팅 관련 책을 읽겠지만, 당분간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다. 열정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따금은 나답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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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문학 걸작선 - 이갑수 소설집
이갑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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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16일 토요일 오후 6시, 나는 노원에 있는 독립서점 책방 봄에 서 열리는 이갑수 소설가와 최지운 소설가의 북토크에 놀러갔다. 올해 3월, 김홍 소설가님과 류진 시인님의 북토크에 갔을 때, 이갑수 소설가님과 알게 되어 약간의 친분이 있었던 상태였다. 작가님이 운영하는 서점 로티에 놀러간 적도 있었고.

북토크가 끝나고 질문 시간, 객석에서 “글 쓸 때 무엇을 신경쓰시냐”는 질문이 나왔고 최지운 작가님은 “첫번째로는 이 글을 과연 독자들이 좋아할까”를 생각한다고 답하셨다. 대학에서 강의하실 때에도 제자들에게 이 부분을 강조한다고. 읽는 사람 생각 안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쓴다고 쓰면, 그런데 잘 쓰지 못 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고. 그렇게 일러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갑수 소설가님은… 딱 그 반대로 한다고 답했다. (🤣)

흥미로운 주제라 나도 질문을 얹었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OTT 콘텐츠라면 투자자가 있고, 거대 자본이 투입되서, 그걸 회수해야 하니, 관객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겠지만, 소설은 예술이잖아요? 그렇다면 독자들의 취향 너머의 무언가를,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무언가를 보여주고 던져줘야 하는 거 아닐까요?“ 뭐 이런 질문. 문학알못인 내가 뭘 안다고 이런 얘길 했을까 싶네…. 근데 사실 독자들이 뭘 좋아할지 생각하고, 읽는 사람을 신경쓰고, 흥미를 주기 위해 연구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 당연히 원론적으론 옳다고 생각한다. 그냥… 논쟁적인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문학이야 뭐 다양할수록 좋은 거 아니겠나 싶고.

어쨌거나, 이갑수 소설가의 소설집 <외계 문학 걸작선>에 실린 소설들은, 그의 말대로 “독자들이 뭘 좋아할까” 보다 “난 이런 게 재밌더라, 내가 뭔가 새롭게 조합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봤는데, 함 읽어볼래?”의 태도로 쓰인 작품들 같았다. 작가가 신나고 재밌어서 쓴 게 읽으면서 온몸으로 느껴졌달까.

표제작인 ‘외계 문학 걸작선’은 칼 세이건의 저작들 그러니까 <코스모스>라든지, <창백한 푸른 점> 등을 읽었다면, 그리고 외계인과 언어로 소통하는 내용의 테드 창 소설이나 그것을 원작으로 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 등을 봤다면 흥미롭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다른 소설들도 마찬가지로 SF 장르 속 레퍼런스들을 신선하고 재미나게 조합했다. ‘이해학개론’은 외교관 아버지의 죽음과 전 여자친구와의 재회, 그리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의 뼈를 어머니의 무덤으로 옮겨가는 이야기를 각종 물리학의 공식과 수학 방정식을 틀로 삼아서 보여준다. 신적인 존재인 외계인이 등장하는 ‘우주 관점’이나 멀티버스 설정의 ‘인류애’, 로봇이 어린이대공원의 경비로 취직하는 ‘수문장’, 타임 루프를 다루는 ‘시간의 문법’ 모두 SF 장르에서 나오는 소재들을 문학적으로 재조직한 결과물이다.

약간은 다른 결의 작품들도 실려있다. 아내와 딸이 무려 단검을 던지는 내용의 ‘달인’과 스티븐 호킹의 죽음과 함께 퇴사 행진을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영구적 팽창으로부터의 부드러운 탈출’, 무협 소설을 읽는듯한 감각의 ‘대통령의 검술 선생’이 그것인데, 시니컬하면서도 엉뚱하고, 냉철하면서도 어딘지 맹해서 귀여운… 괴짜 같기도 하고 재밌기도 한 매력이 듬뿍 담긴 작품들이었다. 작가님을 닮았달까… 😅

창작에는 당연히 괴로움이 따르겠지만, 또 그만큼의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나는 <외계 문학 걸작선>을 읽으면서 작가가 느낀 창작의 즐거움을 고스란히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전작인 소설집 <편협의 완성>과 장편 <킬러스타그램>도 기대가 된다. 아울러 다음 작품 활동도 응원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열심히 써주세요. 넘 재밌었어요. 파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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