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
신동흔 지음 / 우리교육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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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교양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 신동흔, 우리교육, 2012

 

내가 신동흔 선생을 만나건 도서관에서 열린 ‘옛이야기’ 강좌에서였다. 그 후 선생이 쓴 몇 권의 책을 읽었다. 내가 듣고 읽은 선생은 옛이야기에 미친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도 보이듯이 신동흔 교수의 삶에서 ‘옛이야기’를 빼면 내놓을 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선생은 ‘[옛이야기’에 미친 사람이 분명하다.

‘미친’이라는 단어에는 부정적인 함의도 있지만, 생각을 조금 바꾸어보면 ‘삶을 지배한다’는 의미도 찾을 수 있다. 선생의 삶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 더 나아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이야기다. 인간이 인식하고 사유하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것은 구비문학 연구자나 소설가의 주장이 아니다. 이것은 최근 인지생리학자들이 밝혀낸 인지 메카니즘이다.

최초의 이야기를 ‘누가 만들어냈는가?’에 대한 논의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이야기고 그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몇몇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고, 전승된 그 이야기 속에 어떤 힘이 있는가? 전승된 이야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것이 중요하다. 선생은 이 책의 제목처럼 ‘옛이야기의 힘’은 우리의 ‘삶을 일깨우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삶을 일깨우고 내가 걷고 있는 인생이라는 길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은 종교적 성찰일 수도 있고, 개개인이 맞닥트리는 극한의 경험일 수도 있고 위대한 고전일 수도 있다. 고전은 읽을 능력이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개인적 경험이나 종교에도 일정한 제약이 존재한다. 지금도 회자하고 있는 옛이야기만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보편적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것은 듣기와 말하기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작용하는 힘이 공감이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공감되지 않으면 전해질 수 없다. 선생은 ‘공감’이라는 단어 대신 神性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신성은 종교적 의미에서의 성스러움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인 人性과 짐승의 본성인 獸性수성과 대비되는 의미로서의 신성으로 인간이 도달하려고 하는 본연의 목표, 보편적인 인간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무조건적인 권선징악이 우리 삶의 목표일까. 권선징악이 옛이야기의 모든 귀결점은 아니다. 옛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트릭스터(trickster)는 “도덕과 관습을 무시하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신화 속의 인물이나 동물 따위를 이르는 말”로서 사기꾼 이상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트릭스터가 옛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우리가 거기에 공감을 보내는 것은 윤리적 측면에서의 인성과 본능적인 측면에서의 수성이 인간의 본성이며 이러한 본성에서 어떤 측면이 보이느냐에 따라서 신성의 의미도 달라지는 것이다.

하나의 옛이야기는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떤 측면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고 같은 사람이더라도 직면한 상황이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달리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옛이야기의 소재,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메타포적인 요소를 함의하고 있고,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알레고리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하나의 이야기로 인생을 바꿀 수는 없다. 단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 줄 뿐이다. 이 책은 선생의 이야기에서 옛이야기로 옛이야기에서 선생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어떻게 보면 선생의 편협한 해석에 불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한국구비문학대계]라는 거대한 원전도 있지만 이 책은 구하기도 힘들고 읽어내기도 힘들다. 옛이야기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선생이 엮은 [세계민담전집01-한국편](황금가지)를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먼저 원전을 읽어보고, 전문 연구자의 의견과 내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일 것이다. 201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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