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자마 스트레칭 - 슈퍼모델 에이미의 내 몸을 깨우는 아침 5분 파자마 시리즈
에이미 지음, 김태준.이현지 감수 / 비타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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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곳들이 그러하겠지만, 우리 회사도 아침 9시까지는 출근을 완료해야 한다.  숨이 턱에 닿도록 헐레벌떡 뛰어 9시 정각에 도착하는 것은 민망하니 그 사단을 막자면 8시 50분 정도쯤에는 도착해 주는 것이 예의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7시 30분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는 말 되겠다.
이는 다시 말해, 아무리 늦어도 6시 40분에는 일어나야 대충이나마 샤워를 하고 옷을 걸쳐입고 현관문을 나설 수 있다는 말인데, 문제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그 시간에 일어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데 있다. 

막말로, 대한민국 성인들 중에서 매일 저녁 9시에 꿈나라로 들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새나라의 착한 어른이들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아니, 대한민국 다른 성인들이 이런 '바른 생활'을 한다고 치더라도 내 상황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노는 건 또 왜 이다지도 좋은지 야근이 없는 날이면 공연도 보고 놀러도 다니다가 집에 돌아와 씻고 잘 준비를 하면 어느덧 1시가 훌쩍 넘어버리고 마는데 계속되는 이런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새벽이면 로봇처럼 눈을 반짝 뜨고 상쾌한 마음으로 일어날 수는 없는 일. 그래서 그런지 최근 몇 달 동안 특히나 아침에 눈 뜨는 게 괴로웠다. 간신히 눈을 뜨고도 회사에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왠지 몸이 아픈 것 같기도 한데, 아~회사 안 가도 되는 무인도에서 살고 싶다, 등등 그 짧은 시간에 실로 만감이 교차하곤 했다. 

그래서 시도했다.
짜잔~ 슈퍼모델 에이미의 내 몸을 깨우는 아침 5분, 파자마 스트레칭!
아따 거 제목 한 번 길지만, '5분', '슈퍼모델', '깨우는' 등의 단어가 심히 마음에 들었다.
마치 5분만 투자하면 상쾌한 아침을 맞음과 동시에 슈퍼모델의 몸매로 재탄생 할 것만 같은 기대감을 고조시키는 제목이다.
  

 

 



 

 

 

 

 

 

 

 

일단 책 표지에서부터 등장하는 에이미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하듯 상큼하게 웃고 있다. 



 

 

 

 

 

 

 

 

 

 

바로 이런 얼굴.
게다가 '어떻게 저런 자세를 취하고도 웃음이 나올까'싶은 상황에서도 늘 웃는 얼굴이다.
예를 들어, 다리를 모아 쭉 펴고 바닥에 앉아 허리를 굽혀 손을 앞으로 쭉 펴고 고개를 숙인 상태에서도, 엉덩이를 뒤로 빼고 양 무릎을 굽힌 상태에서 기도하듯 손을 가슴 앞에 모은 요상스런 자세에서도 얼굴은 바로 저 얼굴 그대로다.
처음엔 마치 웃는 얼굴 가면을 쓰고 있는 듯 하여 웃기기도 했지만, 자꾸 보다보니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볼 때마다 상큼한 것이 운동할 맛도 나는 것 같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01. 왜, 아침 5분 파자마 스트레칭인가?
02. 아름다운 몸을 만드는 요일별 스트레칭
03. 건강한 몸을 만드는 콘셉트 스트레칭

첫 번째 장에서 유용했던 부분은 '유연성 테스트' 부분. 평소에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밖에 안하건만 유연성 점수가 높게 나와 입이 째졌다.
그리고 스트레칭 효과를 배가시키는 4가지 방법에 대한 조언도 유익했다.
  

 

 

 

 

 

 

 

 

 

 

 

두 번째 장, <아름다운 몸을 만드는 요일별 스트레칭>에서는 잠자면서 굳어진 근육과 관절이 제대로 자리잡도록 돕는 기본스트레칭과 더불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다른 주제(가령, 화요일은 '탄탄한 복부 만들기', 수요일은 '어깨결림 풀어주기' 등)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을 소개한다.
장점이라고 한다면 '시키는 대로 잘 따라서 일주일만 하면'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근육까지 고루 운동할 기회를 준다는 점.
그리고 스트레칭을 소개하는 페이지 사이사이에는 건강/미용 등에 대한 팁이 부록처럼 실려있는데 이 또한 상당히 유용하다는 점이다. 



 

 

 

 

 

 

 

 

 

 

다만, 간혹 동작설명 중에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단점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장에서는 얼굴 스트레칭, 체지방 연소 스트레칭, 기능성 스트레칭 등 다양한 콘셉을 지닌 스트레칭법을 소개한다.
내가 특히 관심있었던 부분은 뭉친 어깨 풀어주기와 딱딱한 어깨 풀어주기였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컴퓨터 앞에 장시간 앉아있다보니 '어깨뭉침'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하사받게 되었는데 일주일 꾸준히 한 덕분에 한결 나아진 듯 하다.
 

일 주일 간 상큼한 에이미의 파자마 스트레칭을 따라 한 나의 결론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라는 것이다.
오 분이든 일 분이든 안 되면 단 한가지 동작만이라도, 꾸준히 그리고 제대로 실천한다면 찌뿌둥한 아침이여 안녕을 당당히 외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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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최윤필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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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패를 '바깥'이라고 달기로 했다. 큰 흐름의 바깥, 스포트라이트의 바깥이라는 의미려니 여겼으면 좋겠다. 주류 혹은 집단 가치의 울타리를 넘어서고자 하는 도전적 의미의 아웃사이더도, 세勢에 쫓겨 변두리로 밀려난 주변인도 이 마당의 손님이 될 수 있다. 대개는 사람이겠지만, 공간이나 잊힌 시간, 또 그 시간 속의 이야기도 초대될 것이다.
바깥은 안과 맞버텨야만 서는 단어다. 그래서 경계境界가 필요하다. 하지만 나의 경계는 아주 허술하고 느슨할 것이다. 이따금 "어떻게 이게 바깥이야?!" 하며 시비 삼고 싶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경계의 경계警戒가 삼엄하지 않은 사회, 안과 바깥이 평화롭게 바뀌기도 하고 섞이기도 하는 세상, 아예 구분이 무의미해지는 마당을 우리는 바란다. 

         최윤필,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

 

굳이 우리 사는 공간을 '안'과 '바깥'으로 나누기로 한다.     

그어진 선線에 긍정하는 이 있겠고, 어째서 A가 '안'에 속하고 어째서 B는 '바깥'에 속하느냐 따져드는 이 있을 수도 있겠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소위 세상의 '중심'이 아닌 곳에 위치한 사람, 사물, 그리고 시간들. 물론, '바깥'이나 '변방'을 떠올릴라치면 별책부록처럼 따라오는 쓸쓸함이랄까, 아쉬움, 외로움 등이 겹쳐져 보일 때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테다. 하지만 『어느 날 나는 바깥으로 들어갔다』를 읽으며 문득 떠올랐던 생각은, 어쩌면 바깥에 있는 자의 쓸쓸함, 아쉬움, 외로움이라는 것은 그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느끼는 것보다 그들을 바라보는 자들이 바깥에 있는 이들로부터 보고 싶어하는, 혹은 볼 것을 기대하는 무언가가 아닐까,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바깥에 있는 이는 자신이 바깥에 있다고 생각하지도, 그렇기 때문에 쓸쓸하고 외롭고 아쉽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을 지 모른다는 것.  

 

허술하고도 느슨한 '안'과 '바깥'의 경계
하지만 저자가 책머리에서부터 언급했듯, 그가 정의내린 '안'과 '바깥'의 경계는 다소 허술하고도 느슨하다. '안'과 맞버텨야만 성립하는 '바깥'이라는 공간. 하지만 그 둘을 가르는 경계가 삼엄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저자는 그 둘이 평화롭게 오가며 섞여드는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바깥(?)의 삶
노인들의 2천원짜리 낙원을 그야말로 근근이 지켜나가는 종로구 낙원동 허리우드클래식 김은주 사장.
20세기를 관통해온 노老 프롤레타리아 직업혁명가 이일재.
시골마을을 돌며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영화를 만드는, 떠돌이 영화감독, 신지승.
대학로 주연급 연극배우였으나 삶의 요구에 백기를 들고 이제는 택배기사가 된 연극배우 택배기사 임학순. 
"요즘 내가 나루토를 보고 있는데 느낀 게..., 존나 열심히 안 하면 안 될 것 같아. 근데 우린 열심히 안 하잖아.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인디밴드, 타바코 쥬스.
박태환 선수의 훈련파트너이자 훈련파트너로 박태환 선수를 두고 있는 수영 국가대표, 배준모.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 아름다운 넘버 3, 산악계의 휴머니스트 한왕용.
그리고 시간강사, 손 모델, 군무 발레리나, 미얀마 난민, 호랑이를 찍는 다큐감독, 막걸리, 폐기처분되는 책들, 출판사 개마고원 사장 등.
스물여섯의 사람, 사물, 그리고 풍경에 대한 인터뷰.

 

다양성이 인정되는 세상을 꿈꾸며
'안'과 '바깥', '주류'와 '비주류', '중심'과 '변방'.
이제껏 접해온 이들 단어들이 풍기는 상호반목적인 뉘앙스가 뇌리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소위 경계 밖에 위치한 이들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뒤틀린 것인지도. 몇몇 인터뷰이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에서 연민을 감지하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다섯개를 주고싶다. "인터뷰는 처음"이라는 인터뷰이들의 삶을 접하며 이들의 이야기를 양지로 끌로 나와 준 저자에게 고마웠고, 이들이 더 이상 '바깥'이 아닌 '안'과 '바깥'의 경계가 허물어진, 그저 '사람사는 세상'을 다채롭게 해 주는 평범한 인간으로서 받아들여지길 꿈꿔봤다. 추천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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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의 사춘기 - 사랑, 일, 결혼, 자신까지 외면하고픈 30대의 마음 심리학
한기연 지음 / 팜파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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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들이 어느 연령대보다도 삶을 힘들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삼십대 중반이라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자신이 주체가 되어 꾸려나가는 삶을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 정도 살았고, 어느 정도 경제적 독립을 이룰 나이이다. 또한 자신의 능력이 무엇인지를 확인해보기도 하고 한계를 경험하기도 하면서 인생이라는 도정을 어느 정도 걸어왔다는 자각이 생기는 나이이다. 이때쯤이면 지나온 세월의 공과 과가 보이면서 머뭇머뭇하는 사이에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게 되는지를 알게 된다. 이 길을 그냥 갈 것인지, 어떤 방향 전환을 모색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또 결정할 수 있는 마지막 연령대이기도 하다. 이직 혹은 전직을 할 수도 있고, 유학을 가거나 다시 대학이나 대학원을 갈 수도 있다. 선택지는 많기도 하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다 끝난 줄 알았던 진로의 고민을 다시금 치열하게 하다 보니 아프고 힘들다.  

얼마 전 모처에 회원가입을 하면서 신상정보를 적다가 연령대를 선택하라는 질문에 20대를 지나쳐 30대에 동그라미를 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구나. 난 더 이상 20대가 아니구나. 뭘 해도 그냥 귀엽게 봐 넘겨질 수 있는 시기와는 이제 정말 굿바이로구나.
내 나이가 더 이상 1자로 시작하지 않고 2자로 시작하게 될 즈음에도 문득, 야릇한 기분을 느끼곤 했었는데 이제 더 이상 2가 아닌 3자를 시작으로 내 나이를 표현할 시기가 오고야 만 것이다. 예의 그 야릇한 기분과 함께.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나 그 시기를 장악하고 있는 고민과 문제는 분명 있을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유치원 시절에도 나름의 고민이 있었던 듯 하니 다른 시기는 말 다 했다고 볼 수 있겠지.   

인간은 지극히도 자기중심적인 존재라서 자신앞에 놓인 문제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중요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이는 게 정상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10대 때는 내 짝사랑이 가장 가슴이 아팠고, 20대 때는 직업선택에 대한 나의 고민이 가장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30대. 30대에 접어든 나의 고민은 어떠한가. 물론 연령대에 따라 내 마음 속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슈가 조금씩 달라져왔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의 내 삶을 가로지르는 가장 큰 고민 두 개는 일(공부)과 사랑이었던 듯 하다. 그리고 30대에 접어들면서 일과 사랑에 대한 고민의 강도는 나날이 그 세기를 더해가고 있어 사실, 괴롭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을 한다.
지금 하고있는 일을 계속해야 할까. 지금 몸 담고 있는 직장과 나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일까. 나도 이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하지 않을까.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던 나의 꿈은 어떻게 되어버린걸까. 더 늦기 전에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왜 나는 10대 때에, 20대 대에 끝내야 할 고민을 30대가 된 지금도 하고 있는 걸까.
나.는.지.금.제.대.로.살.고.있.는.것.일.까.

심리상담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는 자신을 찾는 내담자 중 대다수가 삼십대 중반 여성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말했다. 삼십대 중반의 여자들은 사랑이 어렵고, 일이 힘들고, 사람이 두렵다고. 그래서 그들을, 아니, 우리들을 위해 책을 썼다고 말이다.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고, 그 안에는 저자의 상담클리닉을 찾은 이들이 털어놓은 고민과, 그에 대한 저자의 조언이 담겨 있다. 
책의 구성
1. 서른다섯이 두렵다.
2. 사랑, 참 어렵다.
3. 일, 인생의 목표라 하기엔 너무도 서글픈
4. 내 안의 나를 발견해야 할 때
5. 결혼, 꼭 해야 할까
6. 내 인생에 입 맞추기

30대 여성 직장인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이들이 털어놓은 고민과 그에 대한 저자의 조언을 통해 나도 상당부분 위로를 받았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래. 지금 내가 하고있는 고민은 나만의 것이 아니야. 내가 못나거나 구제불능이라서 아직까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물론 너무 낙천적이기만 한 잣대를 들이대 나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지만 내가 갖고 있는 문제 때문에 고민의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말자. 저자가 말했듯, 앞으로 기회는 많이 있으며 난 아직도 충분히 젊고 아름다운 나이를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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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금강 지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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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했다. 부처님은 오래된 인도 땅에 계급의 차별이 없고 평등한 공동체를 '승가'라는 이름으로 만들었다. 나는 꿈을 꾸었다. 이곳에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보자고. 사는 사람들 스스로가 이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땅끝 농투성이들의 의지처가 되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편안해하고, 멀리서 미황사라는 절 이름만 생각해도 삶의 활력소가 되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일구는 그런 '미황사공동체'가 되기를 말이다. 그런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산 흔적들을 기록하다 보니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미황사의 365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2010년 2월. 미황사가 나를 찾아왔다
2008년 1월, 땅끝마을로 잘 알려진 전라남도 해남땅에 다녀온 적이 있다.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 도착한 그곳에서 난,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고 2008년의 나의 결심을 고이 적어 가져왔으며 내가 버려야 할, 아니, 내가 버리고 싶은 부분을 종이에 적어 활활 불태워버리고 왔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어느 날, 이번에는 대한민국 땅끝마을이 나를 찾아왔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와 함께.  

미황사는 뒤로는 달마산, 앞으로는 완도와 청산도가 점점이 박힌 남해에 둘러싸인 전라남도 해남, 절경에 위치한 불사다. 이곳의 주지인 금강스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시쳇말로 주지 끗발이 꽝이란다. 평생 미황사를 다니는 노보살님도 아랫마을 서정분교의 꼬맹이들도 제 친구 이름 부르듯 그저 금강 스님, 금강 스님이지 절대 주지 스님이라 부르는 일이 없다고 하는데, 주지는 잠시 빌려온 이름이 뿐이요 직책을 떠나 사람이 좋아 그저 '금강 스님'으로 불리는 그는 정말 복 많은 사람인 것이다.  

이벤트에 강한 스님?
엄하고 고고한 격식따윈 걷어차버리고 '찾아가는 절' 미황사를 만들어낸 장본인, 금강 스님. 혹자는 그가 이벤트에 강하고 기획력이 뛰어나고 일을 매우 좋아한다고 평하기도 한다는데 겨울로부터 시작해 봄, 여름, 가을을 거쳐가는 미황사의 365일을 엿보다 보면 왜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책은 크게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희망발원, 시작하는 겨울
수행과 축제, 일어나는 봄
기억과 소통, 길 위의 여름
그리고, 회향과 나눔, 깊어가는 가을
1년 365일 사계절을 거쳐가는 길목길목을 금강 스님은 새벽예불이나 마을 당제堂祭, 부처님 오신 날, 템플스테이, 한문학당, 혹은 산사음악회 등으로 알록달록 아기자기하게 꾸며간다. 과연 이벤트의 제왕답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왕성한 실천력의 바탕에는 다름아닌 진정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해 노동을 마치고 미황사 괘불 부처님 앞에 땀 흘려 거둔 쌀, 고구마, 감자반, 차를 올리는 사람들의 진지한 표정이나 일 년 동안 쓴 공책을 올리는 고사리 손의 감동은 만물공양의식이 결코 이벤트로 불릴 수 없음을 웅변한다. 거기서 느껴지는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과 연민, 무한한 애정은 기획력이 아니라 그의 깊은 진정성이다. 금강 스님이 10년 넘게 미황사와 살아오면서 이루어낸, 초등한문학당, 중등문화학교, 템플스테이, 참선 수련회, 서정초등학교 바로 세우기 등 다양다종한 일들이 모두 그러하다."                                                                                         -법인 스님 <낮은 곳에서 깊어지리라(금강 스님을 말한다)> 中- 
  

도시에서보다 더 재미난 산사의 일상
미황사에서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 형식의 글은 무겁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도 않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읽기 시작했는데 저녁 퇴근길에 다 읽어버렸을 정도로 쉽게 읽히지만 다 읽고 난 후의 감동은 꽤나 묵직하고 오래간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금강스님은 다양한 행사를 기획함으로써 '오지 수준으로 교통이 불편한 곳에 위치한 한 이름모를 절'를 '내국인 외국인을 불문한 많은 이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는 소위, 인기있는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로 변모시켰다. 수행의 장이 되어야 할 사찰이 경제논리에 너무 얽매이는 건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세상이 변하면 종교도 그게 맞게 변화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근본정신만 잃지 않는다면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무어 잘못이란 말인가. 상처 입은 현대인들의 마음 치유를 돕기 위해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고, 한문학당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에 사는 아이들에게 역사와 문화와 자연을 생생하게 경험토록 하고, 부처님 오신 날 신도들이 절을 찾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마을로 마실을 떠나고, 어차피 그 곳에 있는 아름다운 가을풍광을 혼자 보기 아까워 산사음악회를 연다. 그런 곳이 바로 미황사다. 
  

아름다운 절의 아름다운 이야기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에 소개된 많은 이야기들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시골절과 작은 학교의 아름다운 공생'이야기였다.
학생 수 다섯으로 폐교위기에 놓인 절 아랫마을의 작은 학교인 서정분교. 이 학교가 없어지고 나면 인근 동네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게 된다는 생각에 금강 스님은 서정분교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인다. 학부모와 교육청을 설득하고 음악, 미술, 생태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부모와 지역 일꾼들도 동참하도록 했다. 금강 스님 본인도 탁본과 다도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역할을 맡았다. 덕분에 읍내에서 서정분교로 전학오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졌는데 40분도 넘게 시내버스로 통학하는 것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힘에 부치는 법. 결국 스님은 그동안 모아놓은 큰스님들의 글씨와 지인들의 그림, 판화들을 몽땅 판매하여 마련한 수익금에 산사음악회를 통해 인연을 맺은 피아니스트 노영심씨가 기부한 CD판매금을 보태고, 건너건너 알게 된 금호고속 사장님까지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어린 학생들의 등하교길을 안전하게 지켜줄 통학버스까지 마련하게 된다. 참으로 아름다운 절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서정분교 아이들에게 미황사는 놀이터이고, 생태학습장이고, 학예발표회장이다. 아이들은 미황사가 있어 든든하고, 미황사는 아이들이 쏟아놓는 해맑음 덕분에 오늘을 산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공생이다."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읽는 내내 '정말 읽길 잘했다, 잘했어.'라며 스스로를 토닥토닥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책의 가장 마지막에 담긴 <땅끝마을 미황사의 성공전략>이라는 타이틀을 단 서화동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차장의 글.
미황사의 성공전략이 궁금한 사람이라도 본문을 통해 충분히 이를 유추해내는 것이 가능한데다 괜한 글을 실은 탓에 말랑말랑하고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책을 순식간에 전혀 다른 목적이 있는 딱딱한 책으로 탈바꿈시켜 버렸다. 마지막 그 부분만 안 읽었더라도, 아니 <성공전략>이라는 단어가 붙은 그 타이틀만 안 접했더라도 충분히 더 만족스럽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을텐데, 그 점 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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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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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주 오래 전,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본 기억이 있다. 누군인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의 심한 부상으로인해 그저 영국인환자English Patient라 불리는 한 남자, 그의 가슴아픈 사랑이야기가 영화의 주된 줄거리였다. 그리고 최근, 새롭게 번역되어 출간된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읽을 기회가 생겼다. 때론 시처럼 희곡처럼 느껴지는 어투, 쉴 새 없이 바뀌는 화자,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무시로 넘나드는 서술. 사실 79페이지까지 꾸역꾸역 읽다가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싶어 정신을 가다듬고 첫장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나니 이제 좀 몰입이 되는 듯 하다. 

 



 

 

 
 

  

 

 

 

 

 

 

전쟁이 잦아든 1945년,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의 작은 마을.
수녀원이었다 한 때는 연합군에 의해 병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빌라 산 지롤라모에 심한 화상을 입어 어디에서 온 누군인지 확인할 길이 없는 한 남자와 오직 그만을 보살피기 위해 남아있는 한 여자가 있다. 전쟁중에는 종군간호사로 근무하던 그녀, 해나는 그를 영국인 환자, 잉글리시 페이션트라 부른다.
카라바지오. 그는 전직 도둑이자 연합군 스파이다. 늘 당당하고 배짱있던 그였지만 일을 수행하던 중 적에게 잡혀 엄지손가락이 잘리게 된다. 잘려진 엄지손가락들과 함께 그의 자신감도 안녕히-. 결국 그도 오랜 친구의 딸인 해나가 머물고 있다는 빌라 산 지롤라모로 찾아든다. 그리고 영국군에서 폭탄처리 전문가로 일하는 인도인 공병, . 자신의 조국을 지배한 나라를 위해 일하기 때문인지 스스로의 존재에 수많은 물음을 가졌을 법도 하다. 이들 넷은 전쟁이라는 공통분모로 인해 이 곳 빌라 산 지롤라모에 모이게 된다. 
 
해나는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몸을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며 그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카라바지오도 모르핀에 빠져있을때만 빼고는 빌라 산 지롤라모의 구성원으로서 이들과 어울려 지낸다. 그리고 해나는 킵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들의 삶은 언뜻 평온해 보인다. 하지만 전쟁은 끝났다지만 전쟁의 순간을 목도한 이의 마음 속에서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혼란의 시기가 지나면 평화의 시기가 올 것을, 누구나,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혼란의 시기에 나를 짓누르던 기억, 그 기억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상처를 입은 이 곁에 '시간'과 '사람'이 있다면 언젠가 그 상처는 분명히 치유된다. 더디지만 분명히 서로에게 조금씩 기대가며 상처를 치유해가는 이들 네 명의 모습에서 또 다른 이름의 전쟁을 치뤄가며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 내 주변인들의 모습을 만났다. 내용도 문체도 결코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소설은 아니지만 '생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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