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100% 활용법
요한 이데마 지음, 손희경 옮김 / 아트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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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리에 모임을 만들게 되서 선정하고 읽은 책. 미술 전시 관람의 친절한 가이드가 되어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서 골랐다. 읽어보니 책은 진짜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지 않은 말로 예술을 향유하는 데 필요한 태도와 기본기를 세워주는 책이라. 분량도 많지 않은데 굉장히 실용적이다. 멤버들이 잘 모여서 이걸 보고 같이 미술 전시를 보러가면 좋을텐데… 잘 될지 모르겠네.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는 행위’, 또 한 작품을 보고 다른 작품으로 건너가기 위해 ’걸어가는 행위’, 그리고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와 같은 물리적인 행위들, 그 자체에 집중한 것이 재밌었다.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곳에 있는 예술을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곳으로 옮겨다 주고 사유하게 만들어주었다고 할까.

화이트 큐브라는 일반적인 미술관의 구성 조건에 대해 의문을 던져주는 것도 흥미롭다. 액자라는 틀이 작품과 세상의 접점이 된다는 이야기도 좋았고. 침묵을 지키고 관람하게 만드는 전시 문화에 대해서도 의문을 던지는 것도 마찬가지로 흥미로웠다. 미술관만큼 대화를 나누기 좋은 곳도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이 좋았던 건 예술을 향유하는 데 필요한 ‘메타적 태도’를 만들어주기 때문이었다. 미술 전시를 보고서 뭔가 대단히 ‘있어보이는 것’을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는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것도 좋았고. 그래서 미술관에 가서 “뭐야? 이게 예술이야? 이런 건 나도 하겠는데?“ 라는 생각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한 사람이 무언가를 그리거나 연주하거나 쓰기 시작할 지도 모르니까.

나는 예술을 향유한다는 건 자기 언어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예술이든 그것은 한 인간의 창조적 자아를 만드는 불씨가 되는 것이다. 세상의 누구든, 미술 뿐만 아니라 문학, 영화, 연극, 음악 등 어떤 예술을 만났을 때 그것을 자기 언어의 재료로 쓴다면 좋겠다. 보다 창조적인 자아들이 자기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발현하고 날뛰는 세상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세상일테니까. 나 또한 뻔한 인간이고 싶지 않다는 어떤 창조적인 욕망이 있고. 그런데 최근에 주문한 책 <문예 비창작>에는 독창성이라든가 하는 개념에 의문을 제기한 대목이 있던데. 그렇다면 예술은 과연 무엇을 동력으로 할 수 있을까. 예술을 향유하는 애호가는 또 무엇을 얻어갈 수 있는 것인지? 뭐 그건 그 책 읽고나서 생각해볼까(언제 읽을진… 모름).

근데 예술이 어쩌고 독창성이 어쩌고 그런 건 일단 잘 모르겠고 사람들이 잘 모여야 이런 얘기도 나눌텐데, 잘 모일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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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3-11-06 0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처음 봅니다. 좋아 좋아! 장바구니에 담겠습니다. 내년에 미술 도서 읽기 모임을 만들 생각이에요. 그래서 요즘 미술 입문서를 눈여겨보고 있어요. ^^

칼리아예프 2023-12-26 12:55   좋아요 0 | URL
ㅋㅋ 해성님 굉장히 만족하실 것 같아요! 😆
 
전화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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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무슨 일이든 견뎌 낼 수 있다. 고로, 인간은 무슨 일이든 견뎌 낼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문장은 거짓이다. 사실 인간이 진심으로 견뎌 낼 수 있는 일은 손꼽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진심으로 무슨 일이든 견뎌 낼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확신을 지닌 채 성장했다. 이 문단의 첫 번째 문장은 참이다. 그러나 파멸과 광기와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런 문장은 볼라뇨 말고 또 누가 쓸 수 있을까. 물론 다른 좋은 문장들도 세상에 많다. 내가 볼라뇨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정신이 아득해지는 문장은, 볼라뇨를 읽을 때에나 만난다. 진짜… 미친 것 같음….

단편집 <전화>는 세 파트로 구성되어있다. 작가 혹은 작가의 생활, 창작 혹은 창작의 이면에 대해 다룬 이야기들이 담긴 1부, 죽음과 폭력에 관한 이야기들이 담긴 2부, 파란만장한 삶을 산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3부. 개인적으론 1부의 작품들이 가장 흥미로웠다. 글쓰기와 문학에 대해 갖는 감상주의적 태도를, 베테랑 의사가 예리한 매스로 종양을 제거하듯 해체하는 작품들이다.

첫 작품 ‘센시니’에선 동경하던 작가 센시니를 만난, 볼라뇨의 분신이자 젊은 작가인 아르투로 벨라노가, 글쓰기가 아닌 공모전에 대해 조언을 듣는 이야기가 나온다. 제목을 공모전 헌터라고 지어도 될 판…. ‘엔리케 마르틴’에선 시에 대한 어떤 이해하기 힘든 집념과 열정을 보이다 자살로 생을 마무리하는 인물이 나온다. 시 같은 건, 문학 같은 건 치기어릴 때나 쓰는 것처럼 얘기하는 때 조차도, 무언인가 창작하던 인간의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다. 서스펜스와 함께 코미디를 제대로 작렬시키는 ’문학적 모험‘도 인상적이다. 사랑 이야기이지만, 역시 결코 일반적인 방식으론 다루지 않는 표제작 ’전화‘도 정신을 아득하게 만든다.

2부와 3부도 물론 너무 좋았다. 좋은 작품들을 쓰지만 공모전에 천착하게 되는 작가와 시인이 되지 못 한 시인, 어쩌다 정의의 편에 서게 된 프랑스의 ‘삼류’작가, 형사들, 발음이 새서 ‘예술’이라고 말했던 건데 그 덕분에 살게 되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까지 되어버리는 전쟁 포로, 교육 받기를 그만두는 낙제생, 마피아와 엮인 체육 교사와 러시아 여자 육상 선수, 미국의 포르노 배우까지, ‘정착’과는 거리가 먼, 밑바닥 삶을 사는 인물들을 이 소설집은 보여준다. 감상적인 태도 없이, 거리를 두고. 그렇지만 강렬하다. 글쓰기, 문학, 예술, 섹스, 죽음, 자살, 폭력, 포르노, 범죄, 코미디까지 어떤 소재를 다루든 예외없이 강렬하다. 그러니 기억하시길. 볼라뇨를, 로베르토 볼라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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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한 독서 - 서평가를 살린 위대한 이야기들
금정연 지음 / 마음산책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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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어리고 예민하던 시절, 그러니까 2014년 10월, 출판사 마음산책에서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 책은 씨네21에서 연재된 영화 에세이를 모은 책이었다. 서로 다른 영화들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엮어 소개하고 독자들을 새로운 사유와 인식의 장으로 안내하는, 빛나고도 아름다운 책. 나는 마음산책 트위터 계정에서 이 책의 몇몇 구절을 보고 금새 마음을 빼앗겼다. 금새 책을 완독한 나는 이 책이 인생책이니 뭐니 하며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이들에게 추천을 하곤 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마음산책 트위터 계정에는 <난폭한 독서>라는 책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그 계정에는 책을 극찬하는 독자들의 트윗이 열심히 리트윗됐다. 그런데 극찬하는 내용이 좀… 이상했다. 이를테면 “너무 웃기다”, “이 책 쓴 사람 미쳤다(?)” 같은 내용이었다…. 아니 어떤 책이길래 이런 감상평이 나오지…. 고전을 소개하는 책이 이럴 수 있나. 뭔가 좀 이상했지만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너무 좋게 읽었던 터라, 나는 이 책이 무척 궁금해졌고, 책 쇼핑 중독자답게 바로 책을 구매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는 나의 최애 작가 중 한 명이 되어버리고야 마는데… 그의 생애(?)가 궁금한 분들은 정지돈의 소설집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에 두번째로 실린 작품을 읽어 보세요. 근데 사실 나는 이 책을 제일 먼저 사놓고 읽지 않고 있었다. 그 전에 서평집이 먼저 하나 나왔다는 걸 알고, 서평집 <서서비행>을 먼저 읽어보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을 읽고나선 <소년이여 요리하라>라는 앤솔로지를 읽었다. 그리고 그 뒤엔 정지돈 소설가와 함께 쓴 <문학의 기쁨>을 읽었고, 팟캐스트 방송 내용을 묶은 <일상기술연구소>를 읽었고,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을 읽었고, <아무튼, 택시>를 읽었고, <담배와 영화>를 읽었고,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를 읽었고, 역시 정지돈 소설가와 함께 쓴 <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를 읽었다. 그렇게 약 8년의 세월이 흘러가고 있던 어느날, 퇴근 후 침대에 자려고 누웠는데 침대에 놓인 이 책이 말하고 있었다. “자 이제 이 책을 읽을 차례야”

<난폭한 독서>는 10년 전 프레시안북스에 연재된 ‘금정연의 요설’을 묶은 책이다.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부터 프란츠 카프카의 <성>, <소송>까지 열 명의 작가가 쓴 작품들을 다룬다. 추천사를 쓴 정성일 영화평론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난폭한 책이다. 자신이 다루는 책들에 대해서 어떤 존경심도 표명하지 않는 독서. 하지만 금정연은 나를 맞받아칠 것이다. 하지만 난 이 책들을 몹시 사랑해요. 원래 그런 것이다. 사랑을 하게 되면 존경은 물러나는 법이다. 어떤 법? 존경하던 선생님과 사랑에 빠지면 반말을 하기 시작하는 법. 정확하게 그런 의미로 나는 이 책에서 사랑을 읽는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사랑을 읽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내가 원하는 책이었다는 것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책에 인용된 모리스 블랑쇼의 글이다. ”독자는 자신을 위하여 쓰여진 작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거기서 미지의 무엇을, 또 다른 현실을, 그를 변화시킬 수 있고 그가 변화시킬 수 있는 별개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는 바로 그러한 낯선 작품을 원한다.“ 감히 말하건대 이 책이 바로 그 낯선 작품이다. 20대 때 <정확한 사랑의 실험>에 대해 인생책이니 뭐니 하며 추천했던 것처럼 이 책을 추천하고 다니고 싶다. 이런 말을 덧붙이면서. “너무 웃기다”, “이 책 쓴 사람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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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6 - 볼라뇨 20주기 특별합본판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송병선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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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뇨는 ˝문학+병=병˝이라고 했다. 나는 ˝볼라뇨+메가 소설=우주에서 가장 완벽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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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
요나스 메카스 지음, 금정연 옮김 / 시간의흐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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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후에 직장 생활이란 걸 시작한 뒤부터, 나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일이 많았다. 연락을 주고 받은 지 오래되었던 중학교 동창과 책을 매개로 친해졌고, 전혀 연고가 없는 지역에 계시는 분과 북스타그램을 매개로, 직접 만나 친분을 쌓기도 했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나간 상태였는데도 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곳에 새로 입사한 분과 친구가 되기도 했다. 내게 행운이 있다면 이런 것들이겠지.

 

책의 세계가 넓고 깊은 만큼, 나의 친구들이 독서를 하는 이유들도 다양하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지식과 정보, 서사들을 입력해 그것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것 같다. 신선한 언어, 낯선 언어, 새로운 언어로 사유의 폭을 넓히려고 하는 것도 같다. 이를 통해 자기만의 통찰과 지혜를 생성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래서 이른바 고전을 독파하기도 하고, 현대의 철학과 심리학, 사회학, 그리고 교양 과학 서적 등을 읽는다. 진리를 찾고 윤리적인 고민들을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하는 것이다. 시나 소설, 에세이 같은 문학을 통해 삶을 더 잘 살아내기를 원하기도 한다. 나는 나와 기꺼이 친구가 되어준 그들을 통해 읽기라는 행위의 의미를 생각한다.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읽기란 건 뭐지. 책을 왜 읽지. 나는.

 

나도 나의 친구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추구한다. 소위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을 읽으며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검토한다. 때론 현대성을 탐구한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를 보다 잘 읽어내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변화와 연대의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시도다. 내 정신에 불을 질러줄 예술들을 찾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글들을 읽으면서는 어마어마한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활동했던 리투아니아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시인 요나스 매카스가 쓴 소설 혹은 에세이 혹은 헛소리일 뿐일지 모를 이런 글. 금정연 작가님이 번역한 <수동 타자기를 위한 레퀴엠>.

 

요나스 매카스의 영화를 본 적은 없고, 국내에 번역된 책은 이 책을 제외하곤 <영화작가들과의 대화>라는 인터뷰집 뿐이다. 그래서 뭐 잘 아는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의 글이 너무, 좀 지나치게 좋았다. 왜일까. 구체적이어서? 메타적이어서? 사실 소재 같은 건 중요하지 않고 글쓰기에서 중요한 건 글쓰기 그 자체라고 생각해서? 아님 그냥 웃겨서? 자기 맘대로 써놓은 글을 보고 왠지 속이 시원해서? 그래서 정신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된 듯한 감각이 주어진 것 같아서? 뭐 그 모두가 아닐까.

 

글쓰기는 다른 무엇과도 별 관계가 없다. 종이와 타자기가 전부다. 그래요, 데리다 선생님. 여기, 아마도 제가 궁극의 해체주의자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보이지는 않더라도요. 실로 의미 있는 어떤 것도 없다. 단어들, 단지 단어들. 혹은, 좀 더 정확하게는, 문자들. 당신은 그냥 앉아서 타자기를 두드린다. 그게 전부다. 문자에 이어지는 문자, 단어에 이어지는 단어. 어떤 단어일 수도 있고, 다른 단어일 수도 있다-별 차이는 없다. 그저 타이핑일 뿐. 문학은, 친구여, 저기 바깥의, 현실 세계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네, 현실 세계 같은 게 있다면 말이지만. 있는 건 전부, 타이핑이다. 단어들, 단어들을 타이핑하는 것.”

 

“나와 같다면, 그녀는 계속 할 것이다. 지금, 나처럼. 타자기에 꽂힌 빈 종이를 보고있노라면, 손가락이 근질근질해지며, 타이핑을 해야 하기에, 나는 자리에 앉아 타이핑을 하고, 타이핑을 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아무 목표도 없이, 내 글쓰기가, 내 타이핑이, 가능하다면, 허무에 가까울 만큼 공허하기를 바라면서, 나는 그냥 타이핑을 한다. 그리고 전적으로 비-창의적이기를. 나는 창의성을 혐오한다. 창의성은 인생이란 예술에서, 아마도 내가 첫 번째로 싫어하는 것이다. 영화, 특히 영화에서. 그리고 음식, 그래, 음식에서도. 그 모든 창의적인 요리들, 특히 뉴에이지 사람들이 만든 음식들, 나는 그것들을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밖으로 나가 단순한, 옛날식의 햄버거를 먹고, 핫도그를 먹는다. 창의적인 것을 하는 사람들을 뭔가 혼내줄 방법이 있어야만 하는데, 그들은 정상적인 인간 발달의 적, 자연 발달의 적이다. 자 자 자, 오스카 와일드가 이런 말을 들으면 뭐라고 할까, 나는 문득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친애하는 오스카여, 원하는 대로 생각하시길, 당신 생각에는 쥐뿔도 관심 없으니까.”

 

“소설이 점점 더 자전적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면 미안하다. 하지만 어쩌라고. 요점은, 그것이 나를 계속 타이핑하게 한다는 거다. 당신이 읽든 말든,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요점은 타이핑이고, 올림피아 딜럭스와 나의 관계, 내 손가락들, 이 글자들, 너무 짧아서 5분마다 바꿔줘야 하는 이 리본-이것이 전부다. 친구들이여, 더는 없다네. 문학이랑은 아무 상관 없다. 하지만 이제 나는 자러 가야 한다. 내일, 친애하는 나의 올림피아 딜럭스여, 너에게로 돌아오리.”

 

내게 이 책은 무엇보다도 글쓰기에 대한 책이었다. 육체적인 행위로서의 글쓰기, 유물론적 글쓰기. 그런 글쓰기에 대한 책. 단문으로 쓰기, 철저하게 퇴고하기, 다 쓰고나서 소리내서 읽어보기, 논거를 잘 채집해서 튼튼한 주장을 담은 글 쓰기, 창의적으로 쓰기, 말하는 것처럼 쓰기 뭐 등등 어쩌고 저쩌고, 이런 글쓰기 책 말고 글쓰기라는 행위를 감각하게 하는 글쓰기. 펜을 쥐고 종이 위에 단어들을 한 자 한 자 새기는 글쓰기, 출퇴근길에 아이폰 메모앱으로, 쓰지 않으면 못 견뎌서 쓰는 글쓰기, 뭐라도 써야 살겠어서 쓰는 글쓰기, 기계식 키보드와 모니터 앞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는 그 글쓰기, 그 감각에서 희열을 느끼는 글쓰기. 읽는 내내 뭐라도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나는 그게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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