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록 이태준 문학전집 15
이태준 지음 / 깊은샘 / 1994년 11월
평점 :
품절


이태준의 <무서록>('41년)을 다시 읽었다. <무서록>은 어떤 사물이나 주제에 대한 이태준의 감상과 의견을 모은 일종의 에세이다. 당대의 가장 뛰어난 문장가였던 이태준의 글인 만큼, 7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훌륭하다. 차분하고 정갈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읽는 맛이 있다. 글을 따라가다 보면, 살며시 미소 짓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 여러 차례 찾아온다. 한 예로, 이태준의 책에 대한 (한편으로는 '오타쿠'적인) 헌사를 일부 옮겨본다.

책만은 '책'보다 '冊'으로 쓰고 싶다. '책'보다 '冊'이 더 아름답고 더 '책'답다. 책은, 읽는 것인가? 보는 것인가? 어루만지는 것인가? 하면 다 되는 것이 책이다. 책은 읽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건 책에게 너무 가혹하고 원시적인 평가다. 의복이나 주택은 보온만을 위한 세기는 벌써 아니다. 육체를 위해서도 이미 그렇거든 하물며 감정의, 정신의, 사상의 의복이요 주택인 책에 있어서랴! 책은 한껏 아름다워라. 그대는 인공으로 된 모든 문화물 가운데 꽃이요 천사요 또한 제왕이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나는 늘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 정류장에 나와 포장지를 끄르고 전차에 올라 첫페이지를 읽어보는 맛, 전찻길이 멀수록 복되다. 집에 갖다 한번 그들 사이에 던져버리는 날은 그제는 잠이나 오지 않는 날 밤에야 그의 존재를 깨닫는 심히 박정한 주인이 된다.

책에만은 나는 봉건적인 여성관이다. 너무 건강해선 무거워 안된다. 가볍고 얄팍하고 뚜겅도 예전 능화지처럼 부드러워 한손에 말아 쥐고 누워서도 읽기 좋기를 탐낸다. 그러나 덮어놓으면 떠들리거나 구김살이 잡히지 않고 이내 고요히 제 태(態)로 돌아가는 인종이 있기를 바란다고 할까.

이태준, <무서록>, 범우사(2009), 69-71쪽 발췌 인용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나 같은 '오타쿠'로써는 감히 따를 수 없을 만큼 고상하고 세련된 애정 표현이다. 아마도 나라면 "책은 표지가 멋져야 짱이지. 좋은 책은 일단 사고 보는 거야, 애정은 살 때 뿐이고 집에 가면 내팽개치겠지만 말이야. 읽기 불편한 양장본은 완전 비추, 집에서 뒹굴거리며 읽기에는 문고본이 쵝오"라는 유치찬란한 외계어로 도배를 했을 텐데. 내 나이가 이태준이 <무서록>의 글들을 쓴 시기와 비슷하다는 점을 떠올리면, 참담한 심정이다. (나만을 근거로 일반화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과거보다 생활은 더 풍요롭고 윤택했졌지만, 우리네 삶은 더 천박하고 자극적으로 변했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것은 진보일까, 퇴보일까.

덧말 : '46년 월북한 이태준은 김일성 우상화 관련 글의 집필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56년경 숙청되어 작가의 지위를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분단은 얼마나 많은 재능을 이런 식으로 파괴했을까 

(주인장의 개인 블로그인  http://sekaman.tistory.com/에도 같은 글이 게시되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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