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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금강 지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1월
평점 :
"오래 전부터 공동체에 대한 생각을 했다. 부처님은 오래된 인도 땅에 계급의 차별이 없고 평등한 공동체를 '승가'라는 이름으로 만들었다. 나는 꿈을 꾸었다. 이곳에 그런 공동체를 만들어보자고. 사는 사람들 스스로가 이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땅끝 농투성이들의 의지처가 되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편안해하고, 멀리서 미황사라는 절 이름만 생각해도 삶의 활력소가 되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일구는 그런 '미황사공동체'가 되기를 말이다. 그런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산 흔적들을 기록하다 보니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미황사의 365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다."
2010년 2월. 미황사가 나를 찾아왔다
2008년 1월, 땅끝마을로 잘 알려진 전라남도 해남땅에 다녀온 적이 있다. 버스를 타고 밤새 달려 도착한 그곳에서 난,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고 2008년의 나의 결심을 고이 적어 가져왔으며 내가 버려야 할, 아니, 내가 버리고 싶은 부분을 종이에 적어 활활 불태워버리고 왔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어느 날, 이번에는 대한민국 땅끝마을이 나를 찾아왔다.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와 함께.
미황사는 뒤로는 달마산, 앞으로는 완도와 청산도가 점점이 박힌 남해에 둘러싸인 전라남도 해남, 절경에 위치한 불사다. 이곳의 주지인 금강스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시쳇말로 주지 끗발이 꽝이란다. 평생 미황사를 다니는 노보살님도 아랫마을 서정분교의 꼬맹이들도 제 친구 이름 부르듯 그저 금강 스님, 금강 스님이지 절대 주지 스님이라 부르는 일이 없다고 하는데, 주지는 잠시 빌려온 이름이 뿐이요 직책을 떠나 사람이 좋아 그저 '금강 스님'으로 불리는 그는 정말 복 많은 사람인 것이다.
이벤트에 강한 스님?
엄하고 고고한 격식따윈 걷어차버리고 '찾아가는 절' 미황사를 만들어낸 장본인, 금강 스님. 혹자는 그가 이벤트에 강하고 기획력이 뛰어나고 일을 매우 좋아한다고 평하기도 한다는데 겨울로부터 시작해 봄, 여름, 가을을 거쳐가는 미황사의 365일을 엿보다 보면 왜 그런 평가를 받았는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책은 크게 4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희망발원, 시작하는 겨울
수행과 축제, 일어나는 봄
기억과 소통, 길 위의 여름
그리고, 회향과 나눔, 깊어가는 가을
1년 365일 사계절을 거쳐가는 길목길목을 금강 스님은 새벽예불이나 마을 당제堂祭, 부처님 오신 날, 템플스테이, 한문학당, 혹은 산사음악회 등으로 알록달록 아기자기하게 꾸며간다. 과연 이벤트의 제왕답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왕성한 실천력의 바탕에는 다름아닌 진정성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해 노동을 마치고 미황사 괘불 부처님 앞에 땀 흘려 거둔 쌀, 고구마, 감자반, 차를 올리는 사람들의 진지한 표정이나 일 년 동안 쓴 공책을 올리는 고사리 손의 감동은 만물공양의식이 결코 이벤트로 불릴 수 없음을 웅변한다. 거기서 느껴지는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깊은 성찰과 연민, 무한한 애정은 기획력이 아니라 그의 깊은 진정성이다. 금강 스님이 10년 넘게 미황사와 살아오면서 이루어낸, 초등한문학당, 중등문화학교, 템플스테이, 참선 수련회, 서정초등학교 바로 세우기 등 다양다종한 일들이 모두 그러하다." -법인 스님 <낮은 곳에서 깊어지리라(금강 스님을 말한다)> 中-
도시에서보다 더 재미난 산사의 일상
미황사에서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 형식의 글은 무겁지 않지만 결코 가볍지도 않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읽기 시작했는데 저녁 퇴근길에 다 읽어버렸을 정도로 쉽게 읽히지만 다 읽고 난 후의 감동은 꽤나 묵직하고 오래간다.
앞에서도 언급했다시피 금강스님은 다양한 행사를 기획함으로써 '오지 수준으로 교통이 불편한 곳에 위치한 한 이름모를 절'를 '내국인 외국인을 불문한 많은 이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는 소위, 인기있는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로 변모시켰다. 수행의 장이 되어야 할 사찰이 경제논리에 너무 얽매이는 건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만 세상이 변하면 종교도 그게 맞게 변화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근본정신만 잃지 않는다면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무어 잘못이란 말인가. 상처 입은 현대인들의 마음 치유를 돕기 위해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고, 한문학당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에 사는 아이들에게 역사와 문화와 자연을 생생하게 경험토록 하고, 부처님 오신 날 신도들이 절을 찾기를 기다리지 않고 직접 마을로 마실을 떠나고, 어차피 그 곳에 있는 아름다운 가을풍광을 혼자 보기 아까워 산사음악회를 연다. 그런 곳이 바로 미황사다.
아름다운 절의 아름다운 이야기
『땅끝마을 아름다운 절』에 소개된 많은 이야기들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시골절과 작은 학교의 아름다운 공생'이야기였다.
학생 수 다섯으로 폐교위기에 놓인 절 아랫마을의 작은 학교인 서정분교. 이 학교가 없어지고 나면 인근 동네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게 된다는 생각에 금강 스님은 서정분교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인다. 학부모와 교육청을 설득하고 음악, 미술, 생태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학부모와 지역 일꾼들도 동참하도록 했다. 금강 스님 본인도 탁본과 다도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역할을 맡았다. 덕분에 읍내에서 서정분교로 전학오는 학생들이 점점 많아졌는데 40분도 넘게 시내버스로 통학하는 것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힘에 부치는 법. 결국 스님은 그동안 모아놓은 큰스님들의 글씨와 지인들의 그림, 판화들을 몽땅 판매하여 마련한 수익금에 산사음악회를 통해 인연을 맺은 피아니스트 노영심씨가 기부한 CD판매금을 보태고, 건너건너 알게 된 금호고속 사장님까지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어린 학생들의 등하교길을 안전하게 지켜줄 통학버스까지 마련하게 된다. 참으로 아름다운 절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서정분교 아이들에게 미황사는 놀이터이고, 생태학습장이고, 학예발표회장이다. 아이들은 미황사가 있어 든든하고, 미황사는 아이들이 쏟아놓는 해맑음 덕분에 오늘을 산다. 그야말로 아름다운 공생이다."
다만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읽는 내내 '정말 읽길 잘했다, 잘했어.'라며 스스로를 토닥토닥 칭찬해주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책의 가장 마지막에 담긴 <땅끝마을 미황사의 성공전략>이라는 타이틀을 단 서화동 한국경제신문 문화부 차장의 글.
미황사의 성공전략이 궁금한 사람이라도 본문을 통해 충분히 이를 유추해내는 것이 가능한데다 괜한 글을 실은 탓에 말랑말랑하고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책을 순식간에 전혀 다른 목적이 있는 딱딱한 책으로 탈바꿈시켜 버렸다. 마지막 그 부분만 안 읽었더라도, 아니 <성공전략>이라는 단어가 붙은 그 타이틀만 안 접했더라도 충분히 더 만족스럽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을텐데, 그 점 참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