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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노명우 지음 / 클 / 202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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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사회학자 노명우 교수님의 팬이었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이라든가,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같은 책을 재밌게 읽었고, 번역하신 지그문트 바우만의 <사회학의 쓸모>도 흥미롭게 읽었었다. 물론 번역하신 책은 지그문트 바우만 책이라서 읽은 거긴 했지만. 그 외에도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노동의 이유를 말하다>와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을 꿈꾸다> 처럼 막스 베버와 요한 하위징아의 고전을 해설한 책, 그리고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사회학적 미디어 비평 책을 사서 갖고있기도 하다(읽다 말았다. ^_^;). 그래서 서점을 차린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관심이 갔다. 당연하지만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사회학자의 독립서점이라니, 어떤 곳이 될지 매우 궁금했다. 그리고 책을 읽어보니 예상한대로 그 서점은 '인문사회과학예술 전문 서점'이 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2018년 9월에 열린 이 서점을 나는 좀처럼 가볼 일이 없었다. 그렇게 지내다 우연히 니은서점의 인스타그램 계정과 페이스북 페이지 같은 SNS 계정이 존재하는 걸 보고 팔로우를 하고 있었다. 다만 이 때도 팔로우만 하고 인터넷으로 구경만 했지. 찾아갈 생각은 못했다. 내가 사는 동네가 이 서점이 있는 은평구와 함께 같은 서울에 있고 같은 강북이긴 한데, 그 사이에는 산이 하나 떡하니 가로막고있어서 내 입장에선 거길 가는 게 매우 불편하다. 그래서 책 출간 소식을 보고 바로 구매했다. 그런데...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를 했다. 새삼 죄송스럽지만, 그렇게 됐습니다....
당연히 그러리라 생각했지만, 이 책은 단순한 독립서점 창업기가 아니다. 단순한 독립서점 창업기도 물론 좋겠지만, 이 책에는 그 이상의 풍부한 사유들이 담겨있다. 독서라는 행위가 가진 의미라든지, 저자와 독자, 그리고 책의 물성과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체험하고 찬찬히 고르며 또한 낯선 세계를 갑작스레 맞닥뜨릴 수 있는 서점이라는 장소가 가진 의미, 그리고 그것들 사이의 관계. 뭐 이런 것들에 대해 풍부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그 내용들을 책에 잘 담아놓았다. 그중에 몇 가지 인상깊었던 내용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종이로 된 책을 왜 굳이 사서 읽는 게 좋은 것인가'를 다룬 것이다.
도서관도 있는데 왜 책을 사서 읽으면 좋을까? 그건 바로 책과 '육체적으로 사랑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 이렇게 표현되어 있는 것은 아니나, 요약하자면 이런 것이다.) 사서 읽으면 읽는 동안, 마음대로 밑줄을 긋고, 마음대로 포스트잇을 붙이고, 여백에 메모를 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있다. 빌려 읽는 책에는 할 수 없는 행위다. 이 대목은 전자책과 종이책을 비교하는 맥락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다. 전자책 또한 육체적인 흔적을 남기는 것은 제한적으로만 가능하다. 오직 '내가 산 종이책'에만 온전히 할 수 있는 행위다. 중요한 건 그렇게 읽을 때 책은 온전히 '나의 책'이 된다는 것이다. 책에 담긴 정신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전자책과 종이책을 비교하는 때 알베르토 망겔이 인용되어 있다. 아주 적절하다. "전자책에 대한 사랑이 플라토닉한 사랑이라면 종이책에 대한 사랑은 에로틱한 사랑이다."
독립서점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독립서점들은 저마다 개성을 가진다. 개성의 근원은 예쁜 인테리어 따위가 아니라 '큐레이션'에 있다. 서점 주인의 안목을 믿고 가는 것이다. 그래서 독립서점들은 천편일률적이기가 힘들다. 저마다 다 다른 세계를 살아왔고, 저마다 다 다른 고유성을 내재하고 있는 인물들이다. 이것은 책의 종류를 다양화하는데도 기여한다. 다양한 책방들이 많이 열려야 여러 소규모 출판사들의 다종다양한 책들도 공생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인터넷 서점, 대형서점과 독립서점들의 공급률이 같지 않다는 점이 이런 공생의 문을 자꾸만 닫고 있는 것 같다. 서점 주인의 큐레이션을 통해 꾸리는 개성 넘치는 동네 독립서점이 경쟁력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영세 자영업자인데 물건을 더 비싸게 팔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많이 남기지 못 하는데)
사실 나만 해도 책을 어마어마하게 사들이는 인간인데, 인터넷 서점에선 책이 10% 할인도 되고, 5% 적립금까지 받을 수 있으니 웬만한 책들은 다 인터넷 서점에서 산다. 내 나름의 취향도 안목도 있어서 인터넷만 봐도 나름 책을 잘 고르기 때문에 독립서점에 굳이 가야 할 이유가 사실은 많지 않다. 심지어 동네 독립서점은 엊그저께 친구 만나서 처음 가봤다. 그렇다면 독립서점을 동네에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일일지 모르겠다. 수지타산이 맞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이 벌리는 것도 아니고, 독서인구는 계속 줄고, 산업 자체가 사양산업인데 이런 걸 굳이 만들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러다 잘 될지도 몰라 니은서점>(이하 니은서점)을 읽으면서 이런 공간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의미를 공유하고, 직접 사람과 대면하고, 대화를 나누고, 저자와의 소규모 만남을 통해 독서 경험을 넓히고, 바에 있는 바텐더에게 칵테일을 추천받듯, 서점에 있는 북텐더에게 책을 추천받으면서 혼자 있을 땐 접하지 못 했을 세계를 만나보는 경험. 작지만 단단하고 정신적인 성숙을 다 함께 도모하는 공동체, 혹은 그런 기지. 동네에 그런 게 하나쯤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편리하게 저렴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어떤 책을 만나는 과정 자체가 새로운 독서를, 또는 낯선 세계와의 접촉을 장려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립서점이라는 것을 만드는 게 결코 '어리석기만 한' 일은 아닐 것이다.
책은 물론 상품이다. 하지만 시장원리에 완전히 구속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책은 상품적 속성만 지니는 게 아니라 '가격' 이상의 문화적 가치를 품는다는 게 <니은서점>에서 이야기되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렇게 책이 품고 있는 문화적 가치가 다양하게 창조되고 발생돼야 비로소 건강한 책의 생태계가 구현된다는 주장도 여기엔 담겨있다. 나도 동의한다. 책은 '경험재'다. 책에서 인용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이 경험재라는 속성에 대해 풀어 써보겠다. 책을 산다는 건 그 책을 읽는 시간과 경험,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거기 담긴 정신을 나의 것으로 취하는 것까지 함께 구매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은 소비재가 될 수가 없다. 한 번 쓰고 버려질 수 없다. 용도를 다 하고 사라질 수 없다. 정신에 온전히, 아니 어쩌면 영원히 남는다.
이런 경험재를 판매하는 많은 독립서점 중에서 은평구에 있는 '니은서점'은 니은서점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와 인간적인 느낌, 고유한 정서, 저마다의 글을 쓰는 구보라, 이동근, 정성근 북텐더의 책에 대한 애정 같은 게 온전히 전달되는 곳처럼 보인다. 그래서 읽다보면 "아 맞아, 과연 세상엔 이런 공간이 필요하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책'이라는 매체가 존재하는 한, 니은서점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이 책 속의 이야기처럼 니은서점이 영원했으면 한다. 아니, 독립서점들 모두가 영원했으면 싶다. 그래서 다들 "이러다 잘될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시간을 내서 니은서점에 한 번 가야겠다고 책장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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