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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 ㅣ 이호준의 터키여행 2
이호준 지음 / 애플미디어(곽영완)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여행기 [아브라함의 땅 유프라테스를 걷다] 이호준, 애플미디어, 2012
차도르, 아바야. 부르카. 여기에 히잡이란 단어도 있다. 언 듯 떠오는 것은 모슬렘 여성들이 몸 전체를 가리기 위해 입는 옷이다. 페르시아어, 아랍어, 사막의 베두인들의 언어처럼 어원도 다양하고 색깔도 신체를 가리는 부분도 다양하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 책에서만 읽어서는 잘 알 수 없다. 학교 시험공부를 하듯이 외우고 또 외워도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다. 그렇다고 이것을 알기 위해서 무작정 떠난다고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공부를 위해서 여행이 필요하고, 여행을 하기 위해서도 아이러니하게 공부가 필요하다. 여행지의 간단한 상식부터 조금 더 깊은, 이 책의 필자가 보여주는 것처럼, 여행지의 역사에 관한 폭넓은 공부를 하면 좀 더 다양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유쾌한 여행기를 통해서 여행을 하려면 공부는 해야 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 당나귀를 만난 건 넘루트 산을 올라가던 중이었다.”
이 멋진 문장 뒤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산을 넘다가 당나귀를 타고 오는 노인을 본 것뿐이고 그 장면을 사진으로 담은 것뿐이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장면 중 하나일 뿐인데, 이 장면이 저자의 가슴 깊숙한 곳에 박힌 것은 왜일까?
낯설음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이질적인 공간에서 오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이것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말처럼, 익숙한 세계에서 멀어져 가면 갈수록 ‘나’ 자신이 낯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지금도 새로운 시간은 속으로 걸어가고 있다. 우리는 1초 앞의 세상을 알지 못한다. 갑자기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고, 점심 먹으러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이번 주말에 로또가 당첨될 수도 있다.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은 어디서 어떻게든 벌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단단한 시간의 고리 속에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 미래를 예상하고, 주말 계획을 세우고, 점심 메뉴를 떠올리고 있다.
낯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를 둘러싼 익숙한 공간이 만들어내는 착각이 단단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를 단단하고 박아놓았다. 굳이 인지생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오지 않더라도, 익숙한 공간에 길들여진 ‘나’는 진짜 ‘나’가 아닐 수 있다.
여행은 익숙한 나를 낯설게 보는 것이다. 끊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다른 공간으로 빠져드는 여행은 새로운 ‘나’를 발견g하게 만든다. 낯선 공간은 오감을 통해서 낯설음을 내 안으로 밀어 넣고, 우리의 오성은 언제나 새로울 수밖에 없는 시간을 감지하고, 그 흐름 속에 떠다니는 낯선 ‘나’가 발견 된다.
‘젊은 시절에는 여행을 많이 해라.’
‘여행보다 더 훌륭한 교육은 없다.’
그렇지만 준비 없는 여행은 고생이고 노역일 뿐이다. 우리의 시간은 크눌프가 방황했던 시간보다 더 빠르게 흘러간다. 헤세가 그리던 그런 삶의 여정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빠른 시간을 부여잡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하고 공부가 필요하다. 노란색 가방을 멘 유치원생들이 재잘거리며 돌아보는 박물관 견학을 여행이라고 할 수 없듯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이드를 쫓아가는 여행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 2012.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