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기원 - 인간은 왜 스토리텔링에 탐닉하는가
브라이언 보이드 지음, 남경태 옮김 / 휴머니스트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이야기의 기원] 브라이언 보이드, 남경태 역, 휴머니스트, 2013

 

제목에서 혼돈이 생긴다. 제목을 그대로 이해하자면, 이야기에 대한 역사적 설명을 떠올릴 수 있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저자는 다윈의 책을 염두에 두고 제목을 정했다. 저자는 이 책을 “[종의 기원]의 핵심 내용을 일반화하고 확장”한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문학비평에 진화론을 도입함으로써 문학비평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새로운 비평체계로서 진화비평을 도입해야 한다.

진화비평은 문학작품에서 파생되는 “문제와 (그것의) 해법이라는 주제와 (그 해법에서 파생되는) 새로운 문제에 대해 (새롭고도) 매우 복잡한 해법을 만들어내는 진화 체계의 힘 - 발생, 검증, 재발생의 순환 - 을 반복적”으로 하는 것을 말한다. 생소한 이론이다 보니, 비평 자료로 사용된 [오디세이아]와 [호턴이 듣고 있어!]의 몇 단락을 제외한다면, 본문의 대부분이 진화론과 진화론을 배경으로 한 여타 학자들의 주장과 저자의 부연 설명이다. 물론 뇌신경과학, 진화심리학과 진화사회학(이런 학문이 있다면)에서 사용되는 개념들을 문학에 도입했다는 점에서 새롭게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낯설다.

물론, 저자의 말처럼, “생물 문화적 관점이 없으면 픽션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고 얼마나 자연적인지 제대로 평가”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게 평가할 필요가 있을까? 뇌과학자들의 연구를 따르면, 우리 뇌 속에는 ‘나’라고 불리는 ‘자아’가 단 하나뿐이지 않다. 도대체 어떤 자아가 복잡다단한 진화체계를 이해할까? 또한 어릴 적 읽었던 작품을 나이 들어서 다시 읽어보면 또 다른 감동을 받게 되는 것도 진화로 설명해야 하는가? 最古의 작품 중의 하나인 [오디세이아]는 거의 3천 년 동안 연구되어 왔는데도, 이것이 [오디세이아]라고 단언할 수 있는 뭔가를 본적이 있는가? 진화비평을 못해서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이런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저자는 문학을 다른 말로 픽션을 ‘인지 놀이’라고 규정한다, 이 개념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 놀이’를 확장한 개념이다. 진화론과 비트겐슈타인. 저자의 관점은 프래그머티즘적이지만, 프래그머티스티인 로티와는 전혀 상반된 결론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로티의 지도의 받은 이유선 선생님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과학적 철학을 표방함으로써 철학이 많은 독자를 상실하고 별다른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면, 철학은 글쓰기의 방식에 대해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해결책이란 매우 간단하다. 반대의 길로 가는 것, 즉 문학적인 철학을 하는 것이다.”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201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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