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심도 사랑을 품다 - 윤후명 문학 그림집
윤후명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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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활자와 그림.
나에게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의사소통의 매체다. 게다가 '섬'과 '사랑'이라니!
 
경상남도 거제시에 위치한 작은 섬, 지심도. 일명 동백섬이라고도 불리는 이 곳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양이 꼭 마음심(心)자를 닮았다 하여 '지심도'라 이름지어졌다는데, 이 작은 섬을 소재로 수많은 활자와 그림들이 부려졌음을 감안한다면 지심도, 이 섬은 아마도 그 모양새 뿐만 아니라 진정 사람들의 마음(心)을 끌어당기는 힘을 갖고있는 곳이 아닐까 한다.

『지심도 사랑을 품다』는 상당히 흥미로운 구성을 갖춘 책이다. 이 책을 통해서 우선,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가한 지난 <2005 프랑크푸르트국제도서전>에서 '한국의 책 100' 중 한 권으로 선정된『둔황의 사랑』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 윤후명이 지심도를 바라보며 세상에 내놓은 시와 동화, 그리고 소설과 에세이를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다인가? 그건 아니다. 이 외롭고 그립고, 하지만 사랑으로 가득 찰 수 밖에 없는 말랑말랑한 글들은 15인의 화가들의 붓끝에서 탄생한 그림들과 어우러져 독자에게 다가선다. 더 즐거운 사실은 글쓴이 윤후명이 직접 그린 그림들도 이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그는 2009년 화랑 '미술관 가는 길'의 '어머니 전'에 <어머니와 나>라는 그림을 출품함으로써 화가로서 데뷔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찾은 거제 지심도는 예나 제나 우거진 동백나무들이 경탄스러웠다. 25년 전인 1983년, 글을 쓴다는 명목으로 거제에 머물렀던 나는 그 섬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면 손길발길에 망가질까봐 내놓고 이름을 부르기를 망설였었다. 자기 마음에 섬 하나를 갖지 못한 사람은 얼마나 공허하겠는가, 하며.  

                                                                                                        -윤후명, 「섬」 중-

혼자만의 섬으로 남겨두고 싶었을 만큼 작가에게는 소중한 섬, 지심도. 하지만 작가의 말마따나 지심도는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섬이었을 지도 모른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어느 페이지에 씌어 있던 '여자의 아름다움은 아무리 숨기려 해도 누군가가 보게 되어 있다'는 구절처럼 말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문득 지심도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제도에 위치한 모 조선소로 발령이 난 가까운 친구가 그 곳에서 오랜 기간을 머물면서 그렇게 놀러오라, 놀라오라 했었는데도 한 번도 찾아가지 못했던 게 이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하지만 지심도는 늘 그곳에 있을 테니 내가 준비가 되면 언제든지 갈 수는 있겠지. 다만, 작가의 우려처럼 그때까지 사람들의 손길발길에 지심도가 상처받지 않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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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셰스쿠 - 악마의 손에 키스를
에드워드 베르 지음, 유경찬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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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22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공산당 중앙위원회 앞 광장에 전국에서 동원된 수만 명의 군중들이 며칠 전 헝가리 국경 근처의 아름다운 도시 티미쇼아라에서 일어난 소요사태에 관한 차우셰스쿠의 시국 연설을 듣고 있었다. 갑자기 한쪽 귀퉁이에서 "티미쇼아라! 티미쇼아라!"라는 연호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전체 군중을 한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차우셰스쿠의 종말을 고하는 신호탄이 자신의 안방에서 터진 것이다. 이후 3일 동안 은신처를 찾기 위해 처량한 도피행각을 벌인 이들 부부는 시골의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자신들의 충복들이 주관했던 군사재판의 사형언도를 받고 즐결처분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만화 세계사』쯤 되는 제목을 가진 책을 통해 '차우셰스쿠'와 '엘레나'라는 이름의 인물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림 반 글씨 반인 책이었지만 그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그도 그럴것이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그런 처참한 말로를 겪은 것인지를 모르겠으나 여하튼 주인공(?) 두 남녀가 마지막에 총살을 당했기 때문이다. '요술공주 밍키'나 '천사소녀 새롬이'의 근황을 체크하는 것 만으로도 바빴을 초등학교 학생 앞에 몇 십 발의 총알를 몸에 박은 채 숨져간 괴물 독재자로 묘사된 두 인물이 난데없이 나타났으니 그 아니 충격이었겠는가.
그렇게 내 기억 속에 잔인한 형태로 자리매김한 두 인물이 지난 2009년 '헤르타 뮐러(그녀는 티미쇼아라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후 차우셰스쿠가 죽기 2년 전 가까스로 루마니아를 탈출해 독일에 정착했다.)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과 함께 다시 내 기억의 수면으로 떠오르더니, 이번엔 『차우셰스쿠-악마의 손에 키스를』이란 책을 통해 다시금 나를 찾은 것이다.

유럽 발칸반도에 위치한 루마니아는 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난 후 왕국과 인민공화국을 거쳐 1965년 사회주의 공화국이 된다. 이후 차우셰스쿠의 철권 통치 하에 신음하던 루마니아는 결국 1989년 루마니아 혁명을 통해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를 권좌에서 몰아내게 된다. 책은 차우셰스쿠 부부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3일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그의 철권통치 하에 신음하던 루마니아의 사회를 이야기하고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루마니아에 드리워져 있는 차우셰스쿠 부부의 망령에 대해 이야기한다.

풍부한 자원 덕분에 다행히도 국가로서의 그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은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는 나라, 루마니아. 차우셰스쿠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지 2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독재의 잔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슬픈 루마니아.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자리에 어떤 인물이 앉아 있는가는 국가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지도자와 국가를 신뢰하되, 관심과 책임감을 갖고 국가의 향방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태도 또한 매우 중요함을 다시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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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트렌드 연감 2009
NHN(주) 지음 / 시드페이퍼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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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기억은 유한하다. 하지만 우리는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기억하고자 하는 욕망 또한 가지고 있다.
문자, 통계, 기록법, 책, 이 모든 것은 바로 이러한 인간이라는 동물의 모순되는 능력과 욕망의 결합체가 아닐까.

몇 년 전부터 매년 말, 나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내 인생의 <10대 뉴스>를 정리해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작년도 예외는 아니어서 2009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내 인생에서 일어난 일 중 가장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사건 10가지를 꼽았다(정말 힘들었다!). 당시에는 매우 의미가 있다고 느껴졌던 일들이 몇 년, 아니 몇 달, 몇 일만에 기억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는 서글픈 사태를 막기 위해, 그리고 미래의 어느 날 문득 나의 2009년이 궁금해졌을 때 손쉽게 들춰볼 수 있는 자료로 남기기 위함이다.

'블로그'와 '검색'이라는 키워드를 들고 나타나 이제는 내 삶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 네이버Naver. 그곳에서 내놓은 『네이버 트렌드 연감 2009』를 읽었다. '나'라는 작은 세계를 둘러싼 좀 더 큰 세계는 지난 2009년 동안 무슨 일들을 겪었을까?

<검색어로 읽어보는 2009년 트렌드>라는 부제(?)를 단, 『네이버 트렌드 연감 2009』는 총 3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PART1. 시간별 일간 검색어
PART2. 15개 분야별 통합 검색어 1만위 
            : 경제/환경/스포츠/사회와정치/문화와예술/건강/교육과학문/컴퓨터와인터넷/세계와여행/게임/뉴스와미디어/쇼핑/생활/엔터테인먼트/인물과사람
PART3. 검색어를 통해 본 09년 우리의 사회와 문화 
           : 우리를 기쁘게 한 것들/ 우리를 슬프게 한 것들/ 우리가 누린 문화들

평소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 형태의 텍스트를 읽는 데 익숙해진 난, 처음 이 책을 펴 들고는 깜짝 놀랐다. 대충 짐작은 했었지만 막상 검색어 순위가 주루룩 나열된 본문을 접했을 땐, '이거 이거..재미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다 읽지?'라는 생각이 덥썩 들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게 왠 걸? 정말 신기하게도 책을 잡고 한 자리에 앉아 끝까지 다 읽어버렸을 정도로 의외의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특히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PART2 중 나의 관심분야(환경/사회와정치/문화와예술/교육과학문/세계와여행/생활/인물과사람)PART3였다. PART2에는 각 분야별 대표적 인물 1인의 짧은 인터뷰도 실려 있는데 생태적 감수성이 드러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황윤, 숭례문 복원의 단청공사에 참여한 장인이자 한국 단청연구소 설립자인 홍창원, 한글을 문자로 차용한 찌아찌아 족을 최초로 발견한 한국외대통번역대학 초대 학장 전태현, 한복 디자이너이자 보자기 아티스트인 이효재씨의 인터뷰가 특히 흥미로웠다.

4천만 네티즌이 2009년 한 해 동안 검색했던 수백억의 질의어 중 상위 1만위 검색어를 통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관심 있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 볼 수 있는 책자이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지난 한 해를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하는 동시에, 먼 미래에 2009년의 기록을 담은 의미 있는 자료가 될, <네이버 트렌드 연감>
매년 한 권씩 사 모아도 재미있을 만한 책이다. 단, 네티즌들의 검색어가 필연적으로 해당 기간의 주요 이슈와 일치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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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이야기 - 해보지 않고 두려움만 키우는
EBS대한민국성공시대 엮음 / 에이트스프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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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적,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물이 반쯤 담긴 컵을 보고 어떤 이는 "물이 반 밖에 남지 않았잖아."라고 투덜대고 어떤 이는 "물이 반이나 남았네."라며 감사해 한다는. 이런 작은 태도의 차이가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나는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일까. 대체로 긍정적인 성격을 지녔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대상이 지닌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되어 보여질 때가 분명 있다. 게다가 과거의 습관이나 고정관념에 편안히 안주하고자 하는 경향마저 때때로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순간,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두려움 없이 새로운 곳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도록 도와줄 책을 만났다. 『지구인 이야기』, 즉, 지혜를 구하는 사람(人)들의 이야기다.

예전에 아는 분이 EBS라디오의 <대한민국 성공시대>에 출연하신 적이 있다. 그 때 그 분과 함께 라디오 스튜디오를 찾아 처음으로 이 방송을 접했다. 자기계발과 관련된 이야기를 전해 줄 만한 분을 게스트로 초청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초청자는 물론 직접 그 현장을 찾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열정을 담은 눈빛을 반짝이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질의응답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왠지 모르게 가슴이 조금 뭉클해졌던 기억이 난다. 바로 그 <대한민국 성공시대>의 감동적인 클로징 멘트들을 모은 책이 『지구인 이야기』다.

자自전
나는 내 꿈에 당당한 사람인지, 나의 미래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
다만 열정을 다해 내 길을 걸어가는 나는 꿈꾸는 지구인.

공共전
언제나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가슴이기를, 나의 심장이 언제나 타인을 향해 뜨겁기를, 세상 속에서 느끼는 아픔을 돌아보는 시간,
그렇게 함께 걸어가는 우리는 따뜻한 지구인.

책은 이렇게 자전과 공전, 두 개의 테마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다섯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여 출전하는 콩쿠르마다 상을 휩쓴 피아노 신동이 있었습니다. 10대 초반부터 수준 높은 곡들을 작곡했고, 이미 20대에 성공한 음악가의 반열에 오른 라울 소사입니다.
성공적인 음악가로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그는 오른손 두 손가락의 신경이 마비되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피아니스트에겐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지요. 그의 인생은 그렇게 비극으로 끝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라울 소사는 오른손에서 시선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차분히 읊조렸습니다. "내겐 아직 왼손이 있다."
라울 소사는 장애에 굴하지 않고 왼손만을 위한 작품들을 발굴해냈습니다.
그리고 한 손만으로도 충분히 청중을 압도할 수 있다는 걸 그의 왼손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자전 <황금의 왼손, 라울 소사> 中-

야구장에서 신발을 닦는 일을 하던 한 소년이 어느 날 야구 감독에게 물었습니다. "감독님, 야구공은 어떻게 저렇게 멋진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죠?" 감독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야구공을 보렴. 거기에는 실로 꿰맨 자국이 있잖니. 그 상처자국 때문에 야구공이 멀리, 더 높이 날아가는 거란다."
실로 꿰맨 상처자국이 공을 멀리 보내는 원동력이라는 감독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핸디캡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더 큰 꿈을 꾼 소년. 바로 아프리카 가나에서 고달픈 어린 시절을 보낸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입니다.
-공전 <우리 인생의 멋진 포물선> 中-

이처럼 짧지만 그 여운은 긴 이야기들이 가득담겨 있는 책, 『지구인 이야기』.
우리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 화를 내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무작정 그리워만 하기 보다 그런 감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려고 할 때 이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누군가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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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구텐 백
백경학 지음 / 푸르메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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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사고, 장애.
이런 단어들은 우리 자신의 삶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
어쩌면 그건 우리의 착각, 아니 바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착각이자 바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그 사실을 외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일이 닥치기 전까지는.
 
아내는 혼수상태였다. 아내를 붙잡고 흔들던 나는 까무러칠 듯 놀랐다. 아내의 왼쪽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한 남자가 다가와 설명을 했다. 수술을 담당한 의사였다. "출혈이 워낙 심해서 당신 부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한 스코틀랜드 사투리였다.
아내의 얼굴에는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 누구도 더이상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절망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본문 중-

국내의 모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가족과 함께 독일로 유학을 떠난 저자. 2년 간의 독일 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준비하던 중 유럽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여행을 떠났던 스코틀랜드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해 저자의 부인은 한 쪽 다리를 잃고 만다. 다행히 그녀는 이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그것은 불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사실, 사고가 난 순간부터 한국에 돌아올때까지 스코틀랜드와 독일에서 저자가 체험한 병원들은 철저히 환자와 환자 가족 중심으로 설계되고 돌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너무 높은 보험료 때문에 불만도 있었지만 아내가 사고를 당한 후 저자가 받은 혜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고 한다. 병원비는 물론 의족과 휠체어,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자동차 리프트, 안경과 특수 신발, 8년 동안 소송을 진행한 독일 변호사와 영국 변호사 비용까지. 물론 저자도 언급했다시피 그곳의 사회보장제도는 좋고 우리의 그것은 나쁘다고 일방적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그곳과 우리의 조건과 상황이 같을 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제도적인 뒷받침을 제공하는 독일 사회보장제도와 기부문화를 통해 저자는 큰 감명을 받게 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국내 병원들은 재활병동과 재활의학과를 개설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이유는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응급환자나 외과환자의 경우 각종 수술과 검진을 통해 높은 의료비를 받을 수 있지만 재활환자의 경우, 응급상황을 거쳤기 때문에 병원에서 별로 해 줄 것이 없었다. 싼 의료수가에 비해 물리치료나 작업치료 등 모든 것을 비싼 인건비에 의존해야 하는 재활병원은 적자투성이였다. 대표적인 민간 재활병원인 신촌세브란스 재활병원조차 매달 5억 원 이상의 적자가 나고 있다. 세브란스 병원이야 다른 병동에서 거둔 수익으로 재활병원의 적자를 감당할 수 있지만 다른 병원은 섣불리 나설 수 없는 구조였다.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서울대병원조차 재활병동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국립병원이 외면하는 상황에서 대기업이나 대학이 운영하는 병원이 적자가 불을 보듯 뻔한 재활병원을 세울 이유가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아내의 재활치료를 다시 시작하려던 저자는 국내 재활병원의 부실한 상황에 충격을 받게 된다. 장애를 가진 분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을만한 병원조차 부족한 현실. 혹, 병원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시설 또한 매우 열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이 직접 '장애인을 위한 병원'을 짓겠다는 희망을 품고 푸르메재단을 설립하게 된다.

푸르메재단
http://www.purme.org/
재활치료에서부터 자립생활까지를 돕는 민간재활전문병원, 푸르메병원 건립을 추진 중.

『효자동 구텐백』은 총 4개 장으로 구성된다.
제1부. 길에게 길을 묻다 - 예기치 못한 아내의 사고로부터 푸르메재단 설립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
제2부. 사람만이 희망이다 - 장애를 가진 이들이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와 나눔(기부) 이야기
제3부. 실수는 나의 힘/ 제4부. 꽃한테서 배우라 - 저자 개인의 삶을 기록한 에세이

사실, 3/4부는 책을 선택할 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내용이었기 때문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기자생활을 하던 분이라 그런지 소위 글빨이 살아있는 것이 술술 잘 읽혀져 다행이었다.
여하튼, 이 책을 통해 '푸르메재단'이라는 곳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덕분에 장애에 대해 좀 더 가까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푸르메재단과 이곳에서 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를, 그래서 저자가 꿈꾸는 장애인을 위한 아름다운 병원이 하루빨리 이 세상에 생겨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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