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편지 - 인류 문명에 대한 사색
최인훈 지음 / 삼인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 문학 [바다의 편지] 최인훈, 삼인, 2012

`

이 책은 한 편의 詩다. 나는 이렇게 이 책의 의미를 말하고 싶다. 인터넷 서점의 분류를 보면, 한국 소설, 한국 수필, 인문 비평 등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물론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詩라고 하는 것은, 내가 그렇게 읽었기 때문이고, 좀 더 쉽게 이 책의 본질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이 책을 편집한 오인영 박사를 따르면, 소설가 최인훈의 독창적인 사유를 소개하고자 이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이 책은 철학책이 아니다. 이 책은 철학적인 문학책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한다면, 최인훈의 소설 <<구운몽>>에 수록된 <해전>이라는 詩를 설명해 놓은 책이다. 이 시를 읽고, 마지막에 수록된 단편 <바다의 편지>를 먼저 읽어야 한다. 시가 보여주는 절제된 감성을 소설을 통해서 풀어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바다의 편지>가 쉽다는 것은 아니다. 대가의 절제된 문장들은 소설이라기보다 한 편의 詩라고 봐야 한다.

`

<바다의 편지>를 읽었다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이런 생각을 했다면, 이제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된 것이다. 오인영 박사의 서문을 건너뛰고, 본문 첫 번째 <길에 관한 명상>을 읽어라. 이 부분을 읽을 때 주의 할 점은, 인문학책이나 과학책을 읽듯이 정말 그게 사실이냐? 이런 의문을 가지고 읽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문학책이다.‘길’이라는 단순한 단어를 가지고 소설가 최인훈은 어디까지 사유의 촉수를 뻗치고 있는가를 느끼면 된다. 나는 사람이 다니는 길과 차가 다니는 길 정도로 생각했다. 옛날 사람들은 사람이 다니는 길과 짐승이 다니는 길로 나누었을 것이다. 최인훈은 그 끝이 없는 우주의 행성들 궤도부터 창조의 순간, 단세포부터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생성과 소멸했던 물질의 길까지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러한 그가 가진 길에 대한 넓이와 깊이를 통해서, 우리의 대뇌피질을 워밍업 했다면, 그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세계다. 소설가 최인훈의 과거와 현실이 아니라, 그가 창조해놓은 소설 속의 세계다. 독자들은 소설가가 창조해 놓은 세계에서 일어났던 일부만을 작중화자를 통해서 경험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소설 속의 세계는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만큼 정교하고 복잡한 세계이다.

`

본질적으로 소설이든 시든 無에서 시작해서 글자 속에서만 존재한다. 글자 속에서 의미를 찾아서 현실로 끄집어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그 세계에 조금 다가갔다면 그의 작품이 좀 더 선명하게 보일 것이다.

대가의 책을 이리저리 맘대로 찢어놓은 것이 맘에 걸린다. 이 건 단순히 내가 책을 읽은 방법일 뿐 이 책의 진정한 가치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싶다.

````````````````````````````

해전

`

잠수함이 가라앉으면서

봉어들은 태어난 것이다.

바닷풀 사이사이를 지나

그 무쇠배들조차 숨막혀 죽은 수압

해구海溝를 헤엄쳐

어항 속으로 찾아온 것이다.

`

바다는 그리워서 흔들리는 새파란 가슴

너를 용서하지. 묶여 있는 너를

한 줄기 소낙비를 기폭처럼 날리며

도시를 폭격하는 너를

달려 오렴

달려 오렴

그렇지

`

금붕어는

도시에 보낸 너의 잠수함

그 힘찬 원양 항로

그 장대한 뱃길에서

과연 단 한 번도 사랑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수병들은 그리웠던 것이다

`

태양도 얼굴을 찌푸렸다

산홋가지를 날리고

진주를 바순

폭뢰爆雷

`

금붕어는

오지 않고는 배기지 못했다

원무곡이 파도치는 찻집

어항 속의 금붕어는

눈알까지 발그스레하다

`

들어라 큰바다의 울부짖음을

보라 거포의 발작을

`

산기産氣를 느낀 암고래들이

크낙한 산실을 찾아 헤맸다

`

잠수함이 침몰했을 때

이등 수병은

어머니의 사진에 입을 맞췄다

자식은 열아홉 살이나 먹었는데

애인이 없었다

게다가 담배질도 배우기 전

`

한때 그 수역水域은

물이랑을 파헤치면서 저 숫고래들이

암컷을 따라가던 곳

`

기관이 부숴지고

산소 탱크가 터져

바다 밑에 내려앉은 잠수함은

가재미 늦새끼만도 못한 것

`

이제

만 톤급 순양함 바다의 이리는

파이프를 닦아 넣는

끽연 클럽의 신사처럼

산뜻이 포신을 거두면서

기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

어머니 사진이 물밑에 깔렸다 해서

바다는 장수연을 피웠다고

할 수 있겠는가

`

싱그런 미역풀이

함기艦旗만 못하다는 건 아니지만

81명의 수병을

그 물밑에 영주시켰다고 해서

우리는 위대한 이민移民 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

하늘에 치뿜는 물기둥이

쏟아져 밀린 해일

다만 금붕어는 온 것이다

철함을 질식시킨

해구의 수압을 뚫고

`

그리고 내 사람이여

산호보다 고운 이여

나 그대를 사랑하노라

`

최인훈 소설 <<구운몽>> 중에서

2012.03.02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