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취 나라에서 망드라고르 산맥까지 ㅣ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3
프랑수아 플라스 지음, 공나리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프랑스 동화 [비취 나라에서 망드라고르 산맥까지] 프랑스와 플라스, 솔, 2004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시리즈로 된 책을 읽을 때면 앞에 읽었던 것을 되새기며,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된다. 1편보다 더 좋은 2편을 만들기는 어렵다는 말처럼 1편이 재미있어야지 2편이 만들어진다. 영화감독들은 관객들의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더 자극적이고 더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내지만, 책은 영화가 아니다.
이 책은 6권으로 된 시리즈 중 3번째 책이다. 앞서 2권을 읽었으니, 책이 어떻게 구성되어있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풀려나갈지 대충 짐작을 한다. 내가 이 책에서 원하는 것은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세계의 이야기다. 그 이야기의 끝이 아쉽든, 무미건조하든 상관없다. 단지 미지의 세계에 살짝 발을 담그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려진 멋진 그림과 이야기를 연결해보는 것이다. 이것이 시리즈를 읽는 재미다. 기대와 다르게 이 책의 첫 번째 이야기인 ‘비취 나라’ 이야기는 재미가 없었다. 이야기보다는 그림이 문제였다. 수묵화에서 보았던 기암절벽과 그곳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몽골 텐트와 일본식 복장을 하고 일본식으로 차를 마시고 있는 등장인물 때문이었다. 첫 번째 그림에서 느낀 실망감은 이 이야기를 다 읽을 때까지 나를 편견으로 밀어 넣었다.
‘비취 나라’의 이야기와 그림은 동북아시아에 사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하고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기에 우리는 편견에 사로잡혀 ‘작가가 동북아시아에 대해서는 조사를 많이 하지 않았나 봐’라고 결론을 내린다. 과연 이런 결론은 정당할까? 소설이나 동화가 허구의 산물이라고 하지만, 허구라는 것은 등장인물과 배경이 책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완벽하게 창조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 판타지나 SF 소설도 기본적인 논리의 틀을 파괴하지 않는다. 새로운 논리의 틀 속에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인류의 긴 역사를 처음부터 쓰듯이 모든 것을 다시 설명해야하고 독자들에게 모든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그것을 다 읽을 수도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비취 나라’의 이야기에는 논리적인 모순이 없다.
책에 대한 평가를 할 때 한 가지 더 감안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작가가 ‘어떤 독자들 염두에 두고 썼는가?’이다. 이 책의 작가는 분명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아이들을 염두에 두고 썼을 것이다. 지금까지 읽었던 이야기를 보면 대부분 비유럽권의 이야기들이다. 물론 유럽의 이야기도 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공간과 시간이 복합적이기 때문에 유럽의 독자들도 재미있게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취 나라’ 이야기에는 중국, 몽골, 일본의 공간과 시간을 뭉쳐져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전해져 내려옴 직한 이야기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실망했던 것은 그림 속에 우리나라가 등장하지 않아서였다. 우리가 유럽인들이라면 영국인 프랑스인 독일인을 떠올리듯이 유럽인들은 동북아시아라고 하면 중국이나 일본 몽골을 떠올린다. 우리가 네덜란드와 벨기에 대해서 잘 모르듯이 그들도 한국을 잘 모를 것이다.
짧은 동화를 읽고, 읽었던 시간보다 10배는 더 생각했다. 이런 것들이 책을 읽는 재미다. 더 자극적이고 더 강렬한 이미지들은 넘쳐난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책을 대신할 수 있을까. 그것을 통해서 더 깊은 사유의 세계로 갈 수 있을까. 2012.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