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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의 집
새러 그루언 지음, 한진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미국 소설 [보노보의 집] 새러 그루언, 두두림,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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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는 아프리카 콩고공화국에 주로 서식하는 영장목 사람과의 동물이다. DNA 분석하면 인간과 98% 이상 일치하며, 생김새는 침팬지와 유사하다. 아마 우리가 침팬지로 알고 있었던 것 중에 보노보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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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으며, 많은 나라에서 읽고 있다고 하니 작품의 세부적인 것에 대한 평가는 접어두고 싶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친구 보노보]라는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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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소개를 보면, 작자는 노아의 방주에 버금가는 규모의 동물들과 함께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살고 있다. 그녀가 생각하는 친구는 무엇일까? 저자는 한 인터뷰에서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보노보에 대해서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지자’라고 말했다. 그러면 경각심을 가지는 것과 노아의 방주 같은 거대한 동물원을 만드는 것은 무슨 관계일까? 유럽인들이 북미대륙으로 이주를 시작하면서 원주민이었던, 인디언을 보호구역으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지금 인디언들은 행복한가? 제도적으로 많은 지원이 따르고 있지만,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인디언은 보호구역 안에서만 살아야 된다. 경계를 만들어서 보호한다는 것은 다른 말고 그 속에 가두어 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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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뒤편에 가면, 롤라야 보노보 보호구역 이야기가 나온다. 그곳은 보노보가 살았던 콩고에 있는 ‘보노보의 낙원’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지금 그곳은 처참한 전쟁터 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인간이 그들에게 낙원을 만들어 줄 수 없다. 인간이 만드는 낙원은 또 다른 경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최대한 인간의 눈길과 손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들의 낙원이다. 굳지 인간의 친구로 만들 필요가 없다. 우리의 무관심이 그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행복을 줄 것이다. 그들이나 우리는 모두 신의 피조물이며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피조물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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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201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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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