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아편과 고착된 가장 강력한 이미지는 아마도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푸이의 부인이 아편에 중독되어 보여준 일련의 행동들이 아닐까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는 내가 직접 아편을 복용해 볼 기회는 없었지만 '아편'이라고 하면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도 가슴 저린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도 <마지막 황제>의 영향이 클 듯 싶다.
얼마 전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이라는 책을 받아서 읽게 되었다. 몽환적인 자태로 아련하게 퍼지는 아편의 하얀 연기가 까만 어둠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책 표지. 그 이미지를 보고도 어찌 이 책을 안 읽을 수 있을까! 푸이의 서글픈 부인이 나를 향해 '어서 이리와 나를 읽으렴-.'이라고 부르는 것만 같아 나는 첫 장을 넘기기 전부터 벌써 이 책에 빠져버린 것만 같았다. 그래서 조금 두렵기도 했다.
이 책의 매력은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시피 이 책이 정말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지극히 논픽션적인 고백.
저자인 토머스 드 퀸시(Thomas de Quincey, 1785~1859)는 영국의 소설가이자 수필가이며 옥스퍼드 우스터 칼리지 재학 시절부터 실제로 아편을 복용하기 시작한-그리고 아편의 늪에 빠져 소위 '아편 중독자'가 된- 인물이다.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은 그의 대표작으로 자신이 왜 아편중독으로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에 대해, 아편을 복용하면서 겪은 쾌락과 환상에 대해, 그리고 아편으로 인한 고통 등에 대해 술회한 자전적 에세이다.
토머스 드 퀸시가 살았던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유럽 전역은 소위 '낭만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였다. 드 퀸시 또한 이러한 낭만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 중 한 명인데 그의 고백록을 읽으며 나는 낭만주의 시대를 살았던 아편쟁이의 솔직하지만 완전히 솔직할 수는 없는 고백을 듣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토머스 드 퀸시가 살던 19세기이든 내가 지금 살고 있는 21세기이든, 무언가를 '고백'한다는 데에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나 자신의 경험에 대한 고백은 완전한 자의식이 수반될 때 진실로 '솔직한 고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서를 읽고는 드 퀸시가 실제로 쓴 글의 뉘앙스를 100% 파악하기는 힘들겠지만)나의 느낌 상 드 퀸시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아편중독자로 살았던 시대를 '고백'하는 용기와 솔직함은 지녔으되 자신의 아편중독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하지는 않은 것 같다. 혹은 고백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참을 수 없는 치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편을 시작했고 쾌락만을 좇기 위해 아편을 상용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책에서 가장 매력적이었던 부분은 아편을 복용하면서 그가 느꼈던 환상에 대한 묘사였다. 어쩌면 아편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동반한 쾌락과 환상은 낭만주의 시대, 예술가들이 추구했던 정신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