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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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집중력이 필요하다. 트레바리에서 만나 꽤 친해진 친구가, 본인이 파트너로 활동하는 모임에 한 번 놀러오라고 해서, 영국의 저널리스트가 쓴 이 책을 열심히 읽고 감상문을 쓰는 때, 출퇴근길에 스마트폰으로 이 글을 쓰는 때, 나는 집중해야 한다. 모든 알림을 꺼놓고 아이폰 메모앱에 타이핑을 하는 데에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맞춰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벌써 만으로 서른네살이고, 오늘은 오후 9시 50분까지 일을 했는데? 그리고 내일은 헬스장 갔다와서 고등학교 동창의 결혼식에 가야 하는데? 그런데도 책의 핵심 내용을 잘 간추려서 정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앞으로 삶의 지침은 어떻게 세우고 지킬지까지 간결한 문장에 담아낼 수 있을까. 10월 19일에 개봉하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영화 <플라워 킬링 문>도 함께 볼 사람이 없는 내가? 아 이거 그냥 내가 보고싶어서 쓴 거임.

농담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꽤 잘 한다. 책 읽고 핵심 내용 정리하기,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한 생각과 의견쓰기. 맨날 하니까. 그저… 그런 일반적인 서평형 감상문을 쓰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나는 이 책의 저자처럼, 외딴 시골 마을로 훌쩍 떠난 적은 없지만, 책의 지침, 즉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지침들은 최대한 따르며 사는 편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스마트폰은 웬만해선 많이 안 보려고 한다. 알림도 다 꺼놓았다. 앱도 일단은 필수적인 것만 사용한다. 은행앱, 카카오톡, 글쓰기를 위한 메모앱, 쓴 글을 남기기 위한 네이버 블로그 앱과 인스타그램 앱, 인터넷 서점 앱, 지도 앱, 카카오택시 앱, 지하철 앱, 팟캐스트를 듣기 위한 팟빵앱… 이제 보니 많구나….

수면도 항상 8시간을 지키려고 한다. 10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난다. 긴 글도 많이 읽는 편이다. 산책하면서 딴 생각도 많이 한다. 음식도 웬만하면 자연적인 식품을 먹는다. 가공식품을 완전히 피할 순 없지만. “아이들을 뛰어놀게 해야한다”고 하는데 나도 조카가 최대한 뛰어놀게 한다. 그리고 나도… 최대한 뛰어논다. 헬스장 가서 쇠질도 많이 하고…. 그래서 내 집중력이 어떤가… 하면 뭐 집중과 몰입을 못 한다고 괴로움을 느끼진 않는 편인 것 같다. 개인으로선 어쨌건 할 수 있는 건 다 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회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퇴근길이다. 오전 9시 30분까지 출근해서 일하고 또 일하고 회의하고 또 회의해서 퇴근한 시간은 오후 9시 50분. 일하는 동안, 회의하는 동안 집중력을 100% 발휘했다고 할 수 있을까. 글쎄 12시간 넘게 회사에 있었으면 그러기 힘들 것 같기도 하고… 😇 이 책에 따르면 주 4일제 정도는 해야 완전히 집중하면서 일하지 않겠냐고 한다. 물론 노동시간만 문제는 아니다. 기후 변화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지구가 열대화 되고 있다는데, 모든 사회 구성원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을까. 교육은 아이들이 집중할 환경을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빅테크 기업의 감시 자본주의적 수익 모델, 즉 우리의 주의와 시간을 빼앗아야만 수익을 키울 수 있는 모델을 우리는 변화시킬 수 있을까. 끊임없이 쏟아지는 가공 식품들로부터 우리의 식탁을 지킬 수 있을까. 경제 성장이라는 목표는 경제적 평형이라는 목표로 과연 전환될 수 있을까. 수없이 산적한 과제들을 우리는 (내가 아니라 우리는)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이런 테마를 다룬 책들을 읽었었다. 그러니까 이 책이 흥미로웠다면, 스웨덴의 정신과 의사이자 과학저술가인 안데르스 한센의 <뇌는 달리고 싶다>와 <인스타 브레인>, 수면 과학의 권위자 매슈 워커의 <왜 우리는 잠을 자야할까>, 컴퓨터공학자이자 작가인 칼 뉴포트의 <디지털 미니멀리즘>, 컴퓨터과학자 재런 러니어의 <지금 당장 당신의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할 10가지 이유>, IT미래학자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읽어보세요. 좋은 책들임.

자 이렇게, 농담부터 추천도서까지 엄청나게 집중해서 쓴 글이 끝났습니다. 이런 긴 글을 읽으려면 튼튼한 집중력이 필요하겠죠? 😊 우리 모두 <도둑맞은 집중력> 읽고 튼튼한 집중력을 가져봅시다. 제 글에 좋아요도 많이 눌러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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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책 -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카피책 시리즈
정철 지음, 손영삼 비주얼 / 블랙피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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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씨는 참 열정적이시네요” 살면서 많이 들은 칭찬 중 하나다. 지금껏 다녀온 회사들에서, 트레바리에서, 그 외의 다른 어떤 독서모임들에서 나는 이따금 이런 종류의 말을 듣곤했다. ‘열정적이다.’ 내가 정말 열정적일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을텐데,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열정’이란 말을 싫어한다. 구체적으로는 ‘열정’이라는 개념을 싫어한다. 말이 좋지. 열정이란 거, 인간을 ‘신자유주의적 자기계발 주체’로 만드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개념 아닌가. 10년 전에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제시한 자기착취의 주체, 그 주체에게 필수적인 덕목이 바로 열정 아닌가 싶은 것이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고, 이른바 올바른 자기경영을 해나가야 한다는 압박에 짓눌리는 삶. 열정이 추동하는 삶이란 그런 삶처럼 느껴진다.

그럼 열정이 없는 삶을 지향하느냐 하면, 또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단 한 번도, 무기력한 삶을 원한 적은 없으니까. 열정이란 걸 품지 않는 삶, 냉소적인 삶이 과연 행복할까. 궁금한 것도 없고 하고싶은 것도 없는 삶, 그런 삶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내게 이상적인 건 이런 거다. 가능하면 열정에 사로잡힌 삶을 살기. 하지만 자신의 열정과 욕망이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상황, 삶의 기쁨을 갉아먹는 상황은 피하기.

광고인으로서, 카피라이터로서 열정을 품고 일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고 또 필요할테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전부는 아니다. ‘하루 8시간의 수면’과 ‘출근 전에 하는 운동’, ‘읽고 싶은 책을 읽고, 보고싶은 영화를 보고,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 ‘마음 맞는 사람들과 시덥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히히덕거리는 것’도 직업인으로서 열정을 품는 것만큼 내 삶에 중요한 것이다. 그래야 열정이란 것도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피라이터 정철의 <카피책>을 읽었다. 열정적이어서가 아니라, 카피라이터라서. 카피라이터가 카피를 잘 써야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카피, 잘 쓰려고. 언제나처럼. 앞으로 계속. 이 책엔 카피는 어떻게 쓰고 아이디어는 어떻게 내야하는지, 그 방법론이 32가지로 소개되어 있다. 카피라이터로 나름 연차가 쌓였고, 이런 광고주들, 저런 광고주들 참 많이 만나왔기에, 아예 처음 보는 내용들은 아니었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도, 실무에서 적용해온 것들도 많았고. 책의 맨 마지막엔 32가지의 실전 연습 페이지도 실려있다. 근데 맨날 하는 일이 이거라, 실습 예제들을 하나 하나 다 해보진 않았다. 😅

정리하자면 카피는 이렇게 쓰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깔나는 카피든 제품 혹은 브랜드와 연결되게. 때론 말과 글로 장난을 쳐서. 대구를 만들든지, 앞말을 맞추든지, 동음이의어를 활용한다든지 뭐 그런 방식으로. 그리고 무조건 쉽게. 초등학교 5학년생이 봐도 이해될 정도로. 그리고 이런 것도 필요하다. 소비자/고객의 언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것. 단어의 낯선 조합을 만들어 내는 것. 글자수를 맞추거나 각운을 맞춰서 카피에 리듬을 부여하는 것. 가능한 한 짧게 쓰는 것. 의성어나 의태어를 활용해 생동감을 더해보는 것. 단어를 더하거나 (즉 단어를 더해 구조를 맞추거나), 아예 빼거나(이를테면 동사만 남기는 식), 곱하거나(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것, 이를테면 “같이의 가치”, “집중에 집중하다” 같은 식으로), 나누는 것(핵심 내용을 헤드와 서브로 나누기). 반복과 나열을 활용하는 것. 제품이 아니라 사람에 초점을 맞춰보는 것. 브랜드 네임에서 카피를 따오는 것. 소비자/고객의 편익이 드러나게 하는 것.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을 때 생길 위협을 소구하는 것. 비주얼로는 어떻게 나올지, 어떻게 비주얼과 엮을지까지 함께 생각하는 것. 한자어는 최대한 지양하는 것. 소비자가 얼마나 현명하고 똑똑한지를 칭찬하는 것.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좀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기도 하다. 마침 침대 머리맡엔 아직 읽지 못한 정지돈, 금정연, 모리스 블랑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자크 데리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책들이 놓여있다. 조만간 또 광고나 카피라이팅 관련 책을 읽겠지만, 당분간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다. 열정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따금은 나답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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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문학 걸작선 - 이갑수 소설집
이갑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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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16일 토요일 오후 6시, 나는 노원에 있는 독립서점 책방 봄에 서 열리는 이갑수 소설가와 최지운 소설가의 북토크에 놀러갔다. 올해 3월, 김홍 소설가님과 류진 시인님의 북토크에 갔을 때, 이갑수 소설가님과 알게 되어 약간의 친분이 있었던 상태였다. 작가님이 운영하는 서점 로티에 놀러간 적도 있었고.

북토크가 끝나고 질문 시간, 객석에서 “글 쓸 때 무엇을 신경쓰시냐”는 질문이 나왔고 최지운 작가님은 “첫번째로는 이 글을 과연 독자들이 좋아할까”를 생각한다고 답하셨다. 대학에서 강의하실 때에도 제자들에게 이 부분을 강조한다고. 읽는 사람 생각 안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쓴다고 쓰면, 그런데 잘 쓰지 못 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고. 그렇게 일러준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갑수 소설가님은… 딱 그 반대로 한다고 답했다. (🤣)

흥미로운 주제라 나도 질문을 얹었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OTT 콘텐츠라면 투자자가 있고, 거대 자본이 투입되서, 그걸 회수해야 하니, 관객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겠지만, 소설은 예술이잖아요? 그렇다면 독자들의 취향 너머의 무언가를,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무언가를 보여주고 던져줘야 하는 거 아닐까요?“ 뭐 이런 질문. 문학알못인 내가 뭘 안다고 이런 얘길 했을까 싶네…. 근데 사실 독자들이 뭘 좋아할지 생각하고, 읽는 사람을 신경쓰고, 흥미를 주기 위해 연구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 당연히 원론적으론 옳다고 생각한다. 그냥… 논쟁적인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문학이야 뭐 다양할수록 좋은 거 아니겠나 싶고.

어쨌거나, 이갑수 소설가의 소설집 <외계 문학 걸작선>에 실린 소설들은, 그의 말대로 “독자들이 뭘 좋아할까” 보다 “난 이런 게 재밌더라, 내가 뭔가 새롭게 조합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봤는데, 함 읽어볼래?”의 태도로 쓰인 작품들 같았다. 작가가 신나고 재밌어서 쓴 게 읽으면서 온몸으로 느껴졌달까.

표제작인 ‘외계 문학 걸작선’은 칼 세이건의 저작들 그러니까 <코스모스>라든지, <창백한 푸른 점> 등을 읽었다면, 그리고 외계인과 언어로 소통하는 내용의 테드 창 소설이나 그것을 원작으로 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 등을 봤다면 흥미롭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다른 소설들도 마찬가지로 SF 장르 속 레퍼런스들을 신선하고 재미나게 조합했다. ‘이해학개론’은 외교관 아버지의 죽음과 전 여자친구와의 재회, 그리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아버지의 뼈를 어머니의 무덤으로 옮겨가는 이야기를 각종 물리학의 공식과 수학 방정식을 틀로 삼아서 보여준다. 신적인 존재인 외계인이 등장하는 ‘우주 관점’이나 멀티버스 설정의 ‘인류애’, 로봇이 어린이대공원의 경비로 취직하는 ‘수문장’, 타임 루프를 다루는 ‘시간의 문법’ 모두 SF 장르에서 나오는 소재들을 문학적으로 재조직한 결과물이다.

약간은 다른 결의 작품들도 실려있다. 아내와 딸이 무려 단검을 던지는 내용의 ‘달인’과 스티븐 호킹의 죽음과 함께 퇴사 행진을 벌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영구적 팽창으로부터의 부드러운 탈출’, 무협 소설을 읽는듯한 감각의 ‘대통령의 검술 선생’이 그것인데, 시니컬하면서도 엉뚱하고, 냉철하면서도 어딘지 맹해서 귀여운… 괴짜 같기도 하고 재밌기도 한 매력이 듬뿍 담긴 작품들이었다. 작가님을 닮았달까… 😅

창작에는 당연히 괴로움이 따르겠지만, 또 그만큼의 즐거움도 있을 것이다. 나는 <외계 문학 걸작선>을 읽으면서 작가가 느낀 창작의 즐거움을 고스란히 함께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전작인 소설집 <편협의 완성>과 장편 <킬러스타그램>도 기대가 된다. 아울러 다음 작품 활동도 응원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열심히 써주세요. 넘 재밌었어요. 파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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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피트니스 -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1
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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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가 그랬던가. 만약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도서관처럼 생겼을 거라고.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거기에 하나만 추가해달라고 하고 싶다. 그러니까… 헬스장이요.

학창 시절, 운동을 싫어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아주 많은 것들이 나를 운동으로부터 멀어지게 했고, 또 싫어하게 했다. 학교 체육시간에 나는 몸을 움직이는 기쁨과 내게 주어진 육체를 사랑하는 법을 전혀 배우지 못 했다. 그대신 알게 된 건 내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운동 신경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같은 거였다. 당연히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엘리트 체육인을 선발/육성하는 방식으로 애들 줄 세우지 말고 생활체육인으로서 운동을 즐겁게 영위하게끔 해줄 순 없었던 걸까. 뭐 그렇다고 내가 무슨 바람직한 체육 교육의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려는 건 아닙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

그래도 10대, 20대를 지나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면서, 그리고 운동과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내 육체를 긍정하게 되고, 프리웨이트든 머신이든 무거운 것들을 열심히 들었다 놨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출근 전에 집 앞 헬스장에 가서 데드 리프트와 스쿼트, 벤치 프레스 등등을 하는 습관이 든지도 꽤 오래 됐고. 그 덕에 나는 20대때보다 훨씬 건강해졌다고 느낀다. 전반적인 삶의 활력도 훨씬 더 강해진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운동의 이유 중엔, 책을 더 잘 읽고 싶은 것도 있었는데, 이해력이나 인지력 같은 것들도 운동을 하면서 훨씬 강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건 부가적인 거고, 웨이트 자체가 즐겁기도 하다.

그러나 사실 좀 경계하고 싶은 욕망도 있다. 그러니까… 어떤 남성성 표출을 통한 시각적 매력의 향상, 이런 거엔 너무 집착하고 싶지 않다. 원래도 무슨 대단한 몸짱이 되서, 바디 프로필을 찍고 그럴 생각 딱히 없기도 했다만. 물론 넓은 등짝, 떡 벌어진 어깨, 굵은 팔뚝, 잔뜩 업된 엉덩이와 말 다리 같은 허벅지, 이런 걸 갖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 미적 기준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게 웨이트를 하는데 전혀 동기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보면 그런 외형 자체에 집착하다보니 일반인들마저 약물에 손을 대고 로이더가 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나도 그런 욕망이 1순위가 되면, 약물을 통해 엄청난 퍼포먼스와 외형을 가져볼까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실제로 로이더가 됐더니, 운동 효율도 말도 안 되게 올라가고, 한 번 들 거 열 번도 더 들게 되서 처음 사용했을 땐 신세계를 만난 것처럼 느끼게 됐었다는 약물 사용자의 인터뷰들이 인터넷에 많다.

그러니까, 이제껏 해온 것처럼 도 닦듯이, 내가 추구하는 ‘건강한 쾌락주의’에 근거한 피트니스 라이프를 꾸준히 이어나가자. 늦게라도 운동하는 삶의 기쁨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며.

아 그리고 이 책은 트레바리 네 번째 모임에 선정되서 읽게 됐다. 선정되기 전에도 읽고 싶어서 사뒀었음. 그냥 그렇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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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연구 - 정지돈 소설집
정지돈 지음 / 창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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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책이 중요한만큼, 책이 중요하지 않다. 이건 또 뭔 소린가 싶겠지만, 이것이 진실이다. 내게는 책을 읽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쌓인 걸 갖고 나만의 맥락 안에서 소화하고, 배치하고 조립하고 재조직하는 내 정신(이따금 제정신이 아닌 그 정신…)이 중요한 거지, 책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다만 그 정신(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따금 제정신이 아닌 그 정신…)이라는 정원을 가꾸는 데에는 꽃도 필요하고, 플라타너스 나무도 필요하고, 꿀벌도 필요하고, 나비도 필요하고, 가로수길도 필요하고, 사슴도 필요하고, 고라니도 필요한 법이다. 정신이라는 정원이 넓어지고, 깊어져서 거대한 숲을 이룬다면, 그 숲은 다채로울수록, 다양한 빛깔을 품을스록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니 고라니가 필요하다. 정지돈은 고라니다….

나는 20대 때 보르헤스를 읽으며, 너무 좋다고, 세상엔 이런 소설도 있구나 하며 감탄했다. 하지만 솔직히 읽으면서 키득거리며 웃진 않았다. 지금 정지돈이 보르헤스가 100년 전에 이미 했던 걸 똑같이 하는 건지 어떤건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건 나는 정지돈을 읽으면서는 매번, 항상, 꽤 많이, 키득거리고 웃는다. 그리고 읽을 때마다 (정말 말 그대로 읽을 때마다) 세상에 무슨 이런 글이 다 있냐고 호들갑을 떨고, 주변의 (몇 안 되는) 책 좀 좋아한다는 사람들에게, 정지돈을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진짜 2023년에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읽고 쓸 줄 안다면,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봤든 안 봤든 (난 안 봄) 영화 <나랏말싸미>를 봤든 안 봤든(안 봤습니다… 송강호 박해일 주연의 <나랏말싸미> 파이팅…), 아무튼 까막눈이 아니라면, 지금 정지돈을 읽어야 합니다. 정지돈은 한국 문학의 현재이자 미래예요(한국 문학의 미래라… 이렇게 진부한 표현이라니…근데 그런 게 있긴 한가…). 아무튼간에 여러분, 정지돈을 읽어야 문학 힙스터 행세(?)를 할 수 있어요. 힙스터, 너무 되고 싶지 않습니까?” 같은 소릴 하는 것이다. 물론 세상엔 문학 힙스터 같은 건 없다…. 문학을 읽는 사람 자체도 별로 없고….

신체 절단에 대한 페티쉬를 가진 안젤라, 부르주아 집안에서 법조인이 되어야 했지만 어딘지 좀 이상한 예술가가 된 조 칩, 진짜 좀 미친 것 같은 (근데 난 왜 웃겼지…) 영화 천재 진양, 나무위키와 싸우는 또또, 역시 금방이라도 돌아버릴 것 같은 (혹은 돌아버린 것 같은) 베티 아줌마와 그녀의 친언니, 건달인지 뭔지 당췌 정체를 알 수 없는 석이 아저씨, 인문학자이자 사상가이자 문화비평가이자 예언자인 배리까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있는 듯한 기이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나는 살면서 접해보지 못 한 낯섦을 마주했다. 물론 이런 낯섦에는 형식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의 소설은 소설을 읽는 감각과 함께, 에세이를 읽을 때의 감각, 예술 비평을 읽을 때의 감각, 학술서를 읽을 때의 감각까지 총동원하게 만드니까. 독서에 필요한 여러 감각들이 종합적으로 훈련/계발되고, 국내외의 예술과 사상을 삶의 맥락에 어떻게 위치시킬지 사유하게 만드는 재료들을 제공하는 그의 소설들. 어쩌면 정지돈의 소설들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요구하는 자기계발 주체가 되는데 꼭 필요한 필독서일지도? (아님) 그러니 여러분,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대신,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대신 정지돈의 소설집 <인생 연구>를 읽읍시다. 당신도 성공할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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