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리시 페이션트
마이클 온다치 지음, 박현주 옮김 / 그책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오래 전, 영화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본 기억이 있다. 누군인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의 심한 부상으로인해 그저 영국인환자English Patient라 불리는 한 남자, 그의 가슴아픈 사랑이야기가 영화의 주된 줄거리였다. 그리고 최근, 새롭게 번역되어 출간된 『잉글리시 페이션트』를 읽을 기회가 생겼다. 때론 시처럼 희곡처럼 느껴지는 어투, 쉴 새 없이 바뀌는 화자,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무시로 넘나드는 서술. 사실 79페이지까지 꾸역꾸역 읽다가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싶어 정신을 가다듬고 첫장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러고나니 이제 좀 몰입이 되는 듯 하다. 

 



 

 

 
 

  

 

 

 

 

 

 

전쟁이 잦아든 1945년,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의 작은 마을.
수녀원이었다 한 때는 연합군에 의해 병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빌라 산 지롤라모에 심한 화상을 입어 어디에서 온 누군인지 확인할 길이 없는 한 남자와 오직 그만을 보살피기 위해 남아있는 한 여자가 있다. 전쟁중에는 종군간호사로 근무하던 그녀, 해나는 그를 영국인 환자, 잉글리시 페이션트라 부른다.
카라바지오. 그는 전직 도둑이자 연합군 스파이다. 늘 당당하고 배짱있던 그였지만 일을 수행하던 중 적에게 잡혀 엄지손가락이 잘리게 된다. 잘려진 엄지손가락들과 함께 그의 자신감도 안녕히-. 결국 그도 오랜 친구의 딸인 해나가 머물고 있다는 빌라 산 지롤라모로 찾아든다. 그리고 영국군에서 폭탄처리 전문가로 일하는 인도인 공병, . 자신의 조국을 지배한 나라를 위해 일하기 때문인지 스스로의 존재에 수많은 물음을 가졌을 법도 하다. 이들 넷은 전쟁이라는 공통분모로 인해 이 곳 빌라 산 지롤라모에 모이게 된다. 
 
해나는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몸을 소독하고 약을 발라주며 그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카라바지오도 모르핀에 빠져있을때만 빼고는 빌라 산 지롤라모의 구성원으로서 이들과 어울려 지낸다. 그리고 해나는 킵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들의 삶은 언뜻 평온해 보인다. 하지만 전쟁은 끝났다지만 전쟁의 순간을 목도한 이의 마음 속에서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혼란의 시기가 지나면 평화의 시기가 올 것을, 누구나, 기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혼란의 시기에 나를 짓누르던 기억, 그 기억으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상처를 입은 이 곁에 '시간'과 '사람'이 있다면 언젠가 그 상처는 분명히 치유된다. 더디지만 분명히 서로에게 조금씩 기대가며 상처를 치유해가는 이들 네 명의 모습에서 또 다른 이름의 전쟁을 치뤄가며 오늘을 살아가는 나와, 내 주변인들의 모습을 만났다. 내용도 문체도 결코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소설은 아니지만 '생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