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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구텐 백
백경학 지음 / 푸르메 / 2010년 3월
평점 :
질병, 사고, 장애.
이런 단어들은 우리 자신의 삶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
어쩌면 그건 우리의 착각, 아니 바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이 착각이자 바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그 사실을 외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 일이 닥치기 전까지는.
아내는 혼수상태였다. 아내를 붙잡고 흔들던 나는 까무러칠 듯 놀랐다. 아내의 왼쪽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한 남자가 다가와 설명을 했다. 수술을 담당한 의사였다. "출혈이 워낙 심해서 당신 부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리를 절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한 스코틀랜드 사투리였다.
아내의 얼굴에는 서서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 누구도 더이상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나는 절망했다. 그러나 그것은 불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본문 중-
국내의 모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가족과 함께 독일로 유학을 떠난 저자. 2년 간의 독일 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준비하던 중 유럽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여행을 떠났던 스코틀랜드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해 저자의 부인은 한 쪽 다리를 잃고 만다. 다행히 그녀는 이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그것은 불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사실, 사고가 난 순간부터 한국에 돌아올때까지 스코틀랜드와 독일에서 저자가 체험한 병원들은 철저히 환자와 환자 가족 중심으로 설계되고 돌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너무 높은 보험료 때문에 불만도 있었지만 아내가 사고를 당한 후 저자가 받은 혜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고 한다. 병원비는 물론 의족과 휠체어,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자동차 리프트, 안경과 특수 신발, 8년 동안 소송을 진행한 독일 변호사와 영국 변호사 비용까지. 물론 저자도 언급했다시피 그곳의 사회보장제도는 좋고 우리의 그것은 나쁘다고 일방적으로 몰아세울 수는 없다. 그곳과 우리의 조건과 상황이 같을 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해 제도적인 뒷받침을 제공하는 독일 사회보장제도와 기부문화를 통해 저자는 큰 감명을 받게 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국내 병원들은 재활병동과 재활의학과를 개설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이유는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응급환자나 외과환자의 경우 각종 수술과 검진을 통해 높은 의료비를 받을 수 있지만 재활환자의 경우, 응급상황을 거쳤기 때문에 병원에서 별로 해 줄 것이 없었다. 싼 의료수가에 비해 물리치료나 작업치료 등 모든 것을 비싼 인건비에 의존해야 하는 재활병원은 적자투성이였다. 대표적인 민간 재활병원인 신촌세브란스 재활병원조차 매달 5억 원 이상의 적자가 나고 있다. 세브란스 병원이야 다른 병동에서 거둔 수익으로 재활병원의 적자를 감당할 수 있지만 다른 병원은 섣불리 나설 수 없는 구조였다.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서울대병원조차 재활병동을 운영하지 않고 있다. 국립병원이 외면하는 상황에서 대기업이나 대학이 운영하는 병원이 적자가 불을 보듯 뻔한 재활병원을 세울 이유가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아내의 재활치료를 다시 시작하려던 저자는 국내 재활병원의 부실한 상황에 충격을 받게 된다. 장애를 가진 분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을만한 병원조차 부족한 현실. 혹, 병원이 있다 하더라도 그 시설 또한 매우 열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이 직접 '장애인을 위한 병원'을 짓겠다는 희망을 품고 푸르메재단을 설립하게 된다.
푸르메재단
http://www.purme.org/
재활치료에서부터 자립생활까지를 돕는 민간재활전문병원, 푸르메병원 건립을 추진 중.
『효자동 구텐백』은 총 4개 장으로 구성된다.
제1부. 길에게 길을 묻다 - 예기치 못한 아내의 사고로부터 푸르메재단 설립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
제2부. 사람만이 희망이다 - 장애를 가진 이들이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와 나눔(기부) 이야기
제3부. 실수는 나의 힘/ 제4부. 꽃한테서 배우라 - 저자 개인의 삶을 기록한 에세이
사실, 3/4부는 책을 선택할 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내용이었기 때문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기자생활을 하던 분이라 그런지 소위 글빨이 살아있는 것이 술술 잘 읽혀져 다행이었다.
여하튼, 이 책을 통해 '푸르메재단'이라는 곳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덕분에 장애에 대해 좀 더 가까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푸르메재단과 이곳에서 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를, 그래서 저자가 꿈꾸는 장애인을 위한 아름다운 병원이 하루빨리 이 세상에 생겨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