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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쏘다, 활 - 일상을 넘어 비범함에 이르는 길
오이겐 헤리겔 지음, 정창호 옮김 / 걷는책 / 2012년 3월
평점 :
책도 저자도 역자도 특이하다. 서구의 理性으로 동양의 道를 분석한 책을 칸트를 연구하던 독일 철학자가 썼고, 한국에서 헤겔을 연구하고 독일에서 교육학을 연구한 한국인이 번역한 것이 특이하다. 어떻게 보면 이보다 더 '완벽한 조합'은 있을 수 있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 독일인이 일본 궁술을 배우는 과정을 적어놓았다. 올림픽 양궁 최강국이고, 옛날부터 활쏘기를 잘했다고 역사책에서 배워왔으니,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이 조금 상할 수도 있다. 책의 내용도 어쩌면 특별할 것이 없다. 한국인으로 동양무술을 좀 해봤던 사람이라면 다 경험해봤던 내용이고, 무술이 아니라 어떤 선생 밑에서 무엇인가를 배웠던 사람들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뿐이다. 독일 철학자가 이 정도의 이야기만을 썼을까? 서양 철학 중에서도 제일 골치가 아픈 헤겔 존재론을 공부하고 독일 가서 교육학을 연구한 박사가 이 정도의 책을 번역했을까? 아니다. 이 책은 두고두고 읽을 가치가 있다.
이 책은 서문이 중요하다. 서문의 면밀하게 잘 읽어보면 표층을 지나 내재적 가치에 조금은 다가갈 수 있다.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저자는 칸트의 방법론으로 "궁도"를 분석하면서 멀게는 플로티노스의 [엔네아데스 선집]을 인용하고, 근본적으로는 플라톤의 [향연]에 다가서려 하는 이 책의 가치를, 서문을 쓴 스즈키 다이세츠는 헤겔의 방법론으로 이 책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역자는 교육학적 관점에서 독자들에게 이 책을 설명하고 있다.
역자는 "이 책에 접근하는 세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역자가 제시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내공이 부족하기에, 나는 그중에서도 "가르침과 배움" 을 중심으로 읽었다. "가르침과 배움"의 핵심은 ' 연습'이다. 선생은 가르치기 위해서 연습을 해야 하고, 학생은 선생의 모든 것을 모방하듯이 연습해야 한다.
'나는 학생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무엇을 배우던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선생님'이 하는 소소한 것들까지 유심히 관찰하고 따라 하면, "모방은 약간의 적극적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객관적 내용에 관련되지 않고, 이전에 비해 더욱 자유롭고 경쾌하며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된다. 제자는 새로운 가능성과 마주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한다.
익숙한 것도 매일 "연습"해야 한다. "연습은 떠나가는 기억 대신에 새로운 기억을 다시 만들어 넣어줌으로써 같은 앎으로 보일 정도로 앎을 보존"(향연 208)시킨다고 플라톤은 말했다. 내가 이 책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 단지 앞서 읽은 독자로서 이야기한다면, 이 글을 읽고 이 책을 읽으려고 하는 독자가 있다면, 서문을 건너뛰고 '본문부터 읽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읽어 낸 것과 서문 쓴이와 역자가 읽어낸 것이 얼마나 다른지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12.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