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애니멀 - 사랑과 성공, 성격을 결정짓는 관계의 비밀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인간 관계 [소셜 애니멀] 데이비드 브룩스, 흐름출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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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간이 누리고 있는 번영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의식적인 사고과정에서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의식보다 한 차원 아래에 있는 것, 즉 무의식적 사고 과정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 의식이 높은 지휘본부 자리에 우뚝 서서 세상을 멀리 조망하여 상황을 단순화해 언어로 분석하는 장군이라면, 무의식은 수백만의 척후병인 셈이다. … 척후병들은 사물을 정서적인 의미로 포장한다. … 이러한 신호가 우리의 삶을 통제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는 틀을 만들어준다. … 이성을 강조하는 프랑스의 계몽주의가 패배의 길에 들어서고, 감정을 강조하는 영국 계몽주의가 승리의 길에 들어선다. (책의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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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만 읽어봤을 때는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단지 1760년 완성된 장자끄 루소의 [에밀]의 문체를 빌려 와서 이야기한다는 것만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러니 이야기의 시작은 [에밀]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는 “그는 거의 혼자서 프랑스에서 계몽주의의 유물론 및 무신론과 싸웠다. 미묘하고 신경질적인 인물이 백과전서파의 강인한 이성주의와 거의 야수적인 괘락주의의 한가운데에 던져졌다는 것은 얼마나 얄궃은 운명인가?” (윌 듀란트 <철학이야기>)

루소의 대표적인 저작인 [사회계약론]과 더불어 [에밀]은 루소의 사상이 그대로 담고 있다. 특히 [에밀]은 시계처럼 정확하게 하루에 8번 산책을 하던 칸트가 이 책을 단숨에 읽기 위해서 철학자의 길이라고 불리던 보리수 길의 산보도 걸렀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우리는 광대한 우주를 측량한 방법이 없고 지도 원리도 최후 목적도 모른다. 우리 자신의 성질을 모르며 성격도 모르고 움직이는 정신도 모른다. 알 수 없는 불가사의에 싸여 있다. 이런 신비는 감각의 영영 외다. … 그들은 자기의 철학계통이 타인 것보다 확실한 근거 위에 서 있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철학계통 때문이다. … 나로 하여금 내심의 광명에 따르도록 하라. 만약 혼난에 빠졌다면 내 잘못이다. 내가 자신의 망상에 따른다고 해도 내가 타인의 기만을 신뢰할 만큼 큰 과오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루소 <에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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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임스 조이너스의 [율리시스]를 떠올리게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율리시스]는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의 구성과 등장인물을 차용하여 쓴 작품이다. 이 작품도 대단한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오딧세이아]를 선택하겠다. 옛것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2500년 동안이나 살았고, [율리시스]라는 걸작의 원작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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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 시대의 혼란함을 키가 작고 볼품없는 시골학자가 마무리했다. “경험은 우리의 오성을 한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분야는 결코 아니다. 경험은 우리에게 무엇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지만 그것이 필연적으로 그러하고 다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경험은 우리에게 참된 보편성을 주지 못하며, 특히 보편적인 인식을 추구하는 이성은 경험에 의해 만족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극을 받는다. 동시에 내적 필연성이라는 성격을 갖는 이러한 보편적 인식은 경험으로부터 독립하여 그 자체로서 명석하고 확실해야 한다.” (칸트, <순수이성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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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척후병의 역할은 아주 크다. 최전선에서 실제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의 승패는 지휘관이 어떠한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서 판가름나게 된다. 노련한 척후병 여러 명보다 신참 지휘자 한 명을 사살하는 것은 저격수의 기본 임무다.

2011.12.29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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