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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개 장발 ㅣ 웅진책마을 44
황선미 글, 김은정 그림 / 웅진주니어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고학년 창작동화 [푸른 개 장발] 황선미, 웅진주니어, 2012
누구에게나 개와 함께했던 추억이 있다. 짧은 추억일 수도 있고, 옆집 개에게 물려보았거나 친구 집에 있던 커다란 셰퍼드에 놀라 다시는 친구 집에 놀러 가지 않았거나 집에서 기르던 반려견이 아파 엄청난 병원비를 감수했던 적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불편한 추억도 있지만, 꼬리를 흔들며 졸졸 따라다니던 강아지에 대한 애틋함은 지울 수 없다.
이 작품은 작가 황선미의 추억과 상상력이 만들어 낸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다지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지만, “아무리 먼 길을 가더라도 나는 내가 지나온 길을 끊어 낼 수 없다.” 작가뿐만이 아니라 우리도 마찬가지다. 비좁고 불편하고 불쾌한 기억이기에 지워버렸지만, 문득문득 떠오르는 추억의 편린은 지울 수 없다.
나에게도 이런 편린이 있다. 할머니는 살아계실 때 가끔 이런 말을 했다. “어릴 때는 개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머리가 굵어지니깐 개를 싫어하네.” 할머니 기억 속에 있던 나는 ‘장발’처럼 털이 많았던 하얀 개를 타고 다니던 꼬마였다. 나에게는 그 기억이 없다. 단지 옆집에 놀러 갔다가 강아지에게 옆구리를 물렸고,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친구 어머니는 개털을 자르고 태워서 내 옆구리에 발라주었던 고통스러운 기억과 고물상하던 초등학교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나보다 더 큰 셰퍼드에 놀라 다시는 그 친구 집에 놀러 가지 않았던 기억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개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는 진돗개 2마리를 사오셨다. 하얀 백구였는데 이름이 누리와 누실이었다. 나는 녀석들이 너무 귀찮았다. 아침저녁으로 개집 청소하는 것도 너무 싫었다. 녀석들은 내가 제대할 때까지 우리집에서 살았다. 어느 날 누리는 아팠고, 나는 개를 안고 동물 병원으로 달렸다. 당시 수의사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엄청난 병원비 때문에 아버지한테 많이 혼났다. 녀석을 떠나보낸 이후로 나는 지금까지 살아있는 애완용 동물을 기르지 않는다. 얽매이고 싫어하는 성격 때문일 수도 있지만, 예견된 죽음과 이별을 알기에 싫다.
개의 1년은 인간의 10년이라고 한다. 아무리 장수하는 동물이라도 제가 살던 생태계를 떠나 집 한구석에서 키우면 오래 살지 못한다. 일상에 쫓겨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녀석들은 우리를 떠난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생각을 했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어린 것들은 자라고 늙은이들은 지쳤어. 겨울이 뭘 감추고 있는지 겪어 봐야 안다니까. 겨울은 비밀이 많지.” 이 작품에 등장하는 늙은 고양이의 이 말이 내 가슴에 박혔다. 겨울은 추운 날씨일 수도 있지만, 죽음일 수도 있고, 우리 삶 곳곳에 널려 있는 불안과 공포일 수도 있고, 인생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어린 것들은 자라고 늙은이들은 지쳤어.”나도 지쳐가는 중이다. 지금이 내 인생의 초가을인지, 한겨울의 문턱에 와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찬바람은 나를 외롭고 쓸쓸하게 만든다.
할머니 말씀처럼 어릴 적 그렇게 좋아했던 강아지가 왜 싫었을까? 기억도 나지 않지만, 어릴 적 타고 놀았던 그 친구의 죽음이 나를 압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친구도 쥐약을 먹고 죽었다. 이 책에 나오는 강아지처럼. 굳이 프로이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죽음이나 이별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나는 어릴 적 맞닥뜨렸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지만, 나도 목청씨의 장발처럼, 나에게 그런 개가 있었으면 좋겠다. 2012.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