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버블링 - 신빈곤 시대의 정치경제학 생태경제학 시리즈 3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정부에서 "우리는 가난하지 않다" 혹은 "우리는 복지를 정말 잘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진짜로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과연 그래"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계획하고, 그런 활동이 자연스럽게 출산으로까지 이어지는 순간, 그때 우리는 이 어두웠던 순간들을 빠져나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한다, 그 말을 잃어버린 경제, 그건 경제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다. 존 롤스의 <정의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들의 영혼이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지 합의한 내용, 그것이 정의다. 한국의 경우는 "우리 저기에서 태어나지 말자"라고 태아의 영혼들이 합의한 땅이 된 것이 아닌가? 경제를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생식이 사라지고, 섹스가 사라진 경제, 그건 태아들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경제이지만, 동시에 어른들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경제다.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 섹스를 잃어버리고, 재생산이 정지된 사회, 그건 경제의 기본 얼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우석훈, <디버블링>, 개마고원(2010), 538~539쪽 인용)

고단한 일상에 인생의 피로는 깊어만 간다. 대한민국이 어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직감하지만, 생각은 잘 정리되지 않는다. MB, 대운하, 재개발, 전세난, 실업난, 사교육, 출산율 저하, 결혼 연령대 상승 등. 동시대에 목격되는 이런 (불편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석훈은 <디버블링>을 통해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설명을 제공한다. 작금의 비정한 현실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면서도, 특유의 경쾌함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슬프다) 구체적 현실을 복잡한 경제학설을 동원하지 않고 간단한 개념과 상식적 추론에 따라 분석하기 때문에, 이해가 어렵지 않다. 특히, 설명에 활용되는 예시와 비유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상황(혹은 명제)들이라 에세이처럼 잘 읽힌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생태/경제적) 제 살 깎아먹기'의 파국적 결과를  '리얼타임'으로 체험하고 있다. 마땅한 출구가 없다는 점에서 상황은 절망적이다. 물론, 우석훈은 대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우리네 현실을 돌아보면 다분히 이상적인 느낌이라, 공허하게 들린다. 이성의 비관을 의지의 낙관으로 극복해야겠지만, 요즘처럼 우울한 세상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술자리의 자조섞인 농담처럼 영원히 도시빈민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우석훈이 분석하고, 나 또한 동감하는 '내가 결혼을 주저하는 이유'이다. 

 (필자의 동일한 블로그에도 같은 글을 게시하였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독한 시월의 밤
로저 젤라즈니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뭐라 해야 좋을까. 고전 추리/공포소설에 바치는 로저 젤라즈니의 팬픽(Fan-fiction). 혹은 젤라즈니식 애완동물 활극. 김훈에게 <개>가 있다면, 젤라즈니에게는 <고독한 시월의 밤>이 있다, 라는 말도 가능하겠다.(개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한다.) 오히려 난 <별을 쫓는 자> 보다는 이런 아기자기한 소품이 더 좋다.  

덧말 : 별 다섯개짜리 소설이지만, 중간에 책의 페이지가 뒤섞여 별 하나 차감이다. 바꿀까 하다가, 재배송하고 돌려받고 하는 과정이 귀찮아 관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서록 이태준 문학전집 15
이태준 지음 / 깊은샘 / 1994년 11월
평점 :
품절


이태준의 <무서록>('41년)을 다시 읽었다. <무서록>은 어떤 사물이나 주제에 대한 이태준의 감상과 의견을 모은 일종의 에세이다. 당대의 가장 뛰어난 문장가였던 이태준의 글인 만큼, 7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훌륭하다. 차분하고 정갈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읽는 맛이 있다. 글을 따라가다 보면, 살며시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여러 차례 찾아온다. 한 예로, 이태준의 책에 대한 (한편으로는 '오타쿠'적인) 헌사를 일부 옮겨본다.

책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 책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하면 다 되는 것이 책이다. 책은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책에게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다. 의복이나 주택은 보온만을 위한 세기는 벌써 아니다. 육체를 위해서도 이미 그렇거든 하물며 감정의, 정신의, 사상의 의복이요 주택인 책에 있어서랴!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나는 늘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 정류장에 나와 포장지를 끄르고 전차에 올라 첫페이지를 읽어보는 맛, 전찻길이 멀수록 복되다. 집에 갖다 한번 그들 사이에 던져버리는 날은 그제는 잠이나 오지 않는 날 밤에야 그의 존재를 깨닫는 심히 박정한 주인이 된다.

책에만은 나는 봉건적인 여성관이다. 너무 건강해선 무거워 안된다. 가볍고 얄팍하고 뚜겅도 예전 능화지처럼 부드러워 한손에 말아 쥐고 누워서도 읽기 좋기를 탐낸다. 그러나 덮어놓으면 떠들리거나 구김살이 잡히지 않고 이내 고요히 제 태(態)로 돌아가는 인종이 있기를 바란다고 할까.

이태준, <무서록>, 범우사(2009), 69-71쪽 발췌 인용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나 같은 '오타쿠'로써는 감히 따를 수 없을 만큼 고상하고 세련된 애정 표현이다. 아마도 나라면 "책은 표지가 멋져야 짱이지. 좋은 책은 일단 사고 보는 거야, 애정은 살 때 뿐이고 집에 가면 내팽개치겠지만 말이야. 읽기 불편한 양장본은 완전 비추, 집에서 뒹굴거리며 읽기에는 문고본이 쵝오"라는 유치찬란한 외계어로 도배를 했을 텐데. 내 나이가 이태준이 <무서록>의 글들을 쓴 시기와 비슷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참담한 심정이다. (나만을 근거로 일반화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과거보다 생활은 더 풍요롭고 윤택했졌지만, 우리네 삶은 더 천박하고 자극적으로 변했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것은 진보일까, 퇴보일까.

덧말 : '46년 월북한 이태준은 김일성 우상화 관련 글의 집필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56년경 숙청되어 작가의 지위를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단은 얼마나 많은 재능을 이런 식으로 파괴했을까 

(주인장의 개인 블로그인  http://sekaman.tistory.com/에도 같은 글이 게시되어 있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대중 자서전 - 전2권 김대중 자서전
김대중 지음 / 삼인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치인은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 상황이 나쁘면 최악을 피하고 차악을 택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정치인이란 현실을 살펴 미래를 향한 진리를 구하는 것이지 진리만 붙들고 현실을 도외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 정치인으로서의 내 생각이다. <김대중 자서전>, 68쪽 인용.

우리는 종종 가까운 사람을 함부로 대한다. 편하다는 이유로 가족과 친구와 연인을 힘들게 하고, 그들을 잃고 나서야 뼈저리게 후회한다. '김대중'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그러하다.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 생존해 있을 때, 우리는 그에게 많은 상처와 고난을 주었다. 빨갱이라 욕하고, 전라도 깽깽이라 비하했다. 한반도의 평화정착 노력을 노벨상 수상을 위한 포석이라 폄하했고, IMF의 극복과 사회 전반의 민주화라는 성과도 애써 과소평가 했다. 그러나 장사꾼과 협잡꾼이 정치인을 자처하며 날뛰는 세상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어렵고 위대한 일이었는지 깨닫는다. 우리는 거인을 잃었다. 기록할 필요가 있고, 기억할 가치가 있는 인생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해 - The Yellow Sea
영화
평점 :
상영종료


<황해>의 세계는 무참하다. 각자가 나름의 의도와 계산에 따라 행동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예상 밖이다. 사태는 점점 복잡하게 확대되지만, 누구도 상황을 장악하지 못한다. 미친개처럼 서로를 향해 짖어대고 물어 뜯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등장인물 모두는 누런 바닷물처럼 불투명한 현실 속에서 파국을 향해 질주한다. 힘들게 붙든 사건의 전말에는 (누군가의 혹은 자신의) 질투와 시기의 흔적 뿐이다. 요약하자면, 지독하게 비관적인 핏빛 <사랑과 전쟁>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최정상의 배우와 100억원 이상의 자금을 동원하여 (강박증에 가까운) 완벽한 마감으로 풀어낸다. 이야기가 다소 모호하고 불친절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영화에 잘 어울린다. 우왕좌왕하는 주인공처럼, 우리네 삶도 갈팔질팡의 연속이다. 우리는 애써 외면하지만, 현실에 대한 이해란 사실 불가능하다.

<황해>는 영화적 재미의 측면에서 <부당거래>나 <아저씨>에 못미치지만, 두 영화를 압도하는 강렬함이 있다. 제대로 된 한국산 하드보일드이다.

덧말 : 어떤 분의 말씀처럼 우리 사회는 점차 '선진화' 중인데, 왜 영화적 현실은 점점 더 험악해지는가. 아이들의 장기를 팔고(아저씨), 연쇄살인범이 자유롭게 활개치며(악마를 보았다), 청부살인이 횡행하는 현실(황해)은 과연 영화 속 판타지에 불과한 걸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의 블로그 http://sekaman.tistory.com/ 에서 옮겨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