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은 나의 힘 - 카프카의 위험한 고백 86
프란츠 카프카 지음, 가시라기 히로키 엮음, 박승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에세이 [절망은 나의 힘] 프란츠 카프카, 가시라기 히로키 엮음, 한스미디어, 2012

 

“나는 매일 아침 절망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나보다 의지가 강한 인간이라면 기꺼이 자살했겠지요.”

 

이것은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의 독백이 아니다. 이 글은 ‘노동자 상해 보험 협회’에서 오전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근무했던 카프카가 약혼자 펠리체에게 보내는 편지의 일부다.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둘러본다면, 카프카의 이 배부른 푸념은 용납 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정확하게 몇 년도에 쓴 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죽지 직전에 쓴 글도 아니다. 그럼 무엇이 카프카를 이렇게 절망으로 몰아갔을까?

 

“그는 조형물의 조각을 끝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끊임없이 같은 곳에 끌을 대고 치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집중이 아니다. 오히려 제자리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그는’ 카프카 자신이다. ‘조각’은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에 일 것이다. 아무리 써도 자신을 만족스러운 글을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한 그의 절망을 그는 이렇게 표현해 놓았다. 물론 이 책에서도 소개하고 있지만, 소설에 대한 절망뿐만이 아니라 아버지에 대한 고민과 병약한 몽뚱아리에 대한 절망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카프카만 이런 절망을 느끼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현실은 차갑고 미래는 불안하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일은 내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미래를 생각하고 걸려 넘어지는 일이라면 가능합니다.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은 넘어진 채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카프카는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은 넘어진 채 그대로 있는 것이라고 한다. 병약한 몽뚱아리와 폭압적인 아버지와 사랑하는 연인을 버려두고 넘어진 채, 오르지 글쓰기에만 몰두했다. 카프카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작품을 쓰며 쓸쓸하게 요절할 운명을 받아들였다.

 

“인생에 필요한 능력을

아무것도 갖추지 못한 나

가지고 있는 것이라곤 인간적인 약점뿐“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밤을 새며 글을 썼다. 그렇지만 글쓰기도 하나의 재주고 재능이다.

 

“이승의 짧은 밤들 때문에 영원한 밤에 대해 불안을 품게 될 것 같습니다.”

 

카프카는 영원한 밤을 밀어내고 밤새 글을 썼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이 밀어나는 아침을 맞이한다. 그들에게 아침은 절망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들에게 영원한 잠에 대한 불안 같은 것은 없다. 영하로 떨어지는 쪽방 한 귀퉁이 누더기 같은 이불 속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은 희망이 빛이 아니라 시퍼렇게 날 선 비수다. 그것을 피해 영원한 잠을 청한다.


카프카가 위대한 것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카프카는 자살에 대해 ‘지겨워서 견디기 어려워진 오래된 독방에서 언젠가는 다시 지겨워질 새로운 독방으로 옮겨주기를 간청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이 책의 작가는 말한다. 벗어나지 못하는 독방, 그것은 고독의 다른 이름이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고독이라면 차가운 현실을 녹여내는 것이 낳지 않을까. 이곳은 끝이 존재하지 않는가.

 

에필로그에 이런 말이 있다.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들게 느껴질 때,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을 때, 도저히 긍정적인 기분이 들지 않을 때, 죽고 싶은 생각이 들 때, 부디 이 책을 펼쳐보게 되기를 바란다.”

 

잠시 크게 한 번 쉬고, 카프카처럼 고독을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꽤 멀리까지 걸었습니다.

다섯 시간 정도, 혼자서.

그래도 고독이 모자라내요.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는 골짜기이지만

그래도 외로움이 모자랍니다.“

 

우리는 가끔 ‘카프카적’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가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언어로 구체화 시킬 수 없는 것이다. 카프카 책을 오랫동안 읽지 못했던 독자라면 [변신]이라도 한 번 읽어보고,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201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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