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의 정원
리앙 지음, 김양수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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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대표적인 여류작가, 리앙(李昻, Li Ang)의 첫 번째 장편소설인 『미로의 정원(迷園)』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전에 대만 출신 작가의 글을 읽어 본 적도 거의 없는 데다 리앙의 소설도 처음인데, 이 작품은 출간 이래로 끊임없는 논쟁을 불러일으킨 소설이라고 하여 더욱 기대가 컸다.

 

작가의 조국인 대만의 역사와 한국의 역사는 닮은꼴이다. 둘 다 일본 식민지배를 받았고 한국이 그러했듯 대만도 오랜 기간 동안 국민당의 군사 독재를 겪은 후에야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다. 1949년부터 1987년까지 이어진 계엄령 하에서는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금지되었다고 하는데 작가, 리앙은 바로 이 시기에 『미로의 정원』을 집필했다고 하니 대만 민족의 역사와 관련된 민감한 이슈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이 얼마나 많은 검열을 받았을 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작가가 1991년에 쓴 서문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다만 마지막으로 밝혀두고 싶은 것은 『미로의 정원』은 <중국시보>에 연재되는 동안 일부 내용을 삭제당했으며, 출판된 단행본이야말로 진정한 원본이라는 사실입니다."

 

소인국이 등장하는 동화로만 알고 있던 『걸리버 여행기』를 무삭제 완역판으로 읽었을 때의 충격을 떠올리며 나는 소설, 『미로의 정원』의 첫 장을 넘겼다.

 

주잉홍이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소설은 얼핏보면 (출간 당시로는 상당히 파격적이었을 장면이 다수 등장하는) 단순 연애소설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대만 사회의 역사, 바로 그 자체가 아닐까.

각종 금기가 난무하는 시대에 쓴 글이기에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많은 주제나 메세지들을 은밀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가령,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중요한 장소로서 계속 등장하는 대만의 명문 세가 루청 주씨 집안의 정원인 함원은 실은 대만이라는 나라 자체이며 주잉홍이 이끄는 주씨 집안이 거쳐온 세월은 대만 민족의 역사를 의미하는 식으로 말이다. 주잉홍은 힘을 잃은 지식인이었던 아버지, 주주옌이 집에서만 칩거하며 소중하게 가꿔온, 그러나 아버지 사후에 황폐해져버린 함원을 다시금 일으켜 세운다. 주잉홍의 이런 노력은 어린 시절부터 미국과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그 곳에서 계속 살아가며서 이제는 대만인이라기보다는 외국인에 더 가깝게 되어버린-그래서 아버지의 장례마저 제대로 치르지 못하고 다시 대만을 떠나야만 했던- 주잉홍의 남자 형제들의 삶과 대조를 보인다.

 

주잉홍은 대만의 부동산붐을 따고 일약 거물로 떠오른 건축업의 대가이자 그녀의 남편인 린시겅의 도움으로 함원을 재건한다. 그리고 이공간을 정부에 헌납하는 대신 대만 사람들을 위한 공공의 장소로 기증을 하며 이야기를 맺는다.

"나는 이 정원이 타이완의 것, 2천 타이완 사람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인민을 억압한 정부의 것이 아니라." 

일면, 박경리의 『토지』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 소설을 통해 나는 짧게 나마 대만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여행을 한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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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중반 건강한 임신을 부탁해 - 아기가 찾아오는 엄마의 몸, 아기가 멀어지는 엄마의 몸
조 마리코, 기타노하라 마사다카 지음, 류지연 옮김 / 프리렉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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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고 나니 읽게되는 책의 종류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전에는 임신이나 육아, 재테크에 관한 책은 거의 읽지 않았었는데 이젠 그 쪽 분야에도 관심이 계속 생긴다. 그래서 어디 볼 만한 책이 없나 찾아보고 있던 차에, 『서른 중반, 건강한 임신을 부탁해』라는 책을 발견해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서른 중반에 임신을 계획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 다만, 내가 서른 중반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어디에 자랑할 것도 아니고 표지에 '서른 중반'이라는 글자가 떡하니, 그것도 빨간색으로 적혀있어서 지하철 같은 외부 장소에서는 이 책을 읽기가 좀 꺼려졌던 게 사실이다. 다른 독자들의 생각은 어떨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나 내 주위의 몇 몇 사람들의 의견은 이렇다. 지금 이대로의 표지 디자인이라면 이 책의 타겟 독자들에게는 확실히 눈도장을 찍을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독자 입장에서 이 책을 구매해서 들고 다니며 읽기에는 다소 부담스럽다는 것. 이런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좀 더 써주면 좋았으련만...조금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제 내용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가서, 저자인 조 마리코는 20대에 불임, 비만, 여드름의 삼중고에 시달렸던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 때 피부과 치료를 받으러 갔던 병원의 소개로 '영양 테라피'라는 분야를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몸도 개선되고 임신에도 성공했다고 한다. 그 이후 영양 카운셀러로 일하며 노하우를 쌓은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정리해 내 놓은 책이 바로 『서른 중반 건강한 임신을 부탁해』이다.

임신을 계획중이거나 불임으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이 책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 아기라면 폭신한 침대와 딱딱한 침대 중 어느 쪽에 머물고 싶나요?'

정답은 당연히 '폭신한 침대'이며 폭신한 침대처럼 안락한 자궁 환경은 엄마가 섭취하는 영양, 다시 말해, 엄마가 매일 먹는 음식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임신을 생각하고 있는 여성이라면 필요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식습관을 바꾸면 아기가 찾아온다>, <장점이 가득한 영양 테라피의 비밀>, <기억하자! 엄마가 되기 위한 영양소>, <달라진 식습관으로 오늘부터 임신체질>, <영양소별 임신체질을 만드는 레시피>. 이상의 다섯 장으로 구성된 책을 읽으며 나는 마냥 건강체질이라고만 생각해오던 나의 몸을 다시 한 번 살펴볼 기회를 얻었다. 책을 읽으면서 올 초에 병원에서 받은 건강검진 결과를 펴놓고 함께 봤는데 다행히 검사수치상으로는 매우 건강한 상태이지만 단백질과 철을 좀 더 섭취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덧붙여, 임신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므로 남편의 몸도 임신에 맞게 준비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서른 중반 건강한 임신을 부탁해』는 이 부분에 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는다. 수록된 칼럼에 따르면 남성은 아연을 섭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현대 직장인 남성들의 일반적인 생활패턴을 보면 대부분의 남성들이 아연결핍 상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한다.

『서른 중반 건강한 임신을 부탁해』가 유용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칫 부족할 수도 있는 영양소를 짚어주고 그것을 보충하기 위해 어떤 음식들을 먹어야 할 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장에 실린 레시피는 집에서도 쉽게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해서 마음에 들었다. 이제 읽은 것을 실천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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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 스웨덴의 한가운데서 우리가 꿈꾸는 대한민국을 만나다
최연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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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기간은 아니지만 스웨덴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스웨덴'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일단 귀가 솔깃해진다. 최근 스웨덴에서 귀국한 지인과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이 책은 스웨덴 사회의 한 면만을 보여주는 것 같아 조금 아쉽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 만들어진 말이긴 하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를 가장 적절하게 구현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스웨덴 사회의 복지에 대해 좀 더 알고싶은 마음에 이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소위 '먹고 살 만한' 수준에 이른 한국인들도 이제 하나, 둘 복지로 눈을 돌리고 있다. 정부는 벤치마킹할 대상을 찾기 시작했고 스웨덴, 핀란드 등으로 대표되는 북구의 복지사회에 대한 이야기도 봇물 터지듯 밀려들어오고 있다.

스웨덴 쇠데르턴(Södertörn) 대학 정치학과 교수로 지난 25년 간 근무하며 스웨덴의 속살을 체험해 온 최연혁 교수는 저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를 통해 복지국가의 대표주자로 널리 알려진 스웨덴의 복지정책과 더불어 이런 정책을 가능하게 만든 스웨덴의 사회적 배경을 함께 소개한다.

<스웨덴의 맨살을 엿보다>, <믿음과 실천으로 움직이는 사회>, <나눔에 대한 생각을 바꾸다>, <스웨덴에서 정치인으로 산다는 것>,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나라>, <행복의 유토피아를 찾아서>, 이상의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스웨덴의 복지정책과 더불어 본인이 직접 만난 스웨덴인들의 이야기를 함께 언급함으로써 스웨덴 정부의 정책과 그것을 대하는 스웨덴 국민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함께 소개한다.

(조금 서글픈 이야기지만)그러고보면 스웨덴인들은 한국 사회에서 인생의 대부분의 시기를 보낸 나 같은 사람들이 단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우선,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혜택을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혜택이 가능하게 된 바탕이 바로 '모두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스웨덴 국민들의 암묵적 합의라는 것 또한 비현실적이다.

국민의 행복 지수가 덴마크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나라, 1년에 5주가 법정휴가인, 그래서 매 년 여름이면 나라 전체가 휴가 모드로 들어가는 나라, 18세까지의 아동은 치아교정 등 치과 치료 비용이 완전 무료인 데다 6세부터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교육비도 완전 무료로 제공되는 곳. 뿐만 아니다. 모든 아동에게 아동수당이 지급되고 학생들에게는 생활 보조금이 지원되며 직장을 잃게 되면 다시 직업을 찾을 때까지 재취업 교육과 실업수당이 지급되는 곳. 나라도 당장 이민가고 싶어지는 환상적인 복지아닌가!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나라가 바로 스웨덴이다.

하지만 스웨덴 정부는 재물이 끝도없이 쏟아져나오는 화수분을 갖고있지 않다. 다시 말해, 이 모든 복지의 바탕은 스웨덴인들과 스웨덴 기업들이 내는 엄청난 세금(개인들 중에서 가장 높은 세율을 내는 사람은 봉급의 최대 60%를 세금으로 내고, 가장 낮은 세율도 29%에 이른다고 한다. 기업의 경우, OECD 평균과 유럽연합 회원국 평균을 웃도는 26.3%를 법인세로 낸다.)이라는 얘기다.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가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당장 이민가고 싶어지는 나라지만, 내가 국가를, 사회를, 그리고 다른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생각하면 이민에 대한 생각이 당장에 없어질만한 세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웨덴인들은 이런 살인적인 세금을 선뜻 부담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저자는 '세금은 자신을 위한 복지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스웨덴인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믿음을 주는 정치라고 말한다. 저자가 정치학을 전공하고 스웨덴에서도 정치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어서인지 스웨덴 정치인들의 이야기가 이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다. 특권 의식 없이 자신의 직업에 충실히 임하는 '스웨덴 정치인'들의 사례를 읽다보면 연일 신문을 장식하는 '한국에서 정치하시는 분'들의 모습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역사는 사람을 속일 수 없고 국민을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조국을 믿을 것인지 여부를 결정한다.

물론, 스웨덴 사회에도 이민자가 많이 늘고 있고 그로 인해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은 스웨덴의 복지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고. 스웨덴 사회와 스웨덴 복지정책의 밝은면만을 주로 다룬 책이긴 했지만, 그리고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스웨덴의 정책을 한국에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꿈꾸는 미래'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해주는 데는 성공한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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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말하지말라 - 한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그래서 더 진실한 아프리카의 역사 이야기 백인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말하지 말라 1
김명주 지음 / 미래를소유한사람들(MSD미디어)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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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소속 공무원으로 현재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에 파견 근무 중인 저자가 지난 4년 간 아프리카 현지에서 생생하게 보고 듣고 배우고 느낀 것을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바로, 『백인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말하지 말라』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 그 주인공이다.

내 삶에 있어서 아프리카는 '쉽게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곳이었고 지금도 비교적 그러하다. 그러나 신혼여행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엘 다녀온 이후, 그러니까 아프리카의 발끝을 살짝 만지고 돌아온 이후, 이제는 '아프리카'라는 단어마저도 부쩍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이유에서 아프리카와 관련된 글을 전보다 더 관심을 갖고 찾아 읽어보던 중 『백인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말하지 말라』를 읽게 되었다.

2010년 말,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재스민 혁명은 아프리카와 아랍권 국가에서 쿠테타를 통하지 않고 민중들이 나서 독재정권을 몰아낸 최초의 혁명이라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아프리카와 아랍의 다른 독재국가들로도 민주화 시위가 퍼져나갔다고 하는데,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혁명인지 폭동인지 아니면 또 다른 군사독재의 시작인지를 알 길이 없었던 이 소요사태 속에 저자, 김명주가 있었다고 한다.

안타깝지만 '독재'라든지 '쿠테타', '빈곤', '부패' 등의 단어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버린 듯하다. 마치 이런 부정적인 요소들은 아프리카인들이기에 겪고 있는 고통이라는 듯. 하지만 4년 이라는 기간 동안 아프리카 현지에서 아프리카인들과 함께 매일을 보냈던 저자는 아프리카가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는 데에는 아프리카인들의 특질보다는 서구열강들의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조목조목 그 논리를 펼친다.

아프리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단편적인 사실들만(어쩌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었을 이야기들만) 알고 이 책을 읽었던 독자 입장에서, 『백인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말하지 말라』는 참으로 친절했다. 총 27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인류의 조상이라고 알려진 루시(1974년 에티오피아의 하다르Hadar에서 발견된 320만년 전 인류의 화석으로 '인류의 어머니'로 알려져있다. 물론 그녀는 아프리카인이지만 지극히 서구적인 '루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처음으로 금속을 주조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고대 아프리카 시대를 거쳐 포르투갈인들로부터 시작해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프리카를 제멋대로 나눠 먹던 중세 시기도 언급하고 가깝게는 2012년 현재의 아프리카와 아프리카인들의 모습까지도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 중 하나는 이 책이 세계사 연표 식으로 조금 읽다가 질리가 딱 좋게 지루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기에 아프리카 역사에 큰 관심이나 지식이 없었던 독자들이 읽기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는 점이다. 또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프리카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끝을 맺지만 우리가 겪었던 유사한 역사적 사건들을 적절히 배치시켜가며 한국인 독자들이 아프리카인들이 지나온 역사를 좀 더 생생하게 느끼고 그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가기 전에 『백인의 눈으로 아프리카를 말하지 말라』를 읽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이토록 충격적인 사건들을 견뎌냈고, 아직도 견뎌내고 있는 그 땅에서 난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해서 제대로 신혼여행을 즐기기 못했을까? 하지만 동시에,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어쩌면 더 크고 더 넓고 더 깊게 아프리카를 들여다보고 올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책을 조금 급하게 만드셨는지 (많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오타가 발견되고 본문 중간 부분에는 완전히 동일한 문단이 두 번 반복해서 실려있기도 했었다. 그래서 읽던 흐름이 조금 끊겼던 것을 제외하면 매우 만족스러웠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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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허풍담 1 - 차가운 처녀
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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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78서울도시철도에서 만든 '지하철 안전하게 이용하기'류의 광고를 보면 스마트폰을 보며 걷다가 지하철 기둥에 꽝-하고 부딪히는 남자가 등장한다. 나도 가끔 지하철역사에서 스마트 폰을 보거나 책을 읽으며 걷다가 기둥에 부딪힐 뻔한 경험이 더러 있었기에(다행히 아직까지 내 이마와 지하철 벽, 혹은 기둥이 갑작스럽고도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없다. 휴우~) 남 일 같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출근 길, 나는 다시 한 번 지하철 기둥에 부딪힐 뻔한 경험을 했다. 그 때 난, 『북극 허풍담』을 읽고 있었고, 작가, 요른 릴이 풀어놓은 북극 사냥꾼들의 이야기가 너무나도 흥미진진해서 책에서 도무지 눈을 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른 릴(Jørn Riel), 그는 어떻게 허풍담(skrøner)을 쓰게 되었나.
1931년 덴마크의 오덴세(널리 알려진 덴마크 작가인 안데르센의 고향이기도 하다)에서 태어난 요른 릴은 대자연, 그 중에서도 주로 북극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써온 작가 겸 탐험가다. 10대 후반 그린란드 북동부 탐사에 참여했다가 북극의 매력에 빠진 요른 릴은 그곳에서 16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게 된다. 끝없는 낮과 끝없는 밤이 교차하는 그린란드. 문명의 이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눈에는 지극히 원시적인 방법으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사는 미지의 땅이지만, 북극의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우리가 '저 아랫 것들'이다. 단지 위도 상으로만 저 아래에 사는 것들이 아니라 삶의 가치적 측면에서도 '저 아래'에 사는 것들이라는 의미다.
혼자, 혹은 둘 셋씩 짝을 지어 광활한 대지에 흩어져 지내는 이들은 사실, 유럽에서 태어나 사냥회사에 고용되어 극지로 파견된 전문 사냥꾼들이다. 하지만, 워낙 오랜 세월 동안 추위와 어둠, 그리고 고독에 익숙해진터라 이제는 북극식으로 살아가는 법이 몸에 배어버렸다. 이들과 함께하는(이라고는 하지만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썰매로 몇 날 몇 일을 달려야만 사람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멀리 떨어져 살아가고 있다) 북극에서의 삶을 선택한 작가는 극지의 자연환경과 그 곳에 둥지를 튼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반짝이는 유머와 메세지를 찾아낸 요른 릴은 그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글로 적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북극 사냥꾼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책장수가 요른 릴의 원고를 몰래 가져가 출판업자에게 넘겼고, 그 출판업자는 이 보물같은 원고를 덥썩 물었으니 그것이 바로 요른 릴의 이야기가 북극을 벗어나 전 세계로 퍼지게 된 계기라는 말씀!
북극 허풍담(Den kolde jomfru og andre skrøner)』
허풍담. 이는 말 그대로 '실제보다 과장을 해서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라는 의미다. 요른 릴은 북극에서 본인이 직접 듣고 보고 겪은 이야기들에 양념을 가미해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새로운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북극 허풍담』이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에 소개된 이 이야기들은 10권의 책으로 구성되었으며 작가 요른 릴의 대표작이라고 한다. 한국어로는 1권부터 3권까지가 이번에 번역, 출간된 것 같은데 4권부터의 출간 여부는 독자들의 반응에 달렸다고 한다(친절하게도(?) 책에는 출간 촉구 메세지를 보낼 메일 주소까지 적혀있다).
내가 이번에 읽은 책은 시리즈의 첫 권으로, '차가운 처녀'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책에는 북극에 사는 사냥꾼들과 일 년에 한 번 보급품을 배달하기 위해 북극을 방문하는 수송선을 타고 나타난 이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0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단편보다는 오히려 콩트에 가까운 짧은 이야기들을 읽으며 독자는, 겉으로 보면 고독하고 우직하고 자칫 험악해 보이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순박하고 귀여운데다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것처럼 엉뚱한 행동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북극 사냥꾼들의 일상과 만나게 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이란 없다. 북극의 사냥꾼들마저도!
일본의 오지 탐험가, 우에무라 나오미의 『안나여, 저게 코츠뷰의 불빛이다』는 그린란드의 야콥스하운을 출발해 두 번의 생일을 북극의 눈보라 속에서 오직 썰매개들과 함께 보내고 알래스카의 코츠뷰에 닿은 한 탐험가의 이야기이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북극이라는 공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피가 돌고 숨을 쉬고 생각을 하는 생명체가 존재하는 따뜻한 공간으로서의 북극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었다. 우에무라 나오미의 책에도 그 척박한 땅에서 사냥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등장한다. 우에무라 나오미와 안나를 필두로 한 그의 개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였던지라 사냥꾼들의 이야기까지 자세히 그려지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뜻언뜻 등장하는 북극의 사냥꾼들은 마치 겉은 거칠지만 씹으면 씹을수록 그 맛이 진국인 호밀빵과 닮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북극 허풍담』에 등장하는 사냥꾼들은 어떠한가? 요른 릴이 그리는 사냥꾼들은 독특하고 재기발랄하다. 그리고 (특히) 긴긴 겨울 내내 아무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그들의 삶이 요른 릴의 언어를 거치면서 유머러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잔한 감정을 몰고오는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부족하면 부족한 가운데에서 만족을 찾고 자연을 거스르는 분수에 넘치는 짓은 하지 않으며 몇 명 되지 않는 북극의 이웃사촌들과의 관계를 유쾌하게 조율해 나가며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솔직히 첫 번째 수록된 「남동풍」을 읽을때까지만해도 '엥? 이건 뭐지?'라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뒷부분으로 갈수록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진다. 「문신 예술가」 같은 이야기는 유머러스하고 「알렉산더」 같은 이야기는 감동적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수록된 「오스카 왕」이 중간까지는 매우 감동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다 마지막엔 호러(?)로 끝을 맺어서 조금 놀라긴 했지만, 덕분에 다시 한 번 확실히 깨달았다.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인생이란 없구나. 북극의 사냥꾼들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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