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프헤드 - 익숙해 보이지만 결코 알지 못했던 미국, 그 반대편의 이야기 알마 인코그니타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 지음, 고영범 옮김 / 알마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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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연구반 3기 네번째 책. 14편의 에세이가 담긴 벽돌책이었다.

크리스천 록 콘서트 행사에 간 이야기, 형이 감전됐던 때의 이야기, 미국 남부를 대표하던 전설적인 작가 아래서 문하생으로 지내던 시절의 이야기.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의 폐허를 다룬 이야기. 리얼리티 쇼 출연자 미즈와 만난 이야기, 마이클 잭슨 이야기, 밴드 건즈앤로지스의 액슬 로즈에 대한 이야기, 오바마케어를 둘러싼 정치적 배경과 상황 그리고 이에 비판적인 입장을 지닌 가난한데 보수적인 백인들의 이야기, 식물학자이자 시인이었던 괴짜이자 천재 라피네스크에 대한 이야기, 미국의 고대 문화가 담긴 동굴들을 탐험하는 이야기, 컨츄리 블루스의 위대함을 다룬 이야기, 밥 말리와 함께 활동했던 레게 음악의 전설적인 존재 버니 웨일러와 인터뷰한 이야기, 기후 변화와 동물들이 인간들을 공격하는 현 상황을 진단하고 탐색하는 이야기, 드라마 <원트리 힐>의 촬영장으로 자신의 집을 대여했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크리스천 록 콘서트 행사를 다룬 첫 글 “이 반석 위에서”는 금정연 작가님이 문체연구반 시간에 강독을 해주셨다. 무려 1시간 동안.... 혼자 읽을 때는 그냥 넘어가던 것들을 하나 하나 되새기면서 이해하게 됨. 그 덕에 굉장히 깊게 읽을 수 있었다. (진짜... 금정연 서평가님은... 천재고... 왕이고... 신이고... 뭐가 됐건 그 비슷한 무엇이에요....) 이 에세이는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나는 글을 이렇게 쓸 수 있다. 시니컬한 A버전, 휴머니즘 약간 묻힌 B버전.” 이렇게 제시를 해둔 다음 A도 B도 아닌 새로운 길을 간다. 반어법도 적극 활용하고, 그런 걸로 유머를 주기도 한다. 문체연구반에 함께 참여했던 분 중에 한 분은 이게 완전 충청도식 화법 아니냐고 말씀하셨는데, 맞는 말씀 같았다. 금정연 서평가님도 이 부분을 계속 말씀하셨다. 이 글들은 인간 혹은 대상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를 계속 유보하면서, 쓰여지는 대상의 입체성을 최대한 확보한다고. 쉽게 비웃지 않는다고. 그래서 글을 어떻게 이렇게 쓰지? 하면서 너무 감동받으셨다고 했다. 실제로 감동적임.... 글도 글인데 강독도 진짜 짱이셨음. “와 어떻게 이렇게 쓰지.” 라는 말과 함께 “와 어떻게 이렇게 읽지.” 소리가 절로 나왔음.

“이 반석 위에서” 이외의 다른 글들도 다 이런 ‘유보의 방식’으로 대상에 접근한다. 그래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랑 비교가 많이 된다고도 말씀하셨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좀...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쓰잖아요? 내가 짱이야. 난 다 알아. 다 분석하고 다 파고들 거야. 한 번 물면 안 놓는 스타일이야. 뭐 이런 느낌이랄까. 어떤 문제나 모순에 대해서 굉장히 집요하게 파고드는 게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란 얘기죠.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문제적이라고 할 만 한 부분을 아예 언급을 안 하거나 눙치는 식으로, 혹은 우회적으로 보여지게 만드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옹호하지는 않는) 방식으로 글을 쓰기에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나는 그 지점에서 설리번의 문체가 뭐랄까. 되게 선하고 점잖은, 모범생스럽게 느껴졌다. 그에 반해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날라리 같고. 그래선지 내 취향엔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가 더 맞았음. 물론 전 생활이나 생각이나 다 모범생 스타일로 살지만요...

내가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아서, 다루는 주제들에 엄청나게 흥미를 보이지 못 한 부분도 있었다. 또 개웃긴게 나 RATM이랑 린킨 파크 1, 2집, 림프 비즈킷, 운동할 때 아직도 듣는데,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은 랩록은 졸라 구리다고 까놨음.... ㅋㅋㅋ 제 취향이 그 모양인 걸 어떡하죠? 예?! 게다가 동굴 탐험 이야기는 너무 긴 거 아닌가 싶었음. 아닌가. 그저 관심사와 흥미의 문제였던 걸지도. 뭐 그런 부분들이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좋았다. 뉴 저널리즘의 교과서 같았달까...!

#펄프헤드 #존제러마이어설리번 #알마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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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지옥에서 산다는 것 매일과 영원 7
김남숙 지음 / 민음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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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연구반 3기 세번째 책. 김남숙 소설가님의 글은 처음 접했다. 이제보니 이번에 젊은작가상도 수상하셨네. 93년생 소설가이시다 보니, 내 또래 여자사람친구의 일기를 훔쳐보는 느낌으로 읽게 되었다(제가 89년생이거든요). 아주 우울하고 아주 절망적인 일기....


내가 좋아하는 정준일이나 이소라의 노래와 닮은 면들도 있었다. 글에서 말하는 고통의 연원이 구체적인 때도 있었지만, 추상적인 경우도 많았다.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게 느껴진다고 울부짖는 언어들. 내게는 이것들이 글로 쓴 절규와 짜증과 비명, 혹은 그 모든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좀 무섭기도 했음.


사실 읽는 내내, 작가님께 “우울감의 특효약은 헬스장과 런닝”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단 생각을 마구 했다.... 스웨덴의 정신과 의사 안데르스 한센처럼.... “움직여라, 당신의 뇌가 젊어진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진 것이다. 무례한 거려나.


물론 ‘건강 지키기’가 일종의 이데올로기처럼 작동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인류는 구석기 시대때부터 꾸준히 움직여 왔고, 현대인의 많은 병폐가 그런 활동의 부재로 인해 나타나는 것으로 추측된다는 연구 결과들도 많아서, 감히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됐다.

외로움과 고립감이 정신을 병들게 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사실 나는 최근에 여러 (읽고 쓰는) 친구들을 사귀고 만나면서, 이런 것들이 많이 해소된 감이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김남숙 작가님도 마음 맞는 친구들과 독서모임 같은 거 해보시면 되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기도. 이미 하시려나. 근데 나 무슨 오은영임? 왜 이런 솔루션 제시를 자꾸 하게 되는 거임?


220p에선 나가이 가후의 소설 <강 동쪽의 기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길거리를 걸으며 오유키를 떠올리는 오에 다다스. 오에 다다스가 좋은 점은 그가 체념에 매우 가까운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다. 오에 다다스는 무언가를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데 능통한 사람이니까”, 나 같으면 이 대목을 이렇게 썼을 것 같다. “길거리를 걸으며 오유키를 떠올리는 오에 다다스. 오에 다다스가 좋은 점은 그가 체념에 매우 가까운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다. 2003년에 데뷔한 한국의 여성 그룹 가수 빅마마도 체념에 대해서라면 오에 다다스에게 한 수 접었을 것이다....” 체념 하면 빅마마니까.... 널 미워해야만 하는 거니....


이렇게 써놓고 보니,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글에서 자주 인용했던 에이젠슈타인의 말이 떠오른다. “형식은 이데올로기의 벡터다.” 나는 내 형식, 내 스타일대로 살 수밖에 없는 거겠지? 여러분도 마찬가지고. 물론 그 스타일이라는 것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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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듀 - 경성 제일 끽다점
박서련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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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조선을 배경으로 영화인 이경손과 독립운동가 현앨리스를 다룬 역사소설. 안 그래도 사려고 했었는데, 김홍 작가님 북토크 때 뵈어서 싸인과 함께 선물 받았다. ㅎㅎ ^-^v 박서련 소설가님 작품은 처음 읽었는데 너무 재밌었음(일전에 단편집 <나, 나, 마들렌>을 읽으려다 못 읽었다…). 다음주에 핀드에서 운영하는 카페 핀드에서 북토크도 있대서 빠르게 완독하게 되었다. 읽고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음.

이 소설의 가장 뛰어난 점은 1920년대의 말투와 문체를 고스란히 되살린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경손을 화자로 삼아서 현앨리스라는 미스테리한 인물을 만나게 하는 방식도 넘 좋고. 물론 현앨리스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라는 건 일전에 정지돈 작가님의 <모든 것은 영원했다>를 읽었어서, 알고 있었지만, 역사적 사실을 알아도 미스테리한 인물로 묘사를 잘 해놓으셔서 긴장감이 있다.

또 한 가지 멋진 점은 독립운동가라는 존재를 엄숙하고 숭고하게만 그리지 않고, 굉장히 스타일리시하게 그린 점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내가 넘 대단한 사람이랑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얘기도 나누고 그랬다는 사실에 새삼 황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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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스 킹!!!
김홍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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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엉>에 이어서 너무 재밌게 읽었다. (<엉엉>처럼) 설정한 세계와 이야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대단한데, 특유의 농담과 능청도 여전하다. 그 힘과 감각이 이 초현실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데선 묘하게 리얼한) 이야기를 끝까지 웃으면서 읽게 만든다.

 

한편 무대가 마트라는 점이라든가, <엉엉>에 이어서 백종원이 대통령이 된다든가(여기선 박종일이 아니라 백종원이 그대로 나온다, 박종일이 대통령이 된 소설이 있다는 코멘트를 해서 <엉엉>을 언급하기도 한다. <엉엉> 읽은 사람은 안 웃기 힘든 대목…), 성경의 레퍼런스를 마구 따온다든가, 코끼리가 등장한다든가 하는 점에서 메타포들을 갖고 상상하고 조직하고 해석하고 무언가 덧붙일 여지를 굉장히 많이 준다. 이런 요소들이 (되게 웃기면서도) 일종의 우화 혹은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이야기처럼 보이게도 한다. 구천구가 구 세제곱이 되었을 때, 그 초현실적인 존재가 굉장히 현실적으로 묘사되는 문장 문장도 재미가 있다. “와 진짜 짱 뻔뻔해라면서 감탄하게 됨….

 

마지막에 실린 강보원 시인님과의 인터뷰도 매우 재밌게 봤다. (왠지 석원이형이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김홍 작가님의 성격이 너무나도 잘 드러난다고 할까그리고 LG 트윈스 우승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진부책방스튜디오에서 하는 북토크에서도 그 얘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음…. 진행자 금정연 작가님도 LG 트윈스 팬이셔서…. (야알못이라 여기까지만 이야기 합니다…)

 

29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이라고 한다. 나는 오래 전에, 그러니까 대학생 때, <새의 선물>, <고래>도 너무 재밌게 읽었기에, SNS로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내 일처럼 기뻐했었다. 수상 소식을 너무 축하드리고 싶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100%의 소설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본인이 하고 싶은 걸 100% 다 해낸 느낌, 덕분에 독자인 나 또한 100%의 재미를 만끽했다. 그러니 지금처럼 유쾌하고 웃기고 우정 가득하면서도 초현실적인 동시에 이상하게 리얼한, 우화처럼 작동하는 소설들, 앞으로도 열심히 써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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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린 게임과 개발자들 NEON SIGN 6
김쿠만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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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회사를 배경으로 게임 제작기를 소설화한 작품.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소설처럼 보인다. 안 그래도 올해 초에 <바이오 하자드 RE4> 할인하길래 받아놔서 그랬는지, 그리고 고등학생 때 PS2로 코지마 히데오의 <메탈 기어 솔리드 2>를 너무 재밌게 했어서 그랬는지, 반가운 내용들이 많았다. 10년 뒤엔 정말 <바이오 하자드 RE RE 4>가 나올지도…. 그리고 코지마 히데오는 정말 <데스 스트랜딩> 이후로 한국의 귀신들이 나오는 호러 게임을 만들어버릴지도….

화자인 주인공 인물은, 김쿠만 작가님 본인을 대입한 인물처럼 보인다. 물론 완전히 같은 인물은 아니겠지만, 소설을 쓰다가 게임 회사에 입사한다는 점, 그리고 하루 빨리 퇴사하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본인 자신처럼 보였다. 책방 봄에서 행사할 때 세 네 번쯤 뵈어서 나름 친분이 생겼다보니, 더 그렇게 대입시키며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게임 회사에 대한 애증, 직장 생활에 대한 염증, 문학에 대한 자조, 시니컬한 유머 감각이 가득 담겨 있다. 읽으면서 자주 키득거렸다. 역시 그는 디시인사이드 독서갤러리의 갤주! 😆 독갤의 신! 😆 작가의 말까지 읽고나선 게임 회사 재취업 대신 전업소설가가 되시면 넘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작품도 응원합니다. 🥹

#신들린게임과개발자들 #김쿠만 #자음과모음 #한국소설 #한국문학 #소설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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